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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쟁

제사와 추도예배, 기독교인은 어떻게 봐야 하나?

천주교는 1939년 이후 형식을 조정하면 전통 제사에 참여하는 것을 허용하고, 개신교 다수는 제사 대신 추도예배로 완전히 대체한다. 두 입장 모두 조상을 공경해야 한다는 원리에는 동의하지만, 향을 피우고 절하며 음식을 차려 올리는 전통 형식 자체가 우상숭배에 해당하는지를 다르게 판단한다.

조상 숭배와 효 문화의 구분(역사·문화적 축)우상숭배를 금지하는 계명(신학적 축)1939년 천주교 훈령한국 개신교 초기 선교사의 입장추도예배로의 형식 전환

명절이나 돌아가신 날, 상을 차리고 절을 하는 걸 제사라고 해요. 오랫동안 이어져 온 전통이에요.

기독교인 집에서는 이걸 어떻게 할지 생각이 서로 달라요.

어떤 교회는 절을 하지 말라고 해요. 상에 절하는 게 조상님을 신처럼 떠받드는 것처럼 보일 수 있대요. 대신 추도예배라는 걸 드려요. 절은 안 하고, 찬송을 부르고 기도를 해요.

어떤 교회는 절을 해도 된다고 해요. 절은 신에게 비는 게 아니라, 그냥 부모님을 존중하는 우리 문화의 인사법이라고 봐요.

생각은 달라도 하나는 같아요. 돌아가신 부모님과 조상님을 소중히 기억해야 한다는 거예요.

설날·추석이나 기일에 상을 차리고 절하는 전통 제사를, 기독교인은 어떻게 대해야 할지를 두고 오랫동안 생각이 갈려 왔다. 이 질문에는 두 개의 서로 다른 축이 얽혀 있다.

하나는 역사·문화적 축이다. 제사는 유교 전통에서 부모를 공경하는 효(孝)의 연장으로 자리 잡은 관습이며, 많은 한국인에게는 조상을 신으로 섬기는 종교 행위라기보다 가족을 기억하고 예의를 갖추는 문화로 여겨진다.

다른 하나는 신학적 축이다. 향을 피우고 절하며 음식을 차려 올리는 형식이, 출애굽기 20장의 우상숭배 금지 계명(자체 풀이)에 저촉되는지가 쟁점이 된다. 이 축에서 판단이 갈리면서 두 입장이 나뉜다.

제사를 지내지 않아야 한다고 보는 입장은 전통 제사 형식을 조상의 영혼을 신적 존재처럼 예우하는 우상숭배로 이해한다. 1890년대부터 1940년대까지 한국에 온 선교사 다수가 이런 입장을 취했고, 절과 음식 진설 대신 찬송·기도·성경봉독으로 이뤄진 추도예배를 대안으로 권장했다. 이 흐름이 지금도 다수의 한국 개신교, 특히 보수 성향 교단의 관행으로 이어지고 있다.

형식을 조정하면 지낼 수 있다고 보는 입장은 제사의 본질을 우상숭배가 아니라 효의 문화적 표현으로 본다. 천주교는 1939년 교황청 훈령(Plane compertum est)을 통해, 조상 제사를 종교의식이 아니라 사회적·시민적 예로 재해석해 신자들의 참여를 공식 허용했다. 이 입장은 절하는 대상과 기도의 내용을 조정하면 전통 형식 자체는 유지할 수 있다고 본다.

두 입장 모두 부모와 조상을 공경해야 한다는 원리 자체에는 동의한다. 다만 그 공경을 표현하는 전통 형식을 그대로 써도 되는지에서 결론이 갈린다.

한국 기독교 역사에서 제사 문제가 처음 격렬하게 불거진 사건은 1791년 전라도 진산에서 일어났다. 천주교 신자 윤지충이 모친상에서 신주(위패)를 불태우고 제사를 거부했다가 처형된 이른바 진산사건이다. 이는 한국 최초의 천주교 박해 사건으로 꼽히며, 제사 거부가 당시 유교 사회 질서에 얼마나 큰 충격이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로 자주 언급된다. 이 시기 천주교의 제사 금지 입장은, 17~18세기 중국에서 선교사 마테오 리치가 유교 의례를 종교가 아닌 문화로 존중하려 했던 이른바 '전례 논쟁'에서 리치의 반대편 입장이 우세했던 결과이기도 하다.

