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 · 복음서
마가복음 — 거듭 감춘 비밀에서, 십자가 위에서 터진 고백으로
예수가 자신의 정체를 알아챈 사람들에게 거듭 입을 다물라고 명령한다. 그 비밀이 마침내 새어 나온 것은 뜻밖에도, 그를 십자가에 매단 로마 군인의 입에서였다.
- 저자(전승)
- 마가 요한. 사도행전에 등장하는 인물로, 베드로 곁에서 활동하며 그의 설교를 정리했다고 전해진다. 2세기 초 파피아스의 증언이 이 전통의 근거로 꼽힌다
- 저자(학계)
- 익명 저술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유대 지리·관습에 낯선 서술이 여럿 있어 팔레스타인 바깥 출신 저자로 추정하는 견해가 많지만, 파피아스가 전한 전통을 어느 정도까지 신뢰할지는 학자마다 견해가 엇갈린다
- 연대
- AD 60년대 후반 또는 70년경(약 1,950~1,960년 전)이 다수설이다. 예루살렘 성전 파괴(AD 70년)를 앞두고 쓰였는지, 그 직후에 쓰였는지를 두고 학설이 갈린다. 다루는 사건 자체는 세례 요한의 활동부터 AD 30년경 빈 무덤까지다
- 장 수
- 16장
3막 요약
상황
예수가 어른이 되어서 활동을 시작할 때부터 이야기가 시작돼요. 다른 복음서와 다르게, 아기 때 이야기나 가족 이야기가 하나도 없어요. 광야에 살던 세례 요한이 먼저 나와요. 요한은 강물에서 사람들에게 세례를 줬어요. 예수도 그 강에 가서 세례를 받았어요. 그다음부터 예수는 아주 빠르게 움직여요. 이 책에는 '곧'이라는 말이 마흔 번도 더 나와요. 예수는 곧 제자들을 부르고, 곧 아픈 사람을 고치고, 곧 다음 마을로 떠나요. 하루 동안 일어난 일들이 정신없이 이어져요. 사람들은 몰려들었어요. 그런데 예수는 자꾸 이상한 부탁을 했어요. 병을 고쳐 주고는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라고 한 거예요. 왜 그랬는지 이 책은 알려 주지 않아요.
마가복음은 다른 복음서와 달리 예수의 출생이나 족보 없이, 성인이 된 예수가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는 장면에서 곧장 시작한다. 전승은 이 책의 저자를 사도행전에 마가 요한으로 등장하는 인물, 즉 베드로 곁에서 활동하며 그의 설교를 정리했다고 전해지는 사람으로 본다. 2세기 초 파피아스라는 인물의 증언이 이 전승의 근거로 자주 인용되지만, 오늘날 학자들이 이 전승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정도는 저마다 다르다. 저술 시기는 로마군이 예루살렘 성전을 무너뜨린 AD 70년 전후, 대략 AD 60년대 후반에서 70년경(약 1,950~1,960년 전)으로 보는 것이 다수설이다. 이 책을 처음 읽으면 속도부터 느껴진다. 그리스어 원문에서 '곧', '즉시'로 옮겨지는 낱말이 마흔 번 넘게 반복되며, 다른 복음서라면 여러 장에 걸쳐 풀었을 사건들을 한 장 안에 몰아넣는다. 예수는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며 빠르게 명성을 얻지만, 그때마다 자신의 정체를 알리지 말라고 반복해서 입단속을 시킨다.
