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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 예언

예레미야애가 무너진 도시 앞에서, 울음을 형식에 담기

도시가 불타고 사람들이 끌려간 뒤, 누군가 그 잿더미에 앉아 울면서도 시의 규칙을 지켰다. 각 연의 첫 글자를 알파벳 순서대로 맞춰가며, 끝이 없어 보이는 슬픔에 억지로라도 끝을 만들어 보려는 사람처럼.

저자(전승)
예레미야. 그리스어 번역본(70인역)이 책 앞에 붙인 표제에서 비롯된 오랜 전승이다
저자(학계)
저자 미상으로 본다. 함락을 직접 목격한 익명의 시인, 또는 여러 시인의 작품을 묶은 것으로 보며, 다섯 편 사이의 문체와 관점 차이를 근거로 단일 저자를 확정하지 않는다
연대
다루는 사건은 BC 588~586년 바벨론 군대의 예루살렘 포위와 함락이다(약 2천 6백 년 전). 기록 시기는 함락 직후 수십 년 이내인 BC 586~550년경으로 보는 견해가 다수이며, 다섯 편 중 일부가 그보다 늦게 다듬어졌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장 수
5

3막 요약

  1. 상황

    큰 나라 군대가 도시를 빙 둘러쌌어요. 오래 가둬 두고 굶겼어요. 결국 성벽이 무너졌어요. 집도 성전도 불에 탔어요. 사람들은 먼 나라로 끌려갔어요. 남은 사람들은 그 자리에 앉았어요. 사람이 북적이던 길이 텅 비었어요. 시인은 도시를 사람처럼 그렸어요. 혼자 남아 우는 사람처럼요.

    BC 586년, 바벨론 군대가 예루살렘을 무너뜨렸다. 그들은 저항하는 도시를 오래 포위해 굶긴 뒤 함락시키는 방식을 썼고, 이 책은 그 포위 기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눈을 돌리지 않고 적는다. 성전은 불탔고 사람들은 끌려갔다. 시인은 그 도시를 남편도 자식도 잃고 혼자 앉은 여인으로 그린다. 한때 사람으로 붐비던 곳이 텅 비었고, 친구였던 이웃 나라들은 등을 돌렸으며, 지나가는 사람들은 손뼉을 치며 조롱한다. 위로해 줄 사람이 없다는 문장이 후렴처럼 되풀이된다.

    배경은 BC 588년에 시작된 바벨론의 예루살렘 포위와 BC 586년의 함락, 성전 파괴다(연대는 사료 계산 방식에 따라 587년으로 보는 견해도 함께 쓰인다). 1장과 2장은 히브리어 자음 22자의 순서를 따라 각 연이 시작하는 알파벳 이합체(아크로스틱) 구조이며, 운율에서도 앞 행이 길고 뒤 행이 짧은 이른바 '키나' 형식이 반복되어 문장 자체가 절뚝이듯 읽힌다는 지적이 있다. 도시를 여성으로 의인화해 부르는 방식은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도시 애가' 전통과 형식을 공유한다는 비교 연구가 오래 축적되어 있다. 다만 이 책은 재난의 원인을 신들의 변덕이 아니라 공동체 자신의 책임과 신의 심판이라는 틀 안에서 다룬다는 점에서 구별된다고 평가된다. 화자도 계속 바뀐다. 도시가 직접 1인칭으로 말하다가, 그 광경을 지켜본 목격자의 3인칭 서술로 넘어가고, 다시 하늘을 향한 호소로 방향을 튼다.

  2. 사건

    책 한가운데인 3장이 조금 달라요. 여기서는 한 사람이 나와요. 자기가 겪은 일을 직접 말해요. 아주 캄캄한 이야기예요. 그런데 중간에 말이 잠깐 바뀌어요. 그래도 우리가 아직 남아 있다고 해요. 그 마음이 다 마르지 않았다고 해요. 해가 뜰 때마다 다시 채워진다고 해요. 이 책에서 가장 유명한 대목이에요. 하지만 그 뒤에 다시 어두워져요.

    책의 정중앙인 3장에서 목소리가 좁혀진다. 도시도 목격자도 아닌 한 개인이 나서서, 자기가 통과한 어둠을 처음부터 끝까지 1인칭으로 진술한다. 벽에 갇힌 것 같다, 길이 막혔다, 아무도 듣지 않는다는 말이 이어진다. 그런데 그 한복판에서 어조가 잠깐 방향을 튼다. 아직 우리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것을 보면 저편의 마음이 바닥나지는 않았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날이 밝을 때마다 다시 채워져 있더라는 것. 이 책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대목이 여기 있다. 다만 그 뒤로 시는 다시 어둠 쪽으로 내려간다. 이 전환은 문제가 해결되어 나온 결론이 아니라,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붙잡아 본 문장에 가깝다.

