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비즈

최후의 만찬

빌린 이층 방에 열세 명이 저녁을 먹으러 모였다. 자리에 앉자마자 한 사람이 말했다. 이 상에 함께 앉은 사람 중 하나가 나를 넘길 것이다.

마가복음 · 마가복음 14장 · 예수 · 읽는 시간 약 5

jesuspeterjudasjohn

이야기

  1. 상황

    봄이 되면 예루살렘은 사람으로 가득 찼어요. 큰 명절이 있었거든요. 유월절이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절기. 아주 오래전, 이집트에서 노예로 살던 사람들이 마지막 밤에 어린양을 잡아 그 피를 문설주에 바르고, 서둘러 먹고 떠났다는 이야기에서 나왔다(출애굽기 12장). 재앙이 그 집들을 '넘어갔다'는 데서 이름이 붙었다. 이후 이 민족은 해마다 봄에 그 밤을 재연하며 자기들이 누구인지를 기억했다. 즉 유월절은 종교 행사이면서 동시에 건국 기념일에 가깝다. 예수의 마지막 식사가 하필 이 절기에 놓였다는 점은 우연으로 읽히지 않는다. 해방을 기억하는 밥상 위에서 또 한 번의 죽음과 또 하나의 계약이 이야기되기 때문이다.이라는 명절이에요. 아주 오래전 조상들이 노예살이에서 빠져나온 날이지요. 사람들은 해마다 그날 밤을 기억하며 같이 저녁을 먹었어요. 예수도 제자들과 그 저녁을 먹으려고 했어요. 그런데 이번에는 사정이 달랐어요. 예수를 잡으려는 사람들이 있었거든요. 예수는 제자 둘을 먼저 성 안으로 보냈어요. 그리고 어떤 사람을 따라가라고 했어요. 물동이를 들고 가는 남자였어요. 그때 물은 주로 여자들이 길었어요. 그러니 눈에 잘 띄었겠지요. 그 사람 집에는 위층에 넓은 방이 있었어요. 제자 둘은 거기서 저녁을 준비했어요. 해가 지자 나머지 제자들도 모였어요. 모두 열두 명이었어요.

    봄이었다. 예루살렘은 한 해 중 가장 붐비는 주간을 지나고 있었다. 유월절이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절기. 아주 오래전, 이집트에서 노예로 살던 사람들이 마지막 밤에 어린양을 잡아 그 피를 문설주에 바르고, 서둘러 먹고 떠났다는 이야기에서 나왔다(출애굽기 12장). 재앙이 그 집들을 '넘어갔다'는 데서 이름이 붙었다. 이후 이 민족은 해마다 봄에 그 밤을 재연하며 자기들이 누구인지를 기억했다. 즉 유월절은 종교 행사이면서 동시에 건국 기념일에 가깝다. 예수의 마지막 식사가 하필 이 절기에 놓였다는 점은 우연으로 읽히지 않는다. 해방을 기억하는 밥상 위에서 또 한 번의 죽음과 또 하나의 계약이 이야기되기 때문이다. 때문이었다. 조상들이 이집트의 노예살이에서 빠져나온 밤을 기억하는 절기다. 각지에서 순례자가 몰려와 도시 인구가 몇 배로 불어났다. 사람이 몰리는 만큼 공기도 팽팽했다. 해방을 기념하는 절기에 로마의 지배 아래 사람들이 모이는 것이었으니, 총독은 이 기간에 병력을 데리고 예루살렘에 머물렀다. 유대 지도자들 쪽도 예민했다. 며칠 전 예수가 나귀를 타고 성에 들어올 때 사람들이 길에 옷을 깔며 맞았고, 이어 성전 앞마당에서 환전상을 뒤엎는 소동이 있었다. 복음서는 지도자들이 그를 붙잡되 절기 중에는 하지 말자고 의논했다고 적는다. 군중이 소란을 일으킬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같은 시기에 열두 제자 중 한 사람인 유다가 그들을 먼저 찾아간다. 돈을 받기로 하고, 사람이 없을 때 넘길 기회를 살피기 시작했다. 왜 그랬는지 복음서마다 말이 조금씩 다르고, 마가복음은 이유를 아예 적지 않는다. 식사 준비는 조심스럽게 진행된다. 예수는 제자 둘을 성 안으로 보내며, 물동이를 이고 가는 남자를 따라가라고 일러 준다. 그 시대에 물을 긷는 일은 대개 여자의 몫이었으므로, 남자가 물동이를 든 모습은 눈에 띄는 표시였다. 두 사람은 그를 따라가 어느 집의 이층 방한국어 성경에서 '다락방'으로 옮기기도 하는 공간. 계단으로 오르는 위층의 넓은 방으로, 당시 순례객에게 절기 식사 자리로 빌려주던 곳이다. 창고나 좁은 다락이 아니라 손님을 치르는 방이었다.으로 안내받는다. 방은 이미 준비되어 있었다. 주소를 미리 알려 주지 않고 표시로만 찾아가게 한 이 방식을, 배신자가 장소를 미리 알지 못하게 하려는 조치로 읽는 해석이 있다. 본문은 그 의도를 설명하지 않는다. 다만 저녁이 되어 열둘이 다 모였을 때, 이 식사가 마지막이 되리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식탁에 앉은 사람 중 한둘뿐이었다.

