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비즈

재림

재림은 예수가 세상 역사의 끝에 다시 이 땅에 온다고 보는 기독교의 가르침이다.

일상 비유

여행을 떠난 주인이 언제 돌아올지 모른 채 종들이 깨어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는 예수 자신의 비유(마 24~25장)가 흔히 함께 언급된다.

비유의 한계 이 비유는 재림을 언제 닥칠지 모르는 시험처럼만 느껴지게 할 수 있다. 그러나 신약은 재림을 심판의 순간인 동시에, 고통받는 이들에게는 회복과 완성이 이루어지는 소망의 순간으로도 함께 그린다. 또한 이 비유가 실제로 강조하는 것은 정확한 날짜를 알아내는 것이 아니라 깨어 있는 삶의 태도인데, 비유만 떼어 놓고 보면 오히려 날짜 계산에 대한 관심을 부추기는 것처럼 오해되기 쉽다.

기독교는 예수님이 하늘로 올라가신 뒤, 언젠가 다시 이 세상에 오실 거라고 믿어요. 이걸 '재림'이라고 불러요.

예수님은 그날이 언제인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말씀하셨어요. 그래서 언제 오실지 미리 알아내려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그런 예측은 지금까지 다 틀렸어요.

예수님은 여행 떠난 주인이 언제 돌아올지 모른 채 종들이 준비하고 기다리는 이야기를 들려준 적이 있어요. 재림도 그렇게, 정확한 날짜를 알아내려 하기보다 늘 준비된 마음으로 살라는 뜻으로 이해돼요.

재림은 하늘로 올라간 예수가 세상 역사의 끝에 다시 이 땅에 온다고 보는 기독교의 가르침이다. 사도행전 1장 11절은 승천 직후 두 사람이 제자들에게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고 말했다고 전한다. 요한계시록의 마지막 문장은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라는 짧은 기도로 끝나는데(계 22:20), 이는 초대교회가 재림을 얼마나 간절히 기다렸는지를 보여 주는 표현으로 자주 인용된다.

재림이 언제 일어나는지에 대해 예수 자신은 "그날과 그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신다"고 말했다고 전해진다(마 24:36). 그럼에도 역사 속에서 특정 날짜를 계산해 재림을 예측하려는 시도가 여러 차례 있었지만(19세기 밀러파의 1844년 예측이 대표적이다), 모두 빗나갔다. 예수는 대신 여행 떠난 주인을 준비된 마음으로 기다리는 종의 비유(마 24~25장)를 통해, 날짜 계산이 아니라 깨어 있는 삶의 태도를 강조했다고 전해진다.

성도들이 죽음 이후 재림을 어떻게 맞이하는지도 초기 교회의 중요한 관심사였다. 데살로니가전서 4장 13~18절에서 바울은, 재림 전에 세상을 떠난 신자들이 손해를 보는 것은 아닌지 걱정하던 교인들에게 산 자와 죽은 자가 재림 때 함께 그리스도를 만나게 될 것이라며 위로한다. 이 대목의 '끌어올려짐'이라는 표현에서 훗날 '휴거'라는 말이 파생되었는데, 이를 재림과 시간상 분리된 별도의 사건으로 볼지, 재림이라는 하나의 사건을 표현하는 이미지로 볼지는 교단마다 견해가 다르다.

재림 자체는 개신교·천주교·정교회 모두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조를 통해 공통으로 고백한다. 다만 요한계시록 20장의 '천 년'을 어떻게 이해할지는 오랫동안 이어진 논쟁거리다(자세한 내용은 아래 '보는 관점' 참고). 이 논쟁과 별개로,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는 임박한 재림에 대한 대비를 특히 강조해 왔고, 여호와의 증인은 재림이 1914년 하늘에서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이미 시작되었다는 독자적인 해석을 갖고 있어 전통적 교단 대다수의 이해와는 차이가 있다.

재림(그리스어 파루시아, parousia)이라는 단어 자체는 원래 신적 존재의 도래만이 아니라 로마 황제나 총독의 공식 방문을 가리키는 정치적 용어로도 널리 쓰이고 있었다. 데살로니가전서 4장 17절이 신자들이 그리스도를 '공중에서 만난다'고 서술할 때 쓰는 그리스어 '아판테시스'(apantēsis) 역시, 고대 도시에서 방문하는 왕이나 고관을 시민들이 성문 밖으로 나가 마중하고 함께 도시 안으로 돌아오던 공식 의전을 가리키는 전문 용어였다. 이런 언어적 배경 때문에, 이 대목을 신자들이 하늘로 영원히 떠나가는 이미지가 아니라 왕을 영접해 함께 돌아오는 도착 장면에 가깝게 읽는 해석이 있다. 이 해석에 따르면 재림의 목적지는 하늘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이 땅이다.

