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질문
구약에 나오는 가나안 정복과 진멸 명령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여호수아서 등 구약 일부 본문은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서 그 땅의 주민을 '진멸'(완전히 없앰)하라는 명령을 받았다고 기록한다. 이 본문을 문자 그대로의 전면적 학살 명령으로 읽을지, 고대 근동의 전쟁 수사법으로 읽을지, 역사적 사실성 자체에 의문을 제기할지에 대해 기독교 안에서도, 성서학계 안에서도 입장이 크게 갈린다.
구약성경에는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이라는 땅에 들어가면서 그 땅에 살던 사람들을 다 없애라는 명령을 받았다는 이야기가 나와요(여호수아서). 이 이야기를 읽으면 "하나님이 정말 그런 명령을 내렸다고?" 하는 마음이 들 수 있어요.
이 본문을 두고도 사람마다 생각이 달라요. 어떤 사람은 "정말 그런 일이 있었고, 그건 그 땅 사람들의 잘못에 대한 벌이었다"고 봐요. 어떤 사람은 "옛날 전쟁 이야기는 원래 좀 과장해서 쓰는 게 관습이었다. '다 죽였다'는 말도 그런 과장된 표현일 수 있다"고 봐요. 또 어떤 사람은 "땅을 파 보면 그 시절에 그렇게 큰 전쟁이 있었다는 증거가 뚜렷하지 않다. 그래서 이 이야기가 실제 역사라기보다 나중에 쓰인 이야기일 수도 있다"고 봐요.
어느 쪽이든, 이 이야기가 오늘 읽는 사람에게 불편한 질문을 던진다는 사실은 다들 인정해요.
구약성경 여호수아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서, 그 땅의 여러 성읍과 주민을 '진멸'(히브리어 '헤렘' — 완전히 없애 하나님께 바친다는 뜻의 개념)하라는 명령을 받았다고 기록한다. 이 본문은 현대 독자에게 가장 다루기 어려운 구약 본문 중 하나로 꼽힌다. 이 명령을 어떻게 이해할지를 두고 기독교 신학 안에서도, 성서학계 안에서도 입장이 크게 갈린다.
'문자적 심판'으로 보는 입장은 본문이 말하는 대로 실제 진멸 명령이 있었고, 이는 가나안 사회의 극심한 도덕적 타락(우상숭배, 아동 제사 등 구약 다른 곳에서 비판받는 관습들)에 대한 하나님의 정당한 심판이었다고 본다. '고대 근동 전쟁 수사법'으로 보는 입장은 관점이 다르다. 고대 근동의 다른 정복 기록들도 "모조리 죽였다", "하나도 남기지 않았다" 같은 표현을 실제 전멸이 아니라 군사적 승리를 극적으로 과장하는 관용적 표현으로 썼다는 비교 연구를 근거로, 여호수아서의 표현도 문자 그대로의 대량학살이 아니라 이런 고대의 문학적 관습으로 읽어야 한다고 본다. 실제로 여호수아서 안에서도 특정 지역을 '진멸했다'고 선언한 뒤, 다른 곳(사사기 등)에서는 그 지역 원주민이 계속 등장하는 등 본문 내부에 긴장이 있다는 점이 이 해석의 근거로 언급된다.
세 번째로, 이 정복 기사의 역사적 사실성 자체에 의문을 제기하는 입장이 있다. 정복 시기로 추정되는 시대의 고고학적 발굴에서, 여호수아서가 묘사하는 규모의 대대적인 파괴 흔적이 여리고·아이 같은 주요 유적에서 뚜렷하게 확인되지 않는다는 점이 근거로 제시된다. 이 입장은 가나안 정복 기사가 실제 역사적 사건의 기록이라기보다, 훨씬 후대에 신학적 메시지를 담아 구성된 서사일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세 입장 모두, 이 본문이 오늘날 독자에게 도덕적으로 무겁고 불편한 질문을 던진다는 사실 자체는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그 불편함에 어떻게 응답할지는 본문을 어떤 성격의 텍스트로 읽느냐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헤렘'은 전쟁에서 얻은 것을 완전히 파괴하거나 하나님께 바쳐 사람이 사사로이 취하지 못하게 하는 고대 이스라엘의 종교적 관습을 가리키는 용어다. 여호수아 6~11장은 여리고, 아이, 하솔 등 여러 성읍을 상대로 이 헤렘이 시행되었다고 기록한다. 이 본문의 도덕적 난제는 오래전부터 신학자들의 논의 대상이었다 — 이미 2세기에 마르키온이라는 인물은 구약의 이런 본문들을 근거로 구약의 신과 신약의 신이 서로 다른 존재라고까지 주장했으나(이는 이단으로 정죄됐다), 이는 이 본문이 초대교회 때부터 해석적으로 까다로운 문제였음을 보여준다.
