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두 제자
호숫가에서 그물을 던지고 손질하던 사람들이, 그날 배를 그 자리에 두고 떠났다. 아버지와 일꾼들은 배에 남아 있었다.
마가복음 · 마가복음 1~3장, 마태복음 10장 · 예수 · 읽는 시간 약 3분
이야기
상황
갈릴리에 큰 호수가 하나 있어요. 그 호숫가에는 어부들이 살았어요. 어부는 물고기를 잡는 사람이에요. 그들은 밤에 배를 타고 나갔어요. 아침에는 그물을 손질했어요. 어제와 오늘이 거의 같은 하루였어요. 어느 날 예수가 그 길을 지나갔어요. 예수는 어부들에게 말을 걸었어요. 같이 가자고 했어요. 앞으로는 물고기 말고 사람을 만나게 될 거라고 했어요. 어부들은 그물을 내려놓았어요. 배도 그 자리에 두고 갔어요. 아버지와 일꾼들은 배에 남았어요. 왜 바로 따라갔을까요? 성경은 그 이유를 말해 주지 않아요. 그냥 따라갔다고만 적혀 있어요. 그중 한 사람이 베드로예요.
예수가 사람들 앞에 나서서 가르치기 시작한 곳은 갈릴리였다. 예루살렘에서 북쪽으로 100킬로미터 넘게 떨어진 변두리 지역이다. 큰 호수를 끼고 어업과 농사로 먹고사는 마을들이 있었다. 말투에 사투리가 섞여 있어 남쪽 사람들에게 금방 표가 났다고 전해진다. 마가복음은 이 시작을 아주 빠르게 적는다. 예수가 호숫가를 지나다 그물을 던지던 형제를 보고 같이 가자고 불렀고, 그들이 곧 그물을 두고 따라갔다는 식이다. 물고기를 잡던 사람들이 이제 사람을 모으는 일을 하게 될 것이라는 말이 덧붙는다. 조금 더 가서 배 안에서 그물을 손질하던 다른 형제도 같은 방식으로 부른다. 이 장면에서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방향이다. 당시 유대 사회에서는 배우려는 사람이 스승을 고르는 쪽이었다. 이름난 선생을 찾아가 받아 달라고 청하는 것은 학생의 몫이었다. 그런데 여기서는 반대다. 부르는 쪽이 먼저 말을 건넨다. 그들이 왜 곧바로 따라나섰는지 본문은 설명하지 않는다. 미리 만난 적이 있었으리라는 추정도 있다. 요한복음은 이들 가운데 몇 사람이 세례 요한 주변에 있다가 예수를 먼저 알게 됐다고 전한다. 다만 마가복음 자체는 그 배경을 생략하고, 부름과 응답만 남겨 둔다. 확실한 것은 그들이 두고 간 것이 무엇이었느냐다. 배와 그물은 집안의 생계 수단이었다. 야고보와 요한은 아버지와 일꾼들을 배에 남겨 둔 채 떠났다고 적혀 있다. 낭만적인 결단이라기보다, 가족의 살림에 구멍이 나는 일이었다.
