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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화

성화는 하나님에게서 의롭다는 인정을 받은 사람이 실제로 거룩하게 변화되어 가는 과정을 가리키는 기독교 용어다.

일상 비유

흔히 나무가 자라는 것이나, 운동선수가 훈련을 거듭해 실력이 느는 것에 비유된다.

비유의 한계 나무 비유는 성화를 자동적이고 수동적인 과정처럼 보이게 할 수 있는데, 대다수 전통은 성화에 신자의 의지적 참여(기도, 순종, 훈련)가 필요하다고 본다. 반대로 운동선수 비유는 순전히 자기 노력의 결과처럼 보이게 하는데, 전통적으로 성화는 사람의 노력만이 아니라 성령의 작용이 함께하는 과정으로 설명된다. 또한 이 땅에서 '얼마나' 자랄 수 있는지, 완전에 이를 수 있는지는 교단마다 생각이 다르다(아래 참고).

기독교에서는 예수님을 믿으면 하나님이 "너는 이제 괜찮다"고 말해 준다고 믿어요. 이건 한순간에 일어나는 일이에요.

그런데 그 뒤로 사람이 실제로 착하고 다정하게 변해 가는 데는 시간이 걸려요. 이렇게 조금씩 변해 가는 과정을 '성화'라고 불러요. 나무가 하루 만에 크게 자라지 않는 것처럼요.

이 변화가 하나님이 도와주셔서 되는 건지, 내가 노력해서 되는 건지 궁금할 수 있어요. 기독교에서는 둘 다 함께 필요하다고 봐요. 그런데 사람이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완전히 다 변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교회마다 생각이 조금씩 달라요.

성화는 하나님에게서 의롭다는 인정을 받은 사람이 실제로 거룩하게 변화되어 가는 과정을 가리키는 기독교 용어다. 칭의칭의칭의는 죄인이었던 사람이 하나님에게서 '더 이상 죄가 없다'는 인정을 받는 것을 가리키는 기독교 용어다.가 하나님이 사람의 '지위'를 의롭다고 선언하는 한순간의 사건이라면, 성화는 그 이후 사람의 '성품'이 실제로 달라져 가는 과정이다. 바울은 데살로니가전서 4장 3절에서 신자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거룩함'이라고 말하는데, 이는 칭의로 끝나지 않는 신앙의 다음 단계를 가리키는 표현으로 읽힌다.

성화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특히 이 땅에서 얼마나 완전해질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개신교 안에서도 오랜 논쟁이 있다(자세한 내용은 아래 '보는 관점' 참고). 개혁주의·장로교 전통은 성화를 죽을 때까지 완성되지 않는 점진적 싸움으로 이해하며, 이 땅에서 죄와 완전히 무관해지는 상태에는 이르지 못한다고 본다. 반면 존 웨슬리에서 비롯된 감리교·성결교 전통은 성령의 특별한 은혜를 통해 신자가 이 땅에서도 하나님과 이웃을 향한 '온전한 사랑'에 이를 수 있다고 본다. 다만 이 전통도 완전 성화가 더 이상 실수하지 않는 상태를 뜻하지는 않는다고 설명한다.

천주교와 정교회는 성화를 칭의와 뚜렷이 구분하기보다, 하나의 연속된 은혜의 과정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 정교회는 사람이 하나님의 성품에 점차 참여해 가는 '테오시스(신화)'라는 더 넓은 틀 안에서 성화를 설명한다. 이 개념은 사람이 하나님이 된다는 뜻이 아니라, 창조주와 피조물의 구분은 유지하면서도 하나님의 생명과 성품에 점점 더 깊이 참여해 간다는 뜻으로 설명된다.

바울 서신에서 '거룩하게 하다'(하기아조, hagiazō)라는 동사는 과거·현재·미래 세 시제로 모두 쓰인다는 점이 성화 논의의 출발점이다. 고린도전서 6장 11절은 신자들이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고 과거 시제로 말하고(이미 완료된 성별聖別), 고린도전서 1장 2절은 신자들을 '거룩하여진 자들'이라 부르며(현재의 신분), 데살로니가전서 5장 23절은 하나님이 신자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기를" 구하는 미래의 소망으로 표현한다. 이 세 시제가 함께 쓰인다는 사실은, 성화가 단순히 미래에 완성될 과정만이 아니라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진 신분과도 맞닿아 있다는 신학적 논의로 이어진다.

