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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데반

매일 나눠주는 음식에서 한 무리의 과부들이 자꾸 빠졌다. 그 불만을 풀려고 뽑힌 일곱 사람 중 한 명이, 얼마 지나지 않아 성 밖으로 끌려 나가 돌에 맞아 죽는다.

사도행전 · 사도행전 6-7장 · 초대교회 · 읽는 시간 약 5

stephenpaul

이야기

  1. 상황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이 예루살렘에서 점점 늘어났어요. 사람들은 날마다 어려운 이웃에게 음식을 나눠 주었어요. 그런데 그리스 말을 쓰는 유대인 과부들이 자꾸 그 음식을 못 받았어요. 사람들이 불만을 이야기했어요. 열두 제자는 이 일을 맡을 사람 일곱 명을 새로 뽑기로 했어요. 스데반도 그중 한 명이었어요. 스데반은 믿음이 크고 지혜로운 사람이었어요. 스데반은 사람들 앞에서 놀라운 일도 했어요. 말도 아주 잘했어요. 몇몇 사람들이 스데반과 말로 다퉜지만 이길 수 없었어요. 화가 난 사람들은 거짓말을 꾸몄어요. “스데반이 하나님과 성전을 나쁘게 말했다”고 거짓 증인을 세웠어요. 결국 스데반은 유대 지도자들이 모이는 큰 회의, 산헤드린유대 최고 의결 기구. 대제사장을 의장으로 삼아 대제사장 계열·장로·율법 학자들로 구성되며 전통적으로 71명이었다고 알려진다. 종교적인 죄를 판단할 권한은 있었지만, 로마 지배 아래에서 사형을 최종 집행할 권한은 원칙적으로 로마 총독에게 있었다. 앞으로 끌려갔어요.

    예루살렘 교회는 빠르게 커지고 있었다. 초기 신자 공동체는 날마다 가난한 사람들, 특히 남편을 잃은 과부들에게 먹을 것을 나눠 주는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공동체 안에는 두 부류가 섞여 있었다. 예루살렘에서 나고 자라 아람어를 쓰는 유대인들과, 외국에 흩어져 살다가 그리스어를 쓰며 자란 뒤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유대인들이다. 후자를 흔히 '헬라파'라 부른다. 이 헬라파 과부들이 음식 배급에서 자꾸 빠지는 일이 반복되자, 헬라파 신자들 사이에서 불만이 터져 나왔다. 열두 사도는 자신들이 말씀을 가르치는 일과 음식을 나누는 실무를 동시에 감당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공동체는 믿음과 지혜가 있다고 인정받는 일곱 사람을 뽑아 이 일을 맡기기로 했다. 뽑힌 일곱 명의 이름은 모두 그리스식이었는데, 그중 첫 번째로 이름이 오른 사람이 스데반이었다. 본문은 그를 믿음과 성령기독교에서 하나님이 사람과 세상 안에 직접 개입하는 방식을 가리키는 말. 앞선 이야기(오순절)에서 예수를 따르던 사람들에게 임한 뒤, 사도행전 곳곳에서 인물들이 특별한 담대함이나 지혜를 보이는 순간마다 이 표현이 함께 쓰인다.이 충만한 사람으로 소개한다. 스데반은 단순히 음식을 나누는 데 그치지 않았다. 그는 사람들 앞에서 큰 기적과 표적을 행했고, 회당을 돌며 사람들과 논쟁도 벌였다. 그런데 '자유민들의 회당구레네·알렉산드리아·길리기아·아시아 등 외국 출신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 세운 회당(들)으로 추정된다. 사울(바울)의 고향이 길리기아여서, 젊은 사울이 이곳에 속해 있었을 가능성이 제기되지만 본문이 명시하지는 않는다.'이라 불리는 곳에 속한 일부 사람들, 곧 구레네와 알렉산드리아, 길리기아와 아시아 출신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 스데반과 맞섰다가 번번이 말로 당해 내지 못했다. 논쟁으로 이길 수 없게 되자 이들은 다른 방법을 썼다. 사람들을 매수해 스데반이 모세와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을 했다고 거짓 증언을 하게 만든 것이다. 이 말은 백성과 장로들, 율법 학자들을 동요시켰다. 결국 스데반은 붙잡혀 유대 최고 의결 기구인 산헤드린유대 최고 의결 기구. 대제사장을 의장으로 삼아 대제사장 계열·장로·율법 학자들로 구성되며 전통적으로 71명이었다고 알려진다. 종교적인 죄를 판단할 권한은 있었지만, 로마 지배 아래에서 사형을 최종 집행할 권한은 원칙적으로 로마 총독에게 있었다. 앞에 세워졌다. 거짓 증인들은 그가 늘 이 거룩한 곳(성전)과 율법을 헐뜯었으며, 나사렛 예수가 이곳을 무너뜨리고 모세가 전해 준 관습을 바꿀 것이라고 말했다고 증언했다. 회의에 둘러앉은 사람들이 스데반을 쳐다보았을 때, 그의 얼굴은 마치 천사의 얼굴처럼 보였다고 본문은 적는다.