무대는 갈릴리 호수 북서쪽 연안이다. 오늘날 이스라엘 북부에 있는 이 호수는 담수호로, 1세기에는 가버나움과 벳새다를 비롯한 어촌들이 둘러싸고 있었다. 이 일대의 어업은 영세한 개인 노동이 아니라 어느 정도 조직된 산업이었다. 세베대의 배에 일꾼이 있었다는 서술, 두 형제가 동업 관계로 묘사되는 대목은 이들이 최하층 빈민이 아니라 소규모 사업 단위를 운영하던 계층이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다만 로마 지배 아래 어획과 가공에 세금이 붙었다는 점에서, 여유 있는 계층으로 보기도 어렵다. 이 부름 장면은 문학 형식상 구약의 소명 기사와 겹친다. 특히 열왕기상 19장에서 엘리야가 밭 갈던 엘리사에게 겉옷을 던지고, 엘리사가 부리던 소를 잡아 사람들에게 나눠 준 뒤 따라나서는 장면과 구조가 비슷하다. 생업 도구를 처분하고 돌아갈 자리를 없앤다는 점까지 닮았다. 이 유사성을 두고, 마가가 의도적으로 예언자 소명 양식을 차용했다고 보는 견해가 널리 제시된다. 한편 '스승과 제자'라는 틀을 1세기에 그대로 적용할 때는 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있다. 흔히 이 장면을 랍비-제자 관계와 대비해 설명하지만, 후대 유대교의 정형화된 랍비 제도는 AD 70년 성전 파괴 이후에 형태를 갖췄다고 보는 연구가 많다. 그렇다면 '학생이 스승을 고른다'는 통념 역시 후대 자료에서 역산한 것일 수 있다. 그럼에도 부르는 쪽이 먼저 접근한다는 이 서술의 특징 자체는, 동시대 철학 학파의 입문 방식과 견주어 보아도 이례적인 편으로 평가된다. 복음서 사이의 차이도 여기서 시작된다. 마가복음과 마태복음은 호숫가의 부름을 예수의 활동 첫머리에 배치한다. 누가복음은 같은 인물들의 합류를 밤새 헛물켠 뒤의 만선 사건과 엮어 서술한다(눅 5장). 요한복음은 아예 다른 그림을 그린다. 안드레와 또 한 사람이 세례 요한 곁에 있다가 옮겨 왔고, 안드레가 형제 시몬을 데려왔으며, 빌립과 나다나엘이 차례로 합류한다는 순서다. 이 차이를 같은 사건의 다른 각도로 볼지, 서로 다른 시점의 별개 만남으로 볼지는 정리되지 않았다.
사건
예수를 따라다니는 사람은 점점 많아졌어요. 그중에서 예수는 열두 명을 골랐어요. 먼저 곁에 두려고 뽑았어요. 일을 시켜 보낸 건 그다음이었어요. 그런데 이 열두 명이 좀 이상했어요. 서로 친해지기 어려운 사람들이었거든요. 한 사람은 마태예요. 세금을 걷던 사람이지요. 그 세금은 다른 나라로 가는 돈이었어요. 그래서 이웃들이 마태를 미워했어요. 다른 한 사람은 그 나라와 싸우자던 편이었어요. 둘은 마주 앉기도 어려운 사이예요. 나중에 예수를 넘길 사람도 그 안에 있었어요. 열두 명은 자주 다퉜어요. 누가 더 높은지 따졌어요. 예수의 말을 못 알아들을 때도 많았어요. 그래도 예수는 이들을 마을로 보냈어요. 돈도 여벌 옷도 가져가지 말라고 했어요. 문을 안 열어 주는 집도 있을 거라고 했어요.
어느 시점에 예수는 따르던 무리 가운데 열두 명을 따로 지목한다. 마가복음은 그 목적을 두 가지로 적는데, 순서가 눈에 띈다. 먼저 곁에 두기 위해서였고, 내보내는 것은 그다음이었다. 무언가를 시키기 전에 함께 있는 시간이 먼저 온다는 구성이다. 문제는 명단이다. 이 열둘은 한 조로 묶어 두기에 무리한 조합이었다. 마태는 세금을 걷던 사람이다. 당시 세리는 로마 체제를 대신해 동족에게서 돈을 받아 내는 자리였고, 그래서 협력자 취급을 받았다. 반대로 또 다른 시몬에게는 '열심 있는 자'라는 별칭이 붙는다. 로마에 무력으로 맞서려던 흐름을 가리키는 말과 같은 계열이다. 세금을 걷던 사람과 그 세금 체제에 맞서려던 사람이 한 조에 들어간 셈이다. 어부가 여럿이고, 형제 사이가 두 쌍 있다. 그리고 명단의 마지막에는 늘 가룟 유다가 온다. 복음서는 그를 소개할 때마다 나중에 예수를 넘긴 사람이라는 설명을 붙인다. 이 글들이 이미 배신이 벌어진 뒤에 쓰였기 때문이다. 이들이 특별히 훌륭했다는 서술은 없다. 오히려 반대다. 마가복음의 제자들은 끝까지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들로 그려진다. 비유를 듣고 따로 설명을 요구하고, 죽음에 관한 말을 들은 직후에 누가 더 높은 자리에 앉을지 다툰다. 폭풍이 이는 배 위에서는 겁에 질리고, 마지막에는 전부 달아난다. 그런데도 예수는 이들을 내보낸다. 마태복음 10장에는 그때 준 지침이 길게 실려 있다. 여비를 챙기지 말 것, 여벌 옷을 가지지 말 것, 머무는 집의 대접을 받을 것. 그리고 문을 열어 주지 않는 곳을 만났을 때 어떻게 할지까지 미리 말해 둔다. 성공이 보장된 파견이 아니었다는 뜻이다. 같은 장에는 가족과 갈라서게 될 것이라는 경고까지 들어 있다.
