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옥에서의 찬송
발에 무거운 나무 차꼬가 채워진 채 온몸이 상처투성이인 두 남자가, 캄캄한 감방 안에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사도행전 · 사도행전 16장 · 초대교회 · 읽는 시간 약 5분
이야기
상황
바울과 실라는 빌립보라는 도시에 갔어요. 이 도시는 로마 사람들이 세운 특별한 도시였어요. 그 도시에는 한 여자아이가 있었어요. 이 아이는 다른 사람의 종이었어요. 이상한 힘이 있다고 사람들은 생각했어요. 앞날을 알아맞히는 것처럼 보였거든요. 주인들은 이 아이를 이용해서 돈을 벌었어요. 이 아이는 며칠 동안 바울을 따라다니며 소리쳤어요. '이 사람들은 하나님의 종이에요!' 맞는 말이었지만 바울은 마음이 불편했어요. 결국 바울은 그 힘에게 명령했어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나가라고요. 그러자 그 힘이 정말 떠났어요. 그 순간 여자아이의 능력도 사라졌어요. 주인들은 돈을 못 벌게 되자 몹시 화가 났어요. 두 사람을 붙잡아 관리들에게 끌고 갔어요. '이 사람들이 로마 풍습을 어지럽혀요!' 하고 소리쳤어요. 관리들은 재판도 하지 않고 매질을 시켰어요. 사람들이 몽둥이로 두 사람을 세게 때렸어요. 그리고 감옥에 가두었어요. 발에는 무거운 나무 차꼬까지 채웠어요.
바울과 실라 일행은 마케도니아의 도시 빌립보에 도착했다. 빌립보는 로마의 식민 도시(콜로니아)였다. 오래전 퇴역 군인들이 이주해 세운 도시였고, 주민들은 로마 시민권을 가지고 있었으며 로마의 법과 풍속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이 도시에서 바울 일행은 여러 날째 한 여종과 마주쳤다. 이 여종에게는 '점치는 영'이 있다고 여겨졌다. 사람들은 그 능력을 이용해 미래를 점쳐 주었고, 주인들은 그것으로 큰돈을 벌었다. 여종은 며칠째 바울 일행을 따라다니며 큰 소리로 외쳤다. 이 사람들은 가장 높은 하나님의 종이고 구원의 길을 전한다는 내용이었다.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바울은 그것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결국 여러 날이 지나 바울은 돌아서서, 그 영을 향해 예수의 이름으로 여자에게서 나가라고 명령했다. 영은 그 즉시 떠났다고 본문은 적는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여종의 능력이 사라지자 돈벌이도 함께 사라졌다. 주인들은 화가 나서 바울과 실라를 붙잡아 광장의 관리들 앞으로 끌고 갔다. 두 사람이 로마 사람에게 맞지 않는 풍속을 전한다고 고발했다. 유대인이라는 사실도 함께 강조되었다. 로마 식민지라는 자부심이 강한 도시에서, 이 고발은 군중의 감정을 쉽게 자극했다. 무리가 함께 일어나 두 사람을 공격했다. 관리들은 정식 심리 절차 없이 두 사람의 옷을 찢게 하고 매질을 명령했다. 여러 차례 매를 맞은 뒤 두 사람은 감옥에 갇혔다. 간수는 엄중히 지키라는 명령을 받았고, 두 사람의 발은 나무 차꼬에 채워진 채 가장 안쪽 감방에 놓였다.
