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벨탑
다시는 뿔뿔이 흩어지고 싶지 않았던 사람들이, 하늘까지 닿는 성을 쌓기 시작했다.
창세기 · 창세기 11장 · 원역사 · 읽는 시간 약 2분
이야기
상황
홍수가 끝난 뒤, 사람들은 모두 같은 말을 썼어요. 사람들은 동쪽으로 옮겨 갔어요. 그러다 시날이라는 넓은 들판에 자리를 잡았어요. 사람들은 흙벽돌을 굽고 역청을 발라 성을 쌓기 시작했어요. "하늘까지 닿는 탑을 세우자. 그러면 우리 이름이 남을 거야. 여기저기 흩어지지 말자."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며 열심히 일했어요.
대홍수 뒤 노아의 자손들은 아직 하나의 언어를 쓰고 있었다. 이들은 동쪽으로 이동하다가 메소포타미아의 시날 평지에 이르러 정착했다. 돌 대신 구운 벽돌을, 회 대신 역청을 써서 성을 쌓기 시작했고, 꼭대기가 하늘에 닿는 탑도 함께 세우려 했다. 목적은 두 가지였다. 자신들의 이름을 남기는 것, 그리고 온 땅으로 흩어지지 않는 것. 문제는 이 두 번째 목적이 홍수 뒤 노아에게 다시 주어졌던 '땅에 충만하라'는 지시와 정면으로 부딪힌다는 점이었다.
본문의 무대는 '시날 평지'로, 훗날 바빌론이 들어서는 메소포타미아 남부다. 사람들이 쌓으려던 '성읍과 탑'은 흙벽돌을 구워 역청으로 접합하는 방식으로 묘사되는데, 이는 돌이 흔한 가나안이 아니라 메소포타미아 건축의 전형이며 지구라트(계단식 신전탑)를 연상시킨다는 것이 다수 주석가의 견해다. 서술상 동기는 두 가지, '이름을 내자'(쉠을 얻자)는 것과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는 것이다. 이는 홍수 직후 노아에게 주어진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창 9:1)는 지시와 어휘 차원에서 정면으로 대비되도록 배치되어 있어, 이 사건을 창세기 원역사 전체를 관통하는 '경계 넘기' 모티프의 마지막 사례로 읽는 해석이 널리 받아들여진다.
사건
하나님이 내려와 사람들이 짓는 성과 탑을 보셨어요. "이 사람들이 한 말을 쓰니 무슨 일이든 해내겠구나." 하나님은 사람들의 말을 여러 가지로 뒤섞어 버리셨어요. 그러자 사람들은 서로 말을 알아들을 수 없었어요. 옆 사람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몰랐어요. 그래서 함께 일할 수 없었어요. 결국 사람들은 성 쌓는 일을 멈췄어요.
본문은 하나님이 '내려와' 사람들이 세우는 성과 탑을 보았다고 서술한다. 하나가 된 백성이 하나의 언어로 이런 일을 시작했으니, 앞으로 무엇을 계획하든 못할 일이 없으리라는 판단이 이어진다. 하나님은 사람들의 말을 뒤섞어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만든다. 같은 작업장에서 옆 사람의 말을 이해할 수 없게 되자 공사는 더 진행되지 못했다. 본문은 탑이 무너졌다거나 부서졌다고는 말하지 않는다. 다만 사람들이 더는 함께 일할 수 없어 흩어졌다고만 적는다.
'내려와 보다'는 창세기 원역사에 반복되는 신인동형적 표현으로, 인간의 계획이 신적 시야 안에서는 대단히 작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드러내는 문학적 장치로 읽힌다. '이제 무엇이든 못할 일이 없으리라'는 진술은 위협이라기보다 인간 연대와 기술력에 대한 서술자의 관찰에 가깝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언어를 뒤섞는 조치(히브리어 '발랄', 혼잡하게 하다)는 심판이자 동시에 저지 장치로 기능한다. 주목할 점은 본문이 탑의 물리적 파괴를 전혀 서술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공사가 중단되고 사람들이 흩어졌다는 결과만 남을 뿐이며, 이 공백을 두고 탑이 완공되지 못한 채 방치되었다고 보는 독법과, 애초에 이 이야기의 관심이 건축물의 운명이 아니라 언어와 흩어짐 자체에 있다고 보는 독법이 갈린다.
