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비즈

부활

이른 새벽, 여자들은 죽은 사람의 몸에 바를 향료를 들고 무덤으로 향했다. 도착해 보니 입구를 막았던 돌은 이미 옮겨져 있었고, 안에는 시신이 없었다.

마가복음 · 마가복음 16장 · 예수 · 읽는 시간 약 5

jesusmary-magdalenepetermary-mother-of-jamessalome

이야기

  1. 상황

    예수는 금요일에 십자가에서 죽었어요. 사람들은 서둘러 시신을 무덤에 넣었어요. 안식일금요일 해 질 무렵부터 토요일 해 질 무렵까지, 유대인이 이동과 노동을 멈추는 날. 예수의 장례가 서둘러 치러지고 여자들이 이튿날 새벽까지 기다렸다가 무덤에 간 것은 이 규정 때문이었다.이 곧 시작됐거든요. 안식일은 유대인이 아무 일도 하지 않는 날이에요. 토요일 하루였어요. 그래서 시신에 향료몰약과 알로에 등을 섞어 시신에 바르던 향기 나는 재료. 방부 처리를 위한 것이라기보다 냄새를 줄이고 예우를 갖추기 위한 절차에 가까웠다. 급하게 치른 장례에서 이 절차가 생략되었기 때문에 여자들이 다시 찾아간 것으로 보인다.를 제대로 바르지 못했어요. 안식일이 끝나자 여자들이 움직였어요. 이른 새벽, 해가 막 뜰 무렵이었어요. 여자들은 향료를 챙겨서 무덤으로 갔어요. 시신에 발라 주려고요. 그런데 누가 갔는지는 책마다 조금씩 달라요. 마가복음은 세 사람을 말해요. 막달라 마리아,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 살로메예요. 마태복음은 두 사람만 말해요. 누가복음은 여러 여자라고만 해요. 요한복음은 막달라 마리아 한 사람만 말해요. 가는 길에 여자들은 걱정했어요. 무덤 입구를 막은 돌이 아주 컸거든요. 자기들끼리는 못 옮길 것 같았어요.

    예수는 금요일 오후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었다. 사람들은 서둘러 그 시신을 바위를 파낸 무덤에 안치했다. 유대인의 안식일금요일 해 질 무렵부터 토요일 해 질 무렵까지, 유대인이 이동과 노동을 멈추는 날. 예수의 장례가 서둘러 치러지고 여자들이 이튿날 새벽까지 기다렸다가 무덤에 간 것은 이 규정 때문이었다.이 해 질 무렵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그 짧은 시간 안에 시신에 향료몰약과 알로에 등을 섞어 시신에 바르던 향기 나는 재료. 방부 처리를 위한 것이라기보다 냄새를 줄이고 예우를 갖추기 위한 절차에 가까웠다. 급하게 치른 장례에서 이 절차가 생략되었기 때문에 여자들이 다시 찾아간 것으로 보인다.를 바르는 절차까지 다 마치기는 어려웠다. 안식일인 토요일에는 이동도 노동도 할 수 없었다. 여자들은 그 하루가 지나기를 기다렸다. 안식일이 끝난 다음 날 새벽, 아직 어두울 무렵 여자들은 향료를 들고 무덤으로 향했다. 미처 마치지 못한 장례 절차를 마무리하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새벽에 누가 갔는지는 복음서마다 다르게 적는다. 마가복음은 막달라 마리아,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 살로메 세 사람을 꼽는다. 마태복음은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 두 사람만 말한다. 누가복음은 이름을 다 열거하지 않고 여러 여자라고만 적다가, 뒤에서 막달라 마리아·요안나·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그 밖의 여자들이라고 정리한다. 요한복음은 막달라 마리아 한 사람만 등장시킨다. 이 차이를 두고 서로 다른 목격자 전승이 각자 보존된 결과로 보는 설명과, 한 사람이 대표로 언급되고 나머지는 생략됐을 뿐이라고 보는 설명이 함께 있다. 가는 길에 여자들 사이에서 걱정이 나온다. 무덤 입구를 막은 돌을 누가 옮겨 줄 것인가 하는 물음이었다. 당시 무덤은 대개 둥근 돌을 홈에 끼워 굴리는 방식으로 입구를 막았고, 이 돌은 여러 사람의 힘이 있어야 움직일 수 있는 무게였다.