    이 장면의 연대는 대체로 AD 30년 또는 33년의 봄으로 추정된다. 두 연도 모두 빌라도의 재임 기간(AD 26~36년) 안에 들고, 유월절이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절기. 아주 오래전, 이집트에서 노예로 살던 사람들이 마지막 밤에 어린양을 잡아 그 피를 문설주에 바르고, 서둘러 먹고 떠났다는 이야기에서 나왔다(출애굽기 12장). 재앙이 그 집들을 '넘어갔다'는 데서 이름이 붙었다. 이후 이 민족은 해마다 봄에 그 밤을 재연하며 자기들이 누구인지를 기억했다. 즉 유월절은 종교 행사이면서 동시에 건국 기념일에 가깝다. 예수의 마지막 식사가 하필 이 절기에 놓였다는 점은 우연으로 읽히지 않는다. 해방을 기억하는 밥상 위에서 또 한 번의 죽음과 또 하나의 계약이 이야기되기 때문이다.이 안식일 직전에 오는 해를 천문 계산으로 좁힌 결과다. 어느 쪽을 택할지는 학설이 갈리며 확정되지 않았다. 더 오래되고 더 까다로운 문제는 날짜다. 마가·마태·누가 세 권(공관복음)은 이 식사를 유월절 식사 자체로 서술한다. 마가복음 14장은 무교절 첫날, 곧 유월절 어린양을 잡는 날에 제자들이 준비를 물었다고 적는다. 유대의 하루는 해 질 녘에 시작되므로, 이 식사는 니산월 15일이 막 시작된 밤에 해당한다. 요한복음은 다르다. 이 식사를 유월절 '전'에 있었던 일로 배치하고(요 13:1), 다음 날 아침 유대 지도자들이 총독 관저에 들어가기를 꺼린 이유를 아직 유월절 음식을 먹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요 18:28). 재판 장면의 시각도 유월절 준비일로 적는다(요 19:14). 이 배치대로라면 예수는 성전에서 유월절 어린양이 도살되는 바로 그 시간에 십자가에 달린다. 하루의 차이를 설명하는 시도는 크게 넷으로 정리된다. 첫째, 요한복음이 신학적 이유로 날짜를 옮겼다고 보는 견해다. 이 복음서는 앞부분에서 이미 예수를 '하나님의 어린양'이라 부르고, 십자가 장면에서 다리를 꺾지 않았다는 세부를 유월절 양 규정과 연결한다. 이 경우 역사적 순서는 공관복음 쪽이 된다. 둘째, 반대로 공관복음이 이 식사를 유월절 식사로 재해석했다고 보는 견해다. 근거로 자주 언급되는 것은 본문의 침묵이다. 유월절 식사의 중심 음식인 어린양이 식사 묘사에 전혀 나오지 않고, 쓴 나물이나 출애굽 이야기의 낭독도 언급되지 않는다. 절기 밤에 재판과 처형이 진행됐다는 서술이 당시 관행과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이 견해에 힘을 싣는다. 셋째, 달력이 하나가 아니었다고 보는 견해다. 20세기 중반 아니 자우베르는 쿰란 문서에 나타나는 태양력을 근거로, 일부 집단이 성전의 공식 달력과 다른 날짜에 유월절을 지켰고 예수가 그 달력을 따랐을 수 있다고 제안했다. 갈릴리와 유대의 하루 계산 방식이 달랐다는 설명, 사두개파와 바리새파의 계산 차이로 보는 설명도 같은 계열이다. 다만 예수가 쿰란 계열의 달력을 썼다는 직접 증거는 없어 비판을 받는다. 넷째, 요한복음의 표현을 다르게 번역하는 견해다. '유월절 준비일'로 옮기는 말을 '유월절 주간의 금요일'로 읽으면 두 기록이 충돌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어법상 가능하다는 지지와, 문맥이 그 독법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반박이 함께 있다. 어느 설명도 결정적이지 않으며, 이 문제는 신약학에서 오래 열려 있는 논쟁 가운데 하나다. 다만 네 복음서가 모두 동의하는 것이 있다. 예수의 마지막 식사는 유월절이라는 절기의 한복판에서 이루어졌고, 그 절기의 의미 위에서 이해되기를 의도했다는 점이다.

  2. 사건

    모두 자리에 앉아 먹기 시작했어요. 그때 예수가 말했어요. "여기 있는 한 사람이 나를 넘길 거야." 방 안이 조용해졌어요. 제자들은 서로 얼굴을 보았어요. 그리고 한 명씩 물었어요. "저는 아니지요?" 아무도 누구인지 알아채지 못했어요. 조금 뒤에 예수가 빵을 들었어요. 고맙다고 말한 뒤 빵을 떼었어요. 그리고 제자들에게 하나씩 나눠 주었어요. 그러면서 그 빵을 자기 몸이라고 불렀어요. 잔도 들어서 돌렸어요. 그 잔은 자기 피라고 했어요. 제자들은 무슨 뜻인지 몰랐어요. 그럴 만도 했어요. 눈앞에 앉아 있는 사람이 한 말이니까요. 예수는 곧 헤어진다는 뜻으로 말한 거예요. 그리고 이 식사를 계속 하라고 했어요. 자기를 기억하면서요.

    식사는 기대어 눕는 자세로 진행됐다. 절기 밤에는 낮은 상 둘레에 비스듬히 몸을 기대고 먹는 것이 관례였다. 노예는 서서 먹고 자유인은 기대어 먹는다는 상징이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흔히 떠올리는 긴 식탁과 등받이 의자는 이 방에 없었다. 먹는 도중에 예수가 말을 꺼낸다. 이 자리에서 함께 먹고 있는 사람 중 하나가 자신을 넘길 것이라는 말이었다. 제자들의 반응을 복음서는 짧게 적는다. 한 사람씩 돌아가며 자기가 아니냐고 물었다는 것이다. 아무도 옆 사람을 지목하지 못했다. 배신자가 누구인지 서로 알아볼 수 없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요한복음은 같은 밤을 다른 장면으로 채운다. 식사 중에 예수가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두른 뒤 제자들의 발을 씻긴다. 당시 발을 씻기는 일은 종이 하던 일이었고, 그것도 이방인 종에게 맡기는 경우가 많았다. 베드로는 거부하다가, 그러면 나와 상관이 없다는 말을 듣고 물러선다. 그리고 이 밤의 중심이 되는 짧은 동작이 나온다. 예수는 빵을 들어 감사를 드린 뒤 떼어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며 그것을 자기 몸이라고 불렀다. 이어 잔을 돌리면서, 그것이 여러 사람을 위해 흘리게 될 자기 피이며 그 피로 계약이 맺어진다는 뜻의 말을 덧붙였다. 그리고 이제 다시는 이 포도주를 마시지 않겠다고, 하나님의 나라에서 새로 마실 때까지는 그렇다고 말한다. 작별을 전제한 문장이다. 누가복음과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보낸 편지에는 여기에 당부가 하나 더 붙는다. 이 일을 자신을 기억하며 되풀이하라는 것이다. 오늘날 교회가 빵과 잔을 나누는 예식은 이 문장에서 나왔다. 제자들이 그 자리에서 이 말을 알아들었을 가능성은 높지 않다. 몸과 피를 가리켜 말하는 사람이 바로 눈앞에 앉아 있었기 때문이다. 복음서도 그들이 이해했다고 적지 않는다. 마가복음의 제자들은 이 책 내내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들로 그려지고, 이 밤도 예외가 아니다.

