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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 · 사도행전

사도행전 문을 걸어 잠근 사람들에서, 제국 끝까지 걸어간 증인들로

문을 걸어 잠그고 숨어 있던 백여 명이 있었다. 이 책 마지막 장에서 그중 한 사람은 로마 제국의 심장부, 자신이 세든 셋집에서 아무 방해도 받지 않고 사람들을 가르치고 있다.

저자(전승)
누가복음을 쓴 것으로 전해지는 의사 누가. 바울의 선교 여행에 동행한 인물로 전승은 그를 소개한다. 이 책 서문(행 1:1)은 앞서 '데오빌로'에게 보낸 첫 번째 책을 언급하며 시작하는데, 그 첫 번째 책의 서문(눅 1:1-4)이 같은 수신인을 향하고 있어,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은 원래 한 저자가 기획한 연속된 두 권짜리 작품, 이른바 '누가-행전'으로 함께 다뤄진다.
저자(학계)
본문 어디에도 저자 이름이 나오지 않는 익명의 기록이다. 다만 두 책이 동일 저자의 작품이라는 점은 학계 안에서 거의 이견이 없다. 문체와 어휘, 신학적 관심사가 두 책에서 일관되게 이어지고, 사도행전의 서문이 누가복음의 서문을 명시적으로 되받기 때문이다. 그 저자가 실제로 바울과 함께 여행한 인물인지는 별개의 문제다. 16장, 20장, 27장 등에서 서술이 '그들은'에서 갑자기 '우리는'으로 바뀌는 이른바 '우리 구절'을 두고, 저자 자신이 그 여정에 동행하며 남긴 기록이라는 전통적 견해와, 항해 일지 같은 별도 자료가 그대로 편입됐거나 고대 역사 서술에서 흔히 쓰이던 사실성 부여 장치로 보는 현대 학계의 대안적 견해가 함께 있다. 이 페이지는 어느 쪽도 확정하지 않는다.
연대
기록 시기는 AD 80~90년경(약 1,940년 전)으로 보는 견해가 다수다. 이보다 이르게 AD 60년대, 바울 생존 중이거나 사망 직후로 보는 견해와, 늦게는 AD 110년대까지 보는 견해도 있어 학계 안에서도 폭이 넓다. 책이 다루는 사건 자체는 AD 30년경 예수 처형 직후부터 바울이 로마에 가택 연금 상태로 머문 AD 60년대 초까지, 약 30년의 기간이다.
장 수
28

3막 요약

  1. 상황

    예수님이 하늘로 올라가신 뒤, 제자들은 예루살렘에 모여 있었어요. 무엇을 기다리라는 말을 들었거든요. 며칠 뒤 특별한 일이 일어났어요. 사람들 마음에 큰 힘이 생겼어요. 베드로가 밖으로 나가 큰 소리로 말했어요. 그 말을 들은 사람 중 많은 이들이 그날 새로운 무리에 들어왔어요. 사람들은 가진 것을 나누고 함께 밥을 먹었어요. 무리는 점점 커졌어요. 그런데 성전을 관리하던 사람들이 이들을 못마땅하게 여겼어요. 붙잡아서 감옥에 넣기도 했어요. 스데반이라는 사람은 결국 돌에 맞아 죽었어요.

    이야기는 누가복음의 마지막 장면 그대로 이어진다. 스승을 잃은 지 얼마 안 된 사람들이 예루살렘에 모여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다. 그중 열한 명은 얼마 전까지 그를 따르던 제자들이다. 기다림은 오순절이라는 유대 절기 아침에 끝난다. 각지에서 모인 순례자들로 붐비던 도시에서 베드로가 처음으로 군중 앞에 나서 연설을 하고, 그 말을 들은 사람 중 상당수가 그날 새로운 공동체에 합류한다. 기독교는 이날을 교회의 출발점으로 이해한다. 이후 예루살렘의 이 작은 무리는 재산을 나누고 함께 식사하며 빠르게 늘어난다. 성전 앞에서 걷지 못하던 사람을 일으키는 사건도 벌어진다. 그러나 곧 마찰이 시작된다. 성전을 관리하던 제사장 계층과 지도자들은 이 무리를 체포하고 심문하며 활동을 막으려 한다. 공동체 내부에도 문제가 없지 않았다. 헌금을 속인 부부가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는 사건, 과부들에게 음식을 나누는 일에서 벌어진 차별 문제가 그대로 기록된다. 갈등은 스데반이라는 인물의 죽음에서 정점에 이른다. 그는 지도자들 앞에서 발언한 뒤 성 밖으로 끌려 나가 돌에 맞아 죽는다. 이 죽음이 이 책 전체의 다음 국면을 여는 경첩이 된다.