    '헬라파'(그리스어를 모국어처럼 쓰는 이들)와 '히브리파' 사이의 구분이 정확히 언어를 가리키는지, 문화적 정체성 전체를 가리키는지는 학자들 사이에서도 논쟁거리다. 다수 견해는 이 구분을 디아스포라(외국에 흩어져 살다 돌아온) 출신으로 그리스어를 모국어처럼 쓰는 유대인 신자들과, 예루살렘·유대 지역에서 나고 자라 아람어를 일상어로 쓰는 유대인 신자들 사이의 구분으로 이해한다. 예루살렘에는 실제로 이 두 집단이 각기 다른 회당에 다녔다는 정황이 남아 있다. 본문은 사도들이 '구제(디아코네인)'를 맡을 사람을 뽑으라고 말했다고 전한다. 여기 쓰인 그리스어 동사 디아코네인은 '섬기다·시중들다'라는 뜻이며, 이 동사에서 오늘날 많은 교단이 쓰는 '집사(디아코노스)'라는 직함이 나왔다고 흔히 설명된다. 그러나 이 본문 자체에는 '디아코노스'라는 명사, 곧 공식 직함이 등장하지 않는다. 일곱 사람을 가리켜 본문은 그저 '그 일곱 사람'이라고만 부른다. 디아코노스가 교회의 공식 직분 명칭으로 쓰이는 것은 바울 서신(빌립보서 1장, 디모데전서 3장)에 가서야 분명해진다. 사도행전 6장의 이 장면을 집사 직분의 기원으로 보는 것은 오래되고 널리 퍼진 교회 전통이지만, 본문 자체가 그 시점에 그런 직함을 사용했다는 뜻은 아니라는 점이 흥미롭다. 뽑힌 일곱 사람의 이름—스데반, 빌립, 브로고로, 니가노르, 디몬, 바메나, 니골라—은 모두 그리스식이다. 특히 마지막에 언급되는 니골라는 '안디옥 사람으로 유대교로 개종한 자'라고 따로 소개되는데, 이는 태생부터 유대인이 아니라 이방인 출신 개종자였다는 뜻이다. 일곱 명 모두가 헬라파 쪽에서 뽑혔다는 점은 이 인선이 단순한 행정적 결정이 아니라, 불만을 제기한 쪽의 대표성을 반영한 조정이었을 가능성을 보여 준다. 스데반과 맞섰다는 '자유민들의 회당구레네·알렉산드리아·길리기아·아시아 등 외국 출신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 세운 회당(들)으로 추정된다. 사울(바울)의 고향이 길리기아여서, 젊은 사울이 이곳에 속해 있었을 가능성이 제기되지만 본문이 명시하지는 않는다.'(리베르티노이)의 정체도 논쟁거리다. 본문은 구레네인·알렉산드리아인·길리기아와 아시아 출신을 나열하는데, 이것이 하나의 회당을 가리키는지 여러 회당을 가리키는지 그리스어 구문만으로는 분명하지 않다. 다만 길리기아는 사울(바울)의 고향 다소가 속한 지역이어서, 젊은 사울이 이 회당(들) 가운데 하나에 속해 있었고 스데반과 벌인 논쟁의 당사자였을 가능성을 제기하는 학자들이 있다. 본문은 이를 명시하지 않으며, 어디까지나 추론이다. 이 장면은 구조적으로 예수의 재판 장면과 여러 지점에서 겹친다. 거짓 증인, '이곳을 헐고'라는 성전 관련 고발, 산헤드린유대 최고 의결 기구. 대제사장을 의장으로 삼아 대제사장 계열·장로·율법 학자들로 구성되며 전통적으로 71명이었다고 알려진다. 종교적인 죄를 판단할 권한은 있었지만, 로마 지배 아래에서 사형을 최종 집행할 권한은 원칙적으로 로마 총독에게 있었다. 앞에 서는 전개까지,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함께 쓴 저자가 스데반의 죽음을 예수의 죽음과 의도적으로 병치해 서술했다는 분석이 널리 받아들여진다.

