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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과 에서

형과 동생은 한 배에서 나왔지만, 동생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형의 발꿈치를 움켜쥐고 있었다.

창세기 · 창세기 25, 27, 32~33장 · 족장시대 · 읽는 시간 약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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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1. 상황

    이삭에게는 쌍둥이 아들이 있었어요. 형은 에서, 동생은 야곱이에요. 에서는 사냥을 잘했어요. 야곱은 집에 있는 걸 더 좋아했어요. 아빠는 에서를 예뻐했어요. 엄마는 야곱을 더 예뻐했어요. 어느 날 에서가 사냥에서 지쳐 돌아왔어요. 배가 몹시 고팠어요. 야곱은 콩죽을 주는 대신 조건을 걸었어요. 형의 맏아들 자리를 달라고 한 거예요. 에서는 배고픈 김에 그러겠다고 했어요. 세월이 흘러 아버지는 늙고 눈도 잘 안 보였어요. 아버지는 에서에게 마지막 축복을 해 주려 했어요. 그런데 엄마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야곱이 그 축복을 받게 하려는 것이었죠. 야곱은 에서인 척 옷을 입었어요. 팔에는 염소 털가죽도 감았어요. 아버지는 속아서 야곱에게 축복해 주고 말았어요. 뒤늦게 돌아온 에서는 크게 울며 화를 냈어요.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동생을 죽이겠다고 다짐했어요. 놀란 엄마는 야곱을 먼 삼촌 집으로 도망치게 했어요.

    이삭과 리브가 사이에서 쌍둥이 형제가 태어났다. 형 에서는 몸이 붉고 털이 많았고, 동생 야곱은 태어나면서부터 형의 발꿈치를 붙잡고 있었다. 자라면서 에서는 들판을 누비는 사냥꾼이 되었고, 야곱은 장막 안에 머무는 편이었다. 아버지는 사냥해 온 고기를 좋아해 에서를 아꼈고, 어머니는 야곱을 더 마음에 두었다. 어느 날 사냥에서 지쳐 돌아온 에서에게 야곱은 끓이던 팥죽을 내밀며 맏아들의 권리를 넘기라고 요구했다. 당장의 허기가 급했던 에서는 그 자리에서 응했다. 세월이 흘러 이삭이 늙고 눈이 어두워지자, 그는 에서에게 사냥한 고기로 음식을 차려 오면 죽기 전 마지막 축복을 해 주겠다고 말했다. 이 말을 엿들은 리브가는 에서가 돌아오기 전에 야곱을 앞세워 그 축복을 가로채기로 했다. 야곱은 에서의 옷을 입고 팔과 목에 염소 가죽을 둘러 형의 감촉을 흉내 냈다. 눈이 보이지 않는 이삭은 끝내 속아 야곱에게 장자의 축복을 내렸다. 뒤늦게 돌아온 에서는 축복이 이미 다른 사람에게 갔다는 것을 알고 목놓아 울었지만 되돌릴 방법은 없었다. 그는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면 동생을 죽이겠다고 다짐했고, 이 계획을 전해 들은 리브가는 야곱을 자신의 오빠 라반야곱의 외삼촌이자 리브가의 오빠. 야곱은 하란에 있는 그의 집에 이십 년 동안 머물며 결혼하고 가족과 재산을 이루었다.이 사는 하란으로 서둘러 피신시켰다.

    본문은 리브가의 임신 중 있었던 신탁을 먼저 배치한다. 태 속의 두 아이가 서로 부딪치자 리브가가 이유를 묻고, 두 나라가 태 안에 있으며 훗날 형이 동생을 섬기게 되리라는 응답을 얻는다(25:23). 후대 독자에게 이 구절은 개인의 사연인 동시에 이스라엘'신과 겨루다' 또는 '신이 다스리신다' 등으로 풀이되는 이름. 이후 야곱의 후손 전체를 부르는 민족 이름이 된다.(야곱의 후손)과 에돔(에서의 후손) 두 민족의 관계를 미리 설명하는 장치로 읽힌다. 장자권맏아들에게 주어지는 권리. 아버지 재산의 두 배를 물려받고 집안을 이끄는 지위였다. 명예직이 아니라 실질적인 상속 몫이었다.은 단순한 명예가 아니라 아버지 재산의 두 배 몫과 집안의 실질적 지도권을 뜻하는 법적 권리였다. 본문은 팥죽 한 그릇에 이를 넘긴 에서를 두고, 그 스스로 장자의 권리를 하찮게 여겼다는 평가를 직접 붙인다(25:34). 책임을 야곱의 계략에만 돌리지 않는 서술이다. 27장의 축복은 후대의 덕담이 아니라 고대 근동에서 구두 유언에 준하는 구속력을 지닌 공식 선언으로 이해된다. 한번 선포되면 취소가 불가능하다고 여겨졌기에, 속은 사실을 알고도 이삭은 이미 내린 축복을 되돌리지 못한다. 이 계략은 본문 안에서 미화되지 않는다. 이어지는 장들에서 야곱은 외삼촌 라반야곱의 외삼촌이자 리브가의 오빠. 야곱은 하란에 있는 그의 집에 이십 년 동안 머물며 결혼하고 가족과 재산을 이루었다.에게 거듭 속으며 자신이 쓴 방식 그대로 되갚음을 당하는데, 이를 뿌린 대로 거두는 서사적 인과응보의 배치로 읽는 주석가들이 많다.

