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창조
누구나 한 번쯤 궁금했을 것이다. 이 모든 것—하늘과 바다와 나 자신—은 대체 어디서, 어떻게 시작됐을까.
창세기 · 창세기 1장 · 원역사 · 읽는 시간 약 3분
이야기
상황
아주 오랜 옛날, 세상은 아직 없었어요. 아무 모양도 없었고, 사방은 깜깜했어요. 온통 물뿐이었어요. 빛도 없고, 땅도 없고, 아무것도 없었어요.
성경 이야기는 아무것도 정돈되지 않은 자리에서 시작된다. 창세기 1장은 그 상태를 형태도 없고 비어 있으며 어둠이 깊은 물을 덮고 있었다고 그린다. 하늘도 땅도, 낮과 밤의 구분도, 어떤 생명도 아직 없었다. 세상이 있기 이전의 세상, 질서가 생기기 전의 혼돈이 첫 장면이다.
히브리어 본문은 태초의 상태를 토후 와보후(형태 없고 비어 있음)라는 두 단어로 압축해 표현한다. 깊음(테홈)이라는 단어가 바빌론 창조 서사 에누마 엘리쉬에 등장하는 혼돈의 바다 신 티아마트와 어원이 닿아 있다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창세기는 이 물을 신격화하지 않고 그저 다뤄지는 재료로 놓는다. 학계 다수는 이 본문의 최종 편집 시기를 이스라엘이 바빌론에 포로로 끌려갔던 BC 6세기 전후(약 2,500년 전)로 보며, 이 장을 제국의 창조 신화에 맞서는 대항 서사로 읽는다. 세상이 신들의 전쟁 부산물이 아니라 말 한마디로 질서를 얻는다는 선언이기 때문이다.
사건
하나님은 말로 세상을 만들어 가셨어요. 첫날, 말 한마디로 빛이 생겼어요. 빛과 어둠이 나뉘어 낮과 밤이 되었어요. 둘째 날엔 하늘을 만드셨어요. 셋째 날엔 땅과 바다를 나누고 나무와 풀이 자라게 하셨어요. 넷째 날엔 해와 달과 별을 두셨어요. 다섯째 날엔 물고기와 새를 만드셨어요. 여섯째 날엔 여러 동물을 만들고, 맨 마지막에 사람을 만드셨어요. 남자와 여자였어요. 하나님은 이 사람들에게 세상을 돌보는 일을 맡기셨어요.
이야기는 엿새에 걸쳐 진행된다. 첫째 날 빛과 어둠이 나뉘어 낮과 밤이 생기고, 둘째 날 하늘이 자리를 잡는다. 셋째 날엔 땅과 바다가 나뉘고 식물이 돋아난다. 넷째 날엔 해와 달과 별이 하늘에 놓이고, 다섯째 날엔 물고기와 새가 생겨난다. 여섯째 날엔 땅의 동물들에 이어 마지막으로 사람이 만들어진다. 본문은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어졌다고 말하며, 남자와 여자로 지어졌다는 설명을 덧붙인다. 이들에게는 땅을 다스리고 돌보라는 역할이 주어진다. 이 대목에서 본문이 복수형 표현을 짧게 쓰는데, 이를 두고 후대에 여러 해석이 붙었다.
본문은 이레 중 엿새를 정교한 대구 구조로 짠다. 1~3일에 빛·하늘·바다와 육지라는 틀이 마련되고, 4~6일엔 그 틀을 채우는 거주자—해와 달과 별, 물고기와 새, 육지 동물과 사람—가 순서대로 들어선다. 이 형식 자체가 무작위 나열이 아니라 의도된 문학적 설계라는 근거로 흔히 제시된다. 사람을 가리켜 쓰인 첼렘(형상)이라는 단어는 고대 근동에서 왕이 자신이 직접 다스릴 수 없는 먼 지역에 세워 두던 조각상을 가리키는 말과 겹친다. 그래서 다수 학자는 이 구절을 사람이 신처럼 생겼다는 뜻이 아니라, 신을 대신해 세상을 다스리고 돌보는 대리자로 세워졌다는 뜻으로 읽는다. 본문에 짧게 등장하는 복수형 표현을 두고는 천상의 존재들과의 회의로 보는 견해, 장엄을 나타내는 어법으로 보는 견해, 삼위일체의 암시로 보는 후대 기독교적 해석이 나란히 존재하며 히브리어 성경 안에서 확정하기는 어렵다. 또한 하루로 옮기는 히브리어 욤이 24시간을 뜻하는지, 정해지지 않은 시대를 뜻하는지는 지금도 해석이 갈린다.