열둘의 명단은 신약에 네 번 나온다. 마가복음 3장, 마태복음 10장, 누가복음 6장, 그리고 사도행전 1장이다. 네 목록은 대체로 겹치지만 정확히 같지는 않다. 이 차이는 오래된 논의 거리이며, 대부분은 한 사람이 여러 이름으로 불린 결과로 설명되지만 전부가 그렇게 정리되지는 않는다. 가장 자주 거론되는 것이 다대오와 '야고보의 유다'다. 마가복음과 마태복음은 다대오라는 이름을 넣는다(사본에 따라 '렙배오'로 나오거나 두 이름이 함께 나오는 계열이 있다). 반면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은 그 자리에 '야고보의 유다'를 적는다. 전통적 설명은 한 사람이 두 이름을 가졌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 시기 유대인이 히브리·아람어 이름과 그리스식 이름을 함께 쓰는 일은 드물지 않았다. 서방 교회는 후대에 두 이름을 붙여 '유다 다대오'로 부르게 된다. 그러나 이 동일시는 본문이 명시한 것이 아니라 조정을 위한 추정이라는 반론이 있고, 열둘의 구성원이 실제로 일부 교체되었을 가능성이나 지역 공동체마다 기억이 달랐을 가능성을 제기하는 견해도 있다. 두 번째 시몬의 별칭도 비슷한 문제다. 마가와 마태는 그를 '가나나이오스'라고 적는다. 지명 가나나 가나안 민족과는 무관하고, '열심'을 뜻하는 아람어 어근의 음역으로 보는 것이 통설이다. 누가는 같은 뜻을 그리스어 '젤로테스'로 옮긴다. 즉 두 표기는 같은 말의 다른 처리다. 다만 이 별칭이 정치 조직 소속을 가리키는지는 논쟁이 있다. 조직화된 무력 저항 세력으로서의 열심당은 AD 66년 유대 전쟁기에 형태를 갖췄다는 견해가 유력하기 때문에, 예수 시대의 이 별칭은 당파명이 아니라 율법에 대한 열의나 기질을 뜻했을 수 있다. 부칭 문제도 있다. 바돌로매는 아람어 '바르 톨마이', 곧 톨마이의 아들이라는 뜻이다. 이름이 아니라 아버지를 밝히는 호칭이므로 다른 개인명이 따로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요한복음에만 나오는 나다나엘과 같은 사람이라는 추정이 오래 이어져 왔다. 요한복음의 나다나엘이 빌립의 소개로 합류하고, 공관복음 명단에서 바돌로매가 빌립 바로 뒤에 놓인다는 배열이 근거로 제시된다. 정황 근거일 뿐 확정된 것은 아니다. 마태 본인도 정리되지 않은 지점이다. 마가복음 2장은 세관에 앉아 있다가 부름받은 사람을 '알패오의 아들 레위'라고 적는데, 마태복음 9장은 같은 자리의 인물을 '마태'라고 적는다. 두 이름이 한 사람이라고 보는 것이 전통적 견해다. 그러나 마가복음의 열둘 명단에 레위라는 이름이 없다는 점을 들어 별개 인물로 보는 견해도 있다. 흥미로운 것은 네 명단 가운데 마태복음만 그 이름에 '세리'라는 직업을 붙여 둔다는 점이다. 다른 이름들도 대부분 별명이거나 번역어다. 베드로는 아람어 '케파'(바위)를 그리스어로 옮긴 '페트로스'에서 왔고, 원래 이름은 시몬이다. 도마는 아람어로 쌍둥이를 뜻하며, 요한복음은 그리스어 '디뒤모'를 나란히 적어 둔다. 야고보와 요한 형제에게는 '천둥의 아들들'이라는 별칭이 붙는데, 마가는 그 뜻을 밝히지만 왜 그렇게 불렸는지는 설명하지 않는다. 가룟 유다의 '가룟'에 대해서는 몇 가지 설이 경쟁한다. 히브리어 '이쉬 케리욧', 곧 유다 남부의 그리욧 마을 출신이라는 지명 설명이 가장 널리 받아들여진다. 이 설명이 맞다면 그는 갈릴리 출신이 아닌 유일한 구성원이 된다. 로마에 저항하던 단검 사용자를 뜻하는 라틴어 '시카리우스'와 연결하는 설도 있으나, 연대상 무리가 있다는 비판을 받는다.
