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비즈

카인과 아벨

형과 동생이 나란히 정성을 들였지만 한쪽만 인정받았다. 그 차이를 견디지 못한 형이 동생을 들판으로 불러냈다.

창세기 · 창세기 4장 · 원역사 · 읽는 시간 약 3

cainabeladameve

이야기

  1. 상황

    아담과 하와에게는 아들이 둘 있었어요. 큰아들은 가인, 작은아들은 아벨이에요. 가인은 농사를 지었고 아벨은 양을 쳤어요. 어느 날 두 사람은 각자 하나님께 제물을 드렸어요. 하나님은 아벨의 제물은 기뻐 받으셨어요. 그런데 가인의 제물은 받지 않으셨어요. 성경은 그 이유를 자세히 말하지 않아요. 가인은 몹시 화가 났고, 얼굴빛이 어두워졌어요.

    아담과 하와의 두 아들 가인과 아벨은 하는 일이 서로 달랐다. 가인은 땅을 일구는 농부였고, 아벨은 양 떼를 치는 목자였다. 두 사람은 각자 얻은 것 중 일부를 신에게 바쳤다. 가인은 곡식을, 아벨은 양 떼의 첫 새끼를 가져왔다. 본문은 신이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반갑게 받아들였지만,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아들이지 않았다고만 짧게 전한다. 왜 그런 차이가 생겼는지는 본문 스스로 설명하지 않는다. 가인의 얼굴에는 분노가 그대로 드러났다.

    본문(창 4:1-5)은 두 형제가 각각 '민하'(מִנְחָה)를 드렸다고 전한다. 이 단어는 훗날 레위기에서 곡식 제물을 가리키는 전문 용어로 굳어지지만, 여기서는 아직 제물 일반을 뜻하는 넓은 말로 쓰인다. 본문의 표현에는 미묘한 차이가 있다. 아벨은 '양 떼의 첫 새끼와 그 기름'을 가져왔다고 구체적으로 적힌 반면, 가인은 그냥 '땅의 소산'을 가져왔다고만 되어 있다. 이 표현 차이를 근거로 가인이 최선의 것을 드리지 않았다고 보는 독법이 있지만, 본문이 그렇게 명시하지는 않는다. 신이 누구의 제물을 '돌아보았다'(샤아, שָׁעָה)는 표현 역시 구체적인 판단 기준을 밝히지 않은 채 결과만 전한다. 창세기 전체에서 되풀이되는 '맏이가 아닌 자가 더 인정받는' 패턴 - 에서 대신 야곱, 므낫세 대신 에브라임 - 의 첫 사례로 이 장면을 읽는 학자들도 있다.

  2. 사건

    하나님이 가인에게 물으셨어요. "왜 화가 났니? 잘하면 얼굴을 들 수 있을 거야. 그런데 죄가 문 앞에서 너를 노리고 있어. 너는 그것을 이길 수 있어." 하나님은 가인에게 미리 알려 주셨어요. 그런데도 가인은 동생에게 들로 나가자고 했어요. 그리고 들에서 아벨을 죽이고 말았어요.

    신은 가인에게 왜 화가 났는지 물으며 경고를 하나 덧붙인다. 잘하면 얼굴을 들 수 있을 것이고, 죄가 문 앞에 도사리고 있으니 그것을 다스려야 한다는 말이었다. 살인이 벌어지기 전, 가인에게는 아직 선택의 여지가 남아 있었던 셈이다. 그러나 가인은 아벨에게 들로 나가자고 청했고, 들판에서 동생을 쳐 죽였다. 성경에 기록된 첫 죽음이 형제의 손에 의한 살인이라는 사실은, 이후 창세기 전체에서 반복되는 폭력 이야기의 출발점이 된다.