    이 짧은 대목은 신약에서 네 번 서술된다. 마가복음 14장, 마태복음 26장, 누가복음 22장, 그리고 고린도전서 11장이다. 요한복음에는 빵과 잔을 나누는 대목이 아예 없다. 대신 13장부터 17장까지 다섯 장을 이 밤의 대화와 기도로 채운다. 네 기록은 두 계통으로 나뉜다는 것이 오랜 분석이다. 마가와 마태가 한 계통, 누가와 고린도전서가 다른 계통이다. 뒤쪽 계통에는 '기억하라'는 당부와 '새 계약'이라는 표현이 들어 있고, 잔에 대한 언급 위치도 다르다. 흥미로운 것은 시기다. 고린도전서는 AD 54년경에 쓰인 것으로 보는 견해가 우세한데, 이는 가장 이른 복음서보다 10년 이상 앞선다. 즉 이 식사에 대한 현존 최고(最古)의 기록은 복음서가 아니라 바울의 편지이며, 바울은 그것을 자기가 만든 말이 아니라 전해 받아 전한 것이라고 밝힌다. 누가복음에는 별도의 사본 문제가 있다. 22장 19절 후반부터 20절까지, 곧 '기억하라'는 당부와 새 계약의 잔에 해당하는 부분이 서방 계열 일부 사본에 없다. 이 부분을 후대의 삽입으로 보는 견해와, 원래 있던 것이 필사 과정에서 빠졌다고 보는 견해가 갈린다. 현대 비평본은 대체로 본문에 두되 각주로 문제를 표시한다. 어휘도 쟁점이다. '계약'으로 옮긴 그리스어 디아테케(diathēkē)는 히브리어 베리트(berit)에 대응하며, 한국어 성경은 대개 '언약'으로 번역한다. 대등한 두 당사자의 계약이라기보다, 한쪽이 조건을 정해 제시하는 형태의 약속에 가깝다. 이 단어와 피가 함께 놓이는 순간 두 개의 앞선 본문이 소환된다. 하나는 출애굽기 24장이다. 시내산에서 계약이 맺어질 때 모세가 짐승의 피를 제단과 백성에게 뿌리며 그것을 계약의 피라고 부른다. 다른 하나는 예레미야 31장이다. 나라가 무너진 시대에, 돌판이 아니라 마음에 새겨질 새로운 계약이 예고된다. 이 밤의 말은 두 본문 위에 겹쳐 놓였을 때 비로소 문장이 완성된다는 것이 다수 주석의 설명이다. 아람어 배후를 재구성하려는 시도도 오래 이어져 왔다. 예수가 실제로 쓴 언어는 아람어였을 가능성이 높고, 그 경우 '이것은 나의 몸'에 해당하는 표현에 연결동사가 없었을 것이라는 지적이 있다. 그래서 원래 발화가 '이것은 나를 가리킨다'에 가까웠는지, 아니면 더 직접적인 동일시였는지를 두고 논의가 있으나, 아람어 원문이 남아 있지 않아 결론은 나지 않는다. 이 언어학적 논점이 뒤에 나오는 성찬교회에서 빵과 잔을 나누는 예식. 이 밤의 식사를 되풀이하는 행위다. 부르는 이름이 여럿이다. 개신교는 성찬·성만찬·주의 만찬, 천주교는 성체성사 또는 미사, 정교회는 성찬예배라고 부르며, 서구권에서는 '감사드리다'라는 그리스어에서 온 유카리스트(Eucharist)라는 말이 널리 쓰인다. 이름이 다른 만큼 이해도 다르다. 해석 논쟁과 직접 맞물린다. 유대 절기 관습과의 대조도 자주 다뤄진다. 오늘날 알려진 유월절이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절기. 아주 오래전, 이집트에서 노예로 살던 사람들이 마지막 밤에 어린양을 잡아 그 피를 문설주에 바르고, 서둘러 먹고 떠났다는 이야기에서 나왔다(출애굽기 12장). 재앙이 그 집들을 '넘어갔다'는 데서 이름이 붙었다. 이후 이 민족은 해마다 봄에 그 밤을 재연하며 자기들이 누구인지를 기억했다. 즉 유월절은 종교 행사이면서 동시에 건국 기념일에 가깝다. 예수의 마지막 식사가 하필 이 절기에 놓였다는 점은 우연으로 읽히지 않는다. 해방을 기억하는 밥상 위에서 또 한 번의 죽음과 또 하나의 계약이 이야기되기 때문이다. 만찬(세데르)의 순서 — 네 번의 잔, 쓴 나물, 어린이의 질문, 출애굽 이야기의 낭독 — 는 미쉬나 페사힘 10장에 정리되어 있는데, 이 문헌은 AD 200년경의 편집물이다. 1세기의 실제 관행을 그대로 반영하는지에 대해서는 신중한 태도가 우세하다. 복음서 본문에는 세데르의 요소가 거의 나타나지 않고, 무엇보다 어린양이 언급되지 않는다. 이 침묵을 두고, 절기 식사의 세부를 굳이 적을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라는 설명과, 애초에 유월절 식사가 아니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맞선다. 마지막으로 이 장면의 동사 배열이 앞선 들판의 식사와 겹친다는 점이 지적된다. 들고, 감사드리고, 떼고, 주었다는 네 동작이 오병이어 장면에서 이미 같은 순서로 나온다. 초대교회가 두 식사를 겹쳐 읽었다는 근거로 인용되는 대목이다.