    사도행전을 여는 1장 8절은 이 책 전체를 미리 요약하는 일종의 '목차' 구실을 한다는 분석이 널리 받아들여진다. 예루살렘에서 시작해 온 유대와 사마리아를 거쳐 땅끝까지 이르러 증인이 되리라는 이 한 문장의 지리적 순서가, 이후 28장에 걸친 서사의 이동 경로와 정확히 일치하기 때문이다. 예루살렘(1~7장) → 유대와 사마리아 및 그 너머(8~12장) → 소아시아와 그리스, 그리고 로마(13~28장)로 이어지는 확장이 이 한 절 안에 압축되어 있다. 이 때문에 사도행전은 지리 이동 자체를 서사 구조의 축으로 삼은, 신약에서 보기 드문 책으로 평가된다. 이 책의 장르를 어떻게 규정할지도 논쟁거리다. 한쪽은 사도행전을 헬레니즘 시대에 널리 쓰이던 역사 기술 전통, 특히 여행기와 인물 중심 서사를 결합한 고대 역사서 장르로 읽는다. 서문에서 '차례대로 기록한다'고 밝히는 방식, 총독과 왕의 이름을 명시하며 사건을 연대기 위에 놓는 서술이 근거로 제시된다. 다른 쪽은 이 책이 사실 보고보다 신학적 주장을 서사 형식으로 펼치는 데 목적을 둔 문헌이라고 본다. 실제로 '사도행전(프락세이스 아포스톨론)'이라는 표제 자체가 본문 스스로 붙인 이름이 아니라 2세기 이후에 덧붙여진 것이며, 열두 사도 대부분의 '행전'은 이 책 안에 들어 있지도 않다. 두 입장이 서로를 완전히 배제하지는 않으며, 고대 역사 서술 자체가 이미 신학적·수사적 목적을 갖는 경우가 흔했다는 점도 함께 지적된다. 이 책은 그 자체로 완결된 작품이 아니라 앞서 쓰인 한 권의 속편이라는 사실을 서문에서 스스로 밝힌다. '데오빌로'에게 보낸 첫 번째 책, 곧 누가복음에서 예수가 행하고 가르치기 시작한 일을 다뤘다면, 이 두 번째 책은 그가 하늘로 올려진 뒤 그 일을 이어받은 사람들을 다룬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학계는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별개의 두 문서가 아니라, 한 저자가 기획한 두 권짜리 연속 작품(누가-행전)으로 다루는 것이 일반적이다. 같은 저자가 쓴 신약 안의 다른 두 문서 사이에 이렇게 명시적인 속편 관계가 밝혀진 사례는 없다. 앞 일곱 장의 배경이 되는 예루살렘은 여전히 유대교 성전 체제 한복판이다. 초기 공동체는 스스로를 새로운 종교로 규정하지 않았고, 성전에서 기도하고 유대 절기를 지키는 유대교 내부의 한 갱신 운동으로 활동했다. 이 정체성이 흔들리기 시작하는 지점이 바로 스데반 사건이다. 그의 연설(7장)은 이스라엘 역사를 재해석하며 성전 제도 자체를 상대화하는 발언을 담고 있어, 이후 벌어질 확산의 신학적 근거를 미리 제공하는 대목으로 읽힌다.