    1세기 예루살렘 상류층의 매장 방식은 바위를 파서 만든 굴무덤이 일반적이었다. 벽면을 파고 들어간 좁은 안치실에 시신을 눕힌 뒤, 살이 삭고 뼈만 남으면 1년쯤 지나 뼈를 거두어 작은 돌 상자(오소서리, ossuary)에 옮겨 담는 2차 매장 관습이 있었다는 점이 예루살렘 주변의 무덤 발굴로 확인된다. 예수의 매장은 이 관습의 첫 단계, 곧 1차 안치에 해당한다. 여자들이 뒤늦게 향료몰약과 알로에 등을 섞어 시신에 바르던 향기 나는 재료. 방부 처리를 위한 것이라기보다 냄새를 줄이고 예우를 갖추기 위한 절차에 가까웠다. 급하게 치른 장례에서 이 절차가 생략되었기 때문에 여자들이 다시 찾아간 것으로 보인다.를 들고 다시 찾아간 것은 이 1차 안치가 서둘러 이루어졌고 아직 장례가 완결되지 않았다는 정황과 맞아떨어진다. 유대의 하루 계산은 해가 지는 시점에 시작된다. 안식일금요일 해 질 무렵부터 토요일 해 질 무렵까지, 유대인이 이동과 노동을 멈추는 날. 예수의 장례가 서둘러 치러지고 여자들이 이튿날 새벽까지 기다렸다가 무덤에 간 것은 이 규정 때문이었다.은 금요일 해 질 무렵부터 토요일 해 질 무렵까지였으므로, 시신을 옮기고 눕히는 일은 안식일이 시작되기 전인 금요일 늦은 오후에 마쳐야 했다. 향료를 바르고 천으로 감싸는 절차 전체를 이 짧은 시간 안에 다 마치기는 어려웠으리라는 지적이 있다. 여자들이 움직인 시점을 두고도 복음서 사이에 미묘한 차이가 있다. 마가복음은 '해가 돋을 때'라 적고 요한복음은 '아직 어두울 때'라 적는다. 무덤에 간 여자들의 명단이 복음서마다 다른 현상은 자료비평(source criticism)에서 오래 다뤄진 문제다. 2세기 중반 시리아의 저술가 타티아노스는 네 복음서를 하나로 엮은 '디아테사론(Diatessaron)'을 만들면서 이런 차이들을 조화시키려 했는데, 이는 초대교회 안에서도 이 차이가 일찍부터 인식되고 있었음을 보여 준다. 오늘날의 설명은 크게 두 갈래다. 하나는 각 복음서가 서로 다른, 독립적인 목격자 전승을 그대로 보존했다고 보는 설명이다. 다른 하나는 하나의 핵심 전승, 곧 막달라 마리아가 최초 목격자였다는 뼈대에 각 저자가 자기 공동체가 기억하는 다른 이름들을 덧붙이거나 생략했다고 보는 설명이다. 어느 쪽이든 막달라 마리아가 네 기록 모두에 공통으로 등장한다는 점은 일치한다. 돌은 그리스어로 '리토스(lithos)'라고만 적혀 있어 정확한 형태는 알 수 없지만, 당시 예루살렘 부유층의 무덤에서는 원반형 돌(골렐, golel)을 무덤 앞의 홈에 끼워 굴리는 방식이 흔히 쓰였다. 이런 돌은 무게가 수백 킬로그램에 이르렀을 것으로 추정되어, 여자들이 그 돌을 걱정한 것은 자연스러운 반응이었다.

  2. 사건

    여자들이 무덤에 도착했어요. 그런데 놀랐어요. 돌이 벌써 옆으로 치워져 있었거든요. 여자들은 안으로 들어갔어요. 그런데 시신이 없었어요. 대신 흰 옷을 입은 젊은 사람이 앉아 있었어요. 그 사람이 말했어요. "놀라지 마세요. 예수님을 찾으시나요? 그분은 여기 없어요. 이미 살아나셨어요." 그리고 제자들에게, 특히 베드로에게 가서 전하라고 했어요. 갈릴리에서 다시 만날 거라고요. 여자들은 너무 놀라서 벌벌 떨었어요. 마가복음은 여자들이 무서워서 아무한테도 말을 못 했다고 적어요. 이야기가 거기서 뚝 끝나요. 다른 책들은 조금 다르게 말해요. 마태복음에서는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와 돌을 굴려요. 그리고 그 위에 앉아요. 지키던 군인들은 놀라서 기절할 뻔했어요. 누가복음에서는 사람이 두 명이에요. 요한복음에서도 두 명이에요. 그런데 요한복음에서는 막달라 마리아 혼자 먼저 가요. 돌이 치워진 걸 보고는 안을 들여다보지도 않고 곧장 베드로에게 달려가요.