  2. 사건

    야곱은 삼촌 라반야곱의 외삼촌이자 리브가의 오빠. 야곱은 하란에 있는 그의 집에 이십 년 동안 머물며 결혼하고 가족과 재산을 이루었다.의 집에서 이십 년을 살았어요. 그동안 결혼도 하고 아이도 많이 낳았어요. 양과 소도 아주 많아졌어요. 이제 고향으로 돌아갈 때가 되었어요. 그런데 무서운 소식이 들렸어요. 형 에서가 사백 명을 데리고 마중 나온다는 것이었어요. 야곱은 형이 아직 화가 나 있을까 봐 겁이 났어요. 야곱은 양 떼와 소 떼를 형에게 먼저 보냈어요. 화를 풀어 보려는 선물이었어요. 그날 밤, 야곱은 혼자 강가에 남았어요. 그런데 낯선 사람이 나타나 밤새 야곱과 씨름을 했어요. 날이 밝아올 때까지도 승부가 나지 않았어요. 그 사람은 야곱의 엉덩이뼈를 다치게 했어요. 그래도 야곱은 놓아주지 않았어요. "축복해 주지 않으면 놓아드리지 않을게요." 그 사람은 야곱에게 새 이름을 주었어요. '이스라엘'신과 겨루다' 또는 '신이 다스리신다' 등으로 풀이되는 이름. 이후 야곱의 후손 전체를 부르는 민족 이름이 된다.'이라는 이름이었어요. 야곱은 다리를 절며 그곳을 떠났어요.

    야곱은 라반야곱의 외삼촌이자 리브가의 오빠. 야곱은 하란에 있는 그의 집에 이십 년 동안 머물며 결혼하고 가족과 재산을 이루었다.의 집에서 이십 년을 지내며 두 아내와 여러 자녀를 얻고 많은 가축을 모았다. 마침내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 앞서 보낸 심부름꾼이 에서가 사백 명을 이끌고 마중 나온다는 소식을 전해 왔다. 이십 년 전 형이 품었던 살의를 기억하는 야곱은 크게 두려워했다. 그는 일행을 두 무리로 나누어 한쪽이 공격당해도 나머지는 살아남게 대비했다. 그리고 염소와 양과 낙타와 소를 여러 무리로 나누어 간격을 두고 먼저 보냈다. 노여움을 가라앉히려는 선물이었다. 가족과 재산을 모두 강 건너로 보낸 뒤 야곱은 얍복 나루에 홀로 남았다. 그런데 밤이 새도록 낯선 사람이 나타나 그와 씨름을 벌였다. 날이 밝아 오도록 승부가 나지 않자 그 존재는 야곱의 엉덩이뼈를 쳐서 어긋나게 했다. 그럼에도 야곱은 상대를 붙든 채 축복해 주지 않으면 놓지 않겠다고 버텼다. 상대는 야곱의 이름을 물은 뒤, 앞으로는 신과 겨루어 냈다는 뜻을 지닌 이스라엘'신과 겨루다' 또는 '신이 다스리신다' 등으로 풀이되는 이름. 이후 야곱의 후손 전체를 부르는 민족 이름이 된다.로 부르겠다고 선언했다. 야곱은 그 자리의 이름을 브니엘이라 지었다. 정체 모를 상대와 얼굴을 마주하고도 자신이 무사하다는 사실이 그만큼 놀라웠던 셈이다. 그는 엉덩이를 절며 해가 떠오르는 쪽으로 걸어갔다.