  2. 사건

    스데반이 죽은 뒤 사람들은 여러 곳으로 흩어졌어요. 흩어진 사람들은 가는 곳마다 이야기를 전했어요. 그중엔 사울이라는 사람도 있었어요. 사울은 원래 이 무리를 잡으러 다니던 사람이었어요. 그런데 길을 가다가 눈이 안 보이게 됐어요. 그리고 마음이 완전히 바뀌었어요. 나중엔 이름을 바울이라고 불렀어요. 베드로도 이방인의 집에 처음 들어갔어요. 원래는 하면 안 되는 일이었어요. 나중에 지도자들이 모여 회의를 했어요. 이방인에게 유대인의 옛 규칙을 다 지키라고 할지 말지 정하는 회의였어요. 지키라고 하지 않기로 했어요.

    전환점은 스데반의 죽음에서 시작된 박해다. 사람들이 예루살렘 밖으로 흩어지는데, 저자는 이 흩어짐을 실패가 아니라 확산의 계기로 서술한다. 흩어진 사람들은 사마리아로, 그리고 에티오피아에서 온 고위 관리에게로 이야기를 전한다. 이 대목에서 두 개의 중요한 매듭이 이어진다. 하나는 사울이라는 인물의 방향 전환이다. 그는 이 무리를 박해하던 앞장선 사람이었는데, 다메섹으로 가던 길에서 갑자기 눈이 멀고 태도가 완전히 바뀐다. 이 사람이 훗날 신약 편지의 절반 가까이를 남기는 바울이 된다. 다른 하나는 베드로가 로마 군대에서 백 명 단위 부대를 이끌던 지휘관, 곧 백부장 고넬료의 집에 들어가는 사건이다. 유대인이 이방인의 집에 들어가는 것은 관습상 금기였는데, 베드로는 그 경계를 넘는다. 이 두 사건이 겹치며 공동체는 유대인만의 모임에서 민족의 경계를 넘는 쪽으로 방향을 바꾼다. 이 국면은 예루살렘 회의(15장)에서 공식적으로 정리된다. 이방인 신자에게 유대 율법의 관습, 특히 남자아이가 태어난 지 여드레 만에 몸에 남기는 유대교 의식인 할례를 요구할 것인가를 두고 지도자들이 모여 논의한 끝에, 몇 가지 최소한의 항목만 남기고 요구하지 않기로 결론 낸다. 이 결정이 없었다면 이 운동은 유대교 내부의 한 분파로 남았을 것이라는 평가가 일반적이다. 같은 시기 바울은 안디옥을 기지 삼아 첫 선교 여행(13~14장)에 나서, 키프로스와 소아시아 내륙을 돈다.

    이 구간(8~15장)은 사도행전이 바울 자신의 편지와 가장 자주 대조되는 대목이기도 하다. 바울은 갈라디아서 1~2장에서 자신이 회심한 뒤 예루살렘을 방문한 횟수와 시점을 직접, 그것도 상당히 방어적인 어조로 밝힌다. 회심 후 3년 만에 첫 방문, 그로부터 14년 뒤 두 번째 방문이라는 바울 본인의 서술과, 사도행전이 그리는 예루살렘 방문들(9장 회심 직후, 11장 기근 구제 헌금 전달, 15장 예루살렘 회의) 및 그 순서·성격이 정확히 겹치지 않는다는 점이 신약학에서 오래 논쟁된 문제다. 갈라디아서가 말하는 두 번째 방문이 사도행전 11장의 구제 방문인지 15장의 회의인지, 혹은 사도행전이 서로 다른 두 전승을 하나로 합쳤거나 순서를 재배열했는지를 두고 여러 재구성이 제시되어 왔다. 이 문제는 두 사료의 신뢰도를 가르는 판정이 아니라, 각 저자가 서로 다른 목적(바울은 자신의 사도적 권위를 변론하는 편지, 누가는 공동체 확산을 보여 주는 서사)으로 같은 사건을 선택하고 배열했다는 점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결론이 정리된 문제는 아니며, 이 페이지는 어느 재구성이 옳다고 판정하지 않는다. 고넬료 사건(10장)과 예루살렘 회의(15장)의 관계도 논의 대상이다. 10장에서 이미 이방인에게 성령이 임하는 것을 베드로가 직접 목격했다면, 왜 15장에서 다시 같은 문제를 놓고 격론이 벌어지는가라는 질문이다. 이를 두고 두 사건이 서로 다른 지역(가이사랴와 안디옥)에서 벌어진 별개의 국지적 논쟁이 전체 공동체의 공식 결정으로 확산되는 과정을 보여 준다는 해석과, 저자가 서로 다른 전승 자료를 원인과 결과처럼 배열했다는 해석이 함께 있다. 이 구간에서 주인공의 이름이 '사울'에서 '바울'로 바뀌는 것도 눈에 띈다. 13장 9절에서 처음 '바울'이라는 이름이 등장한 뒤로는 이 이름이 주로 쓰인다. 다만 본문이 개명 자체를 서술하지는 않는다.