    여자들이 무덤에 이르렀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돌이었다. 걱정과 달리 돌은 이미 옆으로 옮겨져 있었다. 여기서 흔히 오해가 생긴다. 돌이 예수가 걸어 나올 수 있도록 굴려졌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본문이 그리는 순서는 다르다. 마가복음의 서술을 따르면 여자들이 도착했을 때 돌은 '이미' 옮겨진 상태였고, 무덤 안에 있던 존재는 그가 '이미' 없다고 말한다. 돌을 치운 시점과 그가 다시 살아난 시점 사이의 관계를, 본문은 특정하지 않는다. 돌이 치워진 것은 그가 밖으로 나오기 위해서가 아니라, 뒤에 온 사람들이 안을 들여다보고 확인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조치로 읽힌다. 여자들이 안으로 들어가자 시신은 없고, 흰 옷을 입은 청년이 오른쪽에 앉아 있었다. 그는 여자들에게 놀라지 말라고 하면서, 십자가에 못 박힌 나사렛 예수를 찾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는 여기 없으며 이미 일으켜졌다고 전한다. 이어서 제자들에게, 특히 베드로에게 가서 전하라는 부탁과 함께 갈릴리에서 다시 만나게 될 것이라는 말을 남긴다. 마가복음의 결말은 여기서 이례적으로 끊긴다. 여자들은 무덤을 나와 떨며 도망쳤고, 몹시 놀라 아무에게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고 적혀 있다. 가장 오래된 사본들은 이 문장으로 마가복음을 마친다. 다른 세 복음서는 이 장면을 다르게 전한다. 마태복음 28장에는 지진이 나고, 하늘에서 천사가 내려와 돌을 굴려 그 위에 앉는 장면이 그려진다. 그 광경에 무덤을 지키던 로마 병사들이 놀라 기절할 지경이 되었다고 적는다. 나타난 존재는 한 명이다. 누가복음 24장에는 눈부신 옷을 입은 두 사람이 등장하고, 이들은 갈릴리로 가라는 말 대신 예수가 갈릴리에 있을 때 이미 사흘 만에 살아날 것이라고 말했던 사실을 기억하라고 전한다. 요한복음 20장에도 두 천사가 나오지만 등장 순서가 다르다. 요한복음에서는 막달라 마리아 혼자 먼저 무덤에 가고, 돌이 치워진 것을 본 순간 안을 들여다보지도 않은 채 곧장 베드로와 다른 제자에게 달려가 시신을 옮겼다고 알린다. 천사들은 그 뒤 두 제자가 다녀간 후에야 그녀 앞에 나타난다. 즉 나타난 존재의 수는 마가복음과 마태복음이 한 명, 누가복음과 요한복음이 두 명으로 서로 다르다. 이를 모순으로 보기보다 한 명이 대표로 말하고 다른 한 명은 언급되지 않았을 뿐이라고 조화시키는 오래된 독법이 있고, 각 복음서가 서로 다른 전승을 각자의 방식으로 정리한 결과라고 보는 독법도 있다.