결과
하나님은 만드신 것을 보시고 좋다고 하셨어요. 일곱째 날, 하나님은 일을 쉬셨어요. 이날을 특별한 날로 정하셨어요. 이렇게 세상이 다 만들어졌어요. 사람들은 이제 이 세상에서 살아가게 되었어요.
여섯째 날이 끝나자 본문은 만들어진 모든 것을 두고 더할 나위 없이 좋다고 평가한다. 일곱째 날에는 특별한 창조 행위가 없다. 대신 처음으로 아무 일도 하지 않는 하루, 쉼이 놓인다. 훗날 이스라엘 공동체는 매주 하루를 일하지 않는 안식일 규정의 근거로 이 대목을 든다. 창세기 1장은 이렇게 혼돈에서 시작해 질서와 생명, 그리고 쉼으로 마무리된다. 다음 장부터는 이 세상 안에서 사람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살아가는지로 초점이 좁혀진다.
여러 학자는 일곱째 날의 안식을 단순한 쉼이 아니라 신이 자신의 처소, 곧 세상이라는 성전에 입주하는 장면으로 읽는다. 고대 근동에서 신전 건축 이야기는 흔히 신이 완성된 신전에 좌정해 쉬는 장면으로 끝난다는 점에서, 창세기 1장을 우주 전체를 신전으로 짓는 이야기로 보는 해석이 있다. 이 안식은 훗날 십계명의 안식일 규정, 출애굽기 20장 11절(출 20:11)이 직접 근거로 삼는 대목이기도 하다. 한편 문서가설을 따르는 학자들은 창세기 2장부터 시작되는, 사람과 동산을 중심으로 한 또 다른 창조 이야기를 별도의 전승(J 자료)으로 구분하며 두 이야기가 강조점이 다르다고 본다. 두 본문을 하나의 연속된 서술로 보는 전통적 읽기와, 서로 다른 전승이 나란히 편집되었다고 보는 읽기가 함께 존재한다.
잠깐, 이건 알고 가자
- 고대 근동의 다른 창조 이야기
- 이 시대 주변 나라들도 저마다 창조 이야기를 갖고 있었다. 바빌론의 에누마 엘리쉬에서는 신들이 싸우다 한 신의 몸으로 세상을 만든다. 창세기는 전쟁이 아니라 말로 질서가 잡히는 방식을 그린다는 점에서 대비된다.
- 안식일
- 일곱째 날 쉬었다는 이 대목은 훗날 이스라엘이 매주 하루를 일하지 않고 쉬는 안식일 규정의 근거가 된다.
흔한 오해
❌창세기 1장은 우주의 나이와 생성 순서를 알려주는 과학 보고서다.
⭕고대 근동의 창조 이야기 장르로 쓰인 글이며, 학계 다수는 이 본문이 현대 과학의 질문에 답하려는 목적으로 쓰이지 않았다고 본다. 기독교 안에서도 이 장을 문자 그대로 읽는 입장과 신학적 서술로 읽는 입장이 함께 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었다는 말은 사람이 신과 똑같이 생겼다는 뜻이다.
⭕다수 학자는 고대 근동에서 왕이 다스리는 땅 곳곳에 자신의 조각상을 세워 통치를 대신 나타내던 관습과 연결해, 이 표현을 외모가 아니라 세상을 대신 돌보고 다스리는 역할을 맡았다는 뜻으로 읽는다.
❌빛이 태양보다 먼저 만들어진 것은 창세기의 앞뒤가 안 맞는 실수다.