이 사건의 무대는 마케도니아 속주의 빌립보다. 이곳은 로마의 '콜로니아(colonia)', 곧 로마 시민으로 구성된 식민 도시였다. BC 42년 필리피 전투 이후 로마는 퇴역 군인들을 이 지역에 정착시켰고, 이후 아우구스투스가 식민을 다시 강화하면서 '이탈리아의 권리(ius Italicum)'까지 부여했다고 알려진다. 이 권리를 가진 도시의 주민은 이탈리아 본토의 도시와 비슷한 수준의 로마법 적용과 면세 혜택을 누렸다. 사도행전 16장 12절이 빌립보를 '그 지방의 첫 성이요 로마의 식민지'라고 소개하는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다. 이 도시가 유난히 로마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자랑스러워했다는 점은 이야기 전개에 중요한 배경이 된다. 바울 일행이 마주친 여종의 능력을 사도행전은 그리스어로 '프뉴마 퓌토나(pneuma pythōna)', 곧 '퓌톤의 영'이라 적는다. 퓌톤은 그리스 신화에서 델포이의 아폴로 신탁 자리를 지키던 뱀 또는 용의 이름이었고, 아폴로가 그것을 죽인 뒤 그 자리에 세워진 것이 델포이 신탁이었다. 이후 그리스·로마 세계에서는 복화술이나 영매술로 신탁을 전하는 사람을 '퓌톤을 가졌다'고 부르는 관행이 생겼다는 것이 다수 고전학자의 설명이다. 즉 이 여종은 막연한 '귀신 들린 사람'이 아니라, 델포이 신탁과 연결된 특정한 종교적 범주로 그 시대 사람들에게 이해되고 있었다는 뜻이다. 바울이 침묵을 지키다가 결국 반응한 이유를 본문은 '심히 괴로워하다가'라는 한 구절로만 설명한다. 그 여종의 외침 내용 자체는 신학적으로 틀리지 않았다는 점이 흥미롭다. 그런데도 바울이 이를 불편하게 여긴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해석이 있다. 이런 방식의 인정이 오히려 복음의 메시지를 이교 신탁의 언어와 뒤섞어 버릴 위험이 있었다고 보는 해석, 또는 이 여종 자신이 착취당하는 처지에 있다는 사실이 더 근본적인 문제였다고 보는 해석이 있다. 본문은 어느 쪽도 명시하지 않는다. 고발 장면에서 누가는 관리들을 그리스어로 '스트라테고이(stratēgoi)'라 부른다. 빌립보 같은 로마 식민 도시의 정식 최고 관직은 라틴어로 '두움비리(duumviri)', 곧 두 명의 공동 시장이었다. 그런데 식민 도시의 두움비리가 실제 격보다 높은 '프라이토르(praetor)'라는 칭호를 스스로 즐겨 썼다는 기록이 고전 문헌에 남아 있고, 그리스어 '스트라테고이'는 이 프라이토르에 대응하는 번역어다. 누가가 이 지역의 실제 관행을 정확히 반영한 표현을 썼다는 근거로 자주 언급된다. 매질의 성격도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다. 관리들이 명령한 매질은 그리스어로 '랍디제인(rhabdizein)', 곧 막대기로 치는 형벌이다. 이는 채찍(플라겔룸)을 쓰는 더 가혹한 로마의 형벌과는 구분되며, 주로 공공질서를 어지럽힌 사람에게 약식으로 가해지던 처벌이었다. 이 매질을 집행한 사람들은 관리를 수행하며 막대기 다발(파스케스)을 들고 다니던 '랍두코이(rhabdouchoi)', 곧 릭토르였다. 바울은 훗날 고린도후서 11장에서 자신이 세 번 막대기로 맞았다고 적는데, 이 장면이 그중 한 번으로 여겨진다.
사건
깜깜한 밤이 되었어요. 바울과 실라는 몸이 아팠지만 기도하고 노래를 불렀어요. 다른 죄수들도 그 소리를 들었어요. 그런데 갑자기 땅이 흔들렸어요! 큰 지진이었어요. 감옥 문이 모두 열렸어요. 사람들을 묶고 있던 사슬도 다 풀렸어요. 자고 있던 간수가 깜짝 놀라 깨어났어요. 문이 열린 걸 보고 죄수들이 다 도망갔다고 생각했어요. 간수는 너무 무서워서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했어요. 그때 바울이 크게 외쳤어요. '그러지 마세요! 우리 모두 여기 있어요!' 아무도 도망가지 않았던 거예요. 간수는 불을 가져오라고 했어요. 그리고 바울과 실라 앞에 무릎을 꿇었어요. '제가 어떻게 해야 구원받을 수 있나요?' 하고 물었어요. 바울과 실라는 예수님을 믿으라고 답했어요. 간수는 두 사람을 자기 집으로 데려가 상처를 닦아 주었어요. 그날 밤, 간수의 가족 모두가 물로 씻는 예식(세례)을 받았어요. 다 함께 기뻐했어요.