    마가복음이 무덤 안의 존재를 가리켜 쓴 낱말은 '네아니스콘(neaniskon, 청년)'이다. 천사를 뜻하는 '앙겔로스(angelos)'라는 단어를 쓰지 않는다는 점이 눈에 띈다. 흰 옷을 입은 청년이라는 묘사와, 앞서 겟세마네에서 홑이불을 버리고 알몸으로 도망친 '청년(neaniskos, 막 14:51~52)'이 같은 단어라는 점을 근거로, 두 장면을 문학적 짝으로 읽는 해석이 있다. 옷을 버리고 도망친 인물과, 옷을 갖춰 입고 앉아 있는 인물을 마가가 의도적으로 대비시켰다는 것이다. 다만 이 대비가 저자의 의도인지, 같은 단어가 우연히 반복된 것인지는 확정할 수 없다. 마태복음은 이 존재를 분명히 '주의 천사(angelos kyriou)'라고 부르며, 그가 하늘에서 내려와 돌을 굴리고 그 위에 앉는 장면을 덧붙인다. 이때 지키던 병사들이 '죽은 사람처럼' 되었다는 표현은, 마태복음에만 나오는 무덤 경비병 이야기(마 27:62~66)와 짝을 이룬다. 경비병 배치는 '제자들이 시신을 훔쳐 가서 부활했다고 속일 것'이라는 우려에서 비롯된 것으로 서술되는데, 뒤에 그 병사들이 매수되어 '제자들이 밤에 와서 훔쳐 갔다'는 말을 퍼뜨렸다는 이야기(마 28:11~15)로 이어진다. 이 경비병 일화는 마태복음에만 있으며, 다른 세 복음서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놀라지 말라'는 말은 그리스어로 '메 엑탐베이스테(mē ekthambeisthe)'다. 겟세마네에서 예수 자신의 두려움을 묘사할 때 쓰인 것과 같은 어근이다. 마가복음 안에서 이 동사 계열은 초자연적이거나 압도적인 상황에서 반복되는 표현으로, 저자가 의도적으로 즐겨 쓰는 어휘로 분석된다. 메시지의 내용도 복음서마다 갈라진다. 마가복음과 마태복음의 존재는 갈릴리로 가라고, 거기서 그를 보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예수의 활동 근거지였던 갈릴리로 돌아가라는 지시다. 반면 누가복음의 두 사람은 갈릴리라는 지명을 미래의 목적지가 아니라 과거의 예언이 이루어진 곳으로 언급하며, 이후 누가복음의 부활 후 장면은 모두 예루살렘과 그 근방(엠마오 포함)에서만 벌어진다. 요한복음도 초반 장면들은 예루살렘 중심이다가 마지막 장(21장, 여러 학자가 후대에 덧붙은 에필로그로 보는 부분)에서야 갈릴리 호숫가 장면이 나온다. 이 지리적 불일치를 두고, 예루살렘 계열 전승과 갈릴리 계열 전승이 서로 다른 뿌리에서 갈라져 나왔다고 보는 자료비평적 설명이 오래전부터 제시되어 왔다. 형식비평(form criticism)의 고전적 분류에서 루돌프 불트만은 이 빈 무덤 이야기를 '전설(legend)' 유형으로 분류하며, 원래 독립적으로 전해지던 짧은 단화가 수난 이야기 뒤에 붙었다고 보았다. 이런 분류가 곧바로 역사성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은 불트만 스스로도 강조했지만, 이후 학계에서는 이 장르 분류 자체가 사실 여부를 미리 재단한다는 비판도 함께 제기되어 왔다.

  3. 결과

    마가복음은 여기서 이야기를 갑자기 멈춰요. 여자들이 무서워서 아무 말도 못 했다고 하고 끝나요. 그런데 지금 우리가 보는 성경에는 그 뒤로 이야기가 더 있어요. 예수가 여러 사람 앞에 나타났다는 내용이에요. 그런데 가장 오래된 사본에는 그 부분이 없어요. 그래서 학자들 생각이 나뉘어요. 원래 있던 결말이 없어졌다고 보는 사람도 있고, 마가가 일부러 여기서 끝냈다고 보는 사람도 있어요. 다른 복음서들은 이야기를 계속해요. 마태복음에서는 예수가 여자들을 직접 만나요. 나중에 산에서 제자들도 만나요. 누가복음에서는 그날 저녁 엠마오로 가던 두 사람을 만나요. 다음 이야기예요. 요한복음에서는 막달라 마리아가 정원사인 줄 알고 말을 걸다가, 예수인 걸 알아채요. 바울이라는 사람은 나중에 편지를 썼어요. 거기에 예수를 본 사람들 목록을 적었어요. 베드로, 열두 제자, 오백 명이 넘는 사람들, 그리고 자기 자신까지요. 그런데 그 목록에는 여자들 이름이 없어요.

