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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신경

사도신경은 2~4세기 무렵 서방 교회의 세례 실천 속에서 점차 정리되어, 오늘날까지 예배 중에 쓰이는 짧은 신앙고백문이다.

일상 비유

흔히 새로 가입하는 회원이 함께 외우는 서약문이나, 국기에 대한 맹세처럼 공동체에 들어갈 때 확인하는 짧은 다짐 글에 비유된다.

비유의 한계 이 비유는 사도신경을 한 번 외우고 마는 통과의례처럼 보이게 할 수 있다. 그러나 많은 교단은 이 신경을 세례 때 한 번만이 아니라 정기적인 예배 안에서 반복해서 함께 고백하는, 살아 있는 신앙고백으로 사용한다. 또한 국기에 대한 맹세는 국가에 대한 충성 서약이지만, 사도신경은 국가가 아니라 신앙의 핵심 사실에 대한 고백이라는 점에서 성격이 다르다.

교회에서 사람들이 다 같이 외우는 짧은 글이 있어요.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를 믿습니다"로 시작하는 글이에요. 이걸 '사도신경'이라고 불러요.

옛날 사람들은 이 글을 예수님의 열두 제자(사도)가 한 줄씩 나눠 썼다고 믿었어요. 하지만 요즘 학자들은 그게 전설일 뿐이라고 봐요. 사실은 아주 오랜 시간, 여러 세기에 걸쳐 조금씩 다듬어진 글이에요.

비슷하게 생긴 '니케아 신경'이라는 글도 있어요. 이건 특정한 해에 여러 나라 교회 대표들이 모여 딱 정한 글이라 사도신경과는 만들어진 방식이 달라요.

사도신경은 2~4세기 무렵 서방 교회의 세례 실천 속에서 점차 정리되어, 오늘날까지 예배 중에 쓰이는 짧은 신앙고백문이다. 가장 이른 뿌리는 2세기 후반 로마 교회에서 세례를 받으려는 사람들에게 던지던 문답식 신앙 확인("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를 믿습니까?" 같은 질문과 답)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런 문답이 점차 하나의 선언문 형태로 정리되었고, 4세기 말 밀라노의 암브로시우스는 이미 이 무렵 이 신조가 '사도신경'이라 불리고 있었다고 언급했다. 오늘날 널리 쓰이는 최종 판본은 8세기 무렵 프랑크 왕국(갈리아) 지역에서 몇몇 구절이 더해지며 완성되었다.

사도신경은 니케아 신경과 자주 나란히 언급되지만, 두 문서는 형성 경로가 전혀 다르다. 니케아 신경은 325년과 381년, 특정 공의회가 특정 연도에 아리우스 논쟁에 대응해 공식적으로 제정한 문서다. 반면 사도신경은 이런 공의회의 공식 제정 없이, 여러 세기에 걸쳐 서방 교회의 세례 관습 속에서 점진적으로 다듬어진 문서다. 그래서 사도신경은 처음부터 서방(라틴어권) 교회의 문서였고, 그리스어를 쓰던 동방 교회(오늘날의 정교회)에는 이에 정확히 대응하는 문서가 없다. 정교회는 지금도 예배에서 사도신경 대신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경을 표준 신앙고백으로 사용한다.

사도신경이라는 이름은 열두 사도가 한 구절씩 나눠 지었다는 오래된 전설에서 비롯됐다. 이 전설은 오늘날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여지지 않지만, 이 신경의 내용이 사도들이 전한 신앙의 핵심을 요약하고 있다고 보는 뜻에서 '사도적'이라는 이름이 지금도 쓰인다. 천주교·성공회·루터교·장로교 등 서방 개신교 다수는 세례 문답과 정기 예배에서 이 신경을 여전히 사용하지만, 침례교 등 일부 개신교 전통은 정해진 신조를 예배 형식으로 고정해 낭독하는 관습 자체를 두지 않는다. 이는 신경의 내용을 부정해서라기보다, 신조보다 성경 자체를 직접 따르는 것을 강조하는 전통 때문이라고 설명된다.

사도신경의 형성사는 크게 세 단계로 나뉜다. 첫 단계는 2세기 후반 로마에서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옛 로마 신조'(Old Roman Symbol, 학자들은 흔히 R로 약칭한다)로, 히폴리투스가 3세기 초에 기록한 것으로 여겨지는 「사도전승」 등의 문헌에서 그 초기 형태가 확인된다고 설명된다(다만 「사도전승」의 저자와 연대에 대해서는 학자들 사이에 이견이 있다). 이 신조는 삼위일체 구도를 따라 성부·성자·성령에 대한 짧은 고백으로 구성된 문답 형식이었다. 둘째 단계는 4세기 이후 여러 지역 교회들이 이 로마식 신조를 저마다 조금씩 다른 표현으로 변형해 사용하던 시기다. 밀라노의 암브로시우스가 390년경 남긴 편지는 이 시기 신조를 '사도신경'(symbolum apostolorum)이라 부르며, 열두 사도가 오순절 성령강림 직후 한 구절씩 나눠 만들었다는 전설을 언급한 가장 이른 기록으로 꼽힌다. 셋째 단계는 8세기 무렵 프랑크 왕국(갈리아) 지역에서 완성된 확장판으로, '음부에 내려가시고'(그리스도가 죽음과 부활 사이에 음부·저승에 내려갔다는 구절), '거룩한 공교회',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 '몸이 다시 사는 것' 같은 표현이 이 단계에서 더해졌다. 이 갈리아 판본은 이후 카롤루스 대제 시기의 전례 개혁을 통해 오히려 로마로 역수입되어, 로마 자체의 옛 신조를 대체하며 서방 교회 전체의 표준이 되었다.