재림을 둘러싼 신학 논쟁의 가장 큰 축은 요한계시록 20장의 '천 년'을 어떻게 읽느냐다. 이 표현이 신약 전체에서 이 자리에만 등장한다는 점도 논쟁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다. 전천년설은 그리스도가 재림한 뒤 문자 그대로 천 년 동안 땅에서 통치한다고 보며, 그 후 최후 심판이 있다고 이해한다. 이 안에서도 19세기 이후 정리된 세대주의 전천년설(재림에 앞서 신자들이 먼저 들려 올라간다는 '휴거'를 환난 전·중·후 가운데 언제로 볼 것인가를 두고 다시 세부적으로 나뉜다)과, 그런 별도의 이전 단계를 상정하지 않는 역사적 전천년설이 갈린다. 후천년설은 복음의 확산으로 세상이 점차 그리스도의 통치 아래 놓이는 상징적 황금기를 거친 뒤 재림이 온다고 보는데, 이 견해는 특히 19세기 서구의 사회적 진보에 대한 낙관주의와 결합해 확산되었다가,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거치며 대중적 지지가 크게 줄었다는 평가가 많다. 무천년설은 아우구스티누스 이래의 오랜 전통을 이어받아 '천 년'을 그리스도의 초림부터 재림까지 이어지는 교회 시대 전체를 상징하는 표현으로 읽으며, 로마가톨릭·정교회와 다수의 개혁파·루터파 신학이 이 입장에 가깝게 서 있다.

20세기 이후 신약학에서는 예수와 초대교회가 재림이 매우 임박했다고 기대했는지, 그리고 그 기대가 빗나갔다면 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도 활발했다. 일부 학자(알베르트 슈바이처 등)는 예수 자신이 자기 생애 안에 종말이 올 것으로 기대했으나 그 기대가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보는 '지연된 종말론' 해석을 제시했다. 이에 맞서 다른 학자들은, 신약 전체가 이미 결정적인 일이 그리스도의 초림으로 일어났지만 완성은 아직 오지 않았다는 '이미와 아직'(already and not yet)의 긴장을 처음부터 의도적으로 담고 있었다고 설명하며, 재림의 '지연'을 예언의 실패가 아니라 신학적으로 예견된 긴장으로 이해한다. 베드로후서 3장 8~9절이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며 재림이 더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참고 기다리시는 것이라고 설명하는 대목도 이런 신학적 틀 안에서 읽힌다.

관련 성구

행 1:11마 24:36살전 4:16-17계 22:20

역사적 형성 과정

  1. 30예수의 감람산 강화복음서는 예수가 예루살렘 멸망과 자신의 다시 옴을 함께 언급하며 가르쳤다고 전한다(마 24장 등). 이 가르침은 이후 재림 신학의 가장 이른 뿌리로 다뤄진다.
  2. 51데살로니가전서바울은 재림 전에 세상을 떠난 신자들이 손해를 보는 것은 아닌지 걱정하던 초대교회에, 산 자와 죽은 자가 재림 때 함께 그리스도를 만나게 될 것이라 답하며 재림 신학을 초기 형태로 정리했다(살전 4:13-18).
  3. 381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조'그가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영광 중에 다시 오시리라'는 구절을 신조에 명시해, 재림을 교회의 공식 신앙고백에 포함했다.
  4. 426아우구스티누스의 '신국론'아우구스티누스는 요한계시록 20장의 '천 년'을 문자적 기간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초림부터 재림까지 이어지는 교회 시대 전체를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해, 이후 무천년설 전통의 뿌리가 되었다.
  5. 1830세대주의 전천년설의 체계화19세기 존 넬슨 다비를 중심으로, 재림에 앞서 신자들이 먼저 하늘로 들려 올라간다는 이른바 '휴거'를 별도 단계로 두는 세대주의 전천년설이 체계화되어 이후 널리 퍼졌다.