결과
사람들은 이제 서로 다른 말을 썼어요. 그래서 여기저기로 흩어져 살게 됐어요. 사람들은 그 성을 '바벨'이라고 불렀어요. 하나님이 거기서 사람들의 말을 뒤섞으셨기 때문이에요. 탑을 쌓던 성은 다 짓지 못한 채 남았어요. 이 일 뒤에 성경은 한 가족의 이야기로 넘어가요. 바로 아브라함이라는 사람의 이야기예요.
언어가 갈라지자 사람들은 더 이상 한곳에 머물 이유도, 방법도 없었다. 본문은 이 성의 이름이 '바벨'이 된 것을, 하나님이 거기서 온 땅의 언어를 '뒤섞었기'(발랄)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흩어지지 않으려던 계획은 정확히 그 반대의 결과로 끝난다. 창세기는 곧바로 초점을 좁혀, 이렇게 흩어진 인류 가운데 한 사람 아브라함에게로 카메라를 옮긴다. 앞 장에서 사람들이 스스로 이름을 내려 했다면, 다음 장에서는 하나님이 한 사람의 이름을 크게 하겠다고 약속한다.
이 지명 설명은 히브리어 어원 유희다. 본문은 '바벨'을 '뒤섞다'라는 뜻의 동사 '발랄'과 연결하지만, 실제 아카드어 지명 '밥일리'(Bab-ili)는 '신의 문'이라는 뜻이다. 즉 바빌론이 스스로 자랑스럽게 내세우던 이름을 성경 저자가 정반대의 뜻으로 재해석해 조롱하는 말장난으로 읽힌다는 것이 다수 주석가의 견해다. 구조적으로 이 장은 원역사(1~11장)를 마감하고 족장사(12장 이후)로 넘어가는 경첩 역할을 한다. 11장 후반부의 셈 족보는 노아의 아들 셈에서 데라, 그리고 아브람으로 이어지며, 12장에서 하나님은 스스로 '이름'을 내려던 인류 대신 아브람의 '이름을 크게 하리라'(창 12:2)고 약속한다. 한편 10장 '민족표'가 이미 각 민족이 '언어와 종족과 나라대로' 나뉘었다고 서술한 뒤(창 10:5, 20, 31) 11장이 다시 '온 땅의 언어가 하나였다'로 돌아가는 순서 문제는 오래된 주석적 쟁점이다. 두 장이 반드시 시간 순으로 배열된 것은 아니며, 서로 다른 전승 자료가 나란히 편집되었다고 보는 견해가 유력하다.
잠깐, 이건 알고 가자
- 시날 평지
- 메소포타미아 남부의 넓은 들판으로, 훗날 바빌론 제국이 들어서는 지역이다.
- 지구라트
- 고대 메소포타미아에서 흙벽돌을 층층이 쌓아 올린 계단식 신전탑. 본문이 묘사하는 성과 탑의 형태로 흔히 추정된다.
- 바벨과 바빌론
- 본문은 '바벨'을 '뒤섞다'는 히브리어 동사와 연결해 설명하지만, 이 지명의 실제 원어 뜻은 '신의 문'이었다. 자부심 담긴 이름을 뒤집어 쓰는 말장난으로 읽힌다.
흔한 오해
❌하나님이 탑을 벼락이나 지진으로 무너뜨렸다.
⭕본문은 탑의 파괴를 언급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사람들의 언어를 뒤섞었을 뿐이고, 공사가 중단되고 사람들이 흩어졌다는 결과만 서술된다.
❌사람들은 진짜로 하늘에 있는 신의 거처까지 손이 닿는 건물을 지으려 했다.
