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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과 십자가

한 남자가 하룻밤 사이에 재판을 두 번 받았다. 자정 무렵에는 자기 민족의 최고 회의 앞에서, 동틀 무렵에는 로마 총독 앞에서. 두 재판 모두 사형을 향해 가고 있었다.

마가복음 · 마가복음 14:53-15:41 · 예수 · 읽는 시간 약 6

jesuspeterpilatebarabbas

이야기

  1. 상황

    예수는 겟세마네에서 붙잡혔어요. 사람들은 예수를 대제사장 집으로 끌고 갔어요. 그 집에는 유대 지도자들이 모여 있었어요. 이들을 산헤드린유대 최고 의결 기구. 대제사장을 의장으로 삼아 대제사장 계열·장로·율법 학자들로 구성되며 전통적으로 71명이었다고 알려진다. 로마 지배 아래에서 종교·사회 질서에 대한 상당한 자치권을 인정받았지만, 사형 집행권은 로마 총독에게만 있었다.이라고 불러요. 유대 사람들의 가장 높은 회의였어요. 지도자들은 예수를 사형에 처할 죄를 찾으려 했어요. 여러 사람이 증인으로 나왔어요. 그런데 말이 서로 달랐어요. 대제사장이 예수에게 직접 물었어요. 정말 특별한 존재냐고요. 예수는 그렇다고 답했어요. 지도자들은 그 대답이 신성모독이라고 했어요.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이라는 뜻이에요. 그래서 예수가 죽어야 한다고 결정했어요. 그런데 문제가 있었어요. 산헤드린에게는 사람을 죽일 권한이 없었어요. 그 권한은 로마 총독에게만 있었어요. 날이 밝자 지도자들은 예수를 묶어 총독 빌라도에게 끌고 갔어요.

    예수는 겟세마네에서 붙잡힌 직후 대제사장 가야바의 집으로 끌려갔다. 그 집 마당에는 베드로가 멀찍이 뒤따라와 불을 쬐고 있었다. 그 밤 베드로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앞선 이야기에서 다룬다. 집 안에서는 대제사장들과 장로들과 율법 학자들, 곧 산헤드린유대 최고 의결 기구. 대제사장을 의장으로 삼아 대제사장 계열·장로·율법 학자들로 구성되며 전통적으로 71명이었다고 알려진다. 로마 지배 아래에서 종교·사회 질서에 대한 상당한 자치권을 인정받았지만, 사형 집행권은 로마 총독에게만 있었다.이라 불리는 유대 최고 의결 기구의 구성원들이 모여 있었다. 이들은 예수를 사형에 처할 근거를 찾으려 했다. 여러 사람이 증인으로 나섰지만 진술이 서로 맞지 않았다. 성전을 헐고 사흘 만에 다시 세우겠다고 말했다는 증언까지 나왔는데, 그 내용조차 증인마다 조금씩 달랐다. 계속 침묵하던 예수에게 대제사장이 직접 물었다. 찬양받으실 분의 아들, 곧 그리스도가 맞느냐는 물음이었다. 예수는 그렇다는 취지로 답하면서, 앞으로 자신이 심판하는 자리에 앉은 모습으로 나타날 것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대제사장은 옷을 찢으며 더는 증인이 필요 없다고, 신성모독을 직접 들었다고 선언했다. 모인 사람들은 사형에 해당한다고 판단했고, 몇몇은 그에게 침을 뱉고 얼굴을 가린 채 때리며 조롱했다. 이 밤의 결정 뒤에는 종교적 판단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앞선 장면들에서 복음서는 지도부가 예수를 그대로 두면 로마가 개입해 성전과 민족 전체가 위험해질 수 있다고, 또 명절 군중이 소란을 일으킬까 두렵다고 우려했다는 정황을 전한다. 이 결정에는 신학적 판단과 함께, 로마와의 마찰을 피하려는 소수 지도층의 정치적 계산이 함께 작용했다는 것이 본문의 서술이다. 날이 밝자 지도부는 다시 모여 밤사이의 결정을 공식화했다. 그리고 예수를 묶어 로마 총독 빌라도에게 넘겼다. 산헤드린에게는 종교적인 죄를 판단할 권한은 있었지만, 로마 치하의 유대 땅에서 사람을 사형에 처할 권한은 없었기 때문이다. 요한복음은 이 사정을 두고, 자신들에게는 사람을 죽일 권한이 없다는 말을 지도부가 총독 앞에서 직접 했다고 전한다. 신성모독이라는 종교적 죄목이 이제 총독 앞에서는 다른 언어로 바뀌어야 했다.