  2. 사건

    대제사장이 스데반에게 물었어요. “이 말이 사실이냐?” 스데반은 대답 대신 오래된 이야기를 시작했어요.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불러 낯선 땅으로 보낸 이야기부터요. 아브라함의 자손은 이집트에서 노예가 되었어요. 하나님은 모세를 보내 그들을 구해 냈어요. 그런데 사람들은 모세의 말도 자꾸 안 들었어요. 광야에서는 금송아지를 만들어 절까지 했어요. 사람들은 천막(성막)에서 하나님을 예배하다가, 나중에 솔로몬 왕이 성전이라는 큰 건물을 지었어요. 스데반은 말했어요. “하나님은 사람이 지은 집 안에만 갇혀 계신 분이 아니에요.” 그리고 회의에 모인 사람들을 향해 말했어요. “여러분의 조상들도 늘 하나님이 보낸 사람들 말을 안 들었어요. 그리고 여러분은 이번엔 예수님을 배신하고 죽였어요.”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은 몹시 화가 났어요. 이를 갈며 스데반을 노려보았어요.

    대제사장이 스데반에게 방금 나온 고발이 사실이냐고 물었다. 스데반의 대답은 곧바로 이어지는 자기변호가 아니라, 이스라엘 역사를 처음부터 되짚는 긴 연설이었다. 그는 하나님이 아직 정착하지도, 할례를 받지도 않은 아브라함을 낯선 땅으로 불러낸 순간부터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 후손이 이집트로 내려가 종살이하게 된 사연, 자기 형제들에게 팔렸던 요셉이 오히려 그 형제들을 살리는 자리에 서게 된 반전, 그리고 모세의 이야기로 이어진다. 스데반은 모세가 처음 자기 동족을 구하려 나섰을 때 오히려 동족에게 배척당했다는 점을 굳이 짚었다. 하나님이 불타는 떨기나무에서 모세를 부르고 그를 통해 백성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낸 뒤에도, 그 백성은 광야에서 금송아지를 만들어 절하며 모세의 인도를 거부했다는 사실도 함께 짚었다. 이어 그는 예배 장소의 역사를 되짚었다. 광야 시절 하나님은 옮겨 다니는 천막, 곧 성막에서 백성과 함께했다. 시간이 흘러 솔로몬이 마침내 고정된 건물, 성전을 지었다. 그런데 스데반은 여기서 예언자 이사야의 말을 끌어와 이렇게 되묻는다. 하나님의 보좌는 하늘이고 땅은 발판일 뿐인데, 사람이 지은 집이 어떻게 그런 하나님을 담을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그리고 연설은 갑자기 방향을 튼다. 스데반은 지금까지 훑어 온 역사—조상들이 하나님이 보낸 사람들, 곧 요셉과 모세와 예언자들을 거듭 거부하고 배척해 온 역사—를 지금 자신 앞에 앉은 사람들에게 그대로 겹쳐 놓는다. 그는 이 회의에 모인 이들을 향해, 조상들이 늘 성령기독교에서 하나님이 사람과 세상 안에 직접 개입하는 방식을 가리키는 말. 앞선 이야기(오순절)에서 예수를 따르던 사람들에게 임한 뒤, 사도행전 곳곳에서 인물들이 특별한 담대함이나 지혜를 보이는 순간마다 이 표현이 함께 쓰인다.을 거스르더니 이제 그 후손인 당신들도 마찬가지라고, 의로운 이가 오리라고 예고한 예언자들을 조상들이 죽였듯 이제 당신들은 그 의로운 이 자신을 배신하고 죽였다고 말한다. 이 말을 들은 회의 참석자들은 격분해 이를 갈았다고 본문은 전한다.