⭕'하늘까지 닿는'은 고대 근동에서 아주 높은 건물을 가리키던 관용적 표현에 가깝다. 본문이 문제로 지적하는 것은 건물의 높이 자체가 아니라, 이름을 내고 흩어지지 않으려던 사람들의 목적이다.
❌이 사건이 오늘날 존재하는 수천 개 언어가 한날한시에 생겨난 과정을 설명하는 언어학적 기록이다.
⭕언어학적으로 세계 언어가 한 시점에 동시에 갈라졌다는 근거는 없다. 이 이야기를 '왜 언어가 여럿인가'에 대한 신학적 설명 이야기로 읽는 해석이 널리 받아들여진다.
그래서 이게 무슨 뜻일까
이 이야기는 사람들이 왜 여러 말을 쓰는지 알려주는 옛이야기예요. 사람들은 흩어지기 싫어서 탑을 쌓았어요. 하지만 결국 흩어지고 말았어요. 여러분은 무엇을 위해 사람들과 함께하고 싶나요?
이 이야기가 진짜로 문제 삼는 것은 '하나 됨' 자체가 아니라 그 하나 됨이 향한 방향으로 읽힌다. 사람들은 흩어지지 않으려 했지만, 창세기 9장은 이미 땅에 충만하라고, 즉 흩어져 채우라고 명령했었다. 자기 이름을 내려던 계획은 다음 장에서 아브람의 이름을 하나님이 대신 크게 하겠다는 약속과 짝을 이룬다. 사람들이 함께 무언가를 이루려 할 때, 그 목적이 어디를 향하는지는 무엇으로 알 수 있을까?
이 짧은 아홉 절은 창세기 원역사가 반복해 온 패턴 - 인간이 주어진 경계를 넘고, 흩어지거나 갈라지는 결과가 뒤따르는 - 의 마지막 사례이자, 동시에 아브람 이야기로 넘어가는 문학적 경첩이다. 이 이야기를 특정 시대·장소의 역사적 단일 사건으로 볼지, 언어와 민족 다양성에 대한 신학적 원인 이야기로 볼지는 여전히 갈린다. 어느 쪽으로 읽든 본문이 남기는 물음은 비슷하다. 흩어짐이 반드시 심판이기만 한 것인지, 아니면 애초에 주어졌던 명령(땅에 충만하라)이 뒤늦게 다른 방식으로 이뤄진 것인지는 본문 스스로 명확히 말하지 않는다.
바벨탑 이야기를 역사적 단일 사건으로 볼 것인가, 신학적 원인 이야기로 볼 것인가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입장들이 있다.
역사적 사건으로 보는 입장
실제 역사 속 특정 시점에 인류의 언어가 하나였다가 이 사건을 계기로 여러 언어로 갈라졌다고 본다.
- 본문을 창세기 앞부분의 다른 사건들과 마찬가지로 실제 있었던 일로 읽는 전통적 해석
- 창세기 1~11장 전체를 역사적 서술로 보는 관점
보수적 복음주의 일부 교단
신학적 원인 이야기로 보는 입장
언어와 민족이 다양해진 현실을 설명하기 위한 이야기 장르로 본다. 특정 역사적 사건의 기록이라기보다 '왜 이런가'를 설명하는 성경 앞부분 특유의 화법으로 읽는다.
- 창세기 10장 '민족표'는 이미 각 나라가 자기 언어를 가졌다고 서술해(10:5, 20, 31) 11장과의 시간적 순서가 매끄럽지 않다는 점
- 고대 근동에는 인류가 원래 한 언어를 썼다는 유사한 이야기가 여러 전승에 나타난다
다수 현대 성서학계, 일부 주류 개신교단
공통점 두 입장 모두 이 이야기가 인간의 교만, 하나님의 개입, 그리고 흩어짐이라는 결과를 말한다는 점에는 동의한다.
아직 논쟁 중인 부분 이 이야기가 가리키는 실제 장소나 시기, 그리고 오늘날 세계 언어 다양성과의 정확한 관계는 학계에서도 합의되어 있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