  3. 결과

    베드로가 큰소리를 쳤어요. "다들 떠나도 저는 남을 거예요." 예수는 조용히 대답했어요. "닭이 울기 전에 너는 나를 모른다고 할 거야." 베드로는 절대 아니라고 했어요. 식사가 끝나고 다 같이 노래를 불렀어요. 그리고 밖으로 나갔어요. 깜깜한 밤이었어요. 감람산예루살렘 성 동쪽, 골짜기 하나를 건너 마주 보는 낮은 산. 올리브나무가 많아 붙은 이름이다. 식사를 마친 일행이 이곳으로 걸어 올라가면서 다음 이야기가 시작된다.이라는 언덕으로 걸어 올라갔지요. 그날 밤 예수는 붙잡혀요. 그건 다음 이야기예요. 그런데 그 저녁 식사는 사라지지 않았어요. 사람들은 그 밤을 계속 따라 했어요. 지금도 교회에서는 빵과 잔을 나눠요. 아주 작은 조각이지만요. 그걸 성찬교회에서 빵과 잔을 나누는 예식. 이 밤의 식사를 되풀이하는 행위다. 부르는 이름이 여럿이다. 개신교는 성찬·성만찬·주의 만찬, 천주교는 성체성사 또는 미사, 정교회는 성찬예배라고 부르며, 서구권에서는 '감사드리다'라는 그리스어에서 온 유카리스트(Eucharist)라는 말이 널리 쓰인다. 이름이 다른 만큼 이해도 다르다.이라고 불러요. 그날 이층 방한국어 성경에서 '다락방'으로 옮기기도 하는 공간. 계단으로 오르는 위층의 넓은 방으로, 당시 순례객에게 절기 식사 자리로 빌려주던 곳이다. 창고나 좁은 다락이 아니라 손님을 치르는 방이었다.에서 있었던 일을 기억하는 거예요. 이천 년 동안 한 번도 끊기지 않았어요.