    스데반의 연설은 사도행전에서 가장 긴 연설이며, 형식적으로 구약의 '역사 회고형' 본문—신명기 26장의 신앙고백, 여호수아 24장의 언약 갱신, 느헤미야 9장의 참회 기도, 시편 105~106편—과 같은 계열에 속한다는 분석이 널리 받아들여진다. 이 계열의 본문들은 공통적으로 하나님이 베푼 구원 역사를 순서대로 나열한 뒤, 그 은혜에 대한 백성의 반복된 불순종을 지적하는 구조를 취한다. 스데반의 연설도 아브라함-요셉-모세-성막-성전 순서로 역사를 훑은 뒤 청중을 향한 고발로 마무리되며, 이 구조 자체는 구약 예언자 전통—특히 신실하지 못한 백성을 향한 예레미야와 에스겔의 언약 소송(covenant lawsuit) 화법—을 그대로 계승한다. 성전을 두고 스데반이 쓴 표현도 눈여겨볼 만하다. 그는 성전을 '손으로 지은 것스데반이 성전을 가리켜 쓴 표현이다. 구약의 그리스어 번역본(칠십인역)에서 이 표현은 대개 우상을 가리킬 때 쓰인다. 성전 자체를 부정하려는 말이라기보다, 하나님이 그 건물 안에만 갇혀 있다는 생각에 대한 반박으로 읽힌다.(케이로포이에토스)'이라 부르는데, 이 단어는 칠십인역(구약의 그리스어 번역본)에서 우상을 가리킬 때 반복적으로 쓰이는 경멸적 표현이다. 이 단어 선택 자체가 이미 청중에게는 도발로 들렸을 가능성이 크다. 이어지는 이사야 66장 1~2절 인용(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판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짓겠느냐)은 성전 자체를 부정하는 말이라기보다, 성전을 하나님이 갇혀 있는 유일한 장소로 여기는 태도에 대한 반박으로 읽는 것이 다수 해석이다. 본문에는 구약 기록과 다소 엇갈리는 세부 사항도 있다. 사도행전 7장 14절은 야곱과 함께 이집트로 내려간 식구가 일흔다섯 명이었다고 적는데, 이는 히브리어 구약(창 46장, 일흔 명)이 아니라 칠십인역 그리스어 구약의 숫자를 따른 것이다. 또 7장 16절은 아브라함이 세겜에서 하몰의 자손에게 값을 치르고 묘지를 샀다고 적는데, 창세기에서 세겜 땅을 하몰의 자손에게서 산 사람은 아브라함이 아니라 야곱이며(창 33:19), 아브라함이 값을 치르고 산 곳은 헤브론의 막벨라 굴이었다(창 23장). 두 사건이 이 연설에서 하나로 합쳐진 것을 두고, 구전 전승이 압축되는 과정에서 생긴 결과로 보는 견해와 저자 누가 또는 스데반 자신의 기억 오류로 보는 견해, 당시 널리 퍼져 있던 다른 전승을 반영한다는 견해가 갈린다. 어느 쪽이든 이 본문이 역사적 사실 확인보다 신학적 논증에 무게를 두고 있다는 점은 대체로 동의된다. 연설 말미에 쓰인 '목이 곧은 사람들',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이라는 표현도 구약에서 가져온 말이다. 전자는 금송아지 사건 직후 모세를 향해 하나님이 백성을 부를 때 쓴 표현이고(출 32-33장), 후자는 예레미야가 자기 백성의 완악함을 지적할 때 쓴 표현이다(렘 6:10, 9:26). 두 표현 모두 이스라엘 예언자들이 같은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 써 온 자기비판의 언어이지, 외부에서 유대인 전체를 겨냥해 만들어진 말이 아니다. 스데반은 유대인이었고, 그가 이 말을 던진 대상도 유대인 전체가 아니라 산헤드린유대 최고 의결 기구. 대제사장을 의장으로 삼아 대제사장 계열·장로·율법 학자들로 구성되며 전통적으로 71명이었다고 알려진다. 종교적인 죄를 판단할 권한은 있었지만, 로마 지배 아래에서 사형을 최종 집행할 권한은 원칙적으로 로마 총독에게 있었다.에 모인 특정 지도층—대제사장 계열과 장로, 율법 학자들—이었다. 이 대목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는 아래 '다르게 보는 시각'에서 따로 다룬다.

  3. 결과

    스데반은 하늘을 올려다보았어요.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영광과 예수님이 보였어요. 예수님은 하나님 오른쪽에 서 계셨어요. 스데반은 그 모습을 그대로 사람들에게 말했어요. 사람들은 귀를 막고 소리를 지르며 스데반에게 달려들었어요. 사람들은 스데반을 성 밖으로 끌고 나가 돌을 던졌어요. 증인들은 겉옷을 벗어서 한 젊은이 발 앞에 두었어요. 그 젊은이 이름은 사울이었어요. 스데반은 죽기 전에 기도했어요. “주님, 제 영혼을 받아 주세요.” 그리고 무릎을 꿇고 큰 소리로 말했어요. “이 사람들을 용서해 주세요.” 그렇게 스데반은 숨을 거두었어요. 이날 이후 예루살렘의 믿는 사람들은 심한 미움을 받았어요. 많은 사람이 다른 지역으로 흩어졌어요. 사울은 오히려 믿는 사람들을 잡으러 다녔어요.

