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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 · 서신

디도서 흩어져 있던 신자 무리에서, 장로가 세워진 교회로

지중해의 큰 섬 그레데에는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이 여기저기 생겨났지만, 그들을 하나로 묶어 줄 사람도 규칙도 없었다. 바울은 그 섬에 남겨 둔 제자 디도에게 세 장짜리 편지 한 통을 보내, 지금부터 정리를 시작하라고 당부한다.

저자(전승)
사도 바울이 자신의 동역자 디도에게 쓴 편지로 전승된다. 편지 자체도 첫머리에서 '바울'이라는 이름으로 시작하며, 그레데(오늘날의 크레타 섬)에 남겨 둔 디도에게 임무를 맡기는 형식을 취한다(1:1-5, 자체 풀이).
저자(학계)
디모데전서·디모데후서와 함께 이른바 '목회 서신' 세 편으로 묶이며 저작권 논쟁을 함께 받는다. 친서로 보는 입장은 사도행전이 다루지 않는 시기(로마 1차 투옥 이후로 보는 견해가 많다)의 활동을 전제하면 그레데 사역과 이 편지의 집필이 충분히 가능하다고 본다. 후대 저작으로 보는 입장은 이 편지의 어휘와 관심사가 디모데전서·디모데후서와 하나의 묶음처럼 보인다는 점, 그리고 도시마다 장로를 세우는 절차 등 교회 조직이 더 정착된 단계를 전제한다는 점을 근거로 든다. 이 앱은 어느 쪽도 결론으로 제시하지 않는다.
연대
친서로 보면 AD 60년대(약 2천 년 전), 후대 저작으로 보면 1세기 말~2세기 초(학설이 갈린다). 기록 장소도 확정되지 않았으며, 그리스 서부의 니고볼리로 가는 여정 중에 썼다고 보는 견해가 있다.
장 수
3

3막 요약

  1. 상황

    바울이라는 사람은 예수님의 이야기를 여러 곳에 전하러 다녔어요. 그레데라는 큰 섬에도 신자들이 생겼어요. 그런데 아직 아무도 그들을 이끌지 않았어요. 모임을 정리해 줄 사람이 없었던 거예요. 바울은 자신의 제자 디도를 그 섬에 남겨 두었어요. '아직 정리되지 않은 일을 정리하고, 마을마다 이끌어 줄 사람을 세워라'고 부탁했어요. 이 편지는 바울이 디도에게 그 일을 어떻게 할지 알려 주려고 쓴 편지예요. 어떤 사람을 이끄는 사람으로 세워야 하는지도 알려 줘요. 술을 함부로 마시지 않고, 화를 잘 내지 않고, 가족을 잘 돌보고, 사람들에게 바르게 가르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대요.

    이 편지는 바울이 자신의 동역자 디도에게 보낸 것으로 전해진다. 디도는 그레데(오늘날 지중해의 크레타 섬)에 남아 있었다. 이 섬에는 신자 무리가 여기저기 생겼지만, 아직 그들을 이끌 조직도 책임자도 없었다. 편지는 첫머리에서 바울이 디도를 그 섬에 남겨 둔 이유를 밝힌다. 아직 정리되지 않은 일을 정리하고, 도시마다 장로(회중을 돌보고 함께 결정을 내리는 책임자)를 세우라는 것이다. 이어지는 조건 목록은 디모데에게 보낸 다른 편지의 내용과 상당 부분 겹친다. 흠잡을 데 없는 평판, 한 아내의 남편, 자녀를 잘 돌보는 것, 술과 돈에 대한 절제된 태도, 다투지 않는 성품이 나열된다. 여기에 이 편지만의 조건이 하나 더 붙는다. 배운 것을 그대로 붙들어 다른 사람을 바르게 가르치고, 반대하는 주장을 논리적으로 반박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능력이나 학식이 아니라 평판과 생활, 그리고 가르칠 수 있는 능력이 기준이라는 점이 눈에 띈다. 이 조건이 유독 강조된 데는 이유가 있다. 아직 가르침이 흔들리고 있는 곳이었기 때문으로 읽힌다.