    식사 끝 무렵, 예수는 오늘 밤 모두가 자기를 버리고 흩어질 것이라고 말한다. 베드로가 반박한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자기는 아니라는 것이었다. 돌아온 대답은 더 구체적이었다. 닭이 울기 전에 세 번 모른다고 할 것이라는 말이었다. 베드로는 죽는 한이 있어도 그럴 리 없다고 했고, 나머지 제자들도 같은 말을 했다. 일행은 찬송을 부르고 방을 나선다. 절기 식사를 시편 노래로 마무리하는 관습이 있었으므로, 마지막 장면은 노래였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성문 밖으로 나가 감람산예루살렘 성 동쪽, 골짜기 하나를 건너 마주 보는 낮은 산. 올리브나무가 많아 붙은 이름이다. 식사를 마친 일행이 이곳으로 걸어 올라가면서 다음 이야기가 시작된다.으로 향한다. 유다는 그 사이 자리를 떴다. 요한복음은 그가 나갔을 때 밤이었다는 문장을 굳이 덧붙인다. 같은 밤 안에 체포와 재판이 이어지고, 그 다음 날 처형이 집행된다. 이 저녁 식사는 예수가 제자들과 마지막으로 함께 앉은 자리가 된다. 그런데 이야기는 그 밤으로 끝나지 않았다. 초기 기독교인들은 곧바로 이 식사를 되풀이하기 시작했다.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편지를 쓴 AD 50년대에 이미 그 모임은 문제를 일으킬 만큼 자리를 잡고 있었다. 먼저 온 사람들이 배불리 먹고 늦게 온 가난한 사람들은 남은 것도 못 먹는 일이 벌어졌고, 바울은 그럴 거면 집에서 먹으라고 강하게 나무란다. 함께 먹는다는 것 자체가 이 예식의 요점이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이 예식을 부르는 이름은 교단마다 다르다. 성찬교회에서 빵과 잔을 나누는 예식. 이 밤의 식사를 되풀이하는 행위다. 부르는 이름이 여럿이다. 개신교는 성찬·성만찬·주의 만찬, 천주교는 성체성사 또는 미사, 정교회는 성찬예배라고 부르며, 서구권에서는 '감사드리다'라는 그리스어에서 온 유카리스트(Eucharist)라는 말이 널리 쓰인다. 이름이 다른 만큼 이해도 다르다., 성만찬, 주의 만찬, 성체성사, 미사, 유카리스트가 모두 같은 자리를 가리킨다. 형식도 다르고 해석은 더 다르다. 이 차이는 16세기에 교회를 갈라놓은 가장 큰 쟁점 중 하나였고 지금도 완전히 좁혀지지 않았다. 그 갈래는 아래 '다르게 보는 시각'에 정리했다. 분명한 사실 하나는 남는다. 사형을 앞둔 사람이 마지막으로 한 일이 밥상을 차리고 사람들을 앉힌 것이었고, 그 밥상이 이천 년 동안 매주 되풀이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식사가 예식으로 굳어지는 과정은 문헌으로 어느 정도 추적된다. 1세기 후반의 디다케는 잔과 빵에 대한 감사 기도문을 싣지만 죽음이나 몸·피에 대한 언급이 없어, 초기 형태가 하나가 아니었을 가능성을 보여 준다. 2세기 초 이그나티우스는 이 식사를 그리스도의 몸과 직접 연결해 말하고, 2세기 중반 유스티누스는 예식의 순서를 비교적 상세히 기록한다. 초기에는 실제 저녁 식사(아가페)와 함께 진행됐으나, 3~4세기를 지나며 상징적인 소량의 빵과 잔만 남고 식사에서 분리된다. 해석 논쟁의 역사도 길다. 9세기 프랑스의 두 수도사 라드베르투스와 라트람누스가 처음으로 이 문제를 정면으로 다뤘고, 11세기 베렌가리우스 논쟁을 거쳐 1215년 제4차 라테란 공의회에서 '실체가 변한다'는 용어가 공식 채택된다. 16세기에는 이 문제가 종교개혁 진영 내부를 갈라놓는다. 1529년 마르부르크 회담에서 루터와 츠빙글리는 열네 개 조항에 합의하고 마지막 하나, 곧 이 식사의 이해에서 결렬했다. 개신교가 하나의 교회로 출발하지 못한 직접적 계기로 자주 꼽히는 장면이다. 칼뱅은 두 입장 사이를 중재하려 했으나 결과적으로 또 하나의 입장이 되었다. 이후 트리엔트 공의회(1545~1563)와 영국 국교회의 39개조가 각 진영의 공식 입장을 성문화한다. 20세기 이후에는 반대 방향의 움직임도 있다. 세계교회협의회가 1982년 발표한 리마 문서(BEM)는 세례·성찬교회에서 빵과 잔을 나누는 예식. 이 밤의 식사를 되풀이하는 행위다. 부르는 이름이 여럿이다. 개신교는 성찬·성만찬·주의 만찬, 천주교는 성체성사 또는 미사, 정교회는 성찬예배라고 부르며, 서구권에서는 '감사드리다'라는 그리스어에서 온 유카리스트(Eucharist)라는 말이 널리 쓰인다. 이름이 다른 만큼 이해도 다르다.·직제에 대한 교파 간 수렴 문서로, 성찬을 기념이자 성령의 임재이자 공동체의 식사로 함께 서술하려는 시도였다. 상당한 진전으로 평가받지만, 다른 교단 신자가 서로의 성찬을 함께 받을 수 있는지(상호 성찬)의 문제는 여전히 열려 있다. 한국 개신교의 실천도 이 역사의 산물이다. 대다수 교단이 발효되지 않은 포도즙과 작게 자른 빵을 쓰고, 매주가 아니라 분기나 절기에 시행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19세기 미국의 금주 운동과 저온살균 포도주스의 보급, 그리고 개혁교회 계열 선교사들의 관행이 함께 작용한 결과로 설명된다. 반면 천주교와 정교회, 성공회, 루터교는 포도주를 쓰고 시행 주기도 훨씬 잦다. 마지막으로 짚어 둘 것이 있다. 이 이야기는 오랫동안 반유대주의의 재료로 쓰였다. 유다의 배신과 지도자들의 모의를 유대인 전체의 죄로 확대하는 독법이 중세 유럽에서 유혈 박해를 정당화하는 데 동원됐다. 오늘날 대부분의 주요 교단은 이 독법을 공식적으로 거부한다. 천주교는 1965년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에서 유대 민족 전체에게 책임을 돌릴 수 없다고 명시했고, 개신교 주요 교단들도 유사한 선언을 냈다. 본문 자체가 유월절이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절기. 아주 오래전, 이집트에서 노예로 살던 사람들이 마지막 밤에 어린양을 잡아 그 피를 문설주에 바르고, 서둘러 먹고 떠났다는 이야기에서 나왔다(출애굽기 12장). 재앙이 그 집들을 '넘어갔다'는 데서 이름이 붙었다. 이후 이 민족은 해마다 봄에 그 밤을 재연하며 자기들이 누구인지를 기억했다. 즉 유월절은 종교 행사이면서 동시에 건국 기념일에 가깝다. 예수의 마지막 식사가 하필 이 절기에 놓였다는 점은 우연으로 읽히지 않는다. 해방을 기억하는 밥상 위에서 또 한 번의 죽음과 또 하나의 계약이 이야기되기 때문이다.이라는 유대 절기 안에서, 유대인 스승과 유대인 제자들 사이에서 벌어진 일이라는 점도 함께 기억될 필요가 있다.

잠깐, 이건 알고 가자

유월절
이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절기. 아주 오래전, 이집트에서 노예로 살던 사람들이 마지막 밤에 어린양을 잡아 그 피를 문설주에 바르고, 서둘러 먹고 떠났다는 이야기에서 나왔다(출애굽기 12장). 재앙이 그 집들을 '넘어갔다'는 데서 이름이 붙었다. 이후 이 민족은 해마다 봄에 그 밤을 재연하며 자기들이 누구인지를 기억했다. 즉 유월절은 종교 행사이면서 동시에 건국 기념일에 가깝다. 예수의 마지막 식사가 하필 이 절기에 놓였다는 점은 우연으로 읽히지 않는다. 해방을 기억하는 밥상 위에서 또 한 번의 죽음과 또 하나의 계약이 이야기되기 때문이다.
무교병
누룩을 넣지 않아 부풀지 않은 납작한 빵. 반죽이 부풀기를 기다릴 틈도 없이 급히 떠났다는 출애굽 이야기에서 유래해, 유월절 주간에는 이 빵만 먹었다. 이 밤 식탁에 오른 빵도 그런 빵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오늘날 성찬에 무교병을 쓸지 발효된 빵을 쓸지는 교단마다 다르다.
이층 방
한국어 성경에서 '다락방'으로 옮기기도 하는 공간. 계단으로 오르는 위층의 넓은 방으로, 당시 순례객에게 절기 식사 자리로 빌려주던 곳이다. 창고나 좁은 다락이 아니라 손님을 치르는 방이었다.
기대어 먹는 자세
절기 밤에는 낮은 상 둘레에 왼팔로 몸을 받치고 비스듬히 누워 먹었다. 그리스·로마식 연회 자세를 유대 절기가 받아들인 것으로, 서서 급히 먹던 노예와 달리 이제는 자유인이라는 뜻이 담겨 있었다. 요한복음에 한 제자가 예수 쪽으로 몸을 기울여 조용히 물었다는 묘사가 나오는 것도 이 자세 때문이다.
계약(언약)
성경에서 신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설명하는 기본 틀. 대등한 두 회사가 맺는 계약과 달리, 한쪽이 조건과 약속을 제시하고 다른 쪽이 받아들이는 형태에 가깝다. 오래전 시내산에서 짐승의 피를 뿌리며 맺었다는 계약이 있었고, 이 밤의 잔에 대한 말은 그 장면을 정면으로 겨냥한다.
성찬
교회에서 빵과 잔을 나누는 예식. 이 밤의 식사를 되풀이하는 행위다. 부르는 이름이 여럿이다. 개신교는 성찬·성만찬·주의 만찬, 천주교는 성체성사 또는 미사, 정교회는 성찬예배라고 부르며, 서구권에서는 '감사드리다'라는 그리스어에서 온 유카리스트(Eucharist)라는 말이 널리 쓰인다. 이름이 다른 만큼 이해도 다르다.
감람산
예루살렘 성 동쪽, 골짜기 하나를 건너 마주 보는 낮은 산. 올리브나무가 많아 붙은 이름이다. 식사를 마친 일행이 이곳으로 걸어 올라가면서 다음 이야기가 시작된다.
유다 이스가리옷
열두 제자 중 한 사람이자 이 이야기의 배신자. 돈 문제를 맡고 있었다고 요한복음은 적는다. 왜 넘겼는지에 대해 복음서들은 서로 다르게 암시한다. 돈, 실망, 또는 예수를 압박해 행동에 나서게 하려는 계산까지 여러 추정이 제시되지만, 가장 이른 기록인 마가복음은 동기를 아예 적지 않는다.

