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
전도와 선교
전도는 같은 문화권 안에서 신앙을 나누는 일을, 선교는 다른 언어·문화권에 가서 장기간 살며 활동하는 일을 가리키는 말로 흔히 구분되지만, 방식과 태도를 둘러싼 반감도 함께 존재한다.
전도는 내 주변 사람에게 예수님을 소개하는 거예요. 선교는 다른 나라, 다른 말을 쓰는 곳에 가서 오래 살면서 예수님을 전하고 그 지역 사람들을 돕는 거예요.
전도한다고 하면 지하철에서 큰 소리로 외치는 모습을 떠올리기 쉬워요. 하지만 실제로는 친구에게 조용히 이야기하거나, 교회에 같이 가자고 초대하거나, 어려운 사람을 도우면서 자연스럽게 소개하는 방법이 더 많이 쓰여요.
선교사님을 돕는 것도 있어요. 다른 나라에서 활동하는 선교사님에게 돈을 보내 드리는 걸 선교헌금이라고 해요. 그 돈으로 선교사님은 생활하고, 그 지역 사람들을 돕는 일에 써요.
가끔 낯선 사람이 갑자기 다가와서 종교 이야기를 하며 어디론가 데려가려고 할 때가 있어요. 이럴 때는 조심하는 게 좋아요. 진짜 교회 사람이 아닐 수도 있거든요.
전도와 선교는 흔히 이렇게 구분된다. 전도는 같은 문화권, 대개 같은 언어를 쓰는 사람들 사이에서 신앙을 나누는 일을 가리키고, 선교는 다른 언어·문화권에 가서 상당 기간 머무르며 복음을 전하고 현지 공동체를 세우는 일을 가리킨다. 둘 다 '복음을 전한다'는 목적은 같지만, 활동 범위와 준비 과정이 다르다.
"전도했다"는 게 실제로 뭘 하는 걸까. 전도지를 나눠주는 것, 지하철역이나 길거리에서 마이크로 말하는 노방전도, 교회 행사(성탄절 콘서트, 감사절 초청 예배 등)에 지인을 초대하는 초청 전도, 봉사활동이나 일상적인 관계 속에서 자연스럽게 신앙을 나누는 관계 전도까지 방식이 다양하다. 최근에는 일방적으로 말을 전하는 방식보다, 오랜 관계 속에서 삶으로 신뢰를 쌓은 뒤 신앙을 나누는 관계 전도가 더 효과적이고 바람직하다고 보는 시각이 많은 교회에서 커지고 있다.
선교사가 되는 과정과 선교사 후원. 선교사는 대개 신학교나 선교 훈련 기관에서 교육을 받고, 소속 교단이나 선교단체의 파송 절차(면접, 훈련, 후원 교회 모금 등)를 거쳐 현지로 나간다. 활동 기간에 따라 며칠에서 몇 주 정도 다녀오는 단기선교와, 수년 이상 현지에 정착해 활동하는 장기선교로 나뉜다. 활동 내용도 설교나 성경 교육뿐 아니라 의료·교육·농업·번역·구호처럼 전문 기술을 활용하는 경우가 많다. 여러 교회가 특정 선교사나 선교지를 정기적으로 후원하는데, 이 돈(선교헌금)은 선교사의 생활비, 현지 사역비, 신학교나 병원·학교 설립 등에 쓰인다고 설명된다(자세한 헌금 종류는 헌금과 십일조 문서 참고).
강압적 전도에 대한 반감은 왜 있을까. 마이크를 든 채 "예수 안 믿으면 지옥 간다"는 식으로 공포심을 자극하는 방식, 상대방의 의사와 무관하게 계속 말을 걸거나 따라가며 개인정보나 만남을 요구하는 방식은 실제로 많은 사람에게 불쾌감과 거부감을 준다는 것이 널리 보고되는 사실이다. 여기에 더해, 정통 교단이 아닌 이단·사이비로 분류되는 단체가 정체를 숨긴 채 설문조사나 도를 아십니까류의 접근으로 사람을 포섭하려는 경우가 뉴스에 자주 보도되면서, 낯선 전도 접근 자체에 대한 경계심이 커진 측면도 있다. 이 때문에 상당수 교회와 신학자들도 강압적·기만적인 전도 방식에는 비판적이며, 상대방의 동의와 존엄을 존중하는 방식을 강조한다. 이 앱은 전도나 선교를 권하지 않으며, 방식에 대한 판단도 독자에게 맡긴다.