    스데반은 성령기독교에서 하나님이 사람과 세상 안에 직접 개입하는 방식을 가리키는 말. 앞선 이야기(오순절)에서 예수를 따르던 사람들에게 임한 뒤, 사도행전 곳곳에서 인물들이 특별한 담대함이나 지혜를 보이는 순간마다 이 표현이 함께 쓰인다.이 충만한 채로 하늘을 우러러보았다고 본문은 전한다. 그는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 오른쪽에 서 있는 예수를 보았다고 말했다. 이 말은 회의 참석자들을 더욱 자극했다. 그들은 귀를 막고 큰 소리를 지르며 일제히 스데반에게 달려들었다. 사람들은 그를 성 밖으로 끌어냈다. 정식 판결이나 로마 총독의 승인이 언급되지 않은 채, 곧바로 돌을 던지는 장면으로 이어진다. 당시 관습에 따르면 증인이 먼저 돌을 던져야 했는데, 몸을 자유롭게 움직이기 위해 겉옷을 벗어야 했다. 증인들은 그 겉옷을 한 젊은이의 발 앞에 맡겼다. 본문은 이 젊은이의 이름을 사울이라고 밝힌다. 뒤에 사도 바울로 알려지는 바로 그 인물이다. 돌에 맞으면서 스데반은 두 마디를 남겼다고 전해진다. 자기 영을 받아 달라는 기도, 그리고 무릎을 꿇고 큰 소리로 이 죄를 저 사람들에게 돌리지 말아 달라는 기도다. 예수가 십자가 위에서 남긴 말과 여러 지점에서 겹치는 구성이라는 점이 많은 학자들 사이에서 지적된다. 그렇게 스데반은 숨을 거두었다. 사도행전은 이 사건을 이렇게 마무리한다. 사울은 스데반의 죽음에 찬성하고 있었다. 이날부터 예루살렘 교회를 향한 큰 박해가 시작되었고, 사도들을 제외한 많은 신자가 유대와 사마리아 각지로 흩어졌다. 사울은 오히려 이 박해의 중심에 서서 집집마다 다니며 신자들을 끌어내 감옥에 넘겼다. 스데반의 죽음이 흩어 놓은 사람들이 각지에서 예수를 전하기 시작하면서, 예루살렘 안에 머물러 있던 교회가 그 바깥으로 퍼져 나가는 계기가 된다. 그리고 사울 자신에게도 얼마 뒤 다른 이야기가 시작된다.