    본문은 씨름 상대를 처음부터 끝까지 그저 '한 사람'이라고만 부른다. 신적 존재로 짐작하게 하는 단서는 야곱이 그 자리를 정체 모를 존재와 얼굴을 마주하고도 무사했던 곳이라는 뜻으로 이름 붙였다는 서술과, 훨씬 뒤 호세아서가 이 사건을 두고 야곱이 천사와 겨루어 냈다고 되짚는 대목(호 12:3-4)뿐이다. 상대가 신 자신인지 신을 대리하는 존재인지, 본문은 끝내 결정하지 않는다. 이름 '이스라엘'신과 겨루다' 또는 '신이 다스리신다' 등으로 풀이되는 이름. 이후 야곱의 후손 전체를 부르는 민족 이름이 된다.'의 어원도 논쟁적이다. 본문 안의 설명은 '겨루다, 다투다'는 뜻의 동사에서 왔다는 것이지만, 현대 언어학에서는 '엘(신)이 다스린다' 또는 '엘이 싸운다'는 뜻으로 재구성하는 견해도 유력하며 두 해석 모두 학계에서 통용된다. 서사 배치로 보면 이 장면은 형을 만나기 직전, 야곱이 먼저 정체를 건 싸움을 치르고 이름이 바뀐 채로 등장하도록 놓여 있다. 속임수로 형의 몫(장자권맏아들에게 주어지는 권리. 아버지 재산의 두 배를 물려받고 집안을 이끄는 지위였다. 명예직이 아니라 실질적인 상속 몫이었다.과 축복)을 가로챘던 인물이, 이제 자기 이름 자체를 다른 존재와의 싸움 끝에 다시 얻는다는 구조적 대구로 읽는 해석이 많다. 32장 끝에는 이 사건을 근거로 이스라엘 사람들이 엉덩이 관절의 힘줄을 먹지 않는다는 관습의 기원이 짧게 덧붙는다.

  3. 결과

    다음 날, 야곱은 멀리서 형이 사백 명과 함께 오는 것을 보았어요. 야곱은 몸을 낮추며 형에게 다가갔어요. 그런데 에서는 화를 내지 않았어요. 오히려 달려와 야곱을 꼭 안고 함께 울었어요. 야곱은 가져온 가축들을 선물로 받아 달라고 했어요. 에서는 처음엔 괜찮다고 했지만 결국 받았어요. 야곱은 형이 이렇게 반겨 줄 줄 몰라서 마음이 놓였어요. 형제는 이제 서로 다른 길로 떠났어요. 에서는 세일 땅으로, 야곱은 다른 곳으로 향했어요. 오랜 싸움은 이렇게 끝이 났어요.

    이튿날 야곱은 저 멀리서 에서와 사백 명이 다가오는 것을 보고 몸을 여러 번 굽히며 앞으로 나아갔다. 최악을 각오한 걸음이었다. 그런데 에서는 달려와 야곱을 끌어안고 목을 부둥켜안은 채 함께 울었다. 스무 해 동안 쌓였을지 모를 분노 대신 반가움이 앞선 반응이었다. 야곱은 앞서 보낸 가축 떼를 받아 달라고 거듭 청했고, 처음엔 이미 충분하다며 사양하던 에서도 결국 받아들였다. 야곱은 형을 마주한 감격을 전날 밤 얍복 나루에서 겪은 신비로운 일에 빗대어 표현했다. 에서는 함께 가자고 권했지만 야곱은 가축과 아이들의 걸음이 느리다는 이유로 사양하고 뒤따라가겠다고 했다. 결국 에서는 세일 땅으로 돌아가고, 야곱은 방향을 돌려 숙곳과 세겜 쪽으로 향했다. 스무 해 전 죽이겠다는 말을 남기고 헤어졌던 두 형제는 이렇게 다시 만나 화해했고, 이후 창세기에서 둘 사이의 갈등은 더는 등장하지 않는다.

    에서가 보인 반응은 본문의 표현에서부터 드러난다. 그는 달려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며 운다. 창세기 전체에서 형제 갈등이 이런 방식으로 봉합되는 장면은 드물다. 야곱이 형을 마주한 순간을 전날 밤 정체 모를 상대와 대면했던 순간과 같은 낱말로 잇는 것도 의도적인 문학적 장치로 읽힌다. 다만 완전한 화해로만 읽기는 어려운 대목도 있다. 에서가 동행을 제안하자 야곱은 가축과 아이들의 걸음을 이유로 거절하고, 실제로는 에서와 다른 방향으로 향한다. 본문은 이 거리 두기의 속내를 설명하지 않으며, 남은 경계심으로 읽는 주석가들과 단순한 실용적 판단으로 읽는 주석가들이 갈린다. 두 사람의 화해가 두 민족의 관계까지 지속시키지는 못했다는 점도 짚을 만하다. 에서는 훗날 에돔의 조상으로 자리 잡고(36장), 광야 시대에는 이스라엘'신과 겨루다' 또는 '신이 다스리신다' 등으로 풀이되는 이름. 이후 야곱의 후손 전체를 부르는 민족 이름이 된다.의 통행을 거부하며(민 20:14-21), 후대 예언서 오바댜는 에돔을 향한 강한 심판의 말을 담는다. 형제 개인의 재회와 두 민족의 오랜 긴장은 성경 안에서 별개의 이야기로 이어진다.