흔한 오해

다빈치의 그림처럼 긴 식탁 한쪽에 열세 명이 나란히 앉아 있었다.

1세기 절기 식사는 낮은 상 둘레에 비스듬히 기대어 눕는 자세로 진행됐다. 등받이 의자도, 한 줄로 늘어선 긴 식탁도 그 방에 없었을 가능성이 높다. 널리 알려진 구도는 1490년대 밀라노에서 그려진 그림의 것이다. 그림이 틀렸다기보다, 화가가 자기 시대의 식탁으로 그 장면을 옮겨 놓은 것에 가깝다.

'최후의 만찬'은 성경에 나오는 제목이다.

성경 본문에 이런 제목이 붙어 있지는 않다. 복음서는 제목 없이 사건으로만 서술한다. 바울의 편지가 쓰는 표현은 '주의 만찬'이고, '최후의 만찬'은 후대에 굳어진 관용 명칭이다. 각 복음서에 붙은 소제목들은 대개 현대 편집자가 독자의 편의를 위해 넣은 것이다.

네 복음서가 이 식사를 같은 날의 일로 기록한다.

마가·마태·누가는 이 식사를 유월절 식사 자체로 적고, 요한복음은 유월절 하루 전의 일로 배치한다. 하루 차이다. 어느 쪽이 사건의 순서에 가까운지, 혹은 두 기록을 조화시킬 방법이 있는지는 오래된 논쟁이며 결론이 나 있지 않다. 자세한 설명은 위 '이야기'의 심화 단계에 정리했다.

유다는 빵과 잔을 받기 전에 먼저 나갔다.

순서를 확정할 수 없다. 마가와 마태는 배신 예고 뒤에 빵과 잔 대목을 놓고 유다가 언제 나갔는지 적지 않는다. 누가복음은 빵과 잔 다음에 배신자에 대한 언급이 오는 순서로 적는다. 요한복음은 유다가 나가는 장면을 분명히 기록하지만, 정작 빵과 잔을 나누는 대목 자체가 없다. 유다가 이 식사를 함께 받았는지는 교회사에서 오래 논의된 질문이고 확정된 답이 없다.

성찬에는 반드시 포도주를 써야 한다 / 반드시 포도즙을 써야 한다.

교단마다 다르다. 1세기 절기 식사의 음료는 물을 섞은 포도주였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고, 천주교·정교회·성공회·루터교는 지금도 포도주를 쓴다. 반면 19세기 미국의 금주 운동과 저온살균 포도주스의 보급 이후 상당수 개신교 교단이 포도즙으로 바꿨고, 한국 개신교 다수가 이 관행을 이어받았다. 어느 쪽이 옳은지는 각 교단의 결정 사항이며, 이 앱은 판단하지 않는다.

복음서는 그날 식탁에 유월절 어린양이 올랐다고 적는다.

본문은 어린양을 언급하지 않는다. 준비 장면에는 유월절 준비가 나오지만, 정작 식사 묘사에는 빵과 잔만 등장한다. 쓴 나물이나 출애굽 이야기의 낭독 같은 절기 요소도 나오지 않는다. 이 침묵을 두고 굳이 적을 필요가 없었다고 보는 설명과, 애초에 유월절 식사가 아니었다고 보는 설명이 맞선다.

그래서 이게 무슨 뜻일까

예수는 자기를 넘길 사람과 같은 상에서 밥을 먹었어요. 자기를 모른다고 할 사람과도 함께 먹었지요. 그런데 아무도 쫓아내지 않았어요. 마지막 밤에 한 일이 밥을 나눈 것이었어요. 여러분은 누구와 밥을 같이 먹나요? 같이 먹기 싫은 사람도 있나요? 왜 그럴까요?