    산헤드린유대 최고 의결 기구. 대제사장을 의장으로 삼아 대제사장 계열·장로·율법 학자들로 구성되며 전통적으로 71명이었다고 알려진다. 로마 지배 아래에서 종교·사회 질서에 대한 상당한 자치권을 인정받았지만, 사형 집행권은 로마 총독에게만 있었다.은 대제사장을 의장으로 삼는 유대 최고 의결 기구로, 전통적으로 71명의 구성원(대제사장 계열, 장로, 율법 학자)으로 이루어졌다고 알려진다. 로마 지배 아래에서도 종교·사회 질서에 관한 상당한 자치권을 인정받았지만, 사형 집행권만은 예외였다는 것이 다수 학자의 이해다. 이 밤 재판의 절차에는 오래전부터 문제가 제기되어 왔다. 후대에 편집된 랍비 문헌 미쉬나 산헤드린편은 사형에 해당하는 재판을 밤에 열어서는 안 되고, 하루 만에 유죄 판결을 확정해서도 안 되며, 안식일이나 명절 전날에 진행해서도 안 된다는 규정을 담고 있다. 마가복음이 그리는 밤샘 심문은 이 규정과 정면으로 어긋난다. 다만 이 규정을 근거로 그 밤의 재판이 당시 절차상 불법이었다고 단정하는 데는 신중해야 한다는 지적이 있다. 미쉬나는 AD 200년경 랍비 유다 하나시가 편집한 문헌으로, 이 사건보다 150년 이상 뒤에 나왔을 뿐 아니라 그 뿌리가 바리새파 전통에 있다. 그런데 예수 시대 산헤드린을 실질적으로 주도한 것은 성전 제사장 계층인 사두개파였고, 이들의 절차 관행이 훗날 랍비 문헌의 이상화된 규정과 얼마나 같았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 이 재판이 '당대 규정 위반'이었다고 단정할 근거와, 그런 단정이 시대착오일 수 있다는 반론이 함께 존재한다. 복음서들 사이의 구성도 다르다. 마가복음과 마태복음은 체포된 그날 밤 가야바의 집에서 열린 심문과, 날이 밝은 뒤 열린 짧은 확인 모임을 함께 서술한다. 누가복음은 밤사이의 조롱 장면만 그리고, 정식 심문 자체는 새벽에 열린 것으로 배치한다. 요한복음은 한 단계를 더 끼워 넣는다. 예수가 먼저 전직 대제사장 안나스(가야바의 장인) 앞에 끌려가 짧게 심문받은 뒤 가야바에게 보내지는데, 가야바 앞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서술하지 않는다. 요한복음에는 마가복음이 그리는 정식 산헤드린 유죄 판결 장면 자체가 없다. 사형 집행권 문제도 역사적으로 논쟁거리다. 요한복음 18장은 유대 지도부가 스스로 사람을 죽일 권한이 없다고 말했다고 전하는데, 이는 로마가 속주에서 사형 집행권(이우스 글라디이)을 총독에게 독점시켰다는 이해와 맞아떨어진다. 그러나 사도행전 7장에서 스데반이 로마 재판 없이 돌에 맞아 죽는 장면, 그리고 성전 안뜰에 이방인이 들어오면 죽여도 좋다는 경고문이 로마의 묵인 아래 세워져 있었다는 고고학적 발견은 이 독점이 완전하지는 않았을 가능성을 보여 준다. 학계는 대체로 로마가 유대 지역의 사형권을 원칙적으로 제한하되 특정 종교적 사안에는 예외를 허용했을 가능성으로 정리하는 편이지만, 결론은 열려 있다. 신성모독의 법적 정의도 따져 볼 지점이다. 후대 랍비 문헌은 신성모독을 하나님의 이름을 직접 발음하는 경우로 좁게 규정한다. 예수가 실제로 그런 발화를 했다는 서술은 본문에 없다. 대신 그가 심판자의 자리에 앉는 존재로 자신을 그렸다는 점, 곧 하나님만이 가질 수 있는 권위를 자기 것으로 주장했다고 지도부가 받아들였다는 점이 사형 판단의 근거로 읽힌다. 이 대답이 왜 사형에 해당하는 신성모독으로 간주되었는지 본문은 상세히 논증하지 않으며, 이는 오늘날에도 신약학에서 계속 다뤄지는 주제다.

  2. 사건

    빌라도는 예수에게 물었어요.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고요. 예수는 애매하게 답했어요. 빌라도는 예수에게서 죄를 찾지 못했어요. 그런데 명절에는 죄수 한 명을 풀어 주는 관습이 있었어요. 빌라도는 사람들에게 물었어요. 예수를 풀어 줄까요, 바라바를 풀어 줄까요. 바라바는 폭동과 살인에 가담한 사람이었어요. 그런데 사람들은 바라바를 선택했어요. 빌라도는 예수를 채찍질하게 했어요. 군인들은 예수에게 가시로 만든 관을 씌우고 왕처럼 놀렸어요. 그리고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았어요. 도둑 두 명도 양옆에 함께 매달았어요. 십자가 위에는 팻말이 붙었어요. '유대인의 왕'이라는 죄목이 적혀 있었어요.