    예수가 '서 있다'는 묘사는 신약 전체에서 이례적이다. 신약의 다른 곳들은 대체로 그리스도가 하나님 오른편에 '앉아 있다'고 표현한다(막 16:19, 롬 8:34, 골 3:1, 히 1:3 등). 다스림과 완결된 승리를 나타내는 자세로 흔히 이해되는 '앉음'과 달리, 스데반이 본 것은 '서 있는' 모습이다. 이를 두고 여러 해석이 제시된다. 첫 순교자를 맞이하려고 일어선 모습으로 보는 해석, 심판자로서 증언을 듣기 위해 일어선 모습으로 보는 해석, 다니엘 7장에서 '인자 같은 이'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장면을 반영한다고 보는 해석이 있다. 어느 쪽으로도 확정하지 않는 편이 본문에 더 가깝다. 이 처형이 정식 재판 절차를 거친 합법적 사형 집행이었는지도 따져 볼 지점이다. 본문에는 산헤드린유대 최고 의결 기구. 대제사장을 의장으로 삼아 대제사장 계열·장로·율법 학자들로 구성되며 전통적으로 71명이었다고 알려진다. 종교적인 죄를 판단할 권한은 있었지만, 로마 지배 아래에서 사형을 최종 집행할 권한은 원칙적으로 로마 총독에게 있었다.의 공식 판결 선언이나 로마 총독의 승인이 명시되지 않은 채, 격분한 군중이 스데반을 즉시 성 밖으로 끌어내 돌을 던지는 장면으로 곧장 이어진다. 이 때문에 다수 학자는 이 사건을 정식 사법 절차라기보다 순간적으로 폭발한 사적 처형(린치)에 가깝다고 본다. 로마는 유대 속주에서 사형 집행권을 총독에게 독점시켰다는 것이 일반적 이해인데, 스데반의 처형은 이 원칙이 실제로는 완전하지 않았거나, 적어도 격앙된 상황에서는 지켜지지 않을 수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사례로 자주 인용된다. 다만 예루살렘 성전 안뜰에 이방인이 들어오면 죽여도 좋다는 경고문이 로마의 묵인 아래 세워져 있었다는 고고학적 발견을 근거로, 신성모독처럼 성전과 직결된 사안에서는 로마가 유대 쪽의 즉결 처분을 예외적으로 묵인했을 가능성을 제기하는 학자들도 있다. 두 설명 모두 정황 증거에 의존하며, 확정된 결론은 없다. 증인이 먼저 돌을 던져야 한다는 규정(신 17:7)은 위증에 대한 안전장치로 흔히 설명된다. 거짓 증언으로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한 자가 그 손으로 직접 첫 돌을 던져야 한다면, 함부로 거짓 증언을 하기 어려워진다는 논리다. 증인들이 겉옷을 사울의 발 앞에 맡겼다는 세부 묘사는 사울이 이 처형 현장에 단순한 구경꾼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관여한 인물로 자리했음을 보여 준다. 사울 자신도 훗날 자신의 회심을 이야기하며, 스데반의 피를 흘리는 데 찬성하고 그 죽이는 자들의 옷을 지켰다고 회고한다(행 22:20). '순교자'라는 말의 역사도 짚어 볼 만하다. 스데반의 죽음을 가리키는 그리스어 '마르튀스'는 본래 법정에서 목격한 바를 증언하는 사람, 곧 '증인'을 뜻하는 일반 단어였다. 공교롭게도 이 장 안에서 같은 계열의 단어가 스데반을 거짓으로 고발한 '거짓 증인들'에게도 쓰인다. 신앙을 위해 죽은 사람을 가리키는 전문 용어로서의 '순교자'라는 뜻은 이 사건 이후 시간이 흐르며 2세기 무렵부터 굳어진 용법이며, 스데반을 초대교회 '첫 순교자'로 부르는 호칭도 사건 당시가 아니라 후대 교회 전통이 붙인 이름이다. 이 사건이 남긴 결과도 사도행전의 전체 구조에서 중요하다. 박해로 흩어진 신자들이 유대와 사마리아 각지로, 이어 안디옥 같은 이방 도시로까지 예수를 전하게 되면서,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던 공동체가 지리적으로 확산되는 전환점이 된다. 그리고 이 처형 현장을 지켜본 사울은 얼마 지나지 않아 전혀 다른 이야기의 주인공이 된다.

잠깐, 이건 알고 가자

성령
기독교에서 하나님이 사람과 세상 안에 직접 개입하는 방식을 가리키는 말. 앞선 이야기(오순절)에서 예수를 따르던 사람들에게 임한 뒤, 사도행전 곳곳에서 인물들이 특별한 담대함이나 지혜를 보이는 순간마다 이 표현이 함께 쓰인다.
헬라파와 히브리파
예루살렘 초대교회 안에는 두 부류의 유대인 신자가 섞여 있었다. 예루살렘·유대 지역에서 나고 자라 아람어를 일상어로 쓰는 '히브리파'와, 외국에 흩어져 살다가 그리스어를 쓰며 자란 뒤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헬라파'다. 언어와 생활 문화의 차이가 공동체 안의 갈등으로 이어졌다.
산헤드린
유대 최고 의결 기구. 대제사장을 의장으로 삼아 대제사장 계열·장로·율법 학자들로 구성되며 전통적으로 71명이었다고 알려진다. 종교적인 죄를 판단할 권한은 있었지만, 로마 지배 아래에서 사형을 최종 집행할 권한은 원칙적으로 로마 총독에게 있었다.
자유민들의 회당
구레네·알렉산드리아·길리기아·아시아 등 외국 출신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 세운 회당(들)으로 추정된다. 사울(바울)의 고향이 길리기아여서, 젊은 사울이 이곳에 속해 있었을 가능성이 제기되지만 본문이 명시하지는 않는다.
성전과 성막
성막은 광야 시절 이동식 천막 예배 장소였고, 성전은 훗날 솔로몬이 예루살렘에 지은 고정 건물이다. 성전은 종교 시설을 넘어 그 시대 국회의사당·대법원·중앙은행을 겸하는 나라의 중심이었다. 다만 오늘의 교회 건물과는 성격이 다르다. 성전은 전국에 딱 하나뿐이었다.
손으로 지은 것
스데반이 성전을 가리켜 쓴 표현이다. 구약의 그리스어 번역본(칠십인역)에서 이 표현은 대개 우상을 가리킬 때 쓰인다. 성전 자체를 부정하려는 말이라기보다, 하나님이 그 건물 안에만 갇혀 있다는 생각에 대한 반박으로 읽힌다.
증인이 먼저 던지는 돌
구약의 규정에 따르면 거짓 증언을 막기 위해 사형을 결정한 증인이 직접 첫 돌을 던져야 했다. 몸을 자유롭게 움직이려고 겉옷을 벗는 관습이 있었고, 스데반을 고발한 증인들은 그 겉옷을 사울이라는 젊은이에게 맡겼다.