    마가복음은 여자들이 무서워서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다는 문장으로 끝난다. 그리스어 원문의 마지막 단어는 접속사 '가르(gar, ~때문에)'인데, 문장을 이렇게 끝맺는 방식은 그리스어 어법에서 흔치 않다. 이야기 흐름도 이상하다. 무덤 안의 존재는 제자들에게 전하라고 했는데, 여자들이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다면 그 소식이 어떻게 전달되었는지가 설명되지 않은 채 책이 닫히는 셈이다. 가장 오래된 두 사본, 4세기의 시나이 사본과 바티칸 사본은 정확히 이 지점(16:8)에서 마가복음을 끝맺는다. 지금 대부분의 성경에 실려 있는 9~20절(흔히 '긴 결말'이라 불린다)은 이 두 사본에는 없다. 이 구절들은 부활한 예수가 막달라 마리아, 그다음 두 제자, 마지막으로 열한 제자에게 나타났다는 내용과, 제자들에게 세상에 나가 소식을 전하라는 명령을 담고 있다. 다만 이 부분의 어휘와 문체는 마가복음 나머지 부분과 다르다는 지적이 많다. 이 갑작스러운 결말을 두고 설명은 크게 둘로 갈린다. 하나는 원래 있었던 결말이 가장 초기의 사본이 만들어지기 전에 물리적으로 소실되었다고 보는 견해다. 두루마리나 초기 코덱스의 마지막 장은 마모되어 없어지기 쉬웠다는 것이 근거로 제시된다. 다른 하나는 마가가 처음부터 이 지점에서 의도적으로 이야기를 끝냈다고 보는 견해다. 마가복음 전체에 걸쳐 등장인물들이 끝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구조가 반복된다는 점, 독자에게 판단과 반응을 떠넘기는 방식으로 여러 장면이 열려 있다는 점이 근거로 제시된다. 어느 쪽도 결정적으로 입증되지는 않았다. 다른 세 복음서는 여기서 이야기를 이어 간다. 마태복음에서는 무덤을 떠나던 여자들이 직접 예수를 만나고, 이후 열한 제자가 갈릴리의 한 산에서 그를 만나 모든 민족에게 가르침을 전하라는 지시를 받는다. 누가복음에서는 그날 오후 엠마오로 가던 두 사람이 그를 알아보지 못한 채 동행하다가 뒤늦게 알아채는 장면(다음 이야기)이 나오고, 그날 저녁 예루살렘의 제자들 앞에도 나타난다. 요한복음에서는 홀로 남아 울던 막달라 마리아가 그를 정원사로 착각했다가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를 듣고서야 알아본다. 이후 신약성경에서 이 사건을 가장 먼저 글로 남긴 문서는 복음서가 아니라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보낸 편지로 알려져 있다. 바울은 그 편지(고린도전서 15장)에서 자신이 전해 받은 목록이라며, 예수가 나타난 순서를 정리해 남긴다. 본문을 그대로 옮기지 않고 자체적으로 정리하면 베드로, 열두 제자, 한 번에 오백 명이 넘는 사람들, 예수의 동생 야고보, 모든 사도들, 마지막으로 자기 자신 순이다. 이 목록에는 여자들의 이름이 없다. 반면 네 복음서는 하나같이 여자들, 특히 막달라 마리아를 가장 먼저 등장시킨다. 이 두 전승이 왜 이렇게 다르게 형성되었는지도 아직 정리된 답이 없다.

    마가복음 16장 9~20절의 지위는 신약 본문비평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사례 가운데 하나다. 이 결말은 크게 세 갈래로 갈린다. 4세기의 시나이 사본과 바티칸 사본처럼 16장 8절에서 끝나는 '짧은 결말', 소수의 사본에만 남아 있는 두세 문장짜리 '더 짧은 결말(shorter ending)', 그리고 오늘날 대부분의 인쇄본 성경이 싣고 있는 9~20절의 '긴 결말'이다. 5세기의 알렉산드리아 사본과 베자 사본을 비롯해 이후 다수의 그리스어 사본은 긴 결말을 포함하며, 이 때문에 종교개혁기까지 서구 교회는 대체로 긴 결말을 마가복음의 일부로 받아들였다. 4세기의 교부 에우세비오스는 '마리누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자신이 아는 '거의 모든' 그리스어 사본이 16장 8절에서 끝난다고 언급했고, 히에로니무스(제롬)도 비슷한 취지의 말을 남겼다. 이런 고대의 증언은 짧은 결말이 훨씬 이른 시기부터 널리 퍼져 있었다는 근거로 인용된다. 문체 분석도 이 판단을 뒷받침한다. 9~20절에는 마가복음 나머지 부분에서 쓰이지 않는 낱말이 열 개 넘게 나타나고, 마가복음 특유의 반복 어휘인 '유쓰스(euthys, 곧)'도 거의 쓰이지 않는다. 16장 9절이 막달라 마리아를 마치 처음 등장하는 인물처럼 다시 소개하는 것도 어색한 지점으로 꼽힌다. 그는 바로 앞 절들(15장 40절, 47절, 16장 1절)에 이미 나왔던 인물이기 때문이다. 20세기 중반 브루스 메츠거를 비롯한 본문비평가들의 연구를 거쳐, 현재 표준 비평본(네슬레-알란트 판)은 9~20절 전체를 이중 대괄호로 묶어 표시한다. 원문에 있었을 가능성은 낮지만 이른 시기부터 폭넓게 유통되어 정경의 일부로 굳어진 본문이라는 뜻이다. 사본 중에는 더 특이한 사례도 있다. 4~5세기의 워싱턴 사본(코덱스 W)은 긴 결말을 싣고 있는데, 14절과 15절 사이에 다른 사본에는 없는 몇 문장이 더 끼어 있다. 제자들의 불신을 이 시대의 어둠 탓으로 돌리는 짧은 대화로, 흔히 '프리어 로기온(Freer Logion)'이라 부른다. 히에로니무스는 자신이 본 '일부 사본'에 이런 내용이 있었다고 언급한 적이 있어, 고대에 이 삽입구가 실제로 유통되고 있었음을 뒷받침한다. 다만 이 역시 원문으로 보는 학자는 거의 없다. 이 사건에 대한 신약성경 안의 가장 이른 문헌 증거는 복음서가 아니라 바울의 편지로 꼽힌다. 고린도전서는 대략 AD 53~55년경에 쓰인 것으로 추정되는데, 바울은 15장에서 자신이 '전해 받은 것을 전한다'고 밝히며 목격자 목록을 나열한다. '게바'라는 아람어 이름이 쓰인 점, 문장의 리듬이 정형화되어 있는 점 등을 근거로, 이 목록이 바울 자신이 지어낸 것이 아니라 예루살렘 초기 공동체에서 이미 정형화되어 전승되던 신앙고백문을 그대로 인용한 것이라는 견해가 널리 받아들여진다. 이 견해를 따르는 학자들은 이 전승의 형성 시점을 사건 이후 수년 이내로까지 끌어올리기도 하지만, 정확한 연대 추정에는 이견이 있다. 이 목록에 여자들의 이름이 빠져 있는 이유에 대해서는 조심스러운 접근이 필요하다. 흔히 인용되는 설명은, 당시 유대 사회에서 여자의 증언이 법정에서 정식 증거로 잘 인정되지 않았다는 관습을 근거로, 여자를 처음 목격자로 내세우는 이야기는 지어낼 이유가 없는 불리한 정보였고 따라서 오히려 신뢰할 만하다고 보는 것이다('당혹의 기준'). 반대로 최근 일부 학자들은 이 관습이 실제로 어느 정도로 엄격했는지가 과장되어 인용되어 왔다고 지적하며, 바울의 목록이 여자를 배제한 것은 공식적·법적 증언 목록이라기보다 사도적 권위 계승을 정리한 목록이기 때문일 수 있다고 본다. 어느 설명을 택하든, 복음서들이 하나같이 여자를 최초 목격자로 그린다는 사실 자체는 남는다.