    3장은 형식부터 다르다. 같은 자음으로 시작하는 절을 세 개씩 묶어 22자를 채우기 때문에 66절이 되며, 다섯 편 중 가장 조밀한 구조를 갖는다. 화자는 '나는 고난을 본 사람'이라는 자기 규정으로 시작해 개인 탄식시의 어법을 길게 끌고 간다. 이 화자가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예레미야 개인으로 보는 전승적 독법, 함락을 겪은 익명의 병사나 지도자로 보는 독법, 공동체 전체를 대표하는 문학적 인물(게벨, 즉 '그 사람')로 보는 독법이 병존한다. 22~23절의 유명한 진술은 본문 문제도 함께 안고 있다. 히브리어 마소라 본문은 '우리가 다하지 않았다'로 읽히지만, 시리아어 역본과 타르굼 등을 근거로 '그의 자비가 다하지 않았다'로 읽는 이문 제안이 오래 논의되어 왔고 번역본마다 선택이 갈린다. 어느 쪽으로 읽든 이 대목이 책 전체 구조의 정확한 중심에 배치되어 있다는 점은 대부분의 주석가가 주목하는 지점이며, 그 배치를 '희망이 이 책의 결론'이라는 뜻으로 볼지, '어둠 한가운데서도 이런 말이 가능하다는 표시'로 볼지는 해석이 갈린다.

  3. 결과

    4장에서 다시 참혹한 장면이 나와요. 귀하던 것들이 흙바닥에 뒹굴어요. 굶주린 아이들 이야기가 이어져요. 마지막 5장은 조금 달라요. 알파벳 순서를 지키지 않아요. 길이만 스물두 줄로 맞췄어요. 사람들이 함께 이렇게 물어요. 우리를 아주 버리신 건 아니지요? 그러니 다시 돌아봐 주세요. 이 책은 답 없이 그렇게 끝나요.

    4장은 다시 참상으로 돌아간다. 금처럼 귀하게 여겨지던 것들이 길바닥의 질그릇처럼 취급되고, 포위와 기근 속에서 벌어진 일들이 미화 없이 기록된다. 마지막 5장은 형식부터 풀어진다. 알파벳 순서를 더 이상 지키지 않고, 절의 수만 스물두 개로 맞춘 채 공동체 전체의 기도로 바뀐다. 그리고 책은 회복의 확언이 아니라 물음에 가까운 문장으로 닫힌다. 우리를 완전히 버리신 것이 아니라면 돌이켜 달라는 요청만 남긴 채, 대답 없이 끝난다. 이 열린 결말은 미완성이 아니라 이 책의 선택으로 읽힌다. 유대교에서는 지금도 성전 파괴를 기억하는 날(티샤 베아브)에 이 책 전체를 낭독한다.

    4장은 1·2장보다 짧은 2행 연 구조의 이합체이며, 5장에 이르면 이합체가 완전히 해체되고 절 수만 22개로 남는다. 이 형식의 이완을 두고, 애도의 언어가 끝내 질서를 유지하지 못하고 풀어지는 과정을 형식 자체로 보여준다는 해석과, 개인의 정제된 애가에서 공동체의 즉각적인 기도로 장르가 옮겨간 것으로 보는 해석이 함께 제시된다. 또 하나 자주 지적되는 특징은 2·3·4장에서 히브리어 자음 페(פ)가 아인(ע)보다 앞서는, 통상적 순서와 다른 배열이 나타난다는 점이다. 필사 오류로 볼지, 당시 실제로 쓰이던 다른 자모 순서의 흔적으로 볼지는 결론이 나 있지 않다. 마지막 절이 회복의 보장 대신 요청으로 끝나기 때문에, 유대교 회당 낭독 전통에서는 21절을 한 번 더 반복해 마무리하는 관행이 생겼다. 끝을 견디기 어려운 책이라는 사실 자체가 낭독 관습에 흔적을 남긴 셈이다.