    빌라도 앞에서 죄목은 다른 언어로 바뀐다. 누가복음에 따르면 지도부는 예수가 백성을 선동하고, 로마 황제에게 세금 내는 것을 막고, 스스로 왕이라 칭한다고 고발했다. 신성모독이라는 종교적 죄가 반역이라는 정치적 죄로 재포장된 것이다. 빌라도는 예수에게 직접 물었다.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는 물음이었다. 예수의 대답은 인정도 부인도 아닌 애매한 형태로 기록된다. 빌라도는 별다른 혐의를 찾지 못했다고 여러 차례 밝히지만, 그렇다고 곧바로 놓아주지도 않는다. 명절마다 죄수 한 명을 풀어 주는 관습이 있었다고 복음서들은 전한다. 빌라도는 이 관습을 이용해 군중에게 선택을 맡긴다. 예수를 풀어 줄지, 아니면 폭동과 살인에 가담한 바라바를 풀어 줄지였다. 대제사장들이 무리를 부추겼다고 마가복음은 적고, 결국 무리는 바라바를 선택한다. 빌라도는 마태복음에서 손을 씻으며 이 죽음에 책임이 없다고 말하지만, 실제로 처형을 명령한 것은 그 자신이다. 예수는 먼저 채찍질을 당한다. 로마의 채찍질은 그 자체로 사람을 죽일 만큼 가혹한 형벌이었다. 병사들은 그에게 가시나무로 엮은 관을 씌우고 자주색 옷을 입힌 뒤, 갈대를 홀처럼 쥐여 주고 무릎을 꿇으며 왕이라 조롱했다. 예수는 십자가를 지고 처형장으로 끌려갔다. 도중에 지나가던 시몬이라는 사람이 강제로 십자가를 대신 짊어졌다. 처형지는 골고다, 곧 '해골의 자리'라 불리는 곳이었다. 그곳에서 그는 두 명의 강도와 함께 십자가에 달렸다. 위쪽에는 죄목을 적은 팻말이 붙었다. '유대인의 왕'이라는 문구였다. 십자가형로마가 반란을 꾀한 자, 노예, 로마 시민이 아닌 사람에게 주로 쓰던 처형 방식이다. 원칙적으로 로마 시민에게는 적용되지 않았다. 공개된 길목에서 오래 매달아 두어 본보기로 삼는 데 목적이 있었다.은 로마가 아무에게나 쓰던 형벌이 아니었다. 반란을 꾀한 자, 노예, 로마 시민이 아닌 사람에게 쓰던 처형 방식이었다. 로마 시민에게는 원칙적으로 적용되지 않았다.

    빌라도 앞에서 제시된 혐의는 로마법의 마이에스타스(maiestas), 곧 국가 질서와 황제의 권위에 대한 위협에 해당한다. '유대인의 왕'이라는 칭호를 자처했다는 혐의는 로마가 임명하지 않은 자가 통치권을 주장했다는 뜻으로 읽혔을 것이다. 산헤드린유대 최고 의결 기구. 대제사장을 의장으로 삼아 대제사장 계열·장로·율법 학자들로 구성되며 전통적으로 71명이었다고 알려진다. 로마 지배 아래에서 종교·사회 질서에 대한 상당한 자치권을 인정받았지만, 사형 집행권은 로마 총독에게만 있었다.이 다룬 신성모독 혐의는 로마 총독에게 아무 의미가 없었으므로, 사형을 성사시키려면 로마법이 처벌할 수 있는 죄목으로 바뀌어야 했다는 것이 다수 학자의 분석이다. 누가복음에만 나오는 장면이 하나 있다. 빌라도가 예수의 출신이 갈릴리라는 것을 알고, 마침 예루살렘에 와 있던 갈릴리 지역 통치자 헤롯 안티파스에게 그를 보내는 대목이다. 헤롯은 그를 조롱한 뒤 다시 빌라도에게 돌려보낸다. 누가복음은 이 일을 계기로 전에 사이가 나빴던 두 사람이 그날 친구가 되었다는 문장을 덧붙인다. 다른 세 복음서에는 이 장면 자체가 없다. 요한복음은 빌라도가 흔들리는 이유를 좀 더 구체적으로 그린다. 지도부가 그를 풀어 준다면 황제의 친구가 아니라고 소리치는 대목이다. 로마 총독에게 '황제의 친구가 아니다'라는 말은 반역 방조 혐의로 로마에 보고될 수 있다는 위협이었다. 