잠깐, 이건 알고 가자

안식일
금요일 해 질 무렵부터 토요일 해 질 무렵까지, 유대인이 이동과 노동을 멈추는 날. 예수의 장례가 서둘러 치러지고 여자들이 이튿날 새벽까지 기다렸다가 무덤에 간 것은 이 규정 때문이었다.
향료
몰약과 알로에 등을 섞어 시신에 바르던 향기 나는 재료. 방부 처리를 위한 것이라기보다 냄새를 줄이고 예우를 갖추기 위한 절차에 가까웠다. 급하게 치른 장례에서 이 절차가 생략되었기 때문에 여자들이 다시 찾아간 것으로 보인다.
무덤을 막은 돌
당시 예루살렘 부유층의 무덤은 둥근 원반 모양의 돌을 홈에 끼워 굴려서 입구를 막는 방식이 흔했다. 무게가 상당해 여러 사람의 힘이 필요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사본과 본문비평
인쇄술이 없던 시대에 성경은 손으로 베껴 전해졌고, 그 과정에서 필사자마다 조금씩 다른 사본이 생겼다. 오늘날 학자들은 남아 있는 수천 개의 옛 사본을 비교해 가장 이른 시기의 본문에 가까운 형태를 재구성한다. 마가복음 16장의 결말 문제도 이 작업에서 나온 논의다.
고린도전서 15장의 목격자 목록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보낸 편지의 일부로, 대략 AD 53~55년경에 쓰인 것으로 추정된다. 복음서들이 지금의 형태로 정리되기 전에 이미 기록된 문헌이라, 이 사건에 대한 신약성경 안의 가장 이른 문헌 증거로 자주 언급된다.

흔한 오해

무덤을 막은 돌은 예수가 걸어 나올 수 있도록 굴려졌다.

본문이 그리는 순서는 다르다. 여자들이 도착했을 때 돌은 이미 옮겨져 있었고, 안에 있던 존재는 그가 이미 없다고 전한다. 돌을 치운 시점과 다시 살아난 시점 사이의 관계를 본문은 특정하지 않는다. 돌이 치워진 것은 그가 나오기 위해서가 아니라, 뒤에 온 사람들이 안을 확인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조치로 읽힌다.

네 복음서의 부활 기사는 모든 세부사항이 똑같다.