    이 편지의 첫 다섯 절은 목회 서신 세 편 가운데 유일하게 임무를 맡기는 대목을 편지 서두에서 곧바로 꺼낸다. 바울은 디도를 그레데에 남겨 둔 목적을, 아직 정리되지 않은 일들을 마무리하고 각 마을에 지도자급 인사(장로)를 세우라는 지시로 설명한다(1:5). 그레데는 지중해에서 손꼽히게 큰 섬으로, 로마 제국의 한 속주였고 여러 도시가 흩어져 있었다. 신자 무리가 이미 여러 도시에 퍼져 있었다는 뜻이며, 그만큼 조직을 갖추는 일이 한 곳이 아니라 여러 곳에서 동시에 필요했다는 사정을 짐작하게 한다. 이어지는 1장 6~9절의 장로 자격 목록은 디모데전서 3장의 감독·집사 조건과 상당 부분 겹친다. 흠 없는 평판, 혼인 관계가 흐트러지지 않은 사람, 방탕하지 않은 자녀, 술과 재물에 대한 절제, 다투지 않는 성품이 공통으로 나온다. 두 목록이 이렇게 겹친다는 점, 그리고 이 편지 1장 5절과 7절에서 장로와 감독이라는 두 표현이 같은 대상을 가리키는 것처럼 나란히 쓰인다는 점 때문에, 초기 교회에서 두 직책이 아직 뚜렷이 구분되지 않았다고 보는 견해가 널리 받아들여진다. 오늘날 여러 교단에서 쓰는 장로·감독(주교)의 구분은 이후 시대에 정착한 제도로 보는 설명이 일반적이다. 이 목록에서 유독 이 편지에만 두드러지는 조건이 하나 있다. 믿을 만한 가르침을 굳게 붙들어야, 다른 사람을 바르게 권면하고 반대하는 사람에게도 논리적으로 반박할 수 있다는 요구다(1:9). 다른 편지들이 자격 목록을 비교적 짧게 마무리하는 데 비해, 이 편지는 가르치고 반박하는 능력을 특히 강조한다. 바로 다음 대목(1:10-16)에서 이 조건이 왜 필요했는지가 구체적으로 드러나는데, 이는 이 편지가 다른 목회 서신보다 훨씬 짧으면서도 문제의 원인과 해법을 촘촘하게 연결해 배치하는 구성을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2. 사건

    바울은 편지에서 그레데 사람들 사이에 퍼진 문제를 이야기해요. 어떤 사람들이 거짓을 가르치며 사람들을 속이고 있었어요. 바울은 그레데 출신의 옛 시인이 남긴 말을 하나 끌어와요. '그레데 사람은 늘 거짓말쟁이'라는 말이에요. 이건 바울이 그레데 사람 전체를 그렇게 생각한다는 뜻이 아니에요. 그 시대에 널리 알려진 말을 빌려 와서, 지금 퍼지고 있는 거짓 가르침을 강하게 꾸짖으려는 거였어요. 그다음 바울은 중요한 이야기를 해요. 하나님이 거저 주시는 선물, 즉 은혜가 모든 사람에게 나타났대요. 이 은혜가 사람들을 가르쳐서 나쁜 것을 버리고 절제하며 바르게 살게 한다는 거예요. 용서만 해 주고 끝나는 게 아니라, 어떻게 살아야 할지도 가르쳐 준다는 뜻이에요.

    1장 10절부터 분위기가 바뀐다. 바울은 규율을 따르지 않고 헛소리를 늘어놓으며 사람들을 속이는 이들이 적지 않다고 지적하며, 특히 할례파(유대교 배경에서 온 사람들로 짐작된다)를 겨냥한다. 이들은 부당한 이득을 노리고 옳지 않은 내용을 가르치면서, 여러 집안을 통째로 흔들어 놓고 있었다고 서술된다. 여기서 바울은 그레데 출신의 한 시인(전통적으로 에피메니데스로 알려짐)의 말을 끌어와, 그 지역 사람들을 거짓말쟁이·짐승 같은 존재·게으른 먹보로 묘사한다(1:12). 이어 바울은 그 평가가 사실과 다르지 않다고 동의하며 디도에게 그들을 엄히 꾸짖으라고 지시한다. 다만 이 지시가 겨냥하는 것은 그레데 사람 전체가 아니라, 지금 문제를 일으키는 특정 무리의 행태로 읽는 것이 일반적이다. 2장에서 어조는 다시 실무적으로 바뀐다. 늙은 남자와 여자, 젊은 여자와 남자, 종에게 각각 무엇을 가르칠지가 이어진다. 이 지침들은 당시의 가정 질서를 전제로 하고 있어, 오늘의 독자에게는 시대 배경과 함께 읽어야 하는 대목이다. 그런데 이 목록 한가운데, 편지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신학적 문장이 등장한다. 자격과 무관하게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구원 선물이 곧 사람을 훈련시켜, 불경건한 태도와 이 세상적 욕심을 내려놓고 절제하며 바르고 신실하게 살아가도록 이끈다는 것이다(2:11-12). 은혜가 단지 지나간 잘못을 없던 일로 해 주는 사건이 아니라,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가르치는 능동적인 힘으로 그려진다는 점이 특징이다.