개혁주의 성화론은 장 칼뱅이 「기독교강요」(1536년 초판, 이후 여러 차례 증보)에서 정리한 '그리스도와의 연합'(unio cum Christo) 개념에 뿌리를 둔다. 칼뱅은 칭의와 성화를 그리스도와의 연합에서 동시에, 그러나 서로 다른 방식으로 흘러나오는 '이중 은혜'로 설명했다. 칭의가 그리스도의 의를 우리 것으로 '전가'받는 것이라면, 성화는 그리스도의 생명이 성령을 통해 우리 안에서 실제로 자라나는 것이다. 이 틀에서 성화는 결코 완성되지 않는 '이미와 아직' 사이의 싸움으로 남아 있으며, 로마서 7장의 "내가 원하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악을 행하는도다"라는 서술은 이 지속적 갈등을 보여 주는 대표적 본문으로 읽힌다(다만 이 본문이 신자의 경험을 말하는지, 아직 회심하지 않은 사람 또는 율법 아래 있는 인간 일반의 경험을 말하는지에 대해서는 주석가들 사이에 이견이 있다).

존 웨슬리는 1741년 이후 여러 설교와 저작, 특히 「그리스도인의 완전에 관한 평이한 해설」(1766)에서 이와 다른 길을 제시했다. 그는 마태복음 5장 48절의 "너희도 온전하라"는 명령이 실제로 성취 가능해야 한다고 보고, 신자가 회심 이후 별도의 은혜의 사역(흔히 '제2의 축복' 또는 '완전 성화'라 불린다)을 통해 하나님과 이웃을 향한 순전한 사랑으로 동기가 정화되는 상태에 이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웨슬리는 이 '완전'이 무지나 실수, 연약함으로부터의 자유를 뜻하지 않는다고 여러 차례 명확히 했다. 이는 도덕적으로 흠이 전혀 없는 상태가 아니라, 동기와 사랑의 방향이 온전히 하나님을 향하는 상태를 가리킨다는 것이다. 19세기 미국의 성결운동과 이후 나사렛교회 등 성결교단들은 이 신학을 계승해 발전시켰다.

19세기 후반 영국 케직 사경회에서 발전한 '케직 신학'은 웨슬리안의 완전주의와는 다른 방식으로 성화의 '위기'를 강조했다. 이 운동은 신자가 자기 노력으로 죄와 싸우는 대신, 전적인 헌신과 믿음을 통해 성령이 주도하시는 '승리하는 삶'에 들어간다는 틀을 제시했으며, 이는 이후 복음주의권의 여러 성화 이해에 영향을 주었다. 오늘날 개신교 신학자들 사이에는 이런 여러 전통의 강조점을 절충하거나, 성화를 개인의 내적 변화만이 아니라 공동체와 사회적 삶 속에서의 변화로 확장해 이해하려는 시도도 이어지고 있다.

관련 성구

롬 6:22살전 4:3빌 1:6히 12:14

역사적 형성 과정

  1. 55바울 서신의 성화 언어바울은 데살로니가전서 등에서 신자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거룩함'이라고 말하며, [[개념:칭의]] 이후 이어지는 삶의 변화를 강조했다.
  2. 1536칼뱅의 「기독교강요」장 칼뱅은 칭의와 성화를 그리스도와의 연합에서 함께 흘러나오는, '나눌 수는 없지만 구별되는' 두 은혜로 설명해 개혁주의 성화론의 기초를 놓았다.
  3. 1741존 웨슬리의 '그리스도인의 완전' 설교존 웨슬리는 신자가 이 땅에서 성령의 은혜로 하나님과 이웃을 향한 온전한 사랑, 곧 '완전 성화'에 이를 수 있다고 주장해, 이후 감리교와 성결운동 신학의 핵심이 되었다.
  4. 1875케직 사경회 운동영국 케직에서 시작된 이 운동은 신자가 자기 힘을 내려놓고 전적으로 헌신하는 '위기적 순간'을 통해 성령 충만한 삶으로 나아간다고 강조하며, 웨슬리안 완전주의와는 결이 다른 성화 이해를 대중화했다.