  3. 결과

    바울은 여러 번 먼 길을 떠났어요. 새로운 도시마다 사람들을 만났어요. 어떤 곳에서는 환영받았고, 어떤 곳에서는 쫓겨났어요. 감옥에 갇힌 적도 있었어요. 나중에 예루살렘에서 붙잡혔어요. 바울은 로마 시민이었어요. 그래서 로마 황제에게 직접 재판받겠다고 했어요. 배를 타고 로마로 가다가 큰 폭풍을 만나 배가 부서졌어요. 사람들은 어느 섬에 겨우 도착했어요. 결국 바울은 로마에 도착했어요. 거기서 셋집을 얻어 지냈어요. 아무도 막지 않았어요. 계속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전했어요. 책은 거기서 끝나요.

    후반부는 바울의 여행기다. 두 번째 여행(15~18장)에서 그는 처음으로 에게해를 건너 그리스로 들어가 빌립보, 데살로니가, 아테네, 고린도에 공동체를 세운다. 세 번째 여행(18~21장)은 에베소에 약 3년 머무는 것이 중심이다. 이 여정에서 세워진 도시 이름들이 바울 서신의 제목이 된다. 빌립보서, 데살로니가전후서, 고린도전후서, 에베소서가 모두 이 도시들에서 나온다. 사도행전을 먼저 읽으면 그 편지들이 누구에게, 어떤 상황에서 쓰였는지 지도가 잡히는 이유다. 여행 곳곳에서 같은 패턴이 반복된다. 바울은 새 도시에 도착하면 먼저 유대인들이 안식일마다 모여 성경을 읽던 지역 집회소인 회당을 찾아가고, 반응이 갈리면 이방인 쪽으로 방향을 돌리며, 소동이 커지면 도시를 떠난다. 빌립보에서는 매를 맞고 감옥에 갇혔다가 한밤중 지진으로 풀려나고, 아테네에서는 철학자들 앞에서 그리스 시인을 인용하며 연설한다. 마지막 여덟 장은 재판 기록에 가깝다. 예루살렘에서 체포된 바울은 로마 시민권을 근거로 황제에게 직접 재판받겠다고 요구한다. 로마 시민권자는 속주 법정 단계를 건너뛰고 황제에게 직접 상소할 권리를 가졌다. 그는 로마 황제가 속주에 파견한 행정·사법 책임자인 총독들과 왕 앞에서 여러 차례 심문받은 뒤 죄수 신분으로 배에 오른다. 지중해에서 난파를 겪고 몰타섬에 표류했다가 결국 로마에 도착한다. 그런데 책은 결말 없이 끝난다. 바울이 셋집에서 아무 제지 없이 가르쳤다는 문장이 마지막이다. 재판 결과도, 그의 죽음도 기록되지 않는다.