실제로 빌라도는 이보다 몇 년 뒤 유대 지역에서의 과도한 폭력 진압을 이유로 로마로 소환되어 총독직에서 물러난 인물로,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와 알렉산드리아의 필론은 그를 잔인하고 완고한 통치자로 묘사한다. 1961년 카이사레아에서 발견된 이른바 '빌라도 비석'은 그의 실제 직함이 유대의 프라이펙투스(현지 총독)였음을 성경 밖 사료로 확인해 준다. 바라바라는 이름도 흥미로운 지점이다. 아람어로 '바르 아바', 곧 '아버지의 아들'이라는 뜻이다. 일부 초기 사본과 3세기 신학자 오리게네스의 언급에 따르면 그의 이름 앞에 '예수'가 붙어 '예수 바라바'로 불렸다는 이문(異文)이 있다. 이 읽기가 맞다면 그날 군중은 '예수 바라바'와 '예수, 그리스도라 불리는 자' 가운데 하나를 골라야 했던 셈이 되며, '아버지의 아들'이라는 이름과의 대비가 한층 두드러진다. 다만 이 이문이 원문에 가까운지 후대의 필사 오류인지는 확정되지 않았다. 유월절마다 죄수 한 명을 풀어 주었다는 이 관습 자체의 역사성은 신약학의 오랜 논쟁거리다. 로마 총독이 지역 민심을 달래려고 사면을 베푸는 관행은 로마법 일반에 알려져 있고, 일부 학자들은 이집트에서 발견된 로마 시대 파피루스 문서 가운데 총독이 군중의 요청에 따라 죄수를 놓아준 사례가 있다는 점을 느슨한 유사 사례로 언급하기도 한다. 그러나 유월절에 죄수를 정기적으로 풀어 주는 제도가 유대 지역에 있었다는 사실은 요세푸스를 비롯한 유대 사료에서도, 로마 사료에서도 별도로 확인되지 않는다. 이 관습이 실재했으나 기록이 남지 않았을 뿐이라고 보는 견해와, 마가복음이 처형의 책임을 로마 총독에게서 군중 쪽으로 옮기기 위해 구성한 문학적 장치일 가능성을 제기하는 견해가 맞선다. 십자가형로마가 반란을 꾀한 자, 노예, 로마 시민이 아닌 사람에게 주로 쓰던 처형 방식이다. 원칙적으로 로마 시민에게는 적용되지 않았다. 공개된 길목에서 오래 매달아 두어 본보기로 삼는 데 목적이 있었다.의 사회적 위상에 대해서는 로마 쪽 기록이 비교적 분명하다. 정치가 키케로는 한 연설에서 이 형벌을 가장 잔인하고 끔찍한 처벌이라 부르며, 로마 시민의 몸에는 그 이름조차 올려서는 안 된다고 말한 바 있다. 노예형이라는 별칭으로도 불렸다. 반란자·해적·탈주 노예·비시민에게 본보기로 쓰였고, 처형 장소는 대개 도시 성문 밖 눈에 띄는 길목이었다. 죄패(titulus)처형 이유를 적어 십자가 위에 붙이던 팻말. 로마가 처형을 공개하고 본보기로 삼으려는 목적으로 썼다. 복음서마다 문구 길이가 조금씩 다르며, 요한복음은 세 언어로 적혔다고 전한다.의 문구도 복음서마다 조금씩 다르다. 마가복음은 '유대인의 왕'이라고만 적고, 마태복음은 '이는 유대인의 왕 예수'라고 조금 더 길게 적으며, 요한복음은 '나사렛 사람 예수, 유대인의 왕'이라는 문구가 히브리어·라틴어·그리스어 세 언어로 적혔다고 전한다. 로마의 죄패 관행은 처형 이유를 공개해 본보기로 삼으려는 것이었으므로, 이 문구 자체가 로마가 이 처형을 정치적 반역 사건으로 공식화했다는 증거로 읽힌다. 함께 처형된 두 사람을 가리키는 그리스어 단어 레스타이(lēstai)도 눈여겨볼 만하다. 흔히 '강도'로 번역되지만 요세푸스는 로마에 맞선 무장 저항 세력을 가리킬 때도 같은 단어를 쓴다. 이 때문에 이 둘이 단순 절도범이 아니라 바라바처럼 반로마 봉기에 연루된 인물이었을 가능성을 제기하는 학자들이 있다.