한밤중이 되었다. 감옥은 어두웠고, 두 사람의 몸은 매맞은 상처로 성했다. 발은 차꼬에 묶여 움직일 수 없었다. 그런데 바울과 실라는 그 자리에서 기도하며 노래를 불렀다. 다른 죄수들도 그 소리를 듣고 있었다고 본문은 적는다. 매를 맞고 갇힌 사람이 원망이 아니라 노래를 부른다는 것 자체가, 함께 갇힌 사람들에게는 낯선 장면이었을 것이다. 그 순간 갑자기 큰 지진이 일어났다. 감옥의 기초가 흔들릴 정도였다. 순식간에 모든 문이 열렸고, 죄수들을 묶고 있던 사슬과 차꼬가 다 풀렸다. 잠들어 있던 간수가 놀라 깨어났다. 감옥 문이 활짝 열린 것을 보자 죄수들이 전부 도망쳤다고 생각했다. 죄수를 놓치면 간수 자신이 대신 처벌받아야 했다. 그는 칼을 뽑아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다. 바로 그때 바울이 큰 소리로 외쳤다. 자신을 해치지 말라고, 우리 모두 여기 그대로 있다고 말했다. 아무도 도망치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간수는 등불을 가져오라고 소리쳤다. 안으로 뛰어 들어가 떨며 바울과 실라 앞에 엎드렸다. 그리고 물었다. 구원을 얻으려면 무엇을 해야 하느냐고. 두 사람은 답했다. 주 예수를 믿으라고, 그러면 그와 그 가족이 구원을 얻을 것이라고. 그날 밤 간수는 두 사람을 자기 집으로 데려가 상처를 씻어 주었다. 그의 온 가족이 그 자리에서 물로 씻는 예식, 곧 세례를 받았고, 함께 음식을 나누며 기뻐했다.
지진이 마침 그 순간에 일어난 것을 두고, 본문은 아무 설명도 붙이지 않는다. 우연히 겹친 자연재해로 읽을 것인지, 서술자가 신적 개입의 표지로 배치한 사건으로 읽을 것인지는 독자의 해석에 남겨진다. 빌립보를 포함한 마케도니아 북부와 소아시아 지역이 지진대에 속해 실제로 지진이 드물지 않은 곳이었다는 지리적 사실은 있지만, 이 사건 자체를 뒷받침하는 성경 밖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간수가 자결을 시도하려 한 이유도 본문 밖의 정보를 알아야 뚜렷해진다. 로마 체제 아래에서 죄수를 놓친 간수는 흔히 그 죄수가 받았어야 할 형벌을 대신 짊어져야 했다. 사도행전 12장에서 베드로가 탈옥한 뒤 헤롯이 간수들을 처형했다는 기록도 같은 관행을 전제한다. 간수가 매를 맞아 이미 상처투성이가 된 두 죄수를 특별히 엄중히 지키라는 명령까지 받은 상태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문이 열린 순간 그가 느꼈을 압박은 단순한 당혹을 넘어선 것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바울의 외침은 그리스어 원문에서 매우 짧고 급박한 문장으로 되어 있다. 이 장면이 갖는 무게는 그다음 사실에서 비로소 드러난다. 감옥 문이 열렸는데도 바울과 실라를 포함한 모든 죄수가 도망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본문은 왜 아무도 도망치지 않았는지 설명하지 않지만, 이 침묵 자체가 이야기의 전환을 지탱하는 축이 된다. 간수의 물음, 곧 무엇을 해야 구원을 얻겠느냐는 질문은 사도행전에서 반복되는 물음의 한 형태다. 사도행전 2장 오순절 설교를 들은 사람들, 사도행전 9장의 바울 자신도 비슷한 물음을 던진다. 다만 간수의 경우 이 질문이 목숨을 잃을 뻔한 극한 상황 직후에 나왔다는 점에서, 종교적 호기심이 아니라 실존적 절박함에서 나온 물음으로 읽는 해석이 일반적이다. 세례가 '그 밤에' 이루어졌다는 서술도 눈여겨볼 지점이다. 신약학자들 사이에서는 초기 교회의 세례가 오늘날처럼 정해진 절차와 준비 기간을 거치는 예식이 아니라, 믿음을 고백한 즉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았다는 근거로 이 본문이 자주 인용된다. 다만 이 사례가 초기 교회의 표준적 관행이었는지, 위급한 상황에서의 예외적 사례였는지는 학자마다 평가가 갈린다.