    이 구간에는 이른바 '우리 구절'이 집중적으로 나타난다. 16장 10절에서 서술이 갑자기 '그들은'에서 '우리는'으로 바뀌고, 이 1인칭 복수 서술은 16장(빌립보까지), 20~21장(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여정), 27~28장(로마로 가는 항해) 세 구간에서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이 구절들이 정확히 함께 등장하는 구간과 사라지는 구간이 있다는 점 자체가 논쟁의 재료다. 전통적 견해는 저자가 이 세 구간에서만 바울과 실제로 동행했고, 자신이 목격한 부분을 1인칭으로 남겼다고 본다. 이는 저자를 바울의 여행 동반자(전승이 말하는 누가)로 보는 입장과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반면 현대 학계 일부는 이 1인칭 서술을 저자가 직접 겪은 증거로 보기보다, 고대 항해 문학에서 생생함과 사실성을 부여하기 위해 관습적으로 쓰이던 문학적 장치로 보거나, 저자가 참고한 별도의 항해 일지·여행 자료가 편집 과정에서 그대로 섞여 들어간 흔적으로 본다. 이 구절들의 문체가 나머지 본문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은 동행설의 근거로, 반대로 고대에 이런 장치가 실제로 폭넓게 쓰였다는 점은 문학적 장치설의 근거로 각각 제시된다. 어느 쪽도 결정적으로 입증되지는 않았다. 결말의 열림도 여러 각도에서 논의된다. 바울의 로마 도착과 가택 연금 상태의 자유로운 활동으로 책이 끝나고, 그의 최종 재판 결과나 죽음(전승은 네로 치하에서의 순교로 전한다)은 기록되지 않는다. 이를 두고 저자가 그 이후의 결과를 알기 전, 곧 바울이 아직 살아 있던 시점에 책을 완성했기 때문이라는 해석과, 이 책의 진짜 주인공이 바울 개인이 아니라 '말씀의 확산' 그 자체였기 때문에 한 개인의 최후를 기록할 필요가 없었다는 해석이 함께 제시된다. 후자의 해석은 로마가 지리적으로는 땅끝이 아님에도 이 책이 로마 도착에서 멈춘다는 점과 연결된다. 1장 8절의 '땅끝'을 문자 그대로의 지리적 극점이 아니라 당대 지중해 세계의 중심이자 상징적 종착점으로 읽는 해석이 여기서 힘을 얻는다. 다만 이후 실제로 선교가 이어진 서쪽(스페인 등)까지 가야 '땅끝'이 완성된다고 보는 반론도 있다. 로마 당국과의 관계를 다루는 방식도 이 구간의 특징이다. 여러 총독과 왕 앞에서 벌어지는 심문 장면마다, 바울에게 실질적인 죄가 없다는 점이 반복해서 확인된다. 이 서술 경향을 두고, 로마 제국 안에서 이 신앙 공동체가 정치적 위협이 아니라는 점을 독자에게 설득하려는 변증적 의도가 있다는 해석이 널리 받아들여진다.

구조 나누기

  1. 1:1-2:47기다림에서 시작으로 — 승천, 오순절, 첫 공동체
  2. 3:1-8:3성전 앞 기적부터 스데반의 죽음까지 — 예루살렘 안에서 커지는 갈등
  3. 8:4-12:25흩어진 사람들이 사마리아와 이방인에게 — 사울의 회심과 백부장의 집
  4. 13:1-15:41첫 선교 여행과 예루살렘 회의 — 이방인에게 무엇을 요구할 것인가
  5. 16:1-21:16에게해를 건너 — 두 번째·세 번째 여행과 유럽의 첫 공동체들
  6. 21:17-28:31체포부터 로마까지 — 재판, 난파, 그리고 열린 결말

이 책의 스토리들

핵심 구절 (자체 풀이)