마가복음은 네 복음서 가운데 출생 기사도 족보도 없이, 성인이 된 예수가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는 장면(1:9)에서 곧바로 서사를 연다. 저자 문제에서 전통적으로 인용되는 것은 2세기 초 소아시아 히에라폴리스의 주교 파피아스의 증언으로, 4세기 역사가 에우세비오스가 인용한 형태로 전해진다. 그 증언에 따르면 마가는 직접 목격자가 아니라 베드로의 '통역자(hermēneutēs)'였고, 목격자가 아니었기에 순서보다는 기억나는 대로 정확하게 기록했다고 한다. 이 마가는 사도행전(12:12, 12:25, 15:37-39)에 요한이라고도 불리는 마가로 등장하며, 바나바의 조카(골 4:10)이자 한때 바울과 결별할 만큼 갈등을 빚었던 인물, 후에는 베드로와 함께 있었다고 언급되는 인물(벧전 5:13)로 그려진다. 다만 이 전승을 그대로 받아들일지에 대해서는 오늘날 학자들의 입장이 갈린다. 파피아스의 증언 자체가 후대의 변증적 의도(베드로의 권위를 빌려 이 책의 신뢰성을 뒷받침하려는)를 담고 있을 가능성을 지적하는 견해가 있는 반면, 유대 지리와 관습에 낯선 서술 방식이 팔레스타인 바깥 출신 저자와 맞아떨어진다는 점에서 이 전승이 완전히 허구는 아닐 것이라 보는 견해도 있다. 저술 시기는 로마군의 예루살렘 성전 파괴(AD 70년)를 기준점으로 삼아 논의된다. 13장의 '멸망의 가증한 것'과 성전 붕괴 예고가 사건을 이미 알고 쓴 사후 예언(vaticinium ex eventu)인지, 아니면 그 이전에 쓰인 진짜 예언적 경고인지를 두고 견해가 갈리며, 이에 따라 저술 시기도 AD 60년대 후반과 70년 직후 사이에서 갈린다. 다수설은 AD 65~75년경(약 1,950~1,960년 전)이다. 문체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그리스어 부사 '유쓰스(euthys, 곧·즉시)'의 압도적인 반복 빈도다. 신약 전체에 이 낱말이 쓰인 횟수의 절반 가까이가 마가복음, 그중에서도 특히 1장에 몰려 있다. 이 반복은 단순한 어휘 습관이 아니라 사건이 지체 없이 몰아치는 듯한 서사 속도를 만들어내는 장치로 분석된다. 동시에 마가복음에는 다른 복음서에 없는 생생한 세부 묘사가 곳곳에 있다. 예수가 '노하여' 보았다거나(3:5), 아이들을 안고 축복했다는(10:16) 감정과 몸짓 묘사가 대표적이며, 이런 디테일은 이 책이 목격담에 가까운 생생한 구술 전승에 근거했다는 추정의 근거로 자주 언급된다. 마가복음 특유의 서사 구조로 흔히 꼽히는 것이 '샌드위치 구성(intercalation)'이다. 한 이야기를 시작해 놓고 중간에 다른 이야기를 끼워 넣은 뒤, 처음 이야기로 돌아와 마무리하는 방식이다. 5장에서 회당장 야이로가 죽어가는 딸을 살려 달라고 찾아온 이야기 한가운데, 열두 해 동안 하혈하던 여인이 예수의 옷자락을 만지는 이야기가 끼어든다. 두 여성 모두 '열두 해'라는 숫자로 연결되고, 두 이야기 모두 믿음과 만짐, 그리고 죽음처럼 보이는 상태에서의 회복을 다룬다는 점에서 서로를 해설하는 관계로 읽힌다는 분석이 많다. 이 시기에 반복되는 또 하나의 패턴이 이른바 '메시아 비밀'이다. 예수는 병을 고친 뒤에도, 귀신이 자신의 정체를 외칠 때도, 심지어 베드로가 그를 그리스도라 고백한 뒤에도 거듭 침묵을 명령한다(1:34, 1:44, 3:12, 8:30 등). 20세기 초 독일 신학자 빌헬름 브레데는 1901년 저작에서 이 반복되는 함구령이 역사적 사실의 기록이 아니라, 생전에는 메시아로 알려지지 않았던 예수를 부활 이후 신앙이 메시아로 재해석하는 과정에서 마가가 끼워 넣은 신학적·문학적 장치라고 주장했다. 이 주장은 이후 신약학에서 '메시아 비밀' 논의의 출발점이 되었으며, 브레데의 결론에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는 학자들도 이 모티프가 마가복음의 핵심 서사 전략이라는 점은 대체로 인정한다. 다른 설명으로는 이 침묵 명령이 실제 역사적 신중함(때 이른 정치적 오해나 로마 당국의 개입을 피하려는)을 반영한다는 견해, 또는 능력만으로는 예수가 누구인지 온전히 알 수 없으며 그 정체는 오직 십자가에서만 온전히 드러난다는 신학적 주장을 서사로 구현한 장치라는 견해가 있다.