    신의 경고(창 4:6-7)는 히브리어 구문이 까다롭기로 유명한 대목이다. '죄가 문에 엎드려 있다'는 문장에서 '엎드리다'(로베츠, רֹבֵץ)는 사자 같은 짐승이 사냥감을 노리며 웅크린 자세를 가리키는 동사다. 죄를 문 앞에서 기회를 노리는 짐승으로 그리는 이 은유는 성경 전체에서 이례적이다. 뒤이은 '너는 죄를 다스릴 수 있다'는 구절은 인간에게 도덕적 선택의 여지가 있다고 전제하는 진술로 읽힌다. 그런데도 정작 살인 장면(4:8) 자체는 극도로 간결하다. 마소라 본문은 '가인이 아벨에게 말하였다'라고만 적고 무슨 말이었는지는 밝히지 않은 채 곧바로 '들에 있을 때 일어나 그를 죽였다'로 넘어간다. 칠십인역과 사마리아 오경 등 일부 고대 역본은 이 공백을 메우려 '우리가 들로 나가자'는 대사를 끼워 넣었지만, 마소라 본문에는 없는 삽입이다.

  3. 결과

    하나님이 가인에게 물으셨어요. "네 동생 아벨이 어디 있니?" 가인이 대답했어요. "몰라요. 제가 동생을 지키는 사람인가요?" 하나님은 이미 다 알고 계셨어요. 가인은 벌을 받았어요. 이제 땅에서 곡식이 잘 자라지 않았어요. 가인은 이곳저곳을 떠돌아야 했어요. 가인은 자기도 죽임을 당할까 봐 무서웠어요. 그러자 하나님은 가인에게 특별한 표를 주셨어요. 아무도 가인을 죽이지 못하게 하신 거예요.

    신이 가인에게 동생이 어디 있는지 묻는다. 가인은 모른다며, 자신이 동생을 지키는 사람이냐고 되묻는다. 신은 이미 답을 알고 있었다. 벌로 땅은 더 이상 그에게 소출을 내주지 않고, 가인은 정착하지 못한 채 떠도는 신세가 된다. 가인은 이제 자신도 누군가에게 죽임당할까 두려워하는데, 신은 뜻밖에도 그를 벌하는 대신 표를 주어 아무도 그를 해치지 못하게 한다. 가인은 에덴 동쪽 놋 땅가인이 정착했다고 전해지는 곳으로, 이름 자체가 '방황·떠돎'이라는 뜻이다. 실제 지리적 위치는 알려져 있지 않다.에 정착해 아들의 이름을 딴 성읍을 세운다. 훗날 그의 후손 라멕은 자신을 해치지도 않은 사람을 죽이고, 가인보다 훨씬 큰 보복을 자랑하는 노래를 부른다. 폭력은 세대를 거듭할수록 커져 갔다.

    가인에 대한 판결(4:10-12)은 땅과의 관계 단절로 요약된다. 아벨의 피가 땅에서 신을 향해 '부르짖는다'는 표현은 피 흘림이 땅 자체를 오염시킨다는 고대 근동의 공통된 관념을 반영한다. '표'(오트, אוֹת)의 정체는 본문이 특정하지 않는다. 흔히 낙인이나 저주의 표식으로 오해되곤 하지만, 본문상의 기능은 정반대다. 보복으로부터 가인을 보호하는 장치다. 살인자에게 내려진 조치가 형벌의 강화가 아니라 생명 보호였다는 점은 이 본문의 신관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로 다뤄진다. 가인이 세운 최초의 성읍(4:17)과 그 후손 라멕의 '노래'(4:23-24, 자신에게 상처를 입힌 젊은이를 죽이고 가인보다 열한 배 많은 77배의 보복을 선언하는 대목)는 폭력이 도시 문명과 함께 기하급수적으로 커져가는 궤적을 그린다. 이 궤적은 창세기 6장 '땅이 폭력으로 가득했다'는 서술로 이어지며 뒤이은 홍수 심판의 배경이 된다.

잠깐, 이건 알고 가자

제물(민하)
고대에는 자신이 거둔 것 중 일부를 신에게 바치는 관습이 흔했다. 히브리어 '민하'는 훗날 레위기에서 곡식 제물을 가리키는 전문어로 좁아지지만, 이 본문에서는 제물 전반을 뜻하는 넓은 말로 쓰였다.
아벨(헤벨)이라는 이름
히브리어 '헤벨'은 숨, 안개, 헛됨을 뜻한다. 전도서의 유명한 구절 '헛되고 헛되도다'에 쓰인 것과 같은 단어다. 이 이름이 그의 짧은 생애를 미리 암시한다고 읽는 이들도 있지만, 이름과 이야기의 인과관계를 본문이 직접 밝히지는 않는다.
놋 땅
가인이 정착했다고 전해지는 곳으로, 이름 자체가 '방황·떠돎'이라는 뜻이다. 실제 지리적 위치는 알려져 있지 않다.