무덤에 간 여자들의 이름과 수, 나타난 존재의 수, 전한 말의 내용, 이후 예수가 나타난 장소와 순서까지 상당히 다르게 기록되어 있다. 이 차이를 서로 다른 목격자 전승이 독립적으로 보존된 결과로 보는 설명과, 하나의 핵심 사실에 각 저자가 자기 공동체의 기억을 덧붙인 결과로 보는 설명이 함께 제시된다.

천사가 나타난 수는 모든 복음서가 똑같이 말한다.

마가복음과 마태복음은 존재를 한 명(각각 '청년'과 '천사')만 등장시키고, 누가복음과 요한복음은 두 명을 등장시킨다. 한 명이 대표로 말했을 뿐이라는 조화 시도와, 서로 다른 전승이 각자 정리된 결과라는 설명이 함께 있다.

지금 성경에 실린 마가복음 16장 9~20절은 처음부터 있던 원문이다.

가장 오래된 사본인 4세기의 시나이 사본과 바티칸 사본은 16장 8절에서 끝난다. 9~20절은 어휘와 문체가 마가복음 나머지 부분과 다르고, 4세기의 에우세비오스도 자신이 아는 대부분의 사본이 8절에서 끝난다고 적었다. 원래 결말이 소실됐다고 보는 견해와 마가가 의도적으로 이 지점에서 끝냈다고 보는 견해가 맞서며, 오늘날 표준 비평본은 이 구절 전체를 이중 대괄호로 표시한다.

예수가 부활 후 가장 먼저 나타난 사람은 베드로다.

네 복음서는 모두 여자들, 특히 막달라 마리아를 가장 먼저 그를 만난 사람으로 그린다. 반면 바울이 고린도전서에 남긴 목격자 목록은 베드로(게바)를 맨 앞에 둔다. 두 전승이 왜 이렇게 다른지는 정리된 답이 없다.

무덤을 지키던 병사 이야기는 네 복음서 모두에 나온다.

경비병 배치와 매수 이야기는 마태복음에만 있다. 다른 세 복음서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이 이야기는 '제자들이 시신을 훔쳐 갔다'는 소문에 대응하려는 서술로 읽히며, 그런 소문이 실제로 돌고 있었음을 보여 주는 간접 증거로 언급되기도 한다.

막달라 마리아는 죄 많은 여자, 혹은 창녀였다.

신약성경 어디에도 그런 서술은 없다. 누가복음 8장은 그를 일곱 귀신에서 놓여난 여자이자, 예수 일행을 재정적으로 도운 여러 여자 중 한 사람으로 소개할 뿐이다. '회개한 여자'라는 이미지는 591년 교황 그레고리오 1세가 설교에서 막달라 마리아를 누가복음의 다른 죄 많은 여자, 베다니의 마리아와 하나로 합쳐 말한 데서 굳어졌다는 것이 정설이다. 1969년 로마 가톨릭교회는 전례력을 고치며 이 세 인물을 다시 구분했다.

그래서 이게 무슨 뜻일까

마가복음은 이상하게 끝나요. 여자들이 무서워서 아무 말도 못 했다고만 하고 끝나요. 정말 이대로 끝나도 되는 걸까요? 여러분도 너무 놀라서 말이 안 나온 적이 있나요? 그럴 때 그 다음엔 어떻게 되었나요?

이 이야기에서 눈에 띄는 것은 해피엔딩의 부재다. 적어도 마가복음이 원래 썼을 가능성이 높은 본문에는, 기뻐하는 장면도 승리의 선언도 없다. 겁에 질려 도망치는 세 사람이 있을 뿐이다. 다른 복음서들이 뒤이어 채워 넣은 만남과 기쁨의 장면들과 나란히 놓고 보면, 이 침묵이 오히려 더 오래 남는다. 이해할 수 없는 일 앞에서 사람은 곧바로 그것을 말로 정리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이 결말은 보여 주는 것 같기도 하다. 소식이 결국 전해졌다는 것은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다는 사실 자체로 알 수 있다. 다만 그 소식이 두려움과 침묵을 뚫고 어떻게 퍼져 나갔는지, 마가복음은 끝내 보여 주지 않는다. 이해되지 않는 일 앞에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던 순간과, 그럼에도 결국 전해진 소식 사이에는 무엇이 있었을까.