사건
이야기 한가운데서 큰 질문이 나와요. 예수가 제자들에게 물었어요.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니?' 베드로가 답했어요. '그리스도십니다.' 드디어 누군가 정체를 알아맞힌 거예요. 그런데 그다음이 이상해요. 예수는 곧바로 자기가 고난받고 죽을 거라고 말하기 시작했어요. 베드로는 그 말을 막으려 했어요. 그러자 오히려 크게 혼났어요. 그 뒤로 예수는 예루살렘 쪽으로 계속 걸어가요. 가는 길에 세 번이나 자기가 죽을 거라고 말해요. 그런데 제자들은 그때마다 다른 생각을 해요. 누가 더 높은 자리에 앉을지 다퉈요. 산에 올라가서 예수가 눈부시게 빛나는 걸 본 적도 있어요. 하지만 예수가 무슨 말을 하는지는 끝까지 잘 못 알아들었어요.
책의 정확한 중간 지점에서 이야기가 방향을 튼다. 예수가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자신을 누구라 하는지 물었을 때, 베드로가 '당신은 그리스도십니다'라고 답한다(8:29). 책 전체에서 인간의 입으로 예수의 정체가 처음 발설되는 순간이다. 그런데 예수는 그 고백을 확인해 주는 대신 곧장 자신이 고난받고 버림받고 죽임당할 것이라고 말하기 시작한다. 베드로가 이를 말리자 예수는 그를 강하게 책망한다. 이후 예수는 예루살렘을 향해 곧장 걸어가며, 이 여정 동안 자신의 죽음을 세 번에 걸쳐 예고한다. 그런데 세 번 모두 제자들의 반응은 어긋난다. 누가 더 높은 자리를 차지할지 다투거나, 특별한 자리를 미리 요청하는 식이다. 산 위에서 예수의 모습이 눈부시게 변하는 장면(변화산)도 이 구간에 있지만, 제자들은 그 의미를 여전히 붙잡지 못한다. 이 여정은 눈먼 사람 바디매오가 시력을 되찾고 예수를 따라나서는 장면으로 마무리되는데, 앞을 보게 된 그와 대조적으로 정작 눈이 멀쩡한 제자들은 여전히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학자들 사이에서 자주 지적된다.
8장 27절, 빌립보 가이사랴 부근에서 벌어지는 베드로의 고백은 16장 전체를 정확히 둘로 가르는 문학적 경첩으로 널리 분석된다. 앞의 7장 남짓이 예수의 정체를 둘러싼 물음('이 사람이 누구이기에')을 여러 형태로 던졌다면, 이 지점부터는 그 답('그리스도')을 전제로 그 정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즉 고난받고 죽는 메시아라는 뒤집힌 정의를 향해 나아간다. 예수는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배척받아 죽임을 당하고 사흘 만에 살아나야 하리라'고 '드러내 놓고(parrēsia)' 말하기 시작하는데(8:32), 이 부사는 그동안의 침묵 명령('메시아 비밀')과 뚜렷이 대비된다. 정체는 감추어졌지만 운명은 이제 공개적으로 선언된다는 구조다. 수난 예고는 8:31, 9:31, 10:33-34 세 차례 반복되며, 반복될 때마다 세부 내용(조롱, 채찍질, 이방인의 손에 넘겨짐 등)이 더 구체화된다. 그리고 세 번 모두 곧바로 제자들의 몰이해가 뒤따르는 삼중 패턴이 반복된다. 베드로는 예수를 책망하다 오히려 책망받고(8:32-33), 제자들은 누가 크냐를 두고 다투며(9:33-34), 야고보와 요한은 좌우 자리를 요구한다(10:35-37). 이 구조적 반복을 두고, 마가가 의도적으로 '고난받는 메시아'와 '영광을 좇는 제자들'을 나란히 놓아 대비시켰다는 문학적 독법이 널리 받아들여진다. 9장의 변화산 사건(9:2-8)은 이 구간 한가운데 놓여, 베드로·야고보·요한 세 사람에게 예수의 정체에 대한 짧은 확증을 준다. 그러나 이 사건 역시 산을 내려오며 다시 침묵 명령으로 봉인되고(9:9), 곧이어 귀신 들린 아이를 고치지 못해 쩔쩔매는 나머지 제자들의 무능(9:14-29)과 대비된다. 이 구간은 바디매오라는 눈먼 걸인이 '다윗의 자손이여'라고 외치며 눈을 뜨고 예수를 따라나서는 장면(10:46-52)으로 마무리되는데, 이 인물이 이 여정에서 유일하게 이름이 밝혀진 채 치유받는 사람이라는 점, 그리고 '보게 된 뒤' 곧장 '길에서' 예수를 따른다는 서술이 뒤이어 11장부터 시작되는 예루살렘 '길'과 이어진다는 점에서, 이 장면을 앞선 구간 전체(보지 못하는 제자들의 이야기)에 대한 문학적 마침표로 읽는 해석이 많다.