    1장 12절의 인용문은 고대부터 유명한 문장이었다. 전통적으로 기원전 6세기 크레타 출신 시인이자 예언자로 알려진 에피메니데스(Epimenides)의 말로 전해지며, 그레데 사람은 늘 거짓을 말한다는 이 문장은 정작 말한 사람 자신이 그레데 출신이라는 점 때문에 논리학에서 이른바 '거짓말쟁이 역설'의 초기 사례로도 종종 언급된다. 바울이 이 문장을 실제로 에피메니데스에게서 가져왔는지, 아니면 이미 지중해 세계에 널리 퍼진 속담을 인용했는지는 확정하기 어렵다. 분명한 것은 고대 지중해 세계에서 특정 지역·민족에 대한 이런 식의 정형화된 평판(스테레오타입)이 흔히 쓰였고, 바울도 그 관습을 그대로 빌려 와 지금 그레데 교회를 흔드는 문제(거짓 가르침, 부당한 이득을 위한 속임수)를 꾸짖는 도구로 삼았다는 점이다. 이 구절을 성경이 그레데 민족 전체의 본성을 규정한 것으로 읽는 독법은 오늘날 거의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1장 10~11절이 겨냥하는 할례파는 유대교적 배경에서 온 가르침으로 짐작되며, 디모데전서 1장이 경고하는 신화와 끝없는 족보 이야기와 비슷한 문제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 편지도, 디모데전서도 그 가르침의 구체적 내용을 체계적으로 설명하지 않아 오늘날 재구성은 추정에 머문다. 2장의 나이·처지별 지침(늙은 남자와 여자, 젊은 여자와 남자, 종)은 고대 그리스·로마 세계에 이미 널리 퍼져 있던 '가정 규례'(household code)라는 문학 형식을 따른다. 이 편지는 그 틀을 가져오면서도, 하나님의 가르침이 조롱거리가 되지 않게 하려는 목적(2:5)과, 모든 면에서 구주 하나님에 대한 가르침을 돋보이게 하려는 목적(2:10)이라는 선교적 동기를 그 안에 심어 둔다는 점이 눈에 띈다. 2장 11~14절은 이 편지에서 신학적으로 가장 밀도 높은 대목이다. 특히 은혜를 가리키는 동사(파이듀우사, paideuousa — '훈육하다', '교육하다'는 뜻)는 은혜를 단순한 사면이 아니라 삶 전체를 다시 훈련시키는 능동적 과정으로 그린다. 또한 2장 13절은 위대하신 하나님이자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영광 가운데 나타나는 순간을 그리는데, 이 구절은 신약에서 예수를 하나님으로 직접 부르는 것으로 읽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본문 중 하나로 꼽힌다. 그리스어 문법 규칙(관사 하나가 두 호칭을 함께 묶는 구조, 이른바 그랜빌 샤프 규칙으로 불린다)을 근거로 이 구절이 예수를 하나님이자 구주로 동일시한다고 보는 해석이 다수 주석가 사이에서 널리 받아들여진다. 다만 두 호칭을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라는 별개의 두 존재를 가리키는 것으로 읽는 소수 해석도 있어, 이 구절은 그리스도의 신성을 다루는 논의에서 종종 소환되는 본문이다.

  3. 결과

    편지의 마지막 부분에서 바울은 사람들과 어떻게 지내야 하는지 말해요.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들 말을 잘 듣고, 다른 사람과 싸우지 말라고 해요. 그러면서 예전에 자신들도 어리석고 못된 모습이었다는 걸 떠올리게 해요. 그런데 하나님이 잘한 것 때문이 아니라 그냥 자비로 구원해 주셨대요. 마치 더러운 것을 깨끗이 씻어 주고 새롭게 만들어 준 것 같았대요. 바울은 쓸데없는 말싸움은 피하라고 하고, 자꾸 다투는 사람은 몇 번 타이르고도 안 되면 멀리하라고 해요. 편지 끝에는 여행 계획도 나와요. 겨울을 함께 보낼 도시에서 만나자고 하고, 여러 동료의 이름을 알려 주며 편지를 마쳐요.