결과
다음 날 아침, 관리들은 두 사람을 풀어 주라고 했어요. 간수는 기뻐하며 바울에게 이제 가도 된다고 말했어요. 그런데 바울이 말했어요. '우리는 로마 시민이에요. 그런데 재판도 없이 사람들 앞에서 매를 맞았어요. 이제 와서 몰래 내보내려고요? 관리들이 직접 와서 데려가야 해요.' 이 말을 들은 관리들은 깜짝 놀랐어요. 로마 시민을 함부로 때린 것은 큰 잘못이었거든요. 관리들은 직접 감옥으로 찾아와 사과했어요. 그리고 두 사람에게 도시를 떠나 달라고 부탁했어요. 바울과 실라는 감옥에서 나와 루디아라는 사람의 집으로 갔어요. 거기서 사람들을 만나 위로하고, 빌립보를 떠났어요.
날이 밝자 관리들은 부하를 보내 두 사람을 풀어 주라고 간수에게 전했다. 간수는 기뻐하며 바울에게 이제 나가서 평안히 가라고 전했다. 그런데 바울은 그 말을 그대로 받지 않았다. 그제야 두 사람이 로마 시민이라는 사실을 밝혔다. 정식으로 죄를 판결받지도 않은 채 사람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매를 맞고 감옥에 갇혔는데, 이제 와서 몰래 내보내려 하느냐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요구했다. 그 관리들이 직접 와서 자신들을 데리고 나가라고. 이 소식을 전해 들은 관리들은 두려워했다. 로마 시민을 재판 없이 매질한 것은 그 자체로 심각한 문제였고, 자신들의 지위까지 위태롭게 할 수 있는 사안이었다. 관리들은 직접 감옥으로 찾아와 사과하고, 두 사람을 데리고 나가 도시를 떠나 줄 것을 정중히 요청했다. 감옥에서 나온 바울과 실라는 곧장 루디아의 집으로 향했다. 루디아는 이 도시에서 바울 일행을 맨 처음 맞아 준 사람이었다. 거기서 모인 사람들을 만나 위로한 뒤, 두 사람은 빌립보를 떠났다.
바울이 시민권을 밝히며 요구한 조치는 단순한 항의가 아니었다. 로마 공화정 시절부터 이어진 몇 가지 법적 원칙이 이 요구의 배경에 있다는 것이 다수 학설이다. BC 6세기 말에서 5세기 사이에 제정되었다고 전해지는 '발레리우스법(leges Valeriae)'은 로마 시민이 정무관의 처분에 불복해 민회에 상소할 권리(프로보카티오, provocatio)를 인정했고, BC 2세기의 '포르키우스법(leges Porciae)'은 이를 보강해 로마 시민을 정식 재판 없이 매질하거나 처형하는 행위를 금지했다고 알려진다. 이 원칙들이 제국 시대에 얼마나 엄격하게, 그리고 지역마다 얼마나 일관되게 지켜졌는지는 역사가들 사이에서도 논쟁이 있지만, 로마 시민이라는 신분이 최소한 이론상으로는 신체형에 대한 강력한 보호막이었다는 점은 폭넓게 인정된다. 이 원칙이 실제로 얼마나 무겁게 받아들여졌는지는 로마의 정치가 키케로가 남긴 기록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는 시칠리아 총독 베레스를 고발하는 연설에서, 로마 시민을 사슬로 묶는 것부터가 범죄이며 매질하는 것은 그보다 더 큰 죄악이라고 말한 바 있다. 로마 시민이라는 신분을 밝히는 것만으로 처벌을 멈추게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기대가 이 시기 로마 세계에 실제로 퍼져 있었음을 보여 주는 사례로 자주 인용된다. 관리들이 사도행전 22장에서 다시 등장하는 로마 군대 앞에서의 상황과 이 장면을 비교해 보는 것도 흥미롭다. 