교파별 차이

  • 개신교·천주교·정교회그리스도가 다시 온다는 것 자체는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조를 통해 공통으로 고백한다. 다만 그 방식과 시기, '천년왕국'을 어떻게 이해할지는 교단마다 다르다(아래 '보는 관점' 참고).
  •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교단의 이름 자체가 재림에 대한 강조를 담고 있으며, 임박한 재림에 대비한 삶을 특히 강조하는 전통을 이어 왔다.
  • 여호와의 증인그리스도의 재림이 1914년에 하늘에서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이미 시작되었다고 보는 독자적인 해석을 갖고 있다. 이는 전통적 교단 대다수의 이해와는 다르다.

그리스도의 재림과 요한계시록 20장의 '천 년'을 어떻게 이해하는가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입장들이 있다.

전천년설(Premillennialism)

그리스도가 먼저 재림한 뒤 문자 그대로 천 년 동안 땅에서 통치하고, 그 후 마지막 심판이 온다고 본다. 특히 세대주의 전천년설은 재림에 앞서 신자들이 먼저 하늘로 들려 올라가는 '휴거'를 별도 단계로 둔다.

  • 요한계시록 20장의 '천 년'을 문자적 기간으로 읽는 해석
  • 데살로니가전서 4장 16~17절의 '끌어올려짐'을 별도 사건으로 보는 독법
  • 19세기 존 넬슨 다비 이후 세대주의 신학의 체계화

다수의 복음주의·오순절·근본주의 교단, 세대주의를 따르는 다수의 미국 개신교회

후천년설(Postmillennialism)

복음의 확산으로 세상이 점차 그리스도의 통치 아래 놓이는 상징적인 황금기('천 년')를 거친 뒤에 그리스도가 재림한다고 본다.

  • 누룩이나 겨자씨처럼 하나님 나라가 점진적으로 퍼진다고 말하는 예수의 비유(마 13장)
  • 복음 전파를 통한 세상의 점진적 변화를 강조하는 신학적 낙관주의

17~19세기 일부 개혁주의 신학자, 오늘날 일부 재건주의 계열 개신교

무천년설(Amillennialism)

'천 년'을 문자적 기간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초림부터 재림까지 이어지는 교회 시대 전체를 상징하는 표현으로 읽는다.

  • 아우구스티누스 이래의 오랜 해석 전통
  • 요한계시록의 상징적·반복적 서술 구조에 대한 문학적 분석
  • '첫째 부활'(계 20:5-6)을 육체의 부활이 아니라 영적 상태로 보는 해석

로마가톨릭, 정교회, 다수의 개혁파·루터파 신학

공통점 세 입장 모두 그리스도가 실제로 다시 온다는 것, 그리고 그때 하나님 나라가 최종적으로 완성된다는 점에는 동의한다.

아직 논쟁 중인 부분 어느 해석이 옳은지, 그리고 '휴거'를 재림과 어떻게 시간상 배치할지는 지금도 교단과 신학자 사이에서 결론이 나지 않았다. 이 앱은 어느 쪽이 옳다고 판단하지 않는다.

흔한 오해

성경은 재림이 일어날 정확한 날짜를 알려 준다.

마태복음 24장 36절은 그날과 그때는 아버지 외에는 아무도 모른다고 명시적으로 말한다. 역사적으로 특정 날짜를 계산해 재림을 예측한 여러 시도(19세기 밀러파의 1844년 예측 등)가 있었지만 모두 빗나갔다.

'휴거'는 성경에 확정된 하나의 교리로 명시되어 있고 모든 교단이 같은 방식으로 받아들인다.

휴거(신자들이 공중으로 들려 올라간다는 개념)는 데살로니가전서 4장 등을 근거로 하지만, 이를 재림과 시간상 분리된 별도 사건으로 볼지, 재림과 하나로 묶인 사건의 한 표현으로 볼지는 교단과 신학자 사이에서 견해가 갈린다.

관련 개념

부활부활부활은 죽었던 사람이 죽지 않는 몸으로 다시 살아나는 것을 뜻하며, 기독교는 예수가 죽은 지 사흘 만에 부활했고 그를 믿는 사람들도 훗날 그렇게 다시 살아날 것이라 믿는다.승천승천승천은 부활한 예수가 40일 동안 제자들과 함께 지낸 뒤, 그들이 보는 앞에서 하늘로 올라가 하나님 우편의 자리에 앉았다고 보는 기독교의 가르침이다.니케아 신경니케아 신경니케아 신경은 325년과 381년 두 차례 공의회를 거쳐 정리된, 기독교 신앙의 핵심 내용을 요약한 공식 고백문이다.성령성령성령은 기독교에서 하나님이 지금도 사람과 세상 속에서 직접 활동하는 방식을 가리켜 부르는 이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