흔한 오해

가인은 태어날 때부터 악하게 정해져 있던 인물이다.

본문은 그런 설명을 하지 않는다. 신은 살인이 벌어지기 전 가인에게 직접 다가와 경고하며 '너는 죄를 다스릴 수 있다'고 말한다. 본문은 오히려 가인에게 선택의 여지가 있었다는 전제 위에 서 있다.

아벨의 제물이 받아들여진 이유는 동물을 바쳤기 때문이고, 피 흘림 없이는 죄가 다뤄지지 않는다는 원리가 이 본문에 이미 명시되어 있다.

본문 자체는 두 제물 중 무엇이 문제였는지 밝히지 않는다. '피 흘림'을 강조하는 해석은 훗날 신약(히브리서)의 신학을 이 본문에 되비춰 읽은 결과에 가깝다.

가인의 이마에 찍힌 표는 저주와 수치의 낙인이다.

본문에서 이 표는 오히려 보호 장치로 기능한다. 살인자인 가인을 아무도 죽이지 못하게 막기 위해 주어졌다. 표의 실제 모양이나 위치는 본문에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이게 무슨 뜻일까

가인은 동생을 죽였어요. 그런데도 하나님은 가인을 완전히 버리지 않으셨어요. 나쁜 짓을 해도 다시 시작할 기회가 있다는 뜻일까요? 여러분은 화가 났을 때 어떻게 하나요?

이 이야기는 흔히 '최초의 살인'으로만 요약되지만, 본문이 공들여 다루는 것은 오히려 그 앞뒤다. 화가 난 가인에게 신이 먼저 다가와 경고했다는 점, 그리고 살인 뒤에도 신이 그를 완전히 끊어내지 않고 보호했다는 점이다. 형제 사이의 비교와 인정받고 싶은 마음, 그로 인한 분노는 오늘날에도 낯설지 않은 감정이다. 이 이야기가 묻는 것은 '왜 아벨이 선택받았는가'보다 '선택받지 못했다고 느낀 순간 무엇을 했는가'에 더 가까울 수 있다.

이 장면을 어떻게 읽을지는 초점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갈린다. 하나는 신정론적 독법으로, 왜 신이 한쪽 제물만 받아들였는가에 초점을 맞춘다. 다른 하나는 인간학적 독법으로, 그 선택 이후 가인이 자신의 감정을 어떻게 처리했는가에 초점을 맞춘다. 본문의 서술 비중 자체는 후자에 훨씬 많은 지면을 할애한다. 제물 사건은 단 세 절로 지나가지만, 신의 경고와 가인의 반응, 이후의 심문과 처분은 그보다 훨씬 길게 이어진다. 이 배분을 어떻게 해석할지는 독자에게 열려 있다.

왜 아벨의 제물은 받아들여지고 가인의 제물은 받아들여지지 않았을까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입장들이 있다.

제물의 종류가 문제였다는 해석

동물을 잡아 드리는 제사만이 유효했고, 곡식 제물은 그 자체로 부족했다고 본다.

  • 창세기 3:21에서 신이 동물 가죽으로 사람을 입힌 장면과 연결하는 독법
  • 히브리서 9:22의 '피 흘림이 없으면 사함도 없다'는 신약의 원리를 이 본문에 앞당겨 적용하는 해석

일부 개신교 전통, 대속 제사를 강조하는 해석

제물을 드리는 태도가 문제였다는 해석

본문은 제물의 종류가 아니라 드리는 사람의 자세와 진정성을 문제 삼는다고 본다.

  • 히브리서 11:4이 아벨의 제사를 '믿음으로' 드린 것으로 평가하며 기준을 태도에 두는 점
  • 창세기 4:7에서 신이 가인에게 '잘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고 말해, 제물의 종류가 아니라 가인 자신의 반응을 문제 삼는 점

다수의 현대 주석가

공통점 본문 자체는 두 제물의 차이를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는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

아직 논쟁 중인 부분 '받아들여졌다·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표현이 정확히 어떤 기준을 뜻하는지는 본문만으로 확정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