결과
마지막 밤에 예수가 붙잡혀 갔어요. 그때 열두 명은 모두 도망쳤어요. 베드로는 예수를 모른다고 했어요. 그것도 세 번이나 그랬어요. 이야기가 여기서 끝났다면 아주 슬펐겠지요. 그런데 도망쳤던 사람들이 다시 모였어요. 그리고 예수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전했어요. 한 명이 빠져서 열한 명이 되었어요. 그래서 한 사람을 새로 뽑았어요. 열두 명이라는 수를 지키고 싶었거든요. 오늘 세계 곳곳에 교회가 있어요. 그 시작이 이 작은 무리예요. 대단한 사람들이 아니었어요. 겁도 많고 자주 틀리던 사람들이었어요.
마지막 주간에 이 조는 사실상 무너진다. 한 사람은 돈을 받고 예수가 있는 곳을 알려 주었고, 체포 현장에서 나머지는 흩어졌다. 앞장서던 베드로는 마당까지 따라갔다가, 자기는 그 사람을 모른다고 세 번 부인한다. 십자가 아래에 끝까지 남았다고 복음서가 이름을 적는 쪽은 대체로 여성들이다. 그래서 복음서만 놓고 보면 이 3년가량의 동행은 실패로 끝난 것처럼 읽힌다. 마가복음이 특히 그렇다. 이 책은 제자들의 실수를 다듬지 않고 그대로 남겨 둔다. 이야기가 다시 시작되는 자리는 사도행전이다. 흩어졌던 사람들이 예루살렘의 한 방에 다시 모여 있고, 인원은 열한 명이다. 그들이 가장 먼저 한 일 가운데 하나가 빈자리를 채우는 것이었다. 제비를 뽑아 맛디아라는 사람을 새로 세운다. 열둘이라는 숫자 자체가 그들에게 의미가 있었다는 뜻이다. 이후 이 무리에서 시작된 흐름은 지중해 전역으로 퍼진다. 다만 사도행전이 실제로 자세히 다루는 인물은 베드로와, 나중에 합류한 바울 정도다. 나머지 사람들이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에 대한 신약의 기록은 거의 없다. 오늘날 전해지는 각 사도의 선교지와 순교 이야기는 대부분 2세기 이후에 형성된 전승이며, 사료로서의 신뢰도는 항목마다 다르게 평가된다. 다음 이야기에서 이 사람들은 산비탈에 앉아 긴 가르침을 듣게 된다.