이 입장은 1939년 교황 비오 12세의 훈령으로 크게 전환됐다. 중국과 한국의 조상 제사를 종교적 숭배가 아니라 사회적·시민적 예로 재해석해, 형식을 일부 조정하는 조건으로 신자들의 참여를 허용한 것이다. 이는 마테오 리치 쪽 입장이 약 200년 뒤에 재확인된 사건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개신교 쪽에서는 이런 공식적인 신학적 전환의 계기가 따로 없었다. 역사학 연구에 따르면, 제사 대신 추도식을 드리는 관행 자체가 1895년부터 1940년대 사이 한국 개신교 안에서 서서히 자리 잡아 간 것으로 보이며, 초기에는 그 형식 논의가 지금보다 훨씬 유동적이었다고 알려져 있다. 공교롭게도 이 시기는 일제가 신사참배를 '종교의식이 아니라 국민의례'라는 논리로 강요하던 때와 겹친다. 학계 일부에서는 '이것이 종교의식인가, 시민적 예법인가'라는 질문의 구조 자체가 제사 논쟁과 신사참배 논쟁에서 비슷하게 반복됐다는 점을 지적하기도 한다. 다만 두 사안은 강요의 주체(국가 권력 대 가족 전통)와 성격이 다르므로 완전히 같은 논쟁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평가도 함께 있다.

오늘날 실제 신자 가정에서는 이론과 실천 사이의 간극이 뚜렷하다. 절 대신 헌화나 묵념을, 신주 대신 사진을 쓰는 절충 형태가 흔히 보고되며, 이는 신학적 원칙(우상숭배에 대한 경계)과 정서적 필요(그리움, 가족 간의 화목) 사이에서 각 가정이 나름의 답을 찾은 결과로 이해할 수 있다. 정교회도 죽은 자를 위한 기도 전통(판니히다 등)을 갖고 있어, '고인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서는 천주교·정교회와 개신교 사이의 차이가 세례나 성찬 해석 못지않게 뚜렷하게 갈리는 지점이다.

결국 이 논쟁은 성경 한두 구절의 해석 문제로 좁혀지지 않는다. '효'와 '우상숭배'라는 두 가치를 어디에서 가를지에 대한 판단, 그리고 그 판단을 가족 공동체 안에서 실제로 어떻게 실천할지에 대한 현실적인 고민이 함께 얽혀 있다.

고인을 기리는 전통 제사를, 그리스도인이 그대로 혹은 형식을 바꿔서 지낼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입장들이 있다.

제사를 지내지 않아야 한다고 보는 입장

향을 피우고 절하며 음식을 차려 올리는 전통 제사 형식을, 조상의 영혼을 신적 존재처럼 예우하는 우상숭배로 이해한다. 그래서 형식 자체를 거부하고, 대신 추도예배로 고인을 기억한다.

  • 출애굽기 20장 3~5절 — 다른 신을 두지 말고 그 앞에 절하지 말라는 계명(자체 풀이)
  • 신명기 18장 10~11절 — 죽은 자에게 묻거나 죽은 자와 관련된 의식을 금하는 규정(자체 풀이)
  • 1890년대~1940년대 한국에 온 선교사 다수가 제사를 우상숭배로 규정하고, 신자들에게 절과 음식 진설 없는 추도식을 대안으로 권장한 전례

다수의 한국 개신교, 특히 보수 성향 교단

형식을 조정하면 지낼 수 있다고 보는 입장

제사의 본질을, 조상을 신으로 섬기는 행위가 아니라 부모를 공경하는 효의 문화적 표현으로 이해한다. 절하는 대상과 기도의 내용을 조정하면, 전통 형식을 유지한 채로도 지낼 수 있다고 본다.

  • 출애굽기 20장 12절 —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을 효의 신학적 근거로 보는 해석(자체 풀이)
  • 천주교가 1939년 교황청 훈령(Plane compertum est)을 통해, 조상 제사를 종교의식이 아니라 사회적·시민적 예(禮)로 재해석해 신자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공식 허용한 전례

천주교(1939년 이후 공식 입장), 일부 온건 성향 개신교 목회자와 신자 가정

공통점 두 입장 모두 부모와 조상을 공경해야 한다는 원리, 그리고 신앙 때문에 가족 관계가 끊어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점에는 동의한다.

아직 논쟁 중인 부분 실제 신자 가정에서는 교단의 공식 입장과 무관하게 신주 대신 사진을 놓거나 절 대신 묵념을 하는 등 절충된 형태로 제사·추도 행사를 치르는 경우가 많다. 이론적 입장과 현실의 실천 사이에 간극이 크다는 지적이 많고, '효'와 '우상숭배'의 경계를 정확히 어디에 그을지도 신학자마다 조금씩 다르게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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