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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교회

바울

한때 신자들을 잡아 가두고 스데반의 처형에 동의했던 사람이, 다마스쿠스로 가던 길에서 방향을 잃고 다시 얻어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데 남은 삶을 썼다

이름 뜻

태어날 때 받은 이름은 히브리어 「사울」— 베냐민 지파 출신다운 이름으로, 이스라엘의 초대 왕과 같다. 사도행전은 이방인 선교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13장부터 그를 「바울」이라는 로마식 이름으로 부르기 시작하는데, 정확히 언제 어떤 계기로 이름이 바뀌었는지는 설명하지 않는다. 두 이름이 나란히 쓰인 배경을 특정 사건 하나로 짚기보다는, 지중해 세계를 오가며 살던 디아스포라 유대인이 히브리식 이름과 현지식 이름을 평소에도 함께 지니고 살았던 흔한 사정 정도로 보는 설명이 많다.

등장 책

핵심 장면

관계

  • 다마스쿠스 도상에서 그를 만나 방향을 돌려놓은 이예수
  • 그의 처형 현장에 있었고 죽음에 찬성했던 인물스데반
  • 첫 선교여행을 함께 떠난 동역자바나바
  • 훈련시켜 데리고 다닌 젊은 동역자디모데
  • 선교 여행과 로마 압송에 동행한 의사누가

이 사람의 문제

다마스쿠스 사건 이전, 그는 예루살렘에서 신자들을 잡아 가두던 사람이었다.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던 자리에도 있었다. 직접 돌을 던지지는 않았지만 증인들이 벗어 놓은 겉옷을 맡아 지키고 있었고, 사도행전은 그가 그 죽음에 동의하고 있었다고 적는다. 이후로도 그는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남녀를 가리지 않고 신자를 끌어내 감옥에 넘겼고, 예루살렘 밖까지 잡으러 갈 편지를 스스로 요청해 받아 냈다. 훗날 그는 이 시기의 자신을 그리스도인 공동체를 없애 버리려 했던 사람으로 회고한다. 회심 이후에도 그는 완결된 인물로 남지 않는다. 첫 선교 여행을 함께 떠난 동역자 바나바와는 몇 해 뒤 심하게 갈라선다. 두 번째 여행을 앞두고, 첫 여행 도중 중간에 돌아가 버린 적이 있는 젊은 동역자 마가(요한 마가)를 다시 데려갈지를 두고 다툼이 벌어졌다. 사도행전은 이 갈등을 두 사람이 서로 격렬하게 맞선 장면으로 짧게 전하며, 결국 각자 다른 길로 갈라섰다고 적는다. 누가 옳았는지는 본문이 판정하지 않는다. 다만 이 일로 갈라선 뒤에도 바울 자신이 남긴 훗날의 편지들 속에서 마가를 다시 곁에 두고 싶어 하는 인물로 언급한다는 사실만은 남아 있다.

흔한 오해

바울은 예수의 열두 제자 중 한 명이었다

바울은 예수가 활동하던 시기 그를 따르던 열두 제자에 속한 적이 없다. 그가 예수를 만난 것은 십자가 처형과 부활 이후, 다마스쿠스로 가던 길에서였다. 고린도전서에서 그는 자신을 다른 사도들과 같은 순서로 부름받지 못하고 예정 밖에서 뒤늦게 사도가 된 사람으로 스스로 소개하며, 자신을 사도라 부를 자격이 있는지조차 자문하는 대목을 남긴다. 그럼에도 신약은 사도행전 14장 이후 그를 반복해서 「사도」로 부르며, 그 근거를 부활한 예수를 직접 만난 경험과 이방인에게 보냄받았다는 소명에 둔다.

신약에 실린 바울 서신 13편은 모두 바울이 직접 쓴 것이 확실하다

다수 신약학자는 로마서·고린도전후서·갈라디아서·빌립보서·데살로니가전서·빌레몬서 등 7편가량을 논쟁의 여지가 거의 없는 친서로 본다. 나머지—에베소서·골로새서·데살로니가후서, 그리고 디모데전후서와 디도서(목회서신)—에 대해서는 문체와 신학적 강조점의 차이를 근거로, 제자나 후계자가 그의 권위를 빌려 이름으로 썼을 가능성을 논의하는 학자들이 있다. 반면 이런 차이를 시기·수신자·대필자에 따른 자연스러운 변화로 보아 13편 모두를 바울의 저작으로 보는 학자들도 여전히 있다. 어느 쪽으로 보든 개신교·천주교·정교회 모두 이 13편을 동일하게 정경으로 받아들인다는 점에는 차이가 없다.

바울이 로마에서 순교했다는 사실은 성경에 명확히 기록되어 있다

신약성경 자체는 바울의 죽음을 기록하지 않는다. 사도행전은 그가 로마의 셋집에 갇힌 채 2년 동안 방해받지 않고 사람들을 가르쳤다는 문장으로 끝나고, 재판이 어떻게 결론 났는지는 적지 않는다. 그가 네로 황제 치하, 대략 AD 60년대 중반 로마에서 처형되었다는 이야기는 1세기 말 클레멘스1서를 비롯한 후대 교회 문헌이 전하는 전승이며, 성경 본문이 직접 서술하는 사실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