  • 행 1:8예루살렘에서 온 유대와 사마리아를 거쳐 땅끝까지 이르러 증인이 되리라는 예고. 이 한 문장의 지리적 순서가 이후 28장에 걸친 사도행전 전체 이야기의 이동 경로와 정확히 일치해, 사실상 이 책의 목차 역할을 한다.
  • 행 2:4오순절 아침, 모여 있던 사람들에게 벌어진 일과 각지에서 온 순례자들이 저마다의 언어로 그 말을 알아들었다는 서술. 기독교는 이날을 교회 공동체의 출발점으로 이해한다.
  • 행 4:12성전 지도자들 앞에서 베드로가, 자신들이 전하는 이름 외에는 구원을 얻을 다른 이름이 사람들 가운데 주어진 적이 없다고 선언하는 대목. 초기 공동체가 스스로의 정체성을 어떻게 규정했는지를 압축해 보여 주는 구절로 자주 인용된다.
  • 행 9:15박해자였던 사울을 두고, 이방인과 왕들과 이스라엘 백성 앞에 자신의 이름을 전할 사람으로 택했다는 말. 방향을 완전히 바꾼 인물에게 주어지는 새로운 역할을 요약한다.
  • 행 15:28-29이방인 신자에게 할례를 비롯한 유대 율법의 세세한 관습을 요구하지 않기로 하되, 몇 가지 최소한의 항목만 지켜 달라고 요청하는 예루살렘 회의의 결론. 서로 다른 배경의 두 집단이 하나의 공동체로 남기 위해 마련한 타협안으로 읽힌다.
  • 행 17:28아테네의 철학자들 앞에서 그리스 시인의 구절을 빌려 낯선 신의 존재를 설명하려 한 대목. 상대방의 언어와 문화를 빌려 말을 건 사례로 자주 인용된다.
  • 행 28:30-31바울이 로마의 셋집에서 두 해 동안 아무 제지 없이 사람들을 맞고 가르쳤다는 문장으로 책이 끝난다. 그의 재판 결과도 죽음도 기록하지 않은 채 열어 둔 결말이다.

등장인물

peterpaulstephenbarnabasphilip-the-evangelistcorneliusjames-of-jerusalemsilas

이 책의 가르침

  • 지리적 확장이 곧 이야기의 뼈대다. 예루살렘에서 땅끝까지라는 1장 8절의 예고가 이후 28장 전체의 이동 경로 그대로 실행된다.
  • 박해와 흩어짐이 오히려 확산의 동력이 되는 구조로 서술된다. 스데반의 죽음이 대표적인 경첩이다.
  • 민족과 문화의 경계가 반복해서 무너진다. 사마리아인, 에티오피아 관리, 로마 백부장이 차례로 공동체 안으로 들어온다.
  • 초기 공동체를 미화하지 않는다. 헌금을 속인 부부의 죽음, 구제에서의 차별, 동역자 사이의 결별, 율법을 둘러싼 첨예한 대립이 그대로 기록된다.
  • 이 책이 그리는 바울의 행적과 바울 자신의 편지가 완벽히 겹치지는 않는다는 점은 신약학에서 오래 논쟁된 문제이며, 두 사료가 서로 다른 목적으로 쓰였다는 사실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흔한 오해

사도행전은 초대교회의 모든 사도와 사건을 빠짐없이 기록한 공식 연대기다.

실제로는 베드로와 바울 두 사람, 예루살렘에서 로마로 이어지는 한 경로에 초점이 좁혀진 선별적 서술이다. 열두 사도 가운데 이 책 안에서 계속 등장하는 것은 베드로와 요한 정도이며, 야고보(세베대의 아들)는 12장에서 처형된 사실만 짧게 기록되고, 나머지 사도 대부분의 행적은 이 책 안에서 거의 다뤄지지 않는다. 저자가 관심을 둔 것은 사도 전체의 전기가 아니라, 이 운동이 예루살렘에서 로마까지 퍼져 나간 하나의 경로였다.

사도행전에서 '사도'라는 말은 예수의 열두 제자만을 가리킨다.

바울은 열두 제자가 아니었지만 사도행전과 바울 자신의 편지 곳곳에서 폭넓게 '사도'로 불린다(행 14:4, 14:14). 바나바 역시 사도행전 14장에서 같은 호칭으로 불린다. 신약 안에서 이 호칭이 정확히 누구까지를 가리키는지는 완전히 고정되어 있지 않으며, 열두 제자로 한정하는 좁은 용법과 부활한 예수를 만나고 파송받았다고 주장하는 이들까지 포괄하는 넓은 용법이 함께 쓰인다.