그곳에서는 바울이 매를 맞기 직전에 미리 시민권을 밝혀 매질을 막는다. 반면 빌립보에서는 이미 매를 다 맞은 뒤에야 밝힌다. 두 장면의 순서 차이가 왜 생겼는지 본문은 설명하지 않으며, 이 물음은 아래 '다르게 보는 시각'에서 다룬다. 시민권을 증명하는 절차 자체도 궁금증을 남긴다. 로마 시민임을 증명할 공식 기록이 로마 본토의 등록 절차를 거쳐 남아 있었다고 알려져 있지만, 여행 중인 속주에서 이를 즉시 증명할 방법이 무엇이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위증의 대가가 무거웠기 때문에, 시민이 아니면서 시민이라 주장하는 일은 드물었을 것이라는 정황도 함께 고려된다. 이야기의 마지막 장면, 곧 관리들이 직접 감옥으로 찾아와 두 사람을 데리고 나가며 도시를 떠나 달라고 청하는 대목은 이 도시가 로마 식민지로서 얼마나 예민하게 반응했는지를 보여 준다. 이후 바울이 빌립보 교회에 보낸 편지(빌립보서)는 이 도시의 교회와 유독 따뜻하고 친밀한 관계를 담고 있는 것으로 평가받는데, 이 첫 만남의 사건이 그 관계의 출발점이라는 점도 함께 짚어볼 만하다.
잠깐, 이건 알고 가자
- 빌립보
- 마케도니아 지역의 로마 '식민 도시(콜로니아)'. BC 42년 필리피 전투 이후 퇴역 군인들이 이주해 세운 도시로, 주민 다수가 로마 시민권을 가졌고 로마의 법과 풍속을 특히 자랑스러워했다. 사도행전은 이 도시를 바울이 유럽 땅에서 처음 복음을 전한 곳으로 그린다.
- 점치는 영(퓌톤)
- 본문이 그리스어로 '퓌토나의 영'이라 부르는 존재. 퓌톤은 그리스 신화에서 델포이의 아폴로 신탁 자리를 지키던 뱀의 이름으로, 이후 신탁을 전하는 영매를 가리키는 말로 쓰였다. 이 여종은 자기 능력으로 돈을 벌어 주인들의 수입원이 되어 있었다.
- 차꼬
- 죄수의 발을 끼워 움직이지 못하게 하던 나무 형틀. 다리를 억지로 넓게 벌려 고정해 고통을 더하는 형태도 있었다고 알려진다. 감옥에서도 가장 안쪽, 탈출이 가장 어려운 방에 갇힌 죄수에게 흔히 채워졌다.
- 로마 시민권
- 로마 제국 안에서 법적 보호를 받는 특별한 신분. 로마 시민은 정식 재판 없이 매를 맞거나 처형될 수 없다는 원칙이 있었다고 알려진다(발레리우스법·포르키우스법). 이 신분을 가진 사람을 함부로 처벌한 관리는 자신도 문책당할 수 있었다.
- 간수의 책임
- 로마 체제에서 죄수를 놓친 간수는 흔히 그 죄수가 받았어야 할 벌을 대신 짊어져야 했다. 사도행전 12장에서도 베드로가 탈옥하자 헤롯이 간수들을 처형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감옥 문이 열린 것을 본 간수가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한 데는 이런 배경이 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흔한 오해
❌지진이 나서 문이 열리자 바울과 실라는 곧바로 탈출했다.
⭕본문은 오히려 그 반대를 보여 준다. 문이 열리고 매인 것이 다 풀렸는데도 두 사람은 물론 다른 죄수들까지 감옥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이 사실이 자결하려던 간수를 살렸고, 뒤이은 만남으로 이어진다.
