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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는 왜 직접 글을 남기지 않았나?

신약성경 어디에도 예수가 직접 쓴 글은 없다. 역사적으로는 1세기 유대 사회의 스승들이 글보다 구두 가르침과 제자를 통한 구전을 더 일반적인 전달 방식으로 삼았다는 배경이 있고, 신학적으로는 기독교가 '기록된 문서' 자체보다 예수라는 인물과 그를 따르는 공동체를 통해 메시지가 전해지는 방식을 강조한다고 설명된다.

1세기 구전 문화랍비 전통의 가르침 방식예수의 짧은 공생애문해력 여부에 대한 학설제자들을 통한 기록신학적 해석 - 사람을 통해 전해지는 메시지

예수님 이야기는 성경에 많이 나와요. 그런데 예수님이 직접 쓴 글은 성경 어디에도 없어요. 신기하죠?

그 시절에는 선생님이 직접 책을 쓰는 게 흔한 일이 아니었어요. 선생님이 말로 가르치면 제자들이 그 말을 기억하고 나중에 다른 사람에게 전해 줬어요. 이렇게 입에서 입으로 전하는 방법을 '구전'이라고 해요.

예수님이 하늘로 돌아가신 뒤, 제자들과 그 뒤를 이은 사람들이 예수님이 하신 말과 행동을 글로 남겼어요. 그게 오늘날 성경에 있는 복음서예요. 그러니까 예수님 이야기는 예수님이 직접 쓴 게 아니라, 예수님을 따르던 사람들이 기억하고 정리해서 쓴 거예요.

신약성경 27권 중 예수가 직접 쓴 문서는 하나도 없다. 복음서(마태·마가·누가·요한)는 모두 예수를 따르던 사람들이나 이후 세대가 예수의 말과 행동을 기록한 문서이고, 나머지는 대부분 바울을 비롯한 초대교회 지도자들이 각지의 교회에 보낸 편지다. 이 사실을 두고 "왜 예수 본인은 직접 글을 남기지 않았을까"라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역사적으로 볼 때, 1세기 유대 사회에서 스승이 자신의 가르침을 직접 책으로 남기는 것은 일반적인 관행이 아니었다. 당시 랍비(유대교 스승)들의 가르침도 대개 제자들이 곁에서 듣고 암기해 구전으로 전승하는 방식이 표준이었고, 이런 구전 전통이 문서로 정리되는 것은 대개 스승이 세상을 떠난 뒤 한참 지나서였다(유대교의 구전 율법 모음집인 미쉬나가 2세기 말에야 문서로 정리된 것이 대표적 사례다). 예수의 공생애(공개적으로 가르치고 활동한 기간) 자체도 길게 잡아도 3년 안팎으로 짧았다는 점도 고려할 만한 요소다.

신학적으로는 다른 층위의 설명이 제시된다. 기독교는 하나님의 메시지가 문서 하나로 완결되어 전달된 것이 아니라, 예수라는 인물 자체와 그를 따르는 사람들의 공동체(교회)를 통해 계속 살아 전해진다고 이해한다. 이런 관점에서는, 예수가 글을 남기지 않은 것이 우연한 공백이 아니라, 애초에 기독교가 전제하는 전달 방식(사람에서 사람으로)과 맞닿아 있다고 해석되기도 한다. 다만 이는 신앙적 해석이며, 예수가 실제로 왜 글을 남기지 않았는지에 대한 본인의 설명은 성경 어디에도 기록되어 있지 않다.

이 질문과 관련해 학계에서 종종 함께 다뤄지는 별도의 논쟁은 "예수가 글을 읽고 쓸 줄 알았는가"라는 문해력 문제다. 누가복음 4장은 예수가 나사렛 회당에서 이사야서 두루마리를 펴서 낭독했다고 전하는데, 이는 예수가 최소한 히브리어 성경을 소리 내어 읽을 수 있었음을 시사하는 것으로 흔히 해석된다. 요한복음 8장(예수가 땅에 무언가를 쓰는 장면)도 종종 언급되지만, 이 구절이 포함된 본문 자체가 초기 사본에는 없다가 후대에 삽입되었다는 것이 본문비평학의 대체적인 결론이어서, 문해력의 근거로 단정하기는 어렵다. 반면 1세기 팔레스타인의 문해율 자체가 매우 낮았다는 사회사적 연구(전체 인구의 상당수가 문맹이었다는 추정)를 근거로, 예수가 정식 저술 활동을 할 만한 문서 작성 훈련을 받았을 가능성은 낮았을 것이라 보는 학자들도 있다. 목수 집안 출신이라는 사회적 배경(마가복음 6장)도 이런 추정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언급되곤 한다. 다만 회당에서 성경을 낭독하고 논쟁할 정도의 언어 능력과, 긴 문서를 저술할 수 있는 능력은 별개의 문제이므로, 이 부분은 결론이 하나로 모이지 않는다.

또 하나 짚어 둘 점은, 예수의 가르침 방식 자체가 애초에 '읽기용 텍스트'보다 '듣고 기억하기 좋은 형태'로 설계되어 있었다는 관찰이다. 비유, 반복되는 구절, 대구법 같은 표현은 구전으로 전달되고 암송되기에 유리한 문학적 장치로 꼽힌다. 이는 예수가 자신의 가르침이 글이 아니라 사람의 기억과 입을 통해 퍼지는 방식을 염두에 두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고 보는 학자들도 있지만, 이 역시 본문 자체가 명시적으로 말하지 않는 추정의 영역이다.

결국 복음서가 기록된 것은 예수 사후 수십 년이 지나서였다(다수 학자들은 마가복음을 가장 이른 복음서로 보고 AD 60~70년경, 요한복음을 가장 늦은 복음서로 AD 90년대경으로 추정한다 — 학설이 갈린다). 이 시차 동안 예수의 말과 행동은 구전으로, 그리고 초기 신앙 공동체의 예배와 가르침 속에서 전승되었다는 것이 신약학의 표준적인 이해다. 초기 교회가 이 구전을 문서로 옮기기로 결정한 계기에 대해서는, 목격자 세대가 하나둘 세상을 떠나면서 기억을 고정할 필요가 커졌다는 설명이 널리 받아들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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