  3. 결과

    예수는 오랫동안 십자가에 매달려 있었어요. 지나가는 사람들이 놀렸어요. 낮인데도 하늘이 갑자기 어두워졌어요. 세 시간 동안 그랬어요. 예수는 죽기 전에 몇 마디 말을 남겼어요. 그런데 복음서마다 적힌 말이 달라요. 어떤 복음서는 예수가 힘들어하며 외친 말을 적어요. 어떤 복음서는 용서한다는 말을 적어요. 어떤 복음서는 다 끝났다는 말을 적어요. 그리고 예수는 숨을 거두었어요. 그 순간 성전 커튼이 위에서 아래로 찢어졌다고 해요. 곁에서 지켜보던 로마 군인이 이 사람은 특별한 사람이었다고 말했어요. 멀리서 여자들이 지켜보고 있었어요. 요셉이라는 사람이 예수의 몸을 받아 무덤에 넣었어요.

    십자가에 매달린 시간은 짧지 않았다. 마가복음은 아침 아홉 시쯤 못 박혔다고 적는다. 지나가던 사람들과 지도자들, 심지어 함께 매달린 사람 중 하나까지 그를 조롱했다. 정오 무렵부터 오후 세 시까지, 온 땅이 어두워졌다고 마가복음은 적는다. 그 어둠이 무엇이었는지 본문은 설명하지 않는다. 죽기 직전 예수가 남긴 말은 복음서마다 다르다. 마가복음과 마태복음은 그가 큰 소리로, 자신이 버림받았다고 느끼는 듯한 외침을 남겼다고 전한다. 시편 22편의 첫 구절과 겹치는 표현이다. 누가복음은 전혀 다른 장면을 그린다. 자신을 처형하는 사람들을 용서해 달라는 말, 그리고 마지막 순간 자기 목숨을 하나님 손에 맡긴다는 말이다. 요한복음은 또 다르다. 맡은 일이 끝났다는 뜻의 짧은 한마디를 마지막으로 전한다. 같은 죽음을 두고 복음서마다 무엇을 강조하는지가 이렇게 갈린다. 예수가 숨을 거두는 순간, 성전의 휘장이 위에서 아래로 찢어졌다고 마가복음은 적는다. 성전은 하나님이 계신다고 여겨지던 가장 깊은 공간과 나머지 공간을 휘장으로 나누고 있었다. 곁에서 처형을 감독하던 로마 백부장로마 군대에서 병사 약 100명을 지휘하던 장교. 처형 현장을 감독하는 역할도 맡았다. 마가복음에서 예수의 죽음을 보고 그를 알아본 것은 유대 지도자가 아니라 이 로마 장교였다.은 그 죽음을 보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었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고 마가복음은 전한다. 유대 지도자가 아니라 처형을 집행한 로마 군인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는 점이 눈에 띈다. 여자 몇 명이 멀리서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보고 있었다. 남자 제자들은 대부분 이미 흩어진 뒤였다. 안식일이 시작되기 전에 시신을 처리해야 했으므로, 산헤드린유대 최고 의결 기구. 대제사장을 의장으로 삼아 대제사장 계열·장로·율법 학자들로 구성되며 전통적으로 71명이었다고 알려진다. 로마 지배 아래에서 종교·사회 질서에 대한 상당한 자치권을 인정받았지만, 사형 집행권은 로마 총독에게만 있었다. 구성원이면서도 그 결정에 동의하지 않았다고 알려진 요셉이라는 사람이 빌라도에게 요청해 시신을 내려 새 무덤에 안치한다. 이 무덤에서 다음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 대목에서 가장 많이 논의되는 것은 어둠의 성격이다. 유대 달력에서 유월절은 보름달이 뜨는 시기이므로 자연적인 개기일식은 천문학적으로 불가능하다. 2세기 이후 일부 그리스도교 저술가들은 이교도 역사가 탈루스와 플레곤의 기록에 이 시기의 이상 현상에 대한 언급이 있다고 주장했다는 기록이 3세기 율리우스 아프리카누스를 통해 전해지지만, 두 사람의 원문은 남아 있지 않고 인용의 정확성도 확인할 수 없다. 로마 역사가 타키투스나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는 이 어둠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다. 자연 현상의 기록으로 볼 근거도, 완전히 배제할 근거도 부족한 상태로 남아 있다. 마가복음과 마태복음이 전하는 마지막 외침은 아람어와 히브리어가 섞인 형태로 기록되어 있어, 곁에 있던 사람들이 이를 예언자 엘리야를 부르는 소리로 잘못 들었다는 서술이 뒤따른다. 이 외침이 시편 22편의 첫 구절과 겹친다는 점을 두고 해석이 갈린다. 문자 그대로 버림받았다는 절망의 토로로 읽는 입장과, 그 시대 사람들이 시 한 편의 첫 구절만 말해도 그 시 전체를 불러내는 방식으로 읽었다는 점에 근거해 시편 22편 전체—절망으로 시작해 결국 하나님을 향한 신뢰와 찬양으로 끝나는 시—를 통째로 가리키는 발화로 읽는 입장이 있다. 어느 쪽으로 읽어도 본문이 강조하는 것은 그가 그 순간 인간적 고통을 그대로 겪었다는 점이라는 데는 두 입장이 대체로 동의한다. 성전 휘장이 찢어졌다는 서술도 상세한 설명이 붙지 않는다. 성전에는 두 개의 휘장이 있었다. 성소와 뜰을 가르는 바깥 휘장과, 가장 거룩한 곳과 성소를 가르는 안쪽 휘장이다. 후자는 대제사장만 일 년에 한 번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을 가리고 있었다. 어느 휘장을 가리키는지 본문은 밝히지 않는다. 안쪽 휘장이라면 일반인은 목격할 수 없는 사건이라는 뜻이 되어, 이 서술을 목격담이 아니라 신학적 선언—하나님께 이르는 길이 더 이상 막혀 있지 않다는 뜻—으로 읽는 해석이 우세하다. 다른 해석은 이를 성전 체제에 대한 심판의 상징으로 읽는다. 이 사건은 요세푸스나 다른 외부 사료에서 확인되지 않는다. 백부장로마 군대에서 병사 약 100명을 지휘하던 장교. 처형 현장을 감독하는 역할도 맡았다. 마가복음에서 예수의 죽음을 보고 그를 알아본 것은 유대 지도자가 아니라 이 로마 장교였다.의 고백은 마가복음의 구조에서 특별한 자리를 차지한다. 이 책은 1장 1절에서 이미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부르며 시작하는데, 책 전체에서 사람의 입으로 이 칭호가 온전히 발화되는 것은 이 장면이 사실상 유일하다. 그것도 제자나 유대 지도자가 아니라 처형을 집행한 로마 병사의 입에서 나온다는 점이, 마가복음 특유의 반전된 인정 구조로 자주 지적된다. 요한복음은 다른 복음서에 없는 세부를 덧붙인다. 안식일 전에 시신을 치우기 위해 병사들이 함께 매달린 두 사람의 다리를 꺾어 죽음을 앞당겼지만, 예수는 이미 죽어 있어 다리를 꺾지 않았고 대신 창으로 옆구리를 찔렀을 때 피와 물이 나왔다는 서술이다. 이 현상을 두고 후대에는 다양한 의학적 설명이 제시되었지만, 요한복음 자체는 이를 의학적 사실이 아니라 구약의 예언—뼈가 꺾이지 않을 것이며 찌른 자를 바라볼 것이라는—의 성취로 제시한다. 지켜본 여자들의 이름도 복음서마다 조금씩 다르게 나열된다. 막달라 마리아는 네 복음서 모두에 공통으로 등장하지만, 나머지 이름과 인원은 책마다 차이가 있다. 시신을 수습한 요셉에 대해서도 누가복음은 그가 산헤드린유대 최고 의결 기구. 대제사장을 의장으로 삼아 대제사장 계열·장로·율법 학자들로 구성되며 전통적으로 71명이었다고 알려진다. 로마 지배 아래에서 종교·사회 질서에 대한 상당한 자치권을 인정받았지만, 사형 집행권은 로마 총독에게만 있었다. 의원이면서도 예수에 대한 결정에 동의하지 않았다고 특기하는데, 이는 산헤드린 지도부의 결정이 만장일치가 아니었을 가능성을 시사하는 드문 단서다.