교파별 차이

  • 개혁주의·장로교성화를 죽을 때까지 완성되지 않는 점진적 과정으로 이해하며, 이 땅에서 신자가 죄와 완전히 무관해지는 상태에는 이르지 못한다고 본다.
  • 웨슬리안·감리교·성결교 전통성령의 특별한 은혜로 신자가 이 땅에서도 하나님과 이웃을 향한 온전한 사랑, 곧 '완전 성화'에 이를 수 있다고 본다. 다만 이것이 더 이상 실수하지 않는 무흠 상태를 뜻하지는 않는다고 구분해서 설명하는 경우가 많다.
  • 천주교·정교회성화를 칭의와 분리하지 않고, 은혜에 협력하는 지속적 과정(정교회는 '테오시스', 신화神化 개념과 연결)으로 이해하며 성사, 특히 성찬을 통해 지속된다고 본다.

신자가 이 땅에서 온전한 성화(완전에 가까운 상태)에 이를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입장들이 있다.

점진적 성화론(개혁주의)

성화는 죽을 때까지 완성되지 않는 평생에 걸친 싸움이며, 이 땅에서 신자가 죄와 완전히 무관해지는 상태에는 이르지 못한다고 본다.

  • 로마서 7장의 '내가 원하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라는 서술을 신자의 지속적인 내적 갈등으로 읽는 해석
  • 요한일서 1장 8절의 '죄가 없다고 하면 스스로를 속이는 것'이라는 표현

장로교, 개혁교회, 대다수 침례교

완전성화론(웨슬리안)

신자는 성령의 특별한 은혜(흔히 '제2의 은혜'라고도 불린다)를 통해 이 땅에서도 하나님과 이웃을 향한 '온전한 사랑'의 상태에 이를 수 있다고 본다.

  • 마태복음 5장 48절의 '너희도 온전하라'는 명령을 실제로 이룰 수 있는 것으로 보는 해석
  • 데살로니가전서 5장 23절의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라는 표현
  • 18세기 존 웨슬리의 신학적 논증

감리교, 성결교(나사렛교회 등), 일부 오순절 교단

공통점 두 입장 모두 성화가 성령의 역사이며 신자의 삶 속에서 실제로 나타나야 한다는 점에는 동의한다. 웨슬리안 전통도 '완전 성화'가 더 이상 성장할 필요가 없는 상태를 뜻하지는 않는다고 설명한다.

아직 논쟁 중인 부분 '온전함'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그것이 이 땅에서 실제로 경험 가능한 상태인지는 지금도 신학적으로 결론이 나지 않았다.

흔한 오해

칭의와 성화는 같은 말이다.

개신교 신학 전통에서는 흔히 칭의를 '지위의 즉각적 선언', 성화를 '성품의 점진적 변화'로 구분한다. 이 구분을 얼마나 강조할지는 교단마다 다르다.

성화는 신자가 혼자 노력해서 이루는 일종의 자기계발이다.

전통적으로 성화는 인간의 노력만이 아니라 성령의 작용이 함께하는 과정으로 설명된다. 인간의 역할과 하나님의 역할을 어떻게 나눌지는 신학 전통마다 강조점이 다르다.

관련 개념

칭의칭의칭의는 죄인이었던 사람이 하나님에게서 '더 이상 죄가 없다'는 인정을 받는 것을 가리키는 기독교 용어다.은혜은혜은혜는 사람이 받을 자격이 없는데도 하나님이 값없이 베푸는 것을 가리키는 기독교 용어다.거듭남거듭남거듭남은 사람이 영적으로 완전히 새롭게 태어난다고 보는 기독교의 가르침으로, 요한복음 3장에서 예수가 니고데모와 나눈 대화에서 비롯된 표현이다.믿음믿음믿음은 하나님과 그 약속을 사실로 받아들이고 자신을 맡기는 것을 가리키는 기독교 용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