❌바울은 처음부터 로마 시민권을 내세워 매를 피했다.
⭕실제로는 매를 다 맞고 감옥에 갇힌 뒤, 다음 날 아침 풀려나는 순간에야 시민권을 밝혔다. 왜 미리 밝히지 않았는지는 본문이 설명하지 않는다. 아래 '다르게 보는 시각'에서 이 물음을 다룬다.
❌바울과 실라는 크게 다치지 않았기 때문에 여유 있게 찬송을 부를 수 있었다.
⭕본문은 두 사람이 매를 많이 맞아 상처를 입었고 발이 차꼬에 묶여 있었다고 적는다. 고통이 없어서가 아니라, 고통 속에서 부른 노래였다는 점이 이 장면을 두드러지게 한다.
❌점치는 영에 사로잡혔다는 여종의 이야기는 그냥 '귀신 들린 사람'을 가리키는 막연한 표현이다.
⭕본문의 그리스어 표현은 델포이의 아폴로 신탁과 연결된 '퓌톤의 영'이라는 특정한 종교적 범주를 가리킨다. 막연한 귀신이 아니라, 그 시대 사람들이 알아볼 수 있는 구체적인 신탁·영매 전통과 연결된 표현이다.
그래서 이게 무슨 뜻일까
바울과 실라는 아프고 힘들었지만 노래를 불렀어요. 캄캄한 감옥 안에서요. 여러분은 힘들 때 어떻게 하나요? 계속 울기만 하나요, 아니면 다른 걸 해 보나요? 그리고 지진이 나서 도망칠 수 있었을 때, 바울과 실라는 도망가지 않았어요. 대신 무서워하는 간수를 도와줬어요. 가장 힘든 순간에, 서로를 도와준 사람들의 이야기예요.
이 이야기에서 눈에 띄는 것은 순서다. 노래는 상황이 나아진 뒤에 나온 것이 아니다. 매를 맞고 상처 입은 채, 다리는 차꼬에 묶인 그대로, 아직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은 밤 한가운데서 나온다. 그리고 지진이 일어나 도망칠 길이 열렸을 때, 바울과 실라는 그 길로 나가지 않는다. 대신 위기에 처한 간수를 살리는 쪽을 택한다. 자유를 얻을 기회와, 조금 전까지 자신들을 가둔 사람을 살리는 일 사이에서 후자를 고른 셈이다. 간수의 질문도 눈여겨볼 만하다. 무엇을 해야 구원을 얻느냐는 물음은 목숨을 잃을 뻔한 순간 직후에 나온다. 이 질문이 정확히 무엇을 알고 던진 질문이었는지, 본문은 자세히 설명하지 않는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바울은 조용히 넘어갈 수 있었던 일을 굳이 문제 삼는다. 부당하게 매를 맞았다는 사실을 밝히고, 관리들이 직접 와서 사과하게 만든다. 억울함을 그냥 삼키지 않은 것이다. 고통 속에서 부른 노래, 위기 속에서 지킨 사람, 그리고 부당함 앞에서 낸 목소리. 이 세 장면이 하룻밤 사이에 함께 일어난다. 이 중 어느 것을 가장 중요하게 볼 것인가는 읽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이 이야기를 읽는 방식은 몇 갈래로 나뉜다. 하나는 고난 속의 찬송이라는 주제로 읽는 방식이다. 이 장면은 초기 교회 때부터 고통과 신앙의 관계를 설명하는 대표적 본문으로 다뤄져 왔다. 다만 이 본문을 고난을 견디라는 일반적 교훈으로 손쉽게 옮기는 데 대한 신중론도 있다. 바울과 실라의 노래는 특정한 상황—부당한 폭력에 맞서 신앙을 지킨 상황—안에서 나온 것이지, 모든 종류의 고통에 똑같이 적용할 수 있는 처방으로 제시된 것은 아니라는 지적이다. 둘째는 사회적 약자들의 연쇄로 읽는 방식이다. 이 장 안에는 착취당하던 여종, 목숨이 위태로웠던 간수, 부당하게 매 맞은 이방인 선교사가 차례로 등장한다. 이 인물들을 각각 그 시대의 주변부에 있던 존재로 묶어 읽는 해석이 있다. 다만 이 여종의 이후 행방을 본문이 전혀 알려 주지 않는다는 점은 이 해석에서도 풀리지 않는 문제로 남는다. 