사도행전이 그리는 바울의 여정과 연대기는 바울 자신의 편지 내용과 정확히 일치한다.

갈라디아서 1~2장에서 바울이 직접 밝히는 예루살렘 방문 시점·횟수와, 사도행전 9·11·15장이 그리는 방문들이 순서와 성격 면에서 깔끔하게 들어맞지 않는다는 점이 신약학에서 오래 논쟁되어 왔다. 두 사료가 서로 다른 목적(바울은 자신의 권위를 변론하는 편지, 누가는 공동체 확산을 그리는 서사)으로 같은 시기를 서술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하며, 어느 한쪽이 틀렸다고 단정하기보다 두 기록을 나란히 놓고 읽는 편이 더 정확한 상을 준다는 것이 다수 견해다.

16·20·27장 등에 나오는 '우리' 구절은 저자가 그 여행에 실제로 동행했다는 확실한 증거다.

전통적으로는 저자 자신이 그 구간에 동행하며 남긴 기록으로 읽어 왔다. 다만 현대 학계 일부는 이를 고대 항해·여행 문학에서 사실성을 부여하기 위해 관습적으로 쓰이던 문학적 장치로 보거나, 저자가 참고한 별도의 자료가 편집 과정에서 그대로 섞여 들어간 흔적으로 본다. 두 견해 모두 결정적으로 입증되지는 않았다.

'사도행전'이라는 제목은 이 책이 처음부터 스스로 규정한 장르다.

'사도행전(프락세이스 아포스톨론)'이라는 표제는 본문 자체가 붙인 이름이 아니라 2세기 이후에 덧붙여진 것으로 본다. 게다가 이 책이 실제로 다루는 것은 열두 사도 전체의 '행전'이 아니라 베드로와 바울 두 사람의 이야기다. 이 책을 고대 헬레니즘 역사서 전통에 가까운 서술로 보는 입장과, 신학적 목적이 강한 내러티브로 보는 입장이 함께 있다.

사울이 회심하면서 이름이 바울로 바뀌었다.

사울은 히브리식 이름, 바울은 로마식 이름으로 원래 둘 다 쓰던 이름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본문은 개명 자체를 서술하지 않으며, 13장에서 이방 선교가 본격화된 뒤부터 로마식 이름이 주로 쓰이기 시작한다.

읽는 요령

28장이나 되지만 사건이 빠르게 이어져 체감 분량은 짧다. 다만 몇 가지 알아두면 편하다. 바울의 회심 이야기는 9장, 22장, 26장 세 번 반복해서 나온다. 재판 장면에서 바울이 자기 이야기를 다시 하는 대목이라 처음 읽을 땐 같은 이야기를 세 번 읽는 느낌이 들 수 있는데, 각 장면마다 청중과 강조점이 조금씩 다르다. 처음 읽을 때는 9장만 자세히 읽고 22장, 26장은 훑어봐도 줄거리를 놓치지 않는다. 13장부터는 지명이 쏟아진다. 안디옥, 비시디아, 이고니온, 루스드라 같은 지명을 다 외우려 하지 말고, '바울이 배를 타고 이동하며 도시마다 공동체를 세운다'는 큰 그림만 잡고 지도를 참고하며 읽으면 충분하다. 27~28장의 항해와 난파 장면은 세부 항해 용어(돛, 닻, 측심줄 등)가 자세히 나와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다. 여기서는 '죄수 신분으로 끌려가던 사람이 결국 목적지에 도착한다'는 흐름만 따라가도 된다. 이 책을 다 읽은 뒤 바울 서신, 특히 갈라디아서를 이어 읽으면 같은 시기를 서로 다른 각도(서사와 자전적 편지)에서 보는 경험을 할 수 있다. 두 기록이 정확히 겹치지 않는 지점이 있다는 것도 그때 체감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