잠깐, 이건 알고 가자

장자권
맏아들에게 주어지는 권리. 아버지 재산의 두 배를 물려받고 집안을 이끄는 지위였다. 명예직이 아니라 실질적인 상속 몫이었다.
아버지의 축복
오늘날의 덕담과 달리, 고대에는 구두 유언에 가까운 공식 선언으로 여겨졌다. 한번 선포되면 취소할 수 없다고 여겨졌기에, 잘못 준 축복도 되돌리지 못했다.
라반
야곱의 외삼촌이자 리브가의 오빠. 야곱은 하란에 있는 그의 집에 이십 년 동안 머물며 결혼하고 가족과 재산을 이루었다.
이스라엘
'신과 겨루다' 또는 '신이 다스리신다' 등으로 풀이되는 이름. 이후 야곱의 후손 전체를 부르는 민족 이름이 된다.

흔한 오해

야곱은 나쁜 사람이고 에서는 순진한 피해자였다.

본문은 에서도 스스로 장자의 권리를 하찮게 여겼다고 평가한다(25:34). 어느 한쪽도 완전한 선인이나 악인으로 그려지지 않는다.

얍복강에서 야곱과 씨름한 상대는 천사였다고 성경에 분명히 나와 있다.

본문은 그 존재를 그냥 '한 사람'이라고만 부른다. 야곱은 나중에 신을 만난 것 같다고 말하고, 훨씬 뒤 호세아서는 천사로 되짚지만(호 12:3-4), 정체를 콕 집어 밝히지는 않는다.

야곱이 다리를 저는 것은 신이 내린 벌이다.

본문은 이를 벌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밤새 이어진 씨름 중에 다친 결과로 서술되며, 이후 이스라엘 사람들이 엉덩이 관절의 힘줄을 먹지 않는 관습의 유래로 이어진다.

그래서 이게 무슨 뜻일까

야곱과 에서는 서로 속이고 미워했지만 나중엔 다시 만나 껴안았어요. 잘못한 일이 있어도 사이가 다시 좋아질 수 있을까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나요?

이 이야기는 속임수로 시작해 포옹으로 끝난다. 그런데 화해가 오기 전, 야곱은 형을 만나기도 전에 먼저 밤새 씨름을 하며 이름부터 바뀌는 과정을 거친다. 관계가 회복되려면 상대가 먼저 변해야 할까, 아니면 자기 자신이 먼저 무언가와 씨름해야 할까. 본문은 답을 정해 주지 않고 두 장면을 나란히 놓을 뿐이다.

이 사건 이후 성경은 두 형제의 이야기를 다시 다루지 않고, 각자 다른 족보로 갈라져 이스라엘'신과 겨루다' 또는 '신이 다스리신다' 등으로 풀이되는 이름. 이후 야곱의 후손 전체를 부르는 민족 이름이 된다.과 에돔의 역사로 나뉜다. 이 재회 장면은 두 가지 결로 읽을 수 있다. 하나는 개인적 화해로 보는 읽기다. 에서가 달려와 안고 우는 장면(33:4)에 무게를 두고, 두 형제가 실제로 마음을 풀었다고 읽는다. 다른 하나는 민족 기원 설화로 보는 읽기다. 태중에서부터 주어졌다는 신탁(25:23)과 훗날 에서가 에돔의 조상이 된다는 서술(36장)에 무게를 두고, 이 장면을 이스라엘과 에돔 두 민족의 관계를 설명하는 이야기로 읽는다. 어느 쪽으로 읽든 남는 질문은 같다. 스무 해 동안 쌓인 원한은 정확히 무엇으로 풀렸을까 — 야곱이 밤새 씨름하며 달라진 것 때문일까, 시간이 흐르며 에서 쪽이 누그러진 것일까. 본문은 그 이유를 밝히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