영이 떠난 뒤 그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자유로워졌는지 아니면 더 가혹한 처지에 놓였는지 본문은 침묵한다. 셋째는 제도와 개인의 관계로 읽는 방식이다. 바울이 다음 날 시민권을 밝히며 관리들의 불법을 문제 삼은 행동은, 부당한 권력 앞에서 침묵하지 않는 태도로 읽히기도 하고, 로마법이라는 제도를 신앙 공동체를 보호하는 도구로 실용적으로 활용한 사례로 읽히기도 한다. 이 두 읽기는 서로 배타적이지 않다. 이 이야기가 답하지 않는 질문들—왜 바울은 매맞기 전에 시민권을 밝히지 않았는가, 여종은 그 뒤 어떻게 되었는가, 지진은 우연이었는가—은 본문의 결함이라기보다 본문이 관심을 둔 자리가 다른 곳에 있었음을 보여 준다고 볼 수도 있다. 이 이야기가 끝까지 붙들고 있는 것은 사건의 인과관계 설명이 아니라, 가장 낮은 자리에서 일어난 예상 밖의 전환들이다.
바울은 왜 로마 시민권을 매를 맞기 전에 밝히지 않았을까 — 본문이 답하지 않는 질문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입장들이 있다.
상황적 정황으로 보는 입장
군중이 한꺼번에 들고 일어나 고발했고 관리들이 그 자리에서 곧바로 옷을 찢고 매질을 명령한 급박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바울과 실라에게는 애초에 신분을 밝히고 항변할 기회 자체가 주어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본다.
- 사도행전이 고발부터 매질 명령까지의 과정을 매우 짧고 급하게 서술한다는 점
- 무리가 함께 일어나 두 사람을 공격했다는 서술이 혼란스러운 상황을 보여 준다는 점
- 로마 시민임을 증명할 방법을 여행 중에 즉시 제시하기 어려웠을 가능성
본문의 정황을 그대로 재구성하려는 다수 주석가들
수사적·선교적 의도로 보는 입장
매를 맞고 갇히는 것을 통해 오히려 감옥 안 다른 죄수들과 간수에게 복음이 전해지는 결과를 낳았고, 다음 날 시민권을 공개적으로 밝힘으로써 관리들의 불법을 명백히 드러내 갓 세워진 빌립보 교회를 정치적으로 보호하려 한 계산된 선택이었다고 본다.
- 로마 시민을 재판 없이 매질한 것이 관리들에게 심각한 문책 사유가 될 만큼 무거운 불법이었다는 점
- 관리들이 이 사실을 알고 두려워하며 직접 찾아와 사과했다는 본문의 반응
- 사도행전 22장에서 바울이 다른 상황에서는 매맞기 전에 미리 시민권을 밝혀 매를 피하는 사례가 있어, 그가 시민권을 상황에 따라 다르게 활용했다고 볼 여지가 있다는 점
사도행전의 정치적 수사와 로마법 활용에 주목하는 현대 신약학자들
공통점 두 입장 모두 그의 침묵이 비겁함이나 거짓 때문이 아니라는 데는 동의한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이 하룻밤의 사건이 간수의 회심과 관리들의 사과, 빌립보 교회의 시작으로 이어졌다는 점도 함께 인정한다.
아직 논쟁 중인 부분 본문은 그가 침묵한 이유를 한 줄도 설명하지 않는다. 사도행전 22장에서는 병사들이 매질을 준비하는 동안 바울이 미리 시민권을 밝혀 매를 피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왜 빌립보에서는 그렇게 하지 않았는지를 둘러싼 물음은 두 입장 중 어느 쪽으로도 완전히 해소되지 않는다. 이 앱은 두 입장 가운데 어느 쪽이 옳다고 판단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