잠깐, 이건 알고 가자

산헤드린
유대 최고 의결 기구. 대제사장을 의장으로 삼아 대제사장 계열·장로·율법 학자들로 구성되며 전통적으로 71명이었다고 알려진다. 로마 지배 아래에서 종교·사회 질서에 대한 상당한 자치권을 인정받았지만, 사형 집행권은 로마 총독에게만 있었다.
로마 총독(빌라도)
본디오 빌라도는 AD 26년경부터 36년경까지 유대 지역을 다스린 로마 관리다. 평소에는 해안 도시 카이사레아에 머물다가 명절 등 소요가 우려되는 시기에 병력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올라왔다. 1961년 카이사레아에서 그의 이름과 직함이 새겨진 비석이 발견되어, 성경 밖 사료로도 그의 실존과 직함이 확인된다.
십자가형
로마가 반란을 꾀한 자, 노예, 로마 시민이 아닌 사람에게 주로 쓰던 처형 방식이다. 원칙적으로 로마 시민에게는 적용되지 않았다. 공개된 길목에서 오래 매달아 두어 본보기로 삼는 데 목적이 있었다.
유월절 특사
명절마다 총독이 죄수 한 명을 풀어 주었다는 관습. 로마 총독이 지역 민심을 달래려 사면을 베푸는 일은 알려져 있지만, 이 관습이 유대 지역에 정기적으로 있었다는 기록은 성경 밖 사료에서 확인되지 않는다.
죄패(titulus)
처형 이유를 적어 십자가 위에 붙이던 팻말. 로마가 처형을 공개하고 본보기로 삼으려는 목적으로 썼다. 복음서마다 문구 길이가 조금씩 다르며, 요한복음은 세 언어로 적혔다고 전한다.
백부장
로마 군대에서 병사 약 100명을 지휘하던 장교. 처형 현장을 감독하는 역할도 맡았다. 마가복음에서 예수의 죽음을 보고 그를 알아본 것은 유대 지도자가 아니라 이 로마 장교였다.

흔한 오해

유대인들이 예수를 죽였다.

처형을 최종 결정하고 집행한 것은 로마 총독 빌라도였고, 십자가형 자체가 로마가 쓰던 처형 방식이었다. 예수를 빌라도에게 넘긴 것은 유대 민족 전체가 아니라 예루살렘 성전 체제를 이끌던 소수의 제사장 지도층이었으며, 본문은 이들이 로마와의 마찰을 우려했다는 정치적 동기를 함께 보여 준다. 갈릴리 출신 지지자들을 포함해 대다수 유대인은 이 결정 과정에 관여하지 않았다. 이 사건을 유대 민족 전체의 집단적 책임으로 읽는 방식은 중세 이후 오랫동안 박해를 정당화하는 데 동원되었고, 1965년 천주교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채택한 「우리 시대」 선언은 유대 민족 전체에 대한 이런 집단적 책임론을 공식적으로 배격했다. 오늘날 대부분의 주요 교단이 이 입장을 공유한다.

빌라도는 손을 씻으며 발을 뺐을 뿐, 이 죽음에 실질적 책임이 없다.

손을 씻는 행동은 마태복음에만 나오는 상징적 몸짓일 뿐이다. 실제로 채찍질과 십자가형을 명령하고 집행을 지시한 것은 빌라도 자신이었다.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와 알렉산드리아의 필론은 그를 잔인하고 완고한 통치자로 묘사하며, 그는 이 사건 이후 몇 년 뒤 유대 지역에서의 과도한 폭력 진압을 이유로 로마로 소환되어 총독직에서 물러난 인물이다.

유월절마다 죄수를 풀어 주는 관습은 역사적으로 확실히 증명된 사실이다.

이 관습이 유대 지역에 실제로 있었다는 기록은 성경 밖 유대·로마 사료 어디에서도 확인되지 않는다. 로마 총독이 지역 민심을 달래려 사면을 베푸는 일반적 관행은 알려져 있지만, 유월절마다 정기적으로 시행된 제도였는지는 학자들 사이에서도 논쟁거리로 남아 있다.

십자가 위 죄패에는 네 복음서 모두 똑같은 문구가 적혀 있다.

마가복음은 '유대인의 왕'이라고만 적고, 마태복음은 조금 더 긴 문구를, 요한복음은 세 언어로 적힌 문구까지 전한다. 정확한 워딩보다, 로마가 이 처형을 정치적 반역 사건으로 공식화했다는 사실 자체가 네 복음서의 공통점이다.

하늘이 어두워진 것은 개기일식이었다고 성경 밖 기록으로 증명된다.