이 장면을 요약하는 방식은 여럿이다. 그중 하나는 이렇다. 사형을 앞둔 사람이 마지막 저녁에 한 일은 유언장을 쓰거나 도망칠 준비를 하는 것이 아니라, 방을 빌리고 밥상을 차리고 사람들을 앉힌 것이었다. 그 상에 앉은 사람들의 면면이 눈에 띈다. 몇 시간 뒤 그를 넘길 사람이 있었고, 새벽에 세 번 모른다고 할 사람이 있었고, 붙잡히는 순간 전부 달아날 사람들이 있었다. 본문은 누구도 자리에서 내보내지 않는다. 배신자를 지목하는 장면조차 이름을 못 박지 않고 넘어간다. '기억하라'는 당부도 다시 볼 만하다. 유월절이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절기. 아주 오래전, 이집트에서 노예로 살던 사람들이 마지막 밤에 어린양을 잡아 그 피를 문설주에 바르고, 서둘러 먹고 떠났다는 이야기에서 나왔다(출애굽기 12장). 재앙이 그 집들을 '넘어갔다'는 데서 이름이 붙었다. 이후 이 민족은 해마다 봄에 그 밤을 재연하며 자기들이 누구인지를 기억했다. 즉 유월절은 종교 행사이면서 동시에 건국 기념일에 가깝다. 예수의 마지막 식사가 하필 이 절기에 놓였다는 점은 우연으로 읽히지 않는다. 해방을 기억하는 밥상 위에서 또 한 번의 죽음과 또 하나의 계약이 이야기되기 때문이다.이라는 절기 자체가 기억의 장치였다. 다만 유대 전통에서 그 기억은 옛일을 회상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그 밤에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처럼 다시 겪는 것에 가깝다. 이 밤의 당부가 그 위에 놓였다는 점에서, 성찬교회에서 빵과 잔을 나누는 예식. 이 밤의 식사를 되풀이하는 행위다. 부르는 이름이 여럿이다. 개신교는 성찬·성만찬·주의 만찬, 천주교는 성체성사 또는 미사, 정교회는 성찬예배라고 부르며, 서구권에서는 '감사드리다'라는 그리스어에서 온 유카리스트(Eucharist)라는 말이 널리 쓰인다. 이름이 다른 만큼 이해도 다르다.은 추모식이라기보다 매번 다시 참여하는 자리로 이해되어 왔다. 그래서 이 이야기가 남기는 질문은 두 갈래다. 하나는 나를 배신할 사람과 같은 상에 앉을 수 있는가다. 다른 하나는 조금 더 불편하다. 나는 그 상에서 어느 쪽 자리에 앉아 있는가. 본문은 열두 명 중 누구도 무사히 넘어가지 않았다고 적는다.

해석사에서 이 본문은 대체로 네 방향으로 읽혀 왔다. 첫째는 계약 독법이다. 잔에 대한 말이 출애굽기 24장의 계약 체결 장면과 예레미야 31장의 새 계약 예고를 동시에 겨냥한다고 보고, 이 식사를 시내산에서 시작된 관계가 새로운 형태로 갱신되는 자리로 읽는다. 이 독법에서 예수의 죽음은 사고가 아니라 계약을 성립시키는 절차 안에 놓인다. 히브리서가 이 방향을 가장 길게 전개한다. 둘째는 유월절이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절기. 아주 오래전, 이집트에서 노예로 살던 사람들이 마지막 밤에 어린양을 잡아 그 피를 문설주에 바르고, 서둘러 먹고 떠났다는 이야기에서 나왔다(출애굽기 12장). 재앙이 그 집들을 '넘어갔다'는 데서 이름이 붙었다. 이후 이 민족은 해마다 봄에 그 밤을 재연하며 자기들이 누구인지를 기억했다. 즉 유월절은 종교 행사이면서 동시에 건국 기념일에 가깝다. 예수의 마지막 식사가 하필 이 절기에 놓였다는 점은 우연으로 읽히지 않는다. 해방을 기억하는 밥상 위에서 또 한 번의 죽음과 또 하나의 계약이 이야기되기 때문이다. 독법이다. 요한복음의 배치를 따라 예수를 유월절 어린양의 자리에 놓는다. 바울이 고린도전서에서 같은 연결을 짧게 언급하고, 초기 교회의 부활절 전승도 이 선상에서 형성된다. 이 독법에서 이 식사는 새로운 출애굽의 전야에 해당한다. 셋째는 종말론적 독법이다. 예수가 다시는 이 포도주를 마시지 않겠다고, 하나님의 나라에서 새로 마실 때까지는 그렇다고 말한 대목에 무게를 둔다. 이 경우 성찬교회에서 빵과 잔을 나누는 예식. 이 밤의 식사를 되풀이하는 행위다. 부르는 이름이 여럿이다. 개신교는 성찬·성만찬·주의 만찬, 천주교는 성체성사 또는 미사, 정교회는 성찬예배라고 부르며, 서구권에서는 '감사드리다'라는 그리스어에서 온 유카리스트(Eucharist)라는 말이 널리 쓰인다. 이름이 다른 만큼 이해도 다르다.은 과거를 기억하는 의식이면서 동시에 아직 오지 않은 잔치를 미리 맛보는 행위가 된다. 20세기 신약학이 특히 강조한 방향이다. 넷째는 공동체 독법이다. 바울이 고린도 교회의 성찬을 나무란 이유가 교리가 아니라 자리 배치와 음식 분배였다는 점에 주목한다. 이 독법에서 이 식사의 핵심은 요소가 아니라 식탁에 누가 앉느냐에 있다. 20세기 후반의 해방신학과 여성신학이 이 방향을 확장했다. 한편 이 본문을 '희생'이라는 말로만 요약하는 독법에 대해서는 양쪽에서 지적이 나온다. 한쪽에서는 그 요약이 이 장면의 종말론적 기대와 공동체적 성격을 지워 버린다고 본다. 다른 한쪽에서는 대속의 언어를 걷어내면 본문이 반복해 쓰는 '여러 사람을 위하여'라는 표현이 설명되지 않는다고 반박한다. 이 갈림은 성찬을 어떻게 이해하느냐와 직접 연결되며, 아래 '다르게 보는 시각'의 다섯 입장이 그 결과다.

빵과 잔을 나누는 이 식사를 교회는 어떻게 이해해 왔는가 (성찬 해석)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입장들이 있다.

빵과 포도주의 실체가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한다고 보는 입장 (화체설)

겉으로 보이는 모양·맛·성분은 빵과 포도주 그대로지만, 그 밑에 있는 실체가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바뀐다고 본다. 그래서 남은 것을 함부로 버리지 않고 따로 모셔 두며, 그 앞에서 예를 갖춘다.