이 결말을 읽는 방식은 크게 세 갈래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는 본문비평의 문제로 읽는 독법이다. 8절에서 끝나는 짧은 결말이 마가가 남긴 원문이라면, 이 책은 신약성경 안에서 유례가 드문 방식으로 끝나는 셈이다. 이 결말을 의도로 볼지 소실로 볼지는 정해지지 않았지만, 어느 쪽이든 지금 우리가 손에 든 신약성경의 형태 자체가 여러 세기에 걸친 필사와 선택의 산물이라는 점을 이 대목만큼 선명하게 드러내는 곳도 드물다. 둘째는 마가복음 전체의 서사 전략으로 읽는 독법이다. 이 책에서 제자들은 끝까지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인물들로 그려진다. 겟세마네에서 잠들고, 체포 현장에서 달아나고, 이제 무덤 앞에서는 침묵한다. 8절이 원래 결말이라면, 독자는 이야기 안의 인물들이 하지 못한 말을 대신 전하는 자리에 놓이게 된다. 침묵으로 끝나는 책이 그 침묵을 깨고 지금까지 전해졌다는 사실 자체가 하나의 논증이 된다는 것이다. 셋째는 역사적 사건성의 문제로 읽는 독법이다. 이 부분은 아래 '다르게 보는 시각'에서 따로 정리한다. 세 독법 모두에 공통된 질문이 있다. 목격했다고 전해지는 사람들이 두려움과 침묵으로 반응했다는 서술을, 이 사건이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라는 근거로 볼 것인가, 아니면 한 문학 작품이 택한 결말 기법으로 볼 것인가. 이 물음에 대한 답은 읽는 사람의 몫으로 남는다.

부활 사건을 어떤 성격의 주장으로 읽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입장들이 있다.

역사적으로 실제 일어난 사건으로 보는 입장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은 뒤 몸으로 다시 살아났으며, 이는 특정 시점에 실제로 일어난 사건이라고 본다.

  • 바울이 고린도전서에서 인용하는 목격자 목록이 사건 이후 이른 시기에 형성된 전승으로 추정되며, 오백여 명이 한 번에 목격했다는 기록처럼 검증 가능성을 염두에 둔 형태로 제시된다는 점
  • 여자를 최초 목격자로 전하는 서술이 당시 사회에서 여자의 증언을 낮게 여기던 관습에 비추어 불리한 정보였는데도 네 복음서 모두 지우지 않고 남겼다는 점('당혹의 기준')
  • 무덤이 비어 있었다는 전승 자체는 예수를 반대하던 쪽에서도 부정하지 못하고 '시신을 훔쳐 갔다'는 다른 설명으로 대응했다는 점(마 28:11~15)
  • 직후 몇 년 사이에 예루살렘에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처형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이 주장을 공개적으로 전하기 시작했다는 점

전통적 기독교 신학, 그리고 N. T. 라이트 등 일부 역사적 예수 연구자들이 제시하는 입장이다

자연적 설명을 시도하는 회의적 입장

몸이 실제로 다시 살아났다기보다, 슬픔에 빠진 목격자들의 환시나 집단적 심리 반응, 또는 이야기가 시간이 지나며 확대된 결과로 설명하려 한다.

  • 극심한 상실과 죄책감을 겪은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 환시·환청 경험이 다른 문화·시대에도 보고된다는 점(환시 가설)
  • 오백 명이 한 번에 보았다는 기록은 바울의 편지에만 있고 복음서에는 대응하는 장면이 없어, 시간이 지나며 확대·과장되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점
  • '시신을 훔쳐 갔다'는 설명이 마태복음 자체에 이미 소문으로 언급되어 있다는 점을 근거로 도난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보는 견해
  • 무덤에 갔다는 여자들의 명단과 나타난 존재의 수처럼 세부 정보가 문헌마다 달라, 초기 전승이 안정적으로 고정되지 않았음을 보여 준다는 점

게르트 뤼데만 등 일부 역사비평 신학자와 세속 역사학자들이 제시하는 입장이다

공통점 두 입장 모두 예수를 따르던 사람들이 그가 죽은 뒤 얼마 지나지 않아 그가 다시 살아났다고 진심으로 믿었으며, 그 믿음이 이후 이 운동의 확산으로 이어졌다는 점은 인정한다. 무덤이 비어 있었다는 전승이 아주 이른 시기부터 존재했다는 점에도 대체로 동의한다.

아직 논쟁 중인 부분 역사학의 방법 자체가 '한 사람이 죽었다가 몸으로 다시 살아났다'는 유형의 주장을 증명하거나 반증하는 데 적합한 도구인지부터 학자들 사이에 이견이 있다. 환시 가설이 어떻게 여러 사람에게, 서로 다른 시간과 장소에서 반복해서 일어날 수 있었는지도 회의적 입장 내부에서 완전히 합의되지 않았다. 이 앱은 어느 쪽 결론도 취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