이 형성사가 흥미로운 것은, 사도신경이 니케아 신경과 달리 어느 한 공의회가 특정 시점에 공식적으로 채택한 문서가 아니라는 점 때문이다. 니케아 신경은 아리우스 논쟁이라는 뚜렷한 신학적 위기에 대응해 동방과 서방 교회 대표들이 모여 논쟁 끝에 문구를 확정한 문서인 반면, 사도신경은 회심자에게 세례를 주기 전 신앙을 확인하는 목회적·전례적 필요에서 자연스럽게 자라난 문서에 가깝다. 이 때문에 사도신경에는 니케아 신경에서 볼 수 있는 정교한 신학적 논쟁의 흔적(예: '동일 본질'과 같은 철학적 용어)이 상대적으로 적고, 대신 성경의 핵심 사실들을 간결하게 나열하는 서사적 성격이 강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음부에 내려가시고'라는 구절은 사도신경 안에서도 특히 논쟁적인 대목이다. 이 구절의 근거로 베드로전서 3장 19절("옥에 있는 영들에게 선포하시니라")이 흔히 언급되지만, 이 구절 자체의 해석이 신약학 안에서 다양하게 갈려, 이를 근거로 신경의 이 조항 전체를 어떻게 이해할지에 대해서도 신학자들 사이에 오랜 논의가 있다. 종교개혁 시기 일부 개혁자들은 이 구절을 그리스도가 문자 그대로 저승에 내려갔다는 뜻이 아니라, 십자가에서 겪은 극심한 고통과 버림받음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재해석하기도 했다.

오늘날 사도신경은 신학적 논쟁의 대상이라기보다, 오히려 신학적 입장이 다른 여러 서방 교단(천주교와 다수 개신교)이 함께 사용할 수 있는 드문 공통 텍스트로 기능한다는 점이 자주 언급된다. 다만 정교회가 이 신경을 전례에서 사용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기독교의 핵심 신앙고백"이 하나의 고정된 텍스트로 완전히 통일되어 있지는 않다는 것을 보여 주는 사례로도 언급된다.

관련 성구

고전 15:3-4마 28:19눅 1:35요 20:28

역사적 형성 과정

  1. 180'옛 로마 신조'(Old Roman Symbol)로마 교회에서 세례 지원자들이 세례 직전 문답 형식으로 고백하던 짧은 신앙 요약이 사도신경의 가장 이른 뿌리로 꼽힌다.
  2. 390'사도신경'이라는 이름의 첫 사용밀라노의 암브로시우스는 이 무렵 이 신조가 이미 열두 사도가 한 구절씩 만들었다는 전설과 함께 '사도신경'이라 불리고 있었다고 언급하는 편지를 남겼다. 이 전설은 오늘날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3. 750오늘날 통용되는 판본의 완성프랑크 왕국(갈리아) 지역에서 옛 로마 신조에 '음부에 내려가시고',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 등 몇몇 구절이 더해져 오늘날 쓰이는 최종 판본이 완성되었고, 이후 로마로 역수입되어 서방 교회 전체로 퍼졌다.
  4. 325(대조 참고) 니케아 신경의 공의회 제정사도신경과 달리 [[개념:니케아 신경]]은 325년과 381년, 특정 공의회가 특정 연도에 아리우스 논쟁에 대응해 공식적으로 채택한 문서다. 사도신경은 이런 공의회 제정 없이 여러 세기에 걸쳐 점진적으로 다듬어졌다는 점에서 형성 경로가 다르다.

교파별 차이

  • 천주교·성공회·루터교·장로교 등 서방 개신교 다수세례 문답과 정기 예배(주일 예배 등)에서 사도신경을 신앙고백으로 널리 사용한다.
  • 정교회(동방 교회)사도신경은 서방 교회에서 발전한 문서이기 때문에, 정교회 전례에서는 전통적으로 사용하지 않으며 대신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경을 예배의 표준 신앙고백으로 사용한다.
  • 침례교 등 일부 개신교 전통신조를 예배 형식으로 고정해 낭독하는 관습 자체를 두지 않는 경우가 많다. 내용을 부정해서라기보다, 신조보다 성경 자체를 직접 따르는 것을 강조하는 전통 때문이다.

흔한 오해

사도신경은 열두 사도가 한 구절씩 나눠서 직접 쓴 글이다.

이는 4세기 무렵부터 퍼진 전설이다. 오늘날 역사학자와 신학자 대다수는 이 신경이 2~8세기에 걸쳐 여러 단계로 점차 정리된 문서라고 본다. 다만 그 내용이 사도들의 가르침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보는 뜻에서 '사도적'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설명하는 전통이 많다.

사도신경과 니케아 신경은 같은 문서를 부르는 두 이름일 뿐이다.

둘은 형성 경로와 사용 전통이 다른 별개의 문서다. 니케아 신경은 325년과 381년 공의회가 아리우스 논쟁에 대응해 공식적으로 제정한 반면, 사도신경은 특정 공의회 없이 서방 교회의 세례 실천 속에서 여러 세기에 걸쳐 점진적으로 다듬어졌다.

관련 개념

니케아 신경니케아 신경니케아 신경은 325년과 381년 두 차례 공의회를 거쳐 정리된, 기독교 신앙의 핵심 내용을 요약한 공식 고백문이다.삼위일체삼위일체하나님은 한 분이지만, 아버지·아들·성령이라는 세 분으로 계신다고 보는 기독교의 핵심 가르침이다.교회교회교회는 원래 건물이 아니라,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사람들의 모임 자체를 가리키는 기독교 용어다.부활부활부활은 죽었던 사람이 죽지 않는 몸으로 다시 살아나는 것을 뜻하며, 기독교는 예수가 죽은 지 사흘 만에 부활했고 그를 믿는 사람들도 훗날 그렇게 다시 살아날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