    3장은 사회 안에서의 태도로 시작한다. 통치자와 권세 잡은 자들에게 복종하고, 모든 사람에게 온유함을 나타내라는 권면이다. 이어 바울은 한때 자신들도 어리석고 고집스러웠던 과거를 떠올리게 한다(3:3). 그런데 그 처지를 바꾼 것은 자신들의 선한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자비였다고 말한다. 사람이 스스로 쌓은 선행이 아니라 순전히 자비로, 다시 태어나는 씻음과 성령(기독교에서 하나님의 영으로 부르는 존재)을 통한 새로워짐으로 우리를 구원했다는 선언이다(3:5). 이 문장은 짧은 편지 안에서 바울 신학의 핵심(행위가 아니라 은혜로 얻는 구원)을 압축해서 담고 있다. 이어지는 3장 9~11절은 다시 실무 지침으로 돌아간다. 부질없는 논쟁과 족보를 둘러싼 시비, 율법 해석을 놓고 벌어지는 다툼과는 거리를 두라는 것, 그리고 공동체를 분열시키는 사람은 한두 차례 타일러도 바뀌지 않으면 관계를 정리하라는 것이다. 마지막 대목(3:12-15)은 편지의 실제 상황을 보여 준다. 바울은 아데마나 두기고를 그레데로 보낼 계획이며, 그들이 도착하면 디도가 니고볼리(그리스 서부의 도시)로 와서 겨울을 나기를 청한다. 율법 교사 세나와 아볼로가 여행 중임을 언급하며 그들을 도와주라고 부탁하고, 신자들이 급한 필요를 채우기 위해서라도 선한 일에 힘쓰기를 배워야 한다는 당부로 편지를 맺는다.

    3장 4~7절은 신약에서 손꼽히게 압축적인 구원 요약 본문으로 꼽힌다. 짧은 어구들이 이어지며 구원의 원인(사람의 자격이 아니라 하나님 쪽에서 베푼 자비), 방식(다시 태어나게 하는 씻음과 성령을 통한 갱신), 통로(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넉넉히 부어진 성령), 목적(은혜로 인정받아 영원한 생명을 이어받을 상속자가 되는 것)을 차례로 짚는다. '중생의 씻음'에 해당하는 표현(로우트론 팔링게네시아스, loutron palingenesias)을 두고는 오래된 해석 차이가 있다. 이 표현이 세례 예식 자체를 구원의 통로로 가리킨다고 읽어, 세례를 통해 실제로 거듭남이 일어난다고 보는 입장(로마가톨릭·정교회, 일부 루터교·성공회 전통의 유아세례 신학과 연결된다)과, 세례가 상징하는 내적·영적 새롭게 됨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읽어 성령의 사역과 동일시하는 입장(다수의 개혁주의·침례교 전통)이 갈린다. 이 앱은 이 논쟁에서 결론을 내리지 않는다. 마지막 인사(3:12-15)에는 몇 가지 흥미로운 정보가 압축되어 있다. '율법교사 세나'라는 표현에서 '율법교사'(노미코스, nomikos)가 로마 세계의 법률 전문가를 가리키는지 유대교 율법 전문가를 가리키는지는 확정되지 않는다. 신약 전체에서 이 단어로 사람을 소개하는 곳은 이 구절이 유일하다. 함께 언급되는 아볼로는 사도행전 18장과 고린도전서에도 등장하는 인물로, 웅변에 능한 유대인 신자로 소개된 바 있어 여러 지역을 오간 초기 교회 인물들의 네트워크를 보여 주는 단서로 읽힌다. 겨울을 나겠다고 언급되는 '니고볼리'는 고대에 이 이름을 쓴 도시가 여러 곳 있었지만, 그리스 서부 악티움 인근에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세운 도시를 가리킨다고 보는 견해가 가장 유력하다. 이 짧은 여행 계획은 편지가 실제 인물들의 구체적 동선 안에서 쓰였다는 점을 보여 주며, 목회 서신 세 편 가운데 이 편지가 디모데후서와 함께 가장 개인적이고 정황이 뚜렷한 축에 속한다는 평가를 뒷받침한다.

구조 나누기

  1. 1:1-4인사와 임무 — 그레데에 디도를 남겨 둔 이유
  2. 1:5-9장로의 자격 — 평판, 생활, 그리고 가르치는 능력
  3. 1:10-16흔들리는 가르침과 그레데 사람 인용
  4. 2나이와 처지에 따른 생활 지침, 그리고 가르치는 은혜
  5. 3:1-11이웃과 통치자를 대하는 태도, 구원의 근거
  6. 3:12-15여행 계획과 마지막 인사

핵심 구절 (자체 풀이)