결과
예수는 예루살렘에 들어가요. 사람들은 나뭇가지를 흔들며 환영해요. 그런데 며칠 안 가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어요. 성전에서 예수는 화를 내며 장사꾼들을 쫓아내요. 지도자들은 예수를 미워하기 시작해요. 마지막 밤, 예수는 제자들과 저녁을 먹어요. 빵과 포도주를 나누며 특별한 말을 해요. 그다음 겟세마네라는 곳에서 기도해요. 너무 힘들어서 죽을 것 같다고 말해요. 그런데 그날 밤 예수는 붙잡혀요. 제자들은 다 도망가요. 한 사람은 옷까지 벗어던지고 알몸으로 도망갔대요. 이런 자세한 이야기는 마가복음에만 나와요. 예수는 재판을 받고 십자가에 못 박혀요. 죽는 순간, 예수를 지키던 로마 군인이 이 사람은 정말 특별한 존재, 신의 아들이었다고 말해요. 이 책에서 사람이 예수를 이렇게 부른 건 이때가 처음이에요. 그리고 며칠 뒤, 여자들이 무덤에 가요. 무덤은 비어 있었어요. 그런데 이 책은 여기서 뚝 끝나요. 여자들이 너무 무서워서 아무한테도 말을 못 했다고만 적혀 있어요.
예루살렘에 들어선 예수는 곧바로 성전과 충돌한다. 이 장면에서 마가복음은 즐겨 쓰는 서술 기법을 다시 쓴다. 한 이야기를 시작해 놓고 중간에 다른 사건을 끼워 넣었다가 처음 이야기로 돌아와 마무리하는 방식이다. 예수가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는 이야기 사이에 성전에서 상인들을 쫓아내는 사건을 끼워 넣고, 다음 날 저주받은 나무가 말라죽은 것을 보여주며 마무리한다. 무화과나무와 성전을 나란히 두는 이 배치는, 겉모습은 무성해도 결실이 없던 성전 체제에 대한 심판을 나무의 운명으로 표현한 것이라는 해석이 널리 받아들여진다. 이후 며칠은 성전에서의 논쟁과, 감람산(예루살렘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서 전한 마지막 가르침(13장, 예루살렘의 멸망과 종말을 다루는 긴 설교)으로 채워진다. 그리고 마지막 밤, 예수는 제자들과 저녁을 먹으며 빵과 포도주를 자신의 몸과 피에 빗대고, 겟세마네에서 극심한 고뇌 속에 기도한다. 체포되는 순간, 마가복음에만 있는 한 장면이 끼어든다. 겉옷만 걸치고 따라오던 이름 없는 젊은이가 붙잡히려 하자 옷을 버리고 알몸으로 달아난다(14:51-52). 이 인물의 정체는 본문에 밝혀지지 않는다. 재판과 처형 장면은 건조하고 어둡게 그려진다. 예수의 마지막 말은 자신이 버림받았다고 느끼는 듯한 절규로 기록되며, 그가 숨을 거둔 순간 그를 처형하던 로마 백부장은 그가 참으로 신의 아들이었다는 취지의 말을 한다. 이 책에서 인간이 예수의 정체를 온전히 발설하는 것은 이때가 처음이다. 그리고 결말이 이상하다. 여인들이 빈 무덤을 발견하지만, 가장 오래된 사본은 그들이 무서워 아무 말도 못 했다는 문장(16:8)에서 책을 끝맺는다. 지금 대부분의 성경에 실려 있는 그 이후 구절은 후대에 덧붙여졌다고 보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며, 이 논쟁은 '부활' 스토리에서 더 자세히 다룬다.
