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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천

승천은 부활한 예수가 40일 동안 제자들과 함께 지낸 뒤, 그들이 보는 앞에서 하늘로 올라가 하나님 우편의 자리에 앉았다고 보는 기독교의 가르침이다.

일상 비유

임무를 마친 사절이나 왕이 본국으로 돌아가 통치의 자리에 앉는 장면에 흔히 비유된다.

비유의 한계 이 비유는 예수가 자리를 비운 채 멀리서만 다스리는 것처럼 들리게 할 수 있다. 전통 교리는 승천 이후에도 그가 [[개념:성령]]을 통해 교회와 계속 함께한다고 본다. 또한 '하늘로 올라감'이라는 표현을 실제 공간 이동으로 문자 그대로 읽을지, 시공간에 매이지 않는 다른 존재 방식으로 들어감을 나타내는 언어로 읽을지는 해석이 갈린다.

예수님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뒤, 40일 동안 제자들과 함께 지냈어요. 함께 밥도 먹고 이야기도 나눴어요.

그러던 어느 날, 예수님은 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하늘로 올라갔어요. 구름이 예수님을 가려서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되었어요. 이 일을 '승천'이라고 불러요.

기독교는 예수님이 지금 하나님과 함께 계시면서 세상을 다스리고 계신다고 믿어요. 그리고 언젠가 다시 오실 거라고도 믿어요.

승천은 부활한 예수가 40일 동안 제자들과 함께 지낸 뒤, 그들이 보는 앞에서 하늘로 올라가 하나님 우편의 자리에 앉았다고 보는 기독교의 가르침이다. 사도행전 1장 9~11절은 예수가 제자들을 축복하는 중에 하늘로 들려 올라갔고, 구름이 그를 가려 더는 보이지 않게 되었다고 전한다. 이때 나타난 두 사람이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라고 말했다고 전해지는데, 이는 재림재림재림은 예수가 세상 역사의 끝에 다시 이 땅에 온다고 보는 기독교의 가르침이다.에 대한 신약의 가장 이른 언급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이 사건은 흔히 임무를 마친 사절이나 왕이 본국으로 돌아가 통치의 자리에 앉는 장면에 비유된다. 다만 이 비유는 예수가 자리를 비운 채 멀리서만 다스리는 것처럼 들리게 할 수 있는데, 전통 교리는 승천 이후에도 그가 성령을 통해 교회와 계속 함께한다고 본다. '하늘에 오르다'는 표현을 실제 공간 이동으로 문자 그대로 읽을지, 시공간에 매이지 않는 존재 방식으로 들어감을 나타내는 언어로 읽을지도 해석이 갈리는 지점이다.

승천이라는 사건 자체는 개신교·천주교·정교회 모두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조와 사도신경을 통해 공통으로 고백한다. 다만 이 사건이 남긴 신학적 질문, 곧 '승천한 그리스도의 몸이 지금 어디에서 어떻게 함께하는가'를 두고는 종교개혁기 이후 개신교 안에서도 입장이 갈렸다. 루터교는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이 밀접히 결합되어 그의 몸도 여러 곳에 함께할 수 있다고 보아, 성찬에서 그리스도의 몸이 실제로 함께한다고 이해한다. 반면 개혁주의(칼뱅주의) 전통은 그리스도의 인성이 하늘의 한 자리에 머문다고 보아, 성찬에서는 성령을 통해 신자가 하늘의 그리스도와 영적으로 연합한다고 설명한다.

흔한 오해 하나는 승천이 예수가 우주 공간 저 너머로 날아간 사건이라는 생각이다. 본문은 위로 들려 올려졌다는 것과 구름이 가렸다는 것만 적을 뿐, 물리적으로 어디에 도착했는지는 말하지 않는다.

승천을 전하는 신약의 주요 자료는 누가복음 24장 5053절과 사도행전 1장 111절 두 곳이며, 전통적으로 같은 저자(누가)의 두 권짜리 저작으로 여겨진다. 흥미로운 점은 요한복음과 마태복음이 이 사건을 별도의 장면으로 서술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요한복음은 부활한 예수가 마리아에게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아니하였다"고 말하는 구절(요 20:17)만 남기고, 십자가에서 '들리는 것'과 부활, 아버지께로 올라감을 '높이 들림'(휩소오)이라는 같은 동사 계열로 함께 묶어 서술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 때문에 요한복음 신학에서는 십자가·부활·승천이 시간상 뚜렷이 구분되는 별개의 사건이라기보다 하나로 이어진 '높여짐'의 여러 국면으로 다뤄진다는 분석이 많다. 이런 문헌별 서술 차이가 승천을 하나의 통일된 시간표로 읽기보다 신학적 강조점이 다른 여러 증언으로 함께 읽어야 함을 보여 준다는 지적도 있다. (이 사건의 본문 문제와 해석사는 스토리 '승천' 항목에서 더 자세히 다룬다.)