⭕본문은 1~3일에 공간을, 4~6일에 그 공간을 채우는 것을 대구로 배치한 문학적 구조를 갖는다. 이 순서를 과학적 사건 나열이 아니라 의도된 설계로 보는 해석이 있다.
그래서 이게 무슨 뜻일까
이 이야기는 세상이 아무렇게나 생기지 않았다고 말해요. 그리고 사람에게 세상을 돌보라는 일을 맡겼다고 해요. 여러분이 돌볼 수 있는 것은 무엇이 있을까요?
창세기 1장이 강조하는 것은 세상의 정확한 제작 공정이 아니라, 세상이 우연이나 혼돈의 산물이 아니라는 관점과 사람에게 돌봄의 역할이 맡겨졌다는 선언으로 읽힌다. 기독교는 이 본문을 신이 목적을 가지고 세상을 만들었다는 신앙 고백으로 받아들인다. 다만 그 '어떻게'—얼마나 걸렸고 어떤 순서였는지—를 둘러싼 논쟁은 기독교 내부에서도 계속되고 있다. 이 이야기를 읽고 나면 자연스럽게 드는 질문은 이것이다. 세상과 사람이 우연이 아니라 맡겨진 것이라면, 지금 내가 발 딛고 있는 자리를 어떻게 대해야 할까.
학문적으로 이 장을 보는 시각은 여러 갈래다. 문학비평은 명령-그대로 이루어짐-좋다는 평가로 반복되는 정형화된 틀에 주목해, 이 본문을 과학적 보고서가 아니라 신학적 성격이 짙은 정형시에 가까운 산문으로 읽는다. 역사비평은 이 장(제사장 문서, P)과 2장부터 이어지는 또 다른 창조 이야기(J 문서)를 서로 다른 전승으로 구분하고, 최종 편집자가 둘을 나란히 배치했다고 본다. 조직신학은 이 본문에서 무로부터의 창조(creatio ex nihilo) 교리를 끌어내지만, 본문 자체는 이미 존재하는 물과 어둠을 재료 삼아 정돈하는 장면에 가까워 이 교리가 본문에서 직접 도출되는지, 후대의 신학적 발전인지를 두고 이견이 있다. 창조와 진화를 둘러싼 현대의 논쟁도 이 장을 읽는 방식의 차이에서 비롯된 경우가 많다(아래 '보는 관점' 참고). 결국 이 장이 남기는 질문은 기원의 메커니즘보다 목적에 관한 것이다. 세상이 의도를 가지고 자리 잡았다는 이야기를 읽은 사람은, 자신이 그 안에서 어떤 역할을 맡았다고 볼 것인가.
창조와 진화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입장들이 있다.
젊은 지구 창조론 (문자적 6일)
창세기 1장의 하루를 문자 그대로 24시간으로 보고, 세상이 비교적 최근(수천 년 전)에 엿새 동안 만들어졌다고 본다.
- 매 창조일마다 하루의 시작과 끝을 표시하는 반복 문구를 문자적 하루의 근거로 읽는다.
- 출애굽기 20장 11절이 엿새 창조를 안식일 규정과 직접 연결한다는 점을 든다.
일부 복음주의·근본주의 교단
오래된 지구 · 유신진화론
하루를 문학적 틀 또는 매우 긴 시대로 보고, 우주와 생명의 나이를 다루는 현대 과학의 연구 결과(우주 약 138억 년, 지구 약 45억 년)와 조화시키려 한다.
- 히브리어 욤(하루)이 성경 다른 곳에서도 정해지지 않은 기간을 가리키는 데 쓰인다는 점을 든다.
- 1~3일과 4~6일이 짝을 이루는 문학적 구조를 과학적 사건 순서가 아니라 신학적 설계로 본다.
주류 개신교단·천주교 다수, 유신진화론을 지지하는 과학자·신학자 단체
공통점 두 입장 모두 세상이 우연이 아니라 신의 뜻과 목적에 따라 존재하게 되었다는 점에는 동의한다.
아직 논쟁 중인 부분 창세기 1장의 하루가 정말 무엇을 가리키는지, 그리고 성경의 언어와 현대 과학의 언어를 어떻게 함께 놓을 것인지는 기독교 안에서도 계속 논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