11장부터 시작되는 예루살렘 서사에서 마가복음은 다시 한번 정교한 샌드위치 구성을 구사한다. 예수가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는 짧은 일화(11:12-14)를 열어 놓은 채, 그 사이에 성전에서 환전상과 제물 상인들을 쫓아내는 사건(11:15-19)을 끼워 넣고, 다음 날 제자들이 말라죽은 무화과나무를 발견하는 장면(11:20-21)으로 되돌아와 마무리한다. 무화과나무가 잎은 무성했으나 열매가 없어 저주받았다는 서술과, 성전이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어야 할 곳에서 '강도의 소굴'이 되었다는 예수의 발언(11:17, 렘 7:11 인용)이 서로를 해설하는 구조로 읽힌다. 이는 5장의 야이로 딸/하혈하는 여인 사례와 함께 이 책의 샌드위치 구성이 우연이 아니라 반복되는 편집 전략임을 보여주는 대표 사례로 꼽힌다. 14장 체포 장면에 등장하는 '홑이불만 두르고 따라오다가 벗어던지고 알몸으로 도망친 청년'(14:51-52) 일화는 네 복음서 중 마가복음에만 있으며, 서사 진행에 아무런 기능도 하지 않는 듯한 짧고 기이한 삽화라는 점에서 오래도록 학자들의 궁금증을 자아냈다. 이 인물을 저자 마가 자신의 자전적 등장(까메오)으로 보는 오래된 전통적 해석, 목격자적 세부 기억의 흔적으로 보는 해석, 그리고 옷을 버리고 도망친 이 인물과 16:5에서 흰 옷을 입고 무덤에 '앉아 있는' 청년(neaniskos, 같은 그리스어 낱말)을 의도적으로 대비시킨 문학적 장치로 보는 해석이 함께 제기된다. 어느 쪽도 결정적으로 입증되지는 않는다. 십자가 장면의 어조는 유독 건조하고 어둡다. 다른 복음서에 있는 원수를 용서해 달라는 말(눅 23:34)이나 다 이루었다는 선언(요 19:30) 대신, 마가복음이 기록하는 예수의 유일한 십자가 위 발언은 시편 22편 1절을 아람어로 인용한, 자신이 버림받았다고 느끼는 듯한 절규뿐이다(15:34). 그리고 바로 그 처형을 집행한 로마 백부장의 입에서, 그가 참으로 신의 아들이었다는 취지의 고백이 나온다(15:39). 학자들은 이 배치를, 능력의 과시가 아니라 철저한 버림받음과 죽음의 자리에서 오히려 정체가 드러난다는 이 책 전체의 신학적 논증이 완성되는 지점으로 읽는다. 16장의 결말 문제는 신약 본문비평에서 가장 널리 논의되는 사례 중 하나다. 4세기의 시나이 사본과 바티칸 사본을 비롯한 가장 오래된 사본들은 여인들이 '무서워하여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하더라'는 8절에서 마가복음을 끝맺으며, 문장이 그리스어 접속사 '가르(gar, ~때문에)'로 끝난다는 점도 이례적이다. 오늘날 대부분의 인쇄본 성경에 실린 9~20절('긴 결말')은 어휘와 문체가 나머지 본문과 달라 후대에 덧붙여진 것으로 보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며, 표준 비평본은 이 구절을 이중 대괄호로 표시해 둔다. 이 갑작스러운 결말이 원래 마가의 의도였는지, 아니면 원래 있던 결말이 소실된 것인지는 여전히 논쟁 중이며, 이 문제와 그에 얽힌 사본 증거는 '부활' 스토리에서 더 상세히 다룬다.
구조 나누기
- 1장서두 없이 시작 — 세례 요한과 예수의 첫걸음
- 2-7장갈릴리를 빠르게 누비다 — 치유, 논쟁, 비유, 첫 번째 오병이어
- 8-10장베드로의 고백과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 — 세 번의 수난 예고
- 11-13장예루살렘 성전에서의 충돌과 마지막 가르침
- 14-15장마지막 만찬부터 십자가까지
- 16장빈 무덤과, 논쟁적인 짧은 결말
이 책의 스토리들
핵심 구절 (자체 풀이)
- 막 1:1이 책이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좋은 소식'을 다룬다는 것을 못박는 첫 문장. 족보도 탄생 이야기도 없이 곧장 이 선언으로 시작한다.