'제자'와 '사도'는 같은 말이 아니다. 제자(그리스어 마테테스)는 배우며 따라다니는 사람을 뜻하고, 사도(아포스톨로스)는 보내진 사절을 뜻한다. 앞의 말은 훨씬 넓은 범위를 가리켰다. 누가복음 8장은 예수 일행에 여성 여러 명이 동행하며 재정을 지원했다고 적고, 같은 책 10장에는 열둘 바깥에서 70명(사본에 따라 72명)이 파견되는 장면이 나온다. 열둘은 따르던 전체가 아니라 그 안의 핵심 조였다. 마가복음 3장에는 열둘을 세우면서 '사도라 이름 붙였다'는 어구가 나오는데, 이 어구가 시내 사본과 바티칸 사본 계열에는 있고 다른 계열에는 없다. 후대의 삽입으로 보는 견해와 원문으로 보는 견해가 갈린다. 어느 쪽이든, 이 호칭을 가장 즐겨 쓰는 것은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이다. 열둘이라는 숫자는 우연으로 읽히지 않는다. 이스라엘은 전통적으로 열두 지파로 구성된 백성이었고, 그 가운데 상당수는 앗수르의 침공 이후 사실상 사라진 상태였다. 마태복음 19장에는 열둘이 열두 지파를 심판하는 자리에 앉게 되리라는 말이 실려 있다. 이 때문에 다수의 연구자는 열둘의 선발을 '흩어진 이스라엘의 재구성'을 상징하는 행위로 읽는다. 사도행전에서 유다의 자리를 굳이 다시 채운 것도 같은 맥락에서 설명된다. 숫자가 채워져야 상징이 유지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 이후에는 사도가 죽어도 결원을 보충하지 않는다. 역사성 문제도 짚을 만하다. 예수 주변에 열두 명으로 불린 집단이 실제로 있었다고 보는 데는 학계 다수가 동의하는 편인데, 근거로 두 가지가 자주 제시된다. 첫째는 이른바 당혹성 기준이다. 자기 조직을 미화하려는 집단이라면, 창립 구성원 중 한 명이 지도자를 팔아넘겼다는 사실을 지어내 넣을 이유가 없다. 둘째는 고린도전서 15장이다. 바울은 자신이 전해 받았다고 밝히며 '열둘'이라는 표현을 이미 굳어진 정형구처럼 인용하는데, 이 편지는 복음서보다 앞서 쓰였다. 반대편에서는 네 명단이 서로 어긋난다는 점을 들어, 집단의 존재는 인정하더라도 개별 구성원에 대한 기억은 이른 시기부터 흐려졌다고 본다. 마지막으로, 열둘이 맡았던 자리가 후대에 이어지는가 하는 문제가 있다. 천주교와 정교회는 사도의 직무가 안수(직분을 맡길 때 머리에 손을 얹는 의식)를 통해 주교들에게 계속 전해진다고 본다. 이를 사도 계승이라고 부른다. 개신교 다수는 사도의 자리를 예수를 직접 목격한 세대에 한정된 것으로 보고, 이어지는 것은 직위가 아니라 그들이 남긴 가르침이라고 이해한다. 양쪽 모두 열둘이 교회의 출발점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으나, 그 출발점이 제도로 이어졌는지에 대한 판단이 갈린다.
잠깐, 이건 알고 가자
- 갈릴리
- 예루살렘에서 북쪽으로 100킬로미터 넘게 떨어진 지역. 큰 담수호를 끼고 어업과 농사로 살던 마을들이 있었다. 종교와 정치의 중심지에서 멀었고, 말투로도 출신이 드러났다고 전해진다. 이야기의 출발점이 수도가 아니라 변두리라는 점은 복음서를 읽을 때 자주 언급되는 특징이다.
- 세리
- 로마 체제를 대신해 통행세와 관세 등을 걷던 사람. 계약을 따내 정해진 액수를 채우고 초과분을 챙기는 구조여서 착취가 흔했다. 그래서 유대 사회에서는 돈보다 평판이 문제였다. 동족에게서 점령자를 위한 돈을 받아 내는 자리로 여겨졌다.
- 열심 있는 자
- 두 번째 시몬에게 붙은 별칭. 로마 지배에 무력으로 맞서려던 흐름과 같은 계열의 말이다. 다만 조직화된 무력 저항 세력이 형태를 갖춘 시기는 예수 이후로 보는 견해가 유력해서, 이 별칭이 소속을 뜻하는지 성향을 뜻하는지는 확정되지 않았다.
- 사도
- 그리스어 '아포스톨로스'에서 온 말로, 보내진 사절이라는 뜻이다. 배우며 따라다니는 사람을 가리키는 '제자'보다 좁은 개념이다. 예수를 따르던 사람은 훨씬 많았고, 그 가운데 특정 임무를 맡아 파견된 열두 명을 사도라고 부른다.
- 열둘이라는 숫자
- 이스라엘은 전통적으로 열두 지파로 이루어진 백성이었다. 그래서 이 숫자는 단순한 인원수가 아니라 '온 이스라엘'을 가리키는 기호로 읽힌다. 나중에 한 자리가 비었을 때 곧바로 새 사람을 세운 것도 이 상징 때문으로 설명된다.