흔한 오해

스데반 사건은 초기 기독교와 유대교가 서로 다른 종교로서 충돌한 사건이다.

스데반과 그를 고발한 사람들, 산헤드린 구성원, 그리고 지켜보던 사울까지 이 장면에 등장하는 사람은 모두 유대인이었다. 이 사건은 예수를 메시아로 받아들인 새로운 분파와 예루살렘 성전 체제를 이끌던 기존 지도층 사이의 유대교 내부 신학 논쟁에 가깝다. 유대교와 기독교가 서로 뚜렷이 구분되는 별개의 종교로 갈라지는 과정은 이 사건 이후로도 수십 년에 걸쳐 점진적으로 진행되었다는 것이 다수 학자의 이해다.

일곱 사람은 이때부터 '집사'라는 공식 직함으로 불렸다.

본문에는 '섬기다(디아코네인)'라는 동사만 나오고, 오늘날 쓰는 '집사(디아코노스)'라는 명사형 직함은 등장하지 않는다. 이 일곱 사람은 본문에서 그저 '그 일곱 사람'이라 불린다. 디아코노스가 교회의 공식 직분 이름으로 쓰이는 것은 바울 서신에 가서야 분명해진다. 이 장면을 집사 직분의 기원으로 보는 것은 널리 퍼진 교회 전통이지만, 그 시점에 그런 직함이 실제로 쓰였다는 뜻은 아니다.

스데반의 죽음은 산헤드린의 정식 재판을 거친 합법적 사형 집행이었다.

본문에는 공식 판결 선언이나 로마 총독의 승인이 나오지 않는다. 격분한 사람들이 곧바로 스데반을 성 밖으로 끌어내 돌을 던지는 장면으로 이어진다. 다수 학자는 이를 정식 사법 절차라기보다 순간적으로 벌어진 사적 처형에 가깝다고 본다.

스데반이 마지막으로 남긴 기도는 예수가 십자가 위에서 한 말을 토씨 하나까지 그대로 옮긴 것이다.

두 장면은 구조와 주제에서 뚜렷하게 겹친다. 자기 영을 하나님께 맡기는 기도, 자신을 해치는 사람들을 용서해 달라는 기도라는 점에서다. 그러나 본문에 적힌 표현 자체는 서로 다르다.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함께 쓴 저자가 스데반의 죽음을 예수의 죽음과 의도적으로 겹쳐 서술한 문학적 장치로 보는 해석이 많다.

그래서 이게 무슨 뜻일까

스데반은 자기가 본 것을 그대로 말했어요. 그런데 그 말 때문에 미움을 받고 목숨을 잃었어요. 사람들은 스데반의 이야기를 오랫동안 기억했어요. 예수님 때문에 목숨을 잃은 첫 번째 사람이라고 불러요. 여러분은 사실이라고 믿는 것을 말했다가 미움받은 적이 있나요? 그럴 때 어떤 마음이 들까요?