- 막 1:15예수가 갈릴리에서 처음 공개적으로 던진 메시지. 기다리던 때가 찼으니 방향을 돌리고 이 소식을 받아들이라는 요구.
- 막 8:29베드로가 처음으로 예수의 정체를 입 밖에 낸 순간. 열여섯 장 전체를 정확히 둘로 가르는 문학적 경첩이다.
- 막 10:45누가 더 높은가를 다투던 제자들 한복판에서 나온 선언.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고 자기 목숨을 내주러 왔다는 것이 이 책이 그리는 정체다.
- 막 15:39예수를 처형한 로마 백부장의 입에서 나온 말. 이 책에서 사람이 그의 정체를 온전히 발설하는 것은 이때가 처음이다.
- 막 16:8가장 오래된 사본이 마가복음을 끝맺는 문장. 빈 무덤을 본 여자들이 두려움에 아무 말도 못 했다는 서술에서 뚝 끊긴다.
등장인물
이 책의 가르침
- 메시아는 능력의 과시가 아니라 고난과 죽음, 그리고 섬김을 통해 자기 정체를 드러낸다는 관점을 제시한다.
- 예수를 가장 가까이서 따르던 사람들조차 끝까지 다 이해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감추지 않는다. 제자로 산다는 것은 완벽한 확신이 아니라 계속된 오해와 뒤늦은 깨달음의 반복으로 그려진다.
- 지위가 아니라 섬김이 기준이라는 말이 반복된다. 높은 자리를 요구하는 제자들과, 자기 목숨을 내주는 예수가 계속 대비된다.
흔한 오해
❌마가복음은 네 복음서 중 가장 짧아서 내용도 가장 부실하다.
⭕짧은 것은 생략이 많아서가 아니라 군더더기 없이 사건을 몰아치는 속도감 있는 서술 방식 때문이라는 평가가 많다. 오히려 예수가 '노하여' 보았다거나 아이들을 안고 축복했다는 것처럼, 다른 복음서에 없는 생생한 감정·몸짓 묘사가 여러 대목에 남아 있다.
❌마가는 예수의 직접 제자, 곧 열두 제자 중 한 명이다.
⭕전통적으로 그는 열둘에 속하지 않았다. 사도행전에 요한이라고도 불리는 마가로 등장하며, 베드로 곁에서 활동하고 그의 설교를 정리했다고 전해지는 인물로 여겨진다.
❌지금 성경에 실린 마가복음 16장 9절 이후는 처음부터 있던 원문이다.
⭕가장 오래된 사본들은 16장 8절, 여인들이 무서워 아무 말도 못 했다는 문장에서 끝난다. 9절 이후는 어휘와 문체가 달라 후대에 덧붙여진 것으로 보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며, 이 논쟁은 '부활' 스토리에서 더 자세히 다룬다.
❌예수가 거듭 자신의 정체를 숨기라고 한 것은 그저 겸손해서였다.
⭕본문은 이유를 명시하지 않는다. 20세기 초 신학자 빌헬름 브레데는 이 반복되는 함구령('메시아 비밀')을 부활 이후 신앙이 예수의 생애를 재해석하며 마가가 끼워 넣은 문학적 장치로 보았고, 이후 다른 학자들은 정치적 오해를 피하려는 역사적 신중함이나, 정체는 오직 십자가에서만 온전히 드러난다는 신학적 주장을 서사로 구현한 장치라는 설명을 함께 제시해 왔다.
읽는 요령
이 책은 짧아서 한 자리에서 다 읽어도 부담이 적다. '곧', '즉시'라는 말이 계속 나오는 속도감을 느끼며 읽으면 왜 이 책이 가장 빨리 읽히는 복음서인지 체감할 수 있다. 13장의 감람산 강화(종말에 관한 긴 설교)는 처음 읽을 땐 낯선 이미지가 많아 어려울 수 있으니, 이야기 흐름만 좇고 싶다면 건너뛰었다가 나중에 다시 읽어도 된다. 16장 끝부분, 부활한 예수가 여러 사람에게 나타나는 장면(9~20절)에는 대부분의 한국어 성경이 각주를 달아 두는데, 이는 결함이 아니라 가장 오래된 사본에 없는 부분이라는 학계의 오랜 논의를 반영한 것이다. 당황하지 말고 각주를 함께 읽어 보는 편이 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