유월절은 보름달이 뜨는 시기여서 자연적인 개기일식은 천문학적으로 불가능하다. 후대 일부 그리스도교 저술가가 이교도 역사가의 기록을 인용했다고 전해지지만 그 원문은 남아 있지 않다. 로마나 유대 쪽 사료에도 이 어둠에 대한 별도 언급은 없다.

그래서 이게 무슨 뜻일까

예수는 죽기 전에 여러 가지 말을 남겼어요. 힘들다는 말도 있고 용서한다는 말도 있어요. 사람들은 예수가 죽은 이유를 여러 가지로 생각해요.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 대신 벌을 받았다고 생각해요. 어떤 사람은 나쁜 힘을 이긴 거라고 생각해요. 어떤 사람은 사랑을 보여준 거라고 생각해요. 이 이야기는 답을 하나로 정하지 않아요. 오랫동안 여러 생각이 함께 전해져 왔어요. 여러분은 누군가 나 대신 힘든 일을 겪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어떤 마음이 드나요? 가장 힘들 때는 어떤 말을 하고 싶나요?

이 이야기에서 자주 눈에 띄는 것은 책임의 자리다. 처형을 최종적으로 명령한 것은 로마 총독 빌라도였고, 십자가형로마가 반란을 꾀한 자, 노예, 로마 시민이 아닌 사람에게 주로 쓰던 처형 방식이다. 원칙적으로 로마 시민에게는 적용되지 않았다. 공개된 길목에서 오래 매달아 두어 본보기로 삼는 데 목적이 있었다. 자체가 로마의 처형 방식이었다. 그를 넘긴 것은 유대 민족 전체가 아니라 예루살렘 성전 체제를 이끌던 소수의 지도층이었고, 본문은 이들이 로마와의 마찰을 우려했다는 정치적 동기를 함께 보여 준다. 갈릴리에서부터 그를 따르던 사람들, 예루살렘의 대다수 주민은 이 결정 과정에 관여하지 않은 채로 그려진다. 또 하나 눈에 띄는 것은 복음서마다 다른 마지막 말이다. 마가와 마태는 버림받은 듯한 절규를 전하고, 누가는 용서와 신뢰를, 요한은 완결을 전한다. 어느 하나가 틀렸다고 보기보다, 같은 죽음이 서로 다른 강조점으로 기억되었다고 보는 편이 본문에 더 가깝다. 이 죽음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기독교 역사 안에서 하나의 답으로 모이지 않았다. 아래 '다르게 보는 시각'에 몇 가지 큰 흐름을 정리했다. 이 사건은 이후 오랫동안 다른 방향으로도 읽혔다. 유대인 전체에게 집단적 책임을 씌우는 방식으로 잘못 읽혀 박해의 근거로 쓰인 역사가 있다. 이 오해가 왜, 어떻게 정정되었는지는 위 '흔한 오해'에서 다뤘다. 남는 질문은 이런 것이다. 한 사람의 죽음에 여러 사람이 각자 다른 이유로 연루되어 있을 때, 그 죽음의 의미를 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을까. 서로 다른 네 개의 기억이 서로 다른 말로 같은 죽음을 전할 때, 그 차이 자체가 우리에게 말해 주는 것은 무엇일까.

이 사건을 읽는 방식은 최소한 세 갈래로 나뉜다. 첫째는 마가복음의 서사 전략으로 읽는 방식이다. 이 책 내내 예수는 자신의 정체를 감추거나 침묵을 명령해 왔고, 사람들은 그가 누구인지 끝까지 제대로 알아보지 못한다. 그런데 그 정체가 가장 분명하게 발화되는 곳이 하필 처형 현장이고, 그것도 로마 백부장로마 군대에서 병사 약 100명을 지휘하던 장교. 처형 현장을 감독하는 역할도 맡았다. 마가복음에서 예수의 죽음을 보고 그를 알아본 것은 유대 지도자가 아니라 이 로마 장교였다.의 입에서다. 왕이라는 조롱이 실제로는 정확한 호칭이었다는 아이러니가 이 책의 결말부를 관통한다는 분석이 널리 받아들여진다. 둘째는 정치사적으로 읽는 방식이다. 죄패에 적힌 문구, 반역죄로 재구성된 혐의, 십자가라는 처형 방식 자체가 이 사건을 로마 제국의 통치 질서와 정면으로 부딪힌 사건으로 읽게 한다. 20세기 후반 이후 신약학에서는 이 사건을 순전히 종교적 갈등으로만 보지 않고, 로마의 통치 질서에 대한 위협으로 인식된 정치적 처형이라는 층위를 함께 읽어야 한다는 흐름이 강해졌다. 다만 이 정치적 읽기가 산헤드린유대 최고 의결 기구. 대제사장을 의장으로 삼아 대제사장 계열·장로·율법 학자들로 구성되며 전통적으로 71명이었다고 알려진다. 로마 지배 아래에서 종교·사회 질서에 대한 상당한 자치권을 인정받았지만, 사형 집행권은 로마 총독에게만 있었다.이 제기한 종교적 혐의의 무게를 지워서는 안 된다는 반론도 있다. 두 층위—종교적 혐의와 정치적 혐의—가 함께 작동했다고 보는 쪽이 다수 견해에 가깝다. 셋째는 이 사건의 신학적 의미를 묻는 방식이다. 십자가 죽음을 기독교가 어떻게 이해해 왔는지는 대속·승리·모범이라는 몇 갈래 큰 흐름으로 정리되어 왔고, 신학 전통마다 강조점이 다르다. 이 갈래는 이 페이지의 '다르게 보는 시각'에서 따로 다룬다. 이 세 갈래 독법은 서로 배타적이지 않다. 마가복음의 문학적 반전, 로마 제국 안에서 벌어진 정치적 처형이라는 역사적 사실, 그리고 이 죽음에 신학적 무게를 싣는 신앙적 독법은 한 본문 안에서 함께 작동한다고 보는 편이 다수 신약학자들의 접근에 가깝다. 마지막으로, 이 이야기의 책임 소재를 다루는 방식 자체가 역사 속에서 무거운 결과를 낳았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처형을 집행한 것은 로마였고, 넘긴 것은 소수의 지도층이었다는 본문의 서술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은 오랫동안 유대 민족 전체에 대한 집단적 책임론으로 왜곡되어 읽혔다. 그 왜곡이 실제로 어떤 결과를 낳았고 어떻게 공식적으로 정정되었는지는 위 '흔한 오해'에서 다뤘다. '누가 죽였는가'라는 질문과 '이 죽음이 무엇을 뜻하는가'라는 질문은 서로 다른 질문이며, 첫째 질문에 대한 오랜 오독이 둘째 질문에 대한 정직한 논의를 가로막아 온 역사가 있다는 점도 함께 남겨 둘 만하다.