전도와 선교의 신학적 근거로 흔히 인용되는 본문은 마태복음 28:19-20의 이른바 '대위임령'(부활한 예수가 제자들에게 모든 민족을 찾아가 가르치고 세례를 주라고 지시했다는 대목, 자체 풀이)과, 사도행전 1:8(예수가 승천하기 직전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에서 시작해 유대·사마리아를 거쳐 땅의 끝까지 자신을 증언하는 사람이 되라고 말했다는 대목, 자체 풀이)이다. 신약성경 자체가 이미 국내(예루살렘·유대)와 국외(사마리아·이방 지역)를 구분해 언급한다는 점에서, 전도와 선교의 구분은 현대에 새로 생긴 것이 아니라 신약 서사 안에 이미 있던 구도라는 해석이 흔하다. 바울바울 초대교회한때 신자들을 잡아 가두고 스데반의 처형에 동의했던 사람이, 다마스쿠스로 가던 길에서 방향을 잃고 다시 얻어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데 남은 삶을 썼다의 세 차례 전도 여행(사도행전 13-21장)과 빌립빌립 초대교회예루살렘 교회가 구제 실무를 맡기려고 스데반과 함께 뽑은 일곱 사람 중 한 명으로, 예수의 열두 제자 중 한 명인 동명이인 빌립과는 다른 인물이다 — 스데반이 죽은 뒤 사마리아로 가서 전도해 큰 호응을 얻었고,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길에서는 에티오피아 여왕의 재무 담당 관리를 만나 이사야서를 풀어 설명하고 세례를 주었다이 사마리아와 에티오피아 관리에게 복음을 전한 사건(행 8장)은 초대교회 선교의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근대적 의미의 '선교 운동'은 18세기 말 이후 서구에서 조직화됐다. 1792년 영국의 침례교 선교사 윌리엄 캐리가 인도로 떠나며 근대 개신교 선교 운동의 상징적 출발점으로 자주 언급되고, 이후 19~20세기 서구 열강의 식민 지배와 선교가 시기적·인적으로 겹치면서 "선교가 서구 문화 제국주의의 도구로 이용됐다"는 비판이 학계와 선교지 양쪽에서 꾸준히 제기돼 왔다. 이런 비판에 대해 선교 신학 내부에서도 문화를 존중하는 '토착화' 원리(현지 언어·관습을 존중하며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원칙)를 강조하는 흐름이 20세기 중반 이후 강해졌다는 것이 일반적으로 서술된다. 1974년 스위스 로잔에서 발표된 '로잔 언약'은 복음주의 진영이 전도의 시급성과 사회적 책임(가난·불의에 대한 관심)을 함께 강조하며 선교 신학을 정리한 대표적 문서로 꼽힌다.
한국 개신교는 20세기 후반 이후 선교사를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파송하는 나라 중 하나로 성장했다고 여러 통계에서 보고된다(정확한 순위와 인원수는 조사 기관과 시점에 따라 차이가 있어 단정적으로 말하기는 어렵다). 이는 한국 교회 성장기(1970~80년대)의 부흥과 맞물려 나타난 현상으로 설명되며, 최근에는 종교의 자유가 제한된 지역에서 직업(교사, 사업가, 연구자 등)을 갖고 신분을 밝히지 않은 채 활동하는 이른바 '텐트메이커 선교'(사도 바울이 천막 만드는 일을 하며 선교했다는 사도행전 18:3의 기록에서 따온 표현)도 늘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전도와 선교의 방식을 둘러싼 논쟁은 신학적 확신(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사명감)과 현대 다원주의 사회의 예의·인권 감수성(상대의 신념과 자기결정권을 존중해야 한다는 원칙)이 부딪히는 지점에서 계속되고 있다. 이 긴장을 어떻게 풀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교단과 개인마다 생각이 다르며, 이 문서 상단의 다입장 병기 부분에서 정리한 '구원의 범위' 논쟁이 그 신학적 배경 중 하나로 작동한다.
복음을 들어보지 못하고 죽은 사람이나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은 구원받을 수 있는가 — 전도와 선교가 왜 필요한지를 뒷받침하는 신학적 배경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입장들이 있다.
배타주의(exclusivism)로 보는 입장
예수 그리스도를 명시적으로 믿고 고백하는 것만이 구원에 이르는 유일한 길이며, 복음을 들어보지 못했다는 사정이 예외가 되지는 않는다고 본다. 그래서 전도와 선교는 선택이 아니라 시급한 사명으로 여겨진다.
- 요한복음 14:6 — 예수가 자신을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하나님께 다가갈 수 없다고 말했다는 기록(자체 풀이)
- 사도행전 4:12 — 초대교회가 구원을 얻는 다른 방법은 없다고 선포했다는 기록(자체 풀이)
다수의 복음주의·보수 개신교, 대다수 오순절·순복음 계열
포용주의(inclusivism)로 보는 입장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만이 구원의 유일한 근거라는 점은 동일하게 받아들이되, 복음을 들어볼 기회가 없었던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다른 방식으로 은혜를 베푸실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 로마서 2:14-15 — 율법을 알지 못하는 이방인에게도 양심이 작동한다는 취지(자체 풀이)
- 천주교가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 문헌에서 비신자에게도 구원의 가능성을 열어 둔 것으로 해석되는 대목
천주교(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공식 입장), 일부 온건 복음주의, 에큐메니컬 진영의 일부 교단
공통점 두 입장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이 구원의 유일한 근거라는 점, 그리고 복음을 전하는 일 자체가 여전히 중요하다는 점에는 동의한다. 차이는 복음을 들어보지 못한 사람에게 구원의 가능성이 원천적으로 닫혀 있는가, 열려 있는가에 있다.
아직 논쟁 중인 부분 성경이 이 질문에 대해 명시적으로 답하는 구절이 없어, 신학자들 사이에서도 계속 논쟁 중인 주제로 남아 있다.
흔한 오해
❌전도는 무조건 지하철역이나 길거리에서 마이크로 소리치는 것이다.
⭕그런 방식(노방전도)도 있지만, 많은 교회는 오히려 일상적인 관계 속에서 자연스럽게 신앙을 나누는 '관계 전도'를 더 권장하는 추세다. 전도지 배포, 초청 행사, 봉사활동을 통한 전도 등 방식은 다양하다.
❌선교사는 전부 신학교를 나온 목사이고 설교만 한다.
⭕의료·교육·농업·번역·구호 등 전문 기술로 현지 사회에 기여하며 활동하는 '전문인 선교사'도 많고, 신학 교육 없이 평신도 신분으로 짧은 기간 참여하는 단기선교도 있다.
❌거리에서 '예수 믿으세요'라며 다가와 개인정보나 만남을 요구하는 사람은 다 정통 교회 소속이다.
⭕이런 방식으로 접근해 특정 장소로 유인하려는 경우 중 상당수는 정통 교단이 아닌 이단·사이비로 분류되는 단체의 포교 활동으로 보고되고 있어, 소속 교회나 단체를 먼저 확인하는 것이 안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