승천 신학이 교회사에서 남긴 가장 오래 지속된 논쟁은 '승천한 그리스도의 인성이 지금 어디에, 어떻게 있는가' 하는 문제다. 이는 특히 16세기 성찬 논쟁에서 첨예해졌다. 마르틴 루터는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이 성육신을 통해 밀접히 결합되었으므로(이른바 '속성의 교류', communicatio idiomatum), 신성의 편재성(어디에나 있을 수 있는 성질)이 인성에도 전달되어 그리스도의 몸이 여러 곳에 동시에 함께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는 성찬에서 빵과 포도주 '안에, 함께, 아래'(in, with, under) 그리스도의 몸이 실제로 임재한다는 루터파의 '공재설'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되었다. 반면 장 칼뱅과 개혁주의 전통은 승천이 그리스도의 인간적인 몸을 실제로 하늘의 한 특정한 자리로 옮긴 사건이라는 점을 중시해, 몸으로서는 편재할 수 없다고 보았다. 이 입장은 이후 '그리스도의 신성은 인성에 갇히지 않고 인성 밖에서도(extra) 활동한다'는 뜻에서 '엑스트라 칼비니스티쿰'(extra calvinisticum)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고, 개혁주의는 성찬에서 신자가 성령을 통해 하늘에 계신 그리스도와 영적으로 연합한다고 설명한다. 1529년 마르부르크 회담에서 루터와 츠빙글리 등이 이 문제로 합의에 이르지 못한 것은 이후 루터파와 개혁파가 별도의 교단 전통으로 갈라지는 데 영향을 준 사건으로 꼽힌다.

승천 장면에서 반복되는 '오른편에 앉다'는 표현(엡 1:20, 히 1:3 등)은 시편 110편 1절의 대관식 언어에 뿌리를 둔다. 고대 왕실에서 왕의 오른쪽 자리는 실권을 나눠 받은 최측근이나 공동 통치자가 앉는 자리였으므로, 이 표현은 해부학적 위치가 아니라 그리스도가 하나님과 함께 통치와 권위를 나눠 받았다는 것을 나타내는 정치적 관용구로 이해하는 데 학자들 사이에 큰 이견이 없다. 신약 서신들은 이 '자리'를 그리스도가 교회를 위해 중보하는 근거로도 설명한다(롬 8:34, 히 7:25). 이런 점에서 승천은 단지 예수가 자리를 비운 사건이 아니라, 그가 지금도 하나님과 교회 사이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를 규정하는 신학적 토대로 다뤄진다.

관련 성구

행 1:9-11눅 24:50-51엡 1:20빌 2:9-11

역사적 형성 과정

  1. 85누가복음·사도행전의 기록누가복음 24장과 사도행전 1장이 이 사건을 전하는 신약의 주요 자료다. 두 책 모두 같은 저자(전통적으로 누가)의 것으로 여겨지며, 사도행전은 부활과 승천 사이에 40일이 있었다고 명시한다.
  2. 200옛 로마 신조2~3세기 세례 문답을 위해 쓰이던 초기 신앙고백문에 이미 '하늘에 오르사'에 해당하는 짧은 고백이 담겨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사도신경으로 발전하는 흐름의 초기 형태다.
  3. 381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조'하늘에 오르시어 성부 우편에 앉으시고'라는 구절을 교회의 공식 신조에 명시해, 승천을 그리스도의 지상 사역을 마무리하고 다스림을 시작하는 사건으로 확정했다.
  4. 1529마르부르크 회담(성찬 논쟁)종교개혁자 루터와 츠빙글리를 비롯한 신학자들은 승천한 그리스도의 몸이 성찬에서 어떤 방식으로 함께하는지를 두고 논쟁했다. 이는 이후 루터파와 개혁파(칼뱅주의) 사이 오랜 신학적 차이로 이어졌다.

교파별 차이

  • 개신교·천주교·정교회승천을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조와 사도신경을 통해 공통으로 고백하며, 그리스도가 이제 하나님과 함께하는 통치와 중보의 자리에 있다고 본다.
  • 루터교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이 밀접히 결합되어 있어(속성의 교류), 승천한 그리스도의 인성도 여러 곳에 동시에 함께할 수 있다고 본다. 이는 성찬 때 그리스도의 몸이 실제로 함께한다는 루터파의 성찬 이해와 연결된다.
  • 개혁주의(칼뱅주의)승천한 그리스도의 인성은 하늘의 한 자리에 있으며, 땅과 하늘 어디에나 동시에 있을 수는 없다고 본다. 성찬에서는 성령을 통해 신자가 하늘에 계신 그리스도와 영적으로 연합한다고 설명한다(이른바 '엑스트라 칼비니스티쿰').

흔한 오해

승천은 예수가 로켓처럼 우주 공간 저 너머로 날아간 사건이다.

본문은 '위로 들려 올려졌다'와 '구름이 가렸다'고만 적을 뿐, 물리적으로 어디를 지나 어디에 도착했는지는 말하지 않는다. 이 표현을 고대의 우주관 언어로 하나님의 임재에 들어감을 나타낸 것으로 보는 해석과, 실제 공간 이동으로 보는 해석이 함께 있다.

승천과 부활은 같은 사건이다.

사도행전 1장은 부활과 승천 사이에 40일의 기간이 있었다고 명시한다. 다만 누가복음 24장은 이 사건들을 별다른 시간 표시 없이 이어 서술해 하루 만에 일어난 일처럼 읽히기도 하는데, 이를 문학적 압축 서술로 보는 견해가 많다.

관련 개념

부활부활부활은 죽었던 사람이 죽지 않는 몸으로 다시 살아나는 것을 뜻하며, 기독교는 예수가 죽은 지 사흘 만에 부활했고 그를 믿는 사람들도 훗날 그렇게 다시 살아날 것이라 믿는다.재림재림재림은 예수가 세상 역사의 끝에 다시 이 땅에 온다고 보는 기독교의 가르침이다.삼위일체삼위일체하나님은 한 분이지만, 아버지·아들·성령이라는 세 분으로 계신다고 보는 기독교의 핵심 가르침이다.위격적 연합위격적 연합위격적 연합은 예수가 완전한 하나님이면서 동시에 완전한 사람이라고 보는 기독교의 가르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