'문자적 심판'으로 보는 입장도 현대 학계에서 계속 다듬어져 왔다. 이 입장을 지지하는 학자들은 이 명령을 임의적 폭력이 아니라, 도덕적으로 완전한 신이 극심한 악에 대해 내리는 정당한 심판이라는 틀(신적 명령론, divine command theory)로 설명한다. 근거로는 가나안 지역에서 아동을 신에게 제물로 바치는 관습(몰렉 숭배 등)이 있었다는 구약의 반복된 비판(레 18:21, 왕하 23:10 등)과, 가나안과 문화적으로 가까운 페니키아·카르타고 지역의 고고학 발굴에서 실제로 유아 화장 유골이 다수 매장된 '토펫'(tophet) 유적이 확인된다는 점을 든다. 미국 신학자 클레이 존스 등은 이런 근거를 들어, 본문이 묘사하는 심판을 현대의 도덕 기준으로 성급하게 재단하기보다 그 심판의 대상이 된 관행 자체의 심각성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입장에서는 하나님이 가나안 주민에게도 오랜 유예 기간(창 15:16)을 두었다는 점, 그리고 라합처럼 개인적으로 항복하거나 돌아선 사람은 심판에서 제외됐다는 점(수 6:25)도 함께 근거로 제시된다.
고대 근동 비교연구를 근거로 한 해석은 최근 수십 년 사이 복음주의 학계 안에서 상당한 지지를 얻었다. 대표적으로 모압의 메사 석비(기원전 9세기)는 모압 왕 메사가 이스라엘 성읍을 정복하며 "이스라엘은 영원히 멸망했다"는 취지의 표현을 쓰는데, 실제로는 이스라엘이 그 이후로도 계속 존속했다. 이는 고대 근동에서 전쟁 승리를 서술할 때 문자적 사실보다 수사적 과장을 널리 사용했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자주 인용된다. 일부 현대 복음주의 학자들은 이런 비교 자료를 근거로, 여호수아서의 '진멸' 언어도 유사한 과장 수사이며, 실제로는 가나안 원주민 지배층·군사력에 대한 결정적 승리를 뜻하는 관용적 표현이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한다. 이 해석은 여호수아서 자체가 뒤에서 그 땅에 여전히 가나안 원주민이 살고 있다고 언급하는 본문상의 긴장(예: 여호수아 13장, 15~17장)과도 잘 들어맞는다는 평가를 받는다.
고고학적 논쟁은 20세기 중반 이후 본격화됐다. 영국 고고학자 캐슬린 케니언은 1950년대 여리고 유적을 발굴하며, 성경이 말하는 정복 시기(대체로 기원전 15세기 또는 13세기로 추정되며 학설이 갈린다)에 해당하는 층에서 뚜렷한 도시 파괴의 증거를 찾지 못했고, 오히려 그보다 훨씬 이른 시기(기원전 16세기경)에 이미 도시가 파괴된 것으로 결론지었다. 이는 여호수아서의 정복 서술과 시기가 맞지 않는다는 문제를 제기했다. 이에 대해 일부 학자들은 케니언의 연대 추정 방법에 이의를 제기하며 다른 해석을 시도했지만, 이는 고고학계 주류에서 폭넓게 받아들여지지는 않고 있다. '아이'로 추정되는 유적(에트-텔)에서도 정복 시기에 해당하는 층에서 뚜렷한 점령 흔적 자체가 확인되지 않는다는 점이 별도의 문제로 지적된다.