  • 빵과 잔을 가리켜 자기 몸과 피라고 한 말을 비유가 아니라 문자 그대로 읽는다
  • 요한복음 6장에서 자기 살과 피를 먹고 마시라는 말이 따르던 사람들의 대규모 이탈을 부를 만큼 직설적으로 서술된다는 점. 예수가 그 자리에서 표현을 완화하지 않는다는 점도 근거로 든다
  • 2세기 초 이그나티우스 이래 초기 문헌이 이 식사를 실제 몸과 연결해 말해 왔다는 점
  • 1215년 제4차 라테란 공의회에서 이 용어가 공식 채택되고, 16세기 트리엔트 공의회에서 재확인됐다는 점

로마 가톨릭(천주교). '화체설'이라는 용어 자체는 중세 스콜라 신학이 실체와 겉모양을 구분하는 철학 개념을 빌려 정리한 것이며, 변화의 사실을 고백하는 것이지 그 과정을 설명하는 것은 아니라고 천주교 신학은 덧붙인다

실제로 임하지만 그 방식은 규정하지 않는 입장 (실재적 임재)

빵과 잔에 그리스도가 참으로 임한다고 고백하되, 그것이 어떤 방식으로 일어나는지는 정의하지 않고 신비로 남겨 둔다. 설명하려는 시도 자체를 절제한다.

  • 같은 본문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면서도, 변화의 방식을 규정하는 것은 인간의 언어가 감당할 범위를 넘는다고 본다
  • 예식의 중심에 성령을 불러 구하는 기도(에피클레시스)를 두어, 변화의 주체를 성령으로 고백한다
  • 실체와 겉모양을 나누는 서방의 스콜라적 설명 틀이 동방 신학 전통에서는 형성되지 않았다는 역사적 배경

동방 정교회와 오리엔트 정교회. 성공회 상당수도 방식을 규정하지 않는 실재적 임재로 표현한다. 실제로 변한다고 보는 점에서 앞의 화체설과 함께 묶어 '넷'으로 세는 방식도 널리 쓰인다

빵과 포도주는 그대로 있고 그와 함께 임한다고 보는 입장 (공재설)

빵은 빵으로, 포도주는 포도주로 남는다. 다만 그것과 함께, 그 안에서, 그 아래에서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실제로 주어진다고 본다. 받는 사람의 믿음 여부와 무관하게 주어진다는 점을 강조한다.

  • 문자적 독해는 유지하되, 실체가 바뀐다는 설명은 성경 본문이 요구하지 않는다고 본다
  • 그리스도의 인성이 신성과 함께 어디에나 임할 수 있다는 이해(속성의 교류)
  • 1529년 마르부르크 회담에서 루터가 이 지점을 양보하지 않아 개신교 진영이 갈라졌다는 역사적 경위

루터교. 다만 '공재설'은 후대에 붙은 명칭이고, 루터 자신과 루터교 신학은 이 용어가 자기 입장을 정확히 담지 못한다며 사용을 꺼리는 경우가 많다

성령을 통해 영적으로 임한다고 보는 입장 (영적 임재)

빵과 포도주 자체는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성령의 활동을 통해, 믿음으로 받는 사람에게 그리스도가 참으로 주어진다고 본다. 요소가 아니라 받는 자리에서 일어나는 일로 이해한다.

  • 부활해 올라간 몸은 한 자리에 있으므로 여러 성찬대에 물리적으로 임할 수 없다고 본다
  • 요한복음 6장 말미에서 살이 아니라 영이 살린다는 취지의 말이 이어진다는 점
  • 16세기에 칼뱅이 문자적 임재와 순수한 상징 사이를 중재하려 한 시도의 결과라는 형성 배경

장로교와 개혁교회, 회중교회. 성공회 안에도 이 입장을 취하는 흐름이 있다

임재보다 기념 행위에 무게를 두는 입장 (기념설·상징설)

빵과 잔은 상징이며, 예식의 핵심은 그리스도의 죽음을 기억하고 함께 고백하는 공동체의 행위 자체에 있다고 본다.

  • 누가복음과 고린도전서에 남은 '나를 기억하며 이렇게 하라'는 당부를 예식의 목적 진술로 읽는다
  • 예수가 자신을 두고 문이라거나 포도나무라고 말한 다른 자기 진술과 같은 어법으로 이해한다
  • 16세기 취리히의 츠빙글리가 정리한 노선이며, 이후 여러 개신교 흐름이 이를 이어받았다는 계보

침례교, 다수의 복음주의·오순절 교회, 그리스도의교회 계열. 한국 개신교의 실천 상당수가 이 입장에 가깝다. 다만 기념설 안에서도 '단순한 상징'이 아니라 공동체를 실제로 형성하는 행위로 보는 견해가 함께 있다

공통점 다섯 입장 모두 이 예식이 예수의 마지막 식사에서 비롯되었고 교회가 계속 되풀이해야 할 자리라는 점, 그것이 그의 죽음과 연결된 행위라는 점, 혼자가 아니라 공동체가 함께 먹는 자리라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 어느 쪽도 이것을 평범한 끼니로 보지 않으며, 어느 쪽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말하지 않는다. 차이는 '무엇이 일어나는가'가 아니라 '어디서 일어나는가' — 요소에서인가, 받는 사람에게서인가, 공동체의 행위에서인가 — 에 가깝다는 정리도 자주 제시된다.

아직 논쟁 중인 부분 빵과 잔에 정확히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는 본문이 설명하지 않으므로 확정할 수 없다. 누가 받을 수 있는가(세례를 받은 사람만인지, 어린이는 어떤지, 다른 교단 신자는 어떤지), 얼마나 자주 하는가, 누가 집례할 수 있는가, 포도주인가 포도즙인가, 무교병인가 발효된 빵인가도 교단마다 다르다. 특히 서로 다른 교단의 신자가 같은 성찬을 함께 받을 수 있는지의 문제는 오늘날 교회 일치 논의에서 가장 크게 남은 걸림돌로 꼽힌다. 이 앱은 어느 쪽 결론도 취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