  • 딛 1:5아직 마무리되지 않은 일들을 정리하고, 지시받은 방식대로 각 도시마다 지도자급 인사(장로)를 세우라는 임무 지시. 편지 전체가 출발하는 문장이다.
  • 딛 1:12-13그레데 출신 시인의 말을 끌어와 그 지역에 퍼진 문제를 강하게 꾸짖는 대목. 오늘날 그대로 옮겨 특정 집단을 규정하는 근거로 쓰기에는 조심스러운 표현이다.
  • 딛 2:11-14모든 사람에게 값없이 주어진 하나님의 구원이, 불경건한 삶과 세속적 쾌락을 등지고 신중하고 올바르고 경건하게 살아가도록 사람을 훈련시킨다는 대목. 이 편지의 신학적 핵심으로 꼽힌다.
  • 딛 3:4-7사람 스스로 쌓은 선행 때문이 아니라 순전히 하나님의 자비 덕분에, 거듭남을 상징하는 씻음과 성령을 통한 새로워짐으로 구원받았다는 압축적 요약.
  • 딛 3:9-11부질없는 논쟁과 족보를 둘러싼 시비, 율법 해석을 놓고 벌어지는 다툼과는 거리를 두고, 공동체를 흔드는 사람은 몇 차례 타일러도 안 되면 관계를 정리하라는 실무 지침.

등장인물

paultitus

이 책의 가르침

  • 도시마다 장로를 세우라는 지시 — 신앙 공동체가 자리 잡으려면 특정한 조직과 책임자가 필요하다는 전제를 보여준다.
  • 장로(감독)의 자격은 능력이나 학식보다 평판, 가정생활, 절제된 태도, 그리고 가르치고 반박할 수 있는 능력을 앞세운다.
  • 은혜를 단순한 용서의 사건이 아니라, 불경건한 태도를 내려놓고 절제하며 살아가도록 훈련시키는 능동적 교육자로 그린다(2:11-14).
  • 신자의 정체성은 논쟁에서 이기는 데 있지 않고, 통치자에게 순응하며 선한 일에 힘쓰는 실제 삶에서 드러난다고 강조한다(3장).

흔한 오해

바울이 그레데 사람은 모두 거짓말쟁이라는 옛말(1:12)에 동의해, 그레데 사람 전체를 실제로 그렇게 평가했다.

이 문장은 그레데 출신 시인(전통적으로 에피메니데스로 알려진 인물)의 옛 시구를 끌어온 것이다. 바울은 그 지역에 퍼진 특정 거짓 가르침과 부당한 이득을 노리는 행태를 강하게 꾸짖으려고 당시 널리 알려진 표현을 빌려 왔을 뿐이며, 성경이 한 민족 전체의 본성을 규정한 것으로 읽는 독법은 오늘날 거의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장로와 감독은 이 편지에서 서로 다른 두 직급을 가리킨다.

1장 5절과 7절에서 두 표현이 같은 대상을 가리키는 것처럼 나란히 쓰여, 초기 교회에서는 두 직책이 아직 뚜렷이 구분되지 않았다고 보는 견해가 널리 받아들여진다. 오늘날 여러 교단이 쓰는 장로·감독(주교)의 구분은 이후 시대에 정착한 제도로 보는 설명이 일반적이다.

2장 11~14절이 말하는 은혜는 그저 잘못을 눈감아 주는 사건에 그친다.

본문은 은혜를, 불경건한 태도와 세속적 욕망을 내려놓고 신중하고 올바르고 경건하게 살아가도록 훈련시키는(원어에는 '훈육하다'는 뜻의 동사가 쓰인다) 능동적인 힘으로 묘사한다. 지나간 잘못을 없던 일로 하는 데서 끝나지 않고, 앞으로의 삶을 다시 빚어내는 교육자로 그려진다는 점이 이 편지의 강조점이다.

읽는 요령

세 장밖에 안 되는 짧은 편지라 한 번에 읽기 좋다. 1장 5~9절의 장로 자격 목록은 디모데전서 3장과 겹치는 내용이 많으니, 두 책을 나란히 놓고 비교해서 읽으면 반복되는 부분과 다른 부분이 눈에 들어온다. 1장 10~16절에서 그레데 사람들을 옛 시인의 표현을 빌려 거짓말쟁이라 부르는 대목은 오늘 읽으면 불편하게 느껴질 수 있는데, 이 표현이 왜 나왔는지 배경을 먼저 확인하고 읽는 편이 좋다. 2장의 나이·처지별 지침은 1세기 가정 질서를 전제로 한 서술이라, 오늘의 상황에 그대로 적용하기보다 시대 배경 안에서 먼저 읽어 보는 것을 권한다. 반대로 2장 11~14절과 3장 4~7절은 짧지만 이 편지 전체의 신학이 압축된 대목이라 천천히 읽을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