스데반의 연설은 새로운 이야기를 만든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이 이미 알고 있던 자기 역사를 다시 들려주는 방식을 택했다. 그는 조상들이 하나님이 보낸 사람을 거부해 온 오래된 반복을 짚었을 뿐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런데 그 반복 안에 지금 자기 앞에 있는 사람들도 포함된다고 말한 순간, 이야기는 돌이킬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이 사건에는 여러 겹의 아이러니가 있다. 스데반을 죽인 증인들도, 그 자리를 지킨 사울도, 스데반 자신도 모두 유대인이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서 있던 사울은 훗날 정반대의 이야기 속 주인공이 된다. 한 사람의 죽음이 자기도 몰랐던 곳에서 다른 사람의 인생행로를 흔들어 놓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이 이야기는 굳이 설명하지 않고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는 방식으로 보여 준다. 스데반은 성전이 하나님을 가두는 곳이 아니라고 말했다가 죽었다. 그가 옳았는지, 무모했는지, 아니면 둘 다였는지는 이 이야기만으로 답이 정해지지 않는다. 다만 한 가지는 남는다. 그가 마지막으로 본 것은 심판이 아니라, 하늘이 열리고 누군가 자신을 향해 서 있는 장면이었다는 것이다.

스데반의 연설을 예언자적 고발로 읽을지, 성전 중심주의에 대한 신학적 논증으로 읽을지는 아래 '다르게 보는 시각'에서 다룬다. 두 독법 모두 이 연설이 유대교 밖에서 던져진 비판이 아니라, 이스라엘 자신의 경전과 역사를 근거로 삼아 이스라엘 지도층을 향해 던진 발언이라는 점에서는 다르지 않다. 이 사건은 사도행전 전체 구조에서 경첩 같은 역할을 한다.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던 교회가 이 처형과 뒤이은 박해를 계기로 유대와 사마리아, 그리고 이방 세계로 흩어지기 시작한다. 동시에 이 사건을 묵인한 사울이 얼마 지나지 않아 전혀 다른 이야기의 중심에 서게 된다는 점도, 사도행전이 이 장면을 단순한 비극이 아니라 다음 이야기로 가는 전환점으로 배치했음을 보여 준다. 남는 질문은 이런 것이다. 스데반은 성전이라는, 그 시대 사람들에게 가장 신성하고 흔들릴 수 없는 것으로 여겨지던 대상에 의문을 던졌다. 무엇이 신성해 보이지만 실은 상대화될 수 있는 것인지, 그리고 그런 질문을 던지는 대가는 누가 어떻게 치르게 되는지는 이 이야기가 남긴 채로 두는 질문이다.

스데반의 연설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입장들이 있다.

예언자적 고발로 읽는 입장

스데반의 연설은 이스라엘 역사 전체에서 반복된 지도층의 불순종—요셉을 판 형제들, 모세를 거부한 백성, 예언자들을 박해한 조상들—을 지적하며, 지금 이 지도층도 같은 패턴을 반복하고 있다고 고발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본다.

  • 연설의 구조가 신명기 26장·여호수아 24장·느헤미야 9장 같은 구약의 '역사 회고-불순종 고발' 형식을 그대로 따른다는 점
  • '목이 곧은 사람들', '마음과 귀에 할례받지 못한 사람들' 등 예레미야·출애굽기에서 예언자들이 자기 백성을 향해 써 온 자기비판적 표현을 그대로 가져온다는 점

다수의 신약학자들이 이 연설을 유대 예언자 전통 안에 놓인 발언으로 이해한다

성전 중심주의를 상대화하는 신학적 논증으로 읽는 입장

연설의 절반 가까이가 성전이 세워지기 훨씬 전, 하나님이 메소포타미아의 아브라함과 광야의 모세에게 나타나고 이동식 천막에서 백성과 함께한 시기를 다룬다는 점에서, 이 연설의 핵심은 '하나님은 특정 건물 하나에 갇히지 않는다'는 주장이라고 본다.

  • 이사야 66장을 인용해 '손으로 지은 집'이 하나님을 담을 수 없다고 명시적으로 논증한다는 점
  • 성전보다 오래된 성막과 광야 시절을 연설 분량의 상당 부분에 할애한다는 점

일부 신약학자들은 이를 헬라파 그리스도인들이 예루살렘 성전 중심 체제와 거리를 두기 시작한 초기 신학적 입장의 표현으로 본다

공통점 두 입장 모두 이 연설이 유대교 밖에서 던져진 외부 비판이 아니라, 이스라엘 자신의 경전과 역사를 근거로 삼아 특정 지도층을 향해 던진 내부 발언이라는 점에는 동의한다. 스데반 자신이 유대인이었고, 그가 인용한 것도 유대 경전이었다.

아직 논쟁 중인 부분 이 연설이 스데반이 실제로 한 말을 그대로 기록한 것인지, 아니면 저자 누가가 초대교회 헬라파 그리스도인들의 신학적 입장을 대변 인물의 입을 빌려 정리한 것인지는 신약학에서 계속 논의되는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