- 가룟 유다
- 명단에서 늘 마지막에 오고, 소개될 때마다 나중에 예수를 넘긴 사람이라는 설명이 따라붙는다. 복음서가 그 일이 벌어진 뒤에 쓰였기 때문이다. '가룟'은 유다 남부 그리욧 마을 출신을 뜻하는 말로 보는 설명이 가장 널리 받아들여진다.
흔한 오해
❌열두 제자는 신앙이 남달리 깊고 능력이 검증된 사람들이었다.
⭕복음서, 특히 마가복음은 이들을 미화하지 않는다. 설명을 듣고도 못 알아듣고, 죽음에 관한 말이 나온 직후에 서열을 다투고, 마지막에는 전부 달아나는 사람들로 그려진다. 선발 기준이 자질이었다고 볼 근거는 본문에 없다.
❌예수를 따른 사람은 열두 명뿐이었다.
⭕훨씬 넓은 무리가 있었다. 누가복음은 재정을 지원하며 동행한 여성들을 이름과 함께 적고, 열둘 바깥에서 70명(사본에 따라 72명)이 파견되는 장면도 전한다. 열둘은 전체가 아니라 그 안의 핵심 조에 가깝다.
❌복음서마다 제자 명단이 다른 것은 성경에 오류가 있다는 증거다.
⭕차이의 대부분은 한 사람이 여러 이름으로 불린 결과로 설명된다. 이 시기 유대인이 아람어 이름과 그리스식 이름을 함께 쓰거나 별명·부칭으로 불리는 일은 흔했다. 다만 다대오와 '야고보의 유다'처럼 모든 차이가 확실히 해소된 것은 아니며, 이를 지역별로 전승이 갈린 흔적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제자'와 '사도'는 같은 말이다.
⭕제자는 배우며 따라다니는 사람을 뜻하는 넓은 말이고, 사도는 특정 임무를 맡아 보내진 사람을 뜻하는 좁은 말이다. 열둘은 두 가지에 모두 해당하지만, 제자였던 사람이 모두 사도로 불린 것은 아니다.
❌열두 사도가 세계 각지로 흩어져 활동한 경로는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신약이 자세히 다루는 인물은 베드로와, 열둘에 속하지 않았던 바울 정도다. 나머지 사람들의 이후 행적에 대한 신약의 기록은 거의 없다. 널리 알려진 선교지와 순교 이야기는 대부분 2세기 이후에 형성된 전승이며, 항목마다 사료로서의 평가가 다르다.
그래서 이게 무슨 뜻일까
예수는 열두 명을 뽑을 때 제일 잘하는 사람을 찾지 않았어요. 서로 미워하던 사람들을 한 조에 넣었어요. 자주 틀리는 사람들도 그냥 두었어요. 먼저 한 일은 그냥 곁에 두는 것이었어요. 같이 밥 먹고 같이 걸어 다녔어요. 여러분이라면 어떤 사람을 옆에 둘까요? 나랑 생각이 아주 다른 사람도 옆에 둘 수 있을까요?
이 장면을 읽을 때 흔히 던지는 질문은 '왜 하필 이 사람들인가'다. 본문은 그 답을 주지 않는다. 다만 선발 순서가 눈에 띈다. 능력을 확인하고 임무를 맡긴 것이 아니라, 먼저 곁에 두고 그다음에 내보낸다. 명단의 구성도 그냥 지나치기 어렵다. 점령국의 세금을 걷던 사람과 그 체제에 맞서려던 사람이 같은 조에 들어 있다. 오늘로 옮기면 정치적으로 정반대편에 선 두 사람을 같은 팀에 넣은 셈이다. 본문은 둘이 어떻게 지냈는지 한마디도 적지 않는다. 갈등이 없었다고 말하지도, 있었다고 말하지도 않는다. 결말도 깔끔하지 않다. 3년가량 함께 지낸 사람들이 결정적인 밤에 전부 흩어졌고, 그 사실을 복음서는 감추지 않는다. 그런데 이야기가 이어지는 지점도 바로 거기다. 다시 모인 것은 다른 사람들이 아니라 도망쳤던 그 사람들이었다. 남는 질문은 이렇다. 어떤 사람을 곁에 두느냐가 그 사람이 무엇을 하려는지를 보여 준다면, 이 명단은 무엇을 말하는 걸까. 그리고 한 번 크게 실패한 자리로 다시 돌아오는 일은 무엇 때문에 가능해지는 걸까.