이런 고고학적 문제 제기를 근거로, 일부 이스라엘 고고학자들은 이른바 '점진적 정착' 또는 '평화적 침투' 모델을 제시한다. 이는 대규모 군사 정복이 아니라, 가나안 산지에 소규모 집단들이 점진적으로 정착해 가는 과정을 통해 이스라엘이 형성되었다고 보는 모델이다. 이 모델은 사사기 1장이 여호수아서와 달리 여러 지역에서 가나안 원주민과 이스라엘이 함께 살아갔다고 서술하는 점을 본문 내적 근거로 든다. 이 관점에서 정복 기사 자체는 훨씬 후대(다수설은 왕정 시대 이후로 추정)에, 신앙 공동체의 정체성과 신학적 메시지(하나님의 심판과 언약에 대한 신실함)를 담아 구성된 문학으로 이해된다.
이 논쟁은 성경 역사 서술을 얼마나 문자적으로 읽을 것인가라는 더 넓은 질문과 맞닿아 있으며, 동시에 신정론(왜 고통과 폭력이 존재하는가)과도 다른 각도에서 연결된다. 다만 이 문제는 "왜 고통이 있는가"가 아니라 "성경에 기록된 특정 폭력을 신적 명령으로 볼 수 있는가"를 묻는다는 점에서 신정론 논의와는 구별해서 다뤄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구약의 진멸(헤렘) 명령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입장들이 있다.
문자적 심판으로 이해하는 입장
본문이 묘사하는 대로 실제로 전면적인 진멸 명령이 있었고, 이는 가나안 사회의 극심한 도덕적 타락(우상숭배, 자녀를 제물로 바치는 관습 등)에 대한 하나님의 정당한 심판이었다고 본다.
- 신명기 9장 4~5절 등 본문 스스로 이를 심판으로 설명하는 구절
- 창세기 15장 16절의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가득 차지 않았다'는 표현을 심판의 유예 기간으로 해석
전통적·보수적 해석, 일부 복음주의 변증학자
고대 근동 전쟁 수사법으로 이해하는 입장
고대 근동의 다른 정복 기록들도 '모조리 죽였다', '하나도 남기지 않았다' 같은 표현을 실제 전멸이 아니라 군사적 승리를 극적으로 과장하는 관용적 수사로 사용했다는 점을 근거로, 여호수아서의 표현도 문자적 대량학살이 아니라 이런 고대의 문학적 관습으로 읽어야 한다고 본다.
- 모압의 메사 석비 등 비교 고대근동 문헌에서 확인되는 유사한 과장 표현
- 여호수아서 안에서도 '진멸'을 선언한 지역에 이후에도 원주민이 계속 살고 있었다고 언급되는 본문상의 긴장
일부 현대 복음주의 성서학자(예: 폴 코판 등)
역사적 사실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입장
정복 시기로 추정되는 시대의 고고학적 발굴 결과(여리고·아이 유적에서 여호수아서가 묘사하는 규모의 파괴 흔적이 뚜렷하게 확인되지 않는다는 점 등)를 근거로, 정복 기사 자체가 실제 역사라기보다 후대(주로 왕정 시대 이후)에 신학적 목적으로 구성된 서사일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 이스라엘 고고학계 일부(핑켈스타인 등)의 발굴 결과와 '점진적 정착' 모델
- 사사기 1장이 여호수아서의 '완전 정복' 서술과 다르게 가나안 원주민과의 지속적 공존을 묘사한다는 본문 내부의 긴장
다수 역사비평학자, 일부 고고학자
공통점 이 본문이 오늘날 독자에게 도덕적으로 불편한 질문을 던진다는 사실, 그리고 이를 가볍게 넘기지 않고 진지하게 씨름해야 할 문제로 다뤄야 한다는 점은 대체로 동의한다.
아직 논쟁 중인 부분 본문을 문자적 역사로 읽을지, 과장된 수사로 읽을지, 역사성 자체를 의심할지에 대한 결론은 신학계와 고고학계 모두에서 나 있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