십자가 죽음을 신학적으로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입장들이 있다.

그리스도 승리자론 (몸값설을 포함)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그리스도가 죄와 죽음, 악의 권세를 결정적으로 이겼다고 본다. 죽음은 패배가 아니라 더 큰 힘에 대한 승리의 과정으로 읽힌다.

  • 신약이 죽음과 악의 세력에 대한 승리의 언어를 반복해 쓴다는 점(고전 15장, 골 2장 등)
  • 2~4세기 교부들이 인류가 죄와 죽음의 권세 아래 사로잡혀 있었다는 이미지로 이 죽음을 설명했다는 점
  • 몸값(대속물)이라는 표현이 초기 문헌에 등장한다는 점

초대교회 교부들의 지배적 이해였고, 동방 정교회 전통에서 지금도 중심적인 자리를 차지한다. 20세기 스웨덴 신학자 구스타프 아울렌이 '승리자 그리스도'라는 이름으로 다시 조명했다

만족설

인간의 죄가 하나님의 명예 또는 질서를 훼손했고, 그 훼손을 되갚을 수 있는 존재는 사람이면서 동시에 하나님인 그리스도뿐이었다고 본다. 그의 죽음이 그 빚을 갚아 관계를 회복시켰다고 이해한다.

  • 11세기 캔터베리의 안셀무스가 『왜 하나님이 사람이 되셨는가』에서 체계화한 논증
  • 죄를 봉건 사회의 명예·질서 훼손에 빗대어 설명하는 중세적 틀

중세 서방 신학의 표준적 설명이 되었고, 로마 가톨릭 신학 전통에 폭넓게 남아 있다

형벌대속론

인간이 받아야 할 하나님의 심판(형벌)을 그리스도가 대신 짊어졌다고 본다. 그의 죽음은 명예 회복이 아니라 죄에 대한 정당한 형벌을 대신 치르는 사건으로 이해된다.

  • 16세기 종교개혁자들, 특히 칼뱅이 만족설을 형벌·법정의 언어로 재구성했다는 점
  • 이사야 53장의 '대신 짊어졌다'는 이미지, 고린도후서 5장의 '죄가 되셨다'는 표현이 이 틀로 자주 읽힌다는 점

종교개혁 전통, 오늘날 다수의 개신교 복음주의 교단에서 중심적으로 가르친다

도덕감화설

십자가는 형벌을 대신 치르거나 악을 물리치는 사건이라기보다,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극적으로 보여 주어 사람의 마음을 돌이키게 하는 사건이라고 본다.

  • 12세기 파리의 아벨라르가 만족설의 법정적 틀에 의문을 제기하며 제시한 대안
  • 사랑으로 사람을 변화시킨다는 강조가 신약의 여러 본문(요일 4장 등)과 맞닿는다는 점

아벨라르에서 시작되어 19~20세기 자유주의 신학 계열에서 폭넓게 받아들여졌다

공통점 네 입장 모두 십자가 죽음이 우발적인 처형의 실패로 끝나지 않았다고 본다는 점에서는 같다. 이 사건이 인간과 하나님 사이의 관계에 결정적인 변화를 가져왔다고 본다는 점도 공유한다. 어느 전통도 예수의 죽음을 의미 없는 사고로 다루지 않는다.

아직 논쟁 중인 부분 네 이론 가운데 하나만 옳고 나머지는 틀렸다고 보아야 하는지, 아니면 서로 다른 측면을 강조하는 상호 보완적 설명으로 함께 받아들일 수 있는지는 신학 전통마다 다르게 판단한다. 한 교단 안에서도 여러 이론이 동시에 가르쳐지는 경우가 많다. 이 앱은 어느 이론도 유일한 정답으로 제시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