열둘의 선발을 읽는 방식은 크게 세 갈래로 나뉜다. 첫째는 상징 독법이다. 열두 지파로 구성되었던 이스라엘이 오랜 분열과 유배를 거치며 사실상 해체된 상태였다는 배경 위에서, 열둘을 세우는 행위 자체를 '흩어진 백성을 다시 모으겠다'는 선언으로 읽는다. 마태복음 19장의 열두 보좌 언급과 사도행전 1장의 결원 보충이 근거로 제시된다. 이 독법에서 열둘은 조직 인선이 아니라 하나의 표지다. 둘째는 공동체 형성 독법이다. 마가복음이 밝힌 두 목적 가운데 '함께 있게 하는 것'이 앞에 놓인다는 점에 주목한다. 이 독법은 열둘을 훈련생 집단으로 보고, 이 이야기의 초점이 무엇을 성취했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만들어졌는가에 있다고 본다. 마가복음의 제자들이 끝까지 어리석게 그려지는 것도, 독자가 자신을 그 자리에 대입하도록 만드는 장치로 설명된다. 셋째는 사회사적 독법이다. 명단의 직업과 정치적 성향이 서로 충돌한다는 점, 구성원 대부분이 갈릴리라는 변방 출신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이 시각에서 열둘은 기존 종교 권력과 무관한 자리에서 만들어진 대안 집단이며, 그 자체가 당시 체제에 대한 논평으로 기능한다. 한편 이 이야기에는 오래된 신학 논쟁이 하나 붙어 있다. 배신할 사람이 처음부터 명단에 들어 있었다는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의 문제다. 이는 아래 '다르게 보는 시각'에서 두 입장으로 정리한다. 마지막으로 주의할 점이 하나 있다. 이 본문은 지도자 선발이나 조직 운영의 모범 사례로 자주 인용되지만, 본문 자체는 선발 기준을 밝히지 않는다. 기준을 재구성해 제시하는 해석은 대개 본문이 말하지 않은 자리를 채우는 작업이며, 그 사실을 밝히지 않은 채 제시될 때 오해가 생긴다.
배신할 사람이 처음부터 열둘 안에 있었다는 사실을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입장들이 있다.
미리 정해진 일이 이루어진 것으로 보는 입장
유다가 명단에 포함된 것은 실수나 오판이 아니라, 앞서 예고된 일이 그대로 진행된 것으로 읽는다. 하나님의 계획 안에서 이미 정해진 몫이 있었다고 본다.
- 요한복음이 예수가 처음부터 넘길 사람을 알고 있었다고 서술한다는 점
- 체포 이후 장면들에서 '기록된 대로 되었다'는 취지의 설명이 반복된다는 점
- 사도행전 1장이 유다의 이탈을 예언의 성취로 정리한다는 점
예정을 강조하는 전통에서 주로 제시된다. 개신교 개혁주의 계열이 대표적이다
유다 자신의 선택이 실재했다고 보는 입장
복음서가 유다의 동기를 구체적으로 서술한다는 점에 주목해, 결과가 미리 고정되어 있었다기보다 돌이킬 기회가 열려 있는 상태에서 그가 선택했다고 읽는다.
- 요한복음이 그의 금전 문제를 따로 언급한다는 점
- 그가 대제사장들과 액수를 흥정하는 과정이 서술된다는 점
- 마태복음이 그가 나중에 후회하며 돈을 돌려주려 했다고 적는다는 점
인간의 자유로운 응답을 강조하는 전통에서 주로 제시된다. 아르미니우스주의 계열 개신교와 천주교·정교회 신학에 이런 서술이 널리 나타난다
공통점 두 입장 모두 유다의 행동을 그 자신의 책임으로 본다는 점, 그리고 그가 처음부터 열둘 안에 있었다는 사실을 축소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일치한다. 어느 쪽도 그를 단순한 도구로만 설명하지는 않는다.
아직 논쟁 중인 부분 하나님의 계획과 사람의 선택이 어떻게 맞물리는지 본문은 설명하지 않는다. 이 물음은 예정을 둘러싼 더 큰 논쟁의 일부이며, 어느 공의회나 총회에서도 한쪽으로 정리된 적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