구조 나누기

  1. 1홀로 앉은 도시 — 붐비던 곳이 텅 빈 첫 장면, 도시가 직접 말한다
  2. 2성전이 무너지던 날 — 축제일이 잊히고 이방 군대가 성소에 들어서다
  3. 3나는 고난을 본 사람 — 한 개인의 1인칭 진술, 그 한복판의 짧은 전환
  4. 4금이 빛을 잃다 — 귀하던 것들이 흙바닥에 뒹구는 포위 속 참상
  5. 5돌이켜 주소서 — 알파벳 틀이 풀린 공동체의 기도, 물음으로 닫히는 결말

이 책의 스토리들

핵심 구절 (자체 풀이)

  • 애 1:1사람으로 가득했던 도시가 이제 혼자 앉아 있다는 첫 문장. 여러 민족 위에 있던 자리가 남의 밑에서 부역하는 처지로 뒤집혔다는 대비로 책이 열린다.
  • 애 2:11거리에서 쓰러지는 아이들을 보다가 눈이 짓무르고 속이 뒤집혔다는 목격자의 진술. 이 책이 참상을 요약하지 않고 본 대로 적는다는 태도가 드러나는 대목.
  • 애 3:22-23우리가 아직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는 사실에서 시인은 한 가지를 읽어낸다. 저편의 마음이 아직 바닥을 보이지 않았다는 것. 게다가 그것이 날이 밝을 때마다 다시 채워져 있더라는 관찰을 덧붙인다. 이 책에서 가장 널리 인용되는 두 절이지만, 놓인 자리는 3장 한복판의 어둠 사이다.
  • 애 3:33사람을 아프게 하는 일이 그분 쪽에서 내키거나 즐거워서 벌어진 것은 아니라고 못박는 대목. 심판을 인정하면서도 그것을 신의 성격 자체로 돌리지는 않는, 이 책 특유의 이중 태도가 드러난다.
  • 애 5:20-21왜 이렇게 오래 잊고 계시냐고 따진 뒤, 우리를 되돌려 주시면 우리도 돌아가겠다고 청하는 마지막 기도. 확신이 아니라 조건과 물음으로 책이 끝난다.

이 책의 가르침

  • 재난은 의미로 정리되기 전에 먼저 목격되고 기록되어야 한다는 태도를 보여준다. 이 책은 서둘러 교훈을 만들지 않는다.
  • 슬픔에도 형식이 필요하다는 발상이 담겨 있다. 알파벳 순서라는 가장 엄격한 틀이 통제 불가능한 감정을 붙들어 준다.
  • 고통을 두고 하늘에 대고 따져 묻는 일이 신앙의 반대편이 아니라 그 안쪽에서 다뤄진다. 항의와 자책과 애도가 한 편의 시 안에서 계속 자리를 바꾼다.

흔한 오해

예레미야가 개인적으로 쓴 슬픔의 일기다.

전승은 예레미야를 저자로 보지만 본문 안에는 저자를 밝히는 문장이 없다. 알파벳 이합체라는 정교하고 공적인 형식은 혼자 적은 일기보다, 공동체가 함께 낭송하도록 다듬은 애도 예식에 가깝다는 것이 학계의 일반적인 이해다.

결국 희망으로 마무리되는 책이다.

3장 한가운데에 널리 알려진 희망의 대목이 있지만, 시는 그 뒤로 다시 어두워지고 마지막 장은 회복의 보장 없이 요청으로 닫힌다. 열린 결말은 이 책의 의도적인 선택으로 읽힌다.

성경에서 가장 짧고 덜 중요한 부록 같은 책이다.

유대교에서 절기마다 낭독하는 다섯 두루마리(메길로트) 중 하나로, 성전 파괴를 기억하는 날에 전체가 낭독되어 오늘날까지 정기적으로 읽힌다.

재난의 원인을 전부 침략자 탓으로 돌리는 책이다.

바벨론의 잔인함을 고발하는 문장과, 자기들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인정하는 문장이 같은 책 안에 섞여 있다. 어느 한쪽으로 정리하지 않는 것이 이 책의 특징이다.

읽는 요령

다섯 장뿐이라 앉은자리에서 다 읽을 수 있는 분량이다. 다만 2장과 4장에는 포위와 기근 중에 벌어진 일이 상당히 참혹하게 묘사되어 있으니, 마음의 여유가 없을 때는 3장과 5장부터 읽어도 된다. 3장 22~24절만 따로 떼어 읽는 경우가 많은데, 그 앞뒤 20절씩을 같이 읽어야 이 문장이 어떤 자리에서 나온 말인지 보인다. 알파벳 순서 구조는 번역본에서는 드러나지 않으니, 각주가 달린 성경이 있다면 각 절의 첫 글자 설명을 한 번 확인해 보면 형식이 눈에 들어온다. 예레미야를 먼저 읽고 오면 이 폐허가 만들어지기까지 어떤 경고가 있었는지 알 수 있고, 시편 137편을 같이 읽으면 같은 사건을 끌려간 쪽에서 부른 노래와 비교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