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쟁
그리스도인은 술과 담배를 하면 안 되나?
그리스도인 사이에서도 답이 갈린다. 술 자체는 죄가 아니며 지나친 음주와 중독이 문제라고 보는 입장과, 몸이 하나님의 영이 거하는 성전이므로 아예 마시지 않는 것이 옳다고 보는 입장이 함께 있다. 담배는 성경에 직접 나오는 대상이 아니어서, 두 입장 모두 건강을 해치는 습관이라는 이유로 대체로 부정적으로 본다.
교회 다니는 사람이라고 다 술을 안 마시는 건 아니에요. 어떤 교회 어른은 명절에 술을 한잔 해요. 어떤 교회 어른은 술을 아예 입에 대지 않아요. 둘 다 그리스도인인데 왜 다를까요?
기독교인들 생각은 하나로 정해져 있지 않아요. 어떤 사람들은 "술 자체는 나쁜 게 아니야"라고 말해요. "너무 많이 마셔서 취하는 게 문제야"라고요. 성경에는 예수님이 잔치에서 물을 포도주로 바꾼 이야기가 나와요.
다른 사람들은 생각이 달라요. "몸은 하나님이 계신 곳이니 술도 담배도 안 하는 게 좋아"라고 말해요. 우리나라 교회에는 오래된 전통이 있어요. 옛날 선교사님들 때부터 술과 담배를 멀리해 왔거든요.
담배는 성경에 나오는 물건이 아니에요. 그래도 두 생각 모두 담배는 몸에 안 좋다고 봐요. 생각이 다르다고 어느 한쪽이 틀린 건 아니에요.
그리스도인이 술과 담배를 해도 되는가라는 질문에는 하나의 정답이 없다. 같은 성경을 읽으면서도 교단과 전통에 따라 서로 다른 결론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한쪽은 '절제적 허용' 입장이다. 술 자체를 죄로 보지 않고, 지나친 음주와 중독만을 문제로 본다. 이 입장은 예수가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물을 포도주로 바꿔 하객들과 나눈 사건(요한복음 2장 1~11절, 요 2:1-11)을 근거로 든다. 최후의 만찬에서 포도주를 사용해 온 오랜 전통도 함께 근거로 제시된다. 천주교, 정교회, 유럽의 개신교 교단 다수, 성공회 등이 이 입장에 가깝고, 이들 교회는 미사나 예배에서도 실제로 포도주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다른 한쪽은 '금욕 원칙' 입장이다. 몸이 하나님의 영이 거하는 성전이라는 가르침(고린도전서 6장 19~20절, 고전 6:19-20)을 근거로, 몸을 해치는 술과 담배를 아예 삼가야 한다고 본다. 이 입장은 한국 교회에서 특히 뚜렷하다. 19세기 말 이후 조선에 들어온 선교사들은 절제 운동을 함께 들여왔고, 세례를 준비하는 과정에 금주와 금연을 포함시켰다. 이 전통은 오늘날까지 한국 장로교와 감리교 다수, 구세군, 일부 보수 침례교단의 관행으로 이어지고 있다.
담배는 술과 사정이 조금 다르다. 성경 어디에도 담배라는 물건 자체가 등장하지 않는다. 그래서 흡연에 대한 입장은 특정 구절 해석을 둘러싼 신학 논쟁이라기보다 '몸을 해치는 중독성 습관'이라는 건강과 절제의 관점에서 다뤄지는 경우가 많다. 두 입장 모두 흡연에는 대체로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두 입장이 동의하는 지점도 있다. 정도가 지나쳐 중독에 이르거나, 스스로를 해치고 주변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는 점이다. 이 사이트는 어느 쪽이 옳다고 판단하지 않으며, 두 입장의 구체적인 근거는 아래에 정리했다.
'그리스도인은 술과 담배를 해도 되는가'라는 질문은 성경 해석의 문제인 동시에, 각 교회가 걸어온 역사적 경로의 문제이기도 하다.
절제적 허용 입장의 핵심 근거는 성경이 음주 자체를 금지하는 명령을 어디에도 두지 않았다는 점이다. 요한복음 2장 1~11절(요 2:1-11)에 기록된 가나의 혼인잔치 사건에서 예수는 물을 포도주로 바꾸어 하객들에게 냈고, 최후의 만찬에서도 포도주를 사용했다. 이런 본문들은 술 자체가 죄가 아니라 하나님이 허락한 것 가운데 하나로 여겨질 수 있다는 근거로 제시된다. 다만 고대 지중해 지역의 포도주는 대개 물에 희석해 마셨다는 점에서, 오늘날의 독한 증류주와 성경 시대의 포도주를 곧바로 같은 것으로 놓고 비교하기는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이 때문에 절제적 허용 입장 안에서도 구체적으로 무엇을 얼마나 마시는 것까지 허용할지는 신중론과 관대론으로 다시 갈린다. 천주교와 정교회는 미사·성찬성찬성찬은 예수가 십자가에 달리기 전날 밤 제자들과 나눈 마지막 식사를 기념해, 교회가 빵과 포도주를 나누는 의식이다. 전례에서 실제 포도주를 사용하며, 루터교·성공회·개혁교회 등 유럽 개신교 다수도 음주 자체를 죄로 규정하지 않는다.
금욕 원칙 입장은 고린도전서 6장 19~20절(고전 6:19-20), 곧 그리스도인의 몸이 그 안에 계신 성령의 성전이라는 가르침을 핵심 근거로 삼는다. 몸을 해치는 것으로 여겨지는 술과 담배를 삼가는 일이 이 가르침을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방식이라고 본다. 이 입장이 한국 교회에서 특히 강하게 자리 잡은 데는 분명한 역사적 배경이 있다. 19세기 말 조선에 들어온 미국 선교사 다수는 청교도적이고 경건주의적인 신앙 성향과, 당시 미국 개신교 안에서 세를 넓혀 가던 절제 운동(temperance movement)의 영향을 함께 지니고 있었다. 이들은 술과 담배를 개인의 습관을 넘어 사회 전체를 병들게 하는 문제로 보았고, 세례를 앞둔 교인 교육 과정에 금주·금연을 포함시켰다. 이렇게 뿌리내린 절제 문화는 1920년대를 지나며 한국 기독교인들 사이에서 개인의 습관 교정 운동을 넘어 사회 정화 운동의 성격까지 띠게 됐다. 이 전통은 오늘날까지 한국 장로교·감리교 다수 교단과 구세군, 일부 보수 침례교단의 관행으로 이어지고 있다.
담배는 이 논쟁에서 결이 다른 대상이다. 담배는 아메리카 대륙이 원산지여서, 성경이 기록된 시대의 지중해 세계에는 알려져 있지 않았다. 그래서 흡연에 대한 찬반은 특정 구절의 해석을 둘러싼 신학 논쟁이라기보다, 몸을 해치는 중독성 습관을 절제해야 한다는 원칙을 담배에 어떻게 적용할지의 문제로 다뤄진다. 술에 대해서는 입장이 갈리는 절제적 허용 진영 안에서도 흡연에 대해서는 부정적으로 보는 목소리가 상대적으로 많은 이유다.
두 입장의 차이를, 신학적 결론의 차이라기보다 각 교회가 형성된 문화적·역사적 경로의 차이로 설명하는 시각도 있다. 포도주가 일상 식문화의 일부로 자리 잡은 사회에서 형성된 유럽 교회와, 서구 절제 운동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선교사들에 의해 세워진 한국 교회의 차이가 오늘날의 입장 차이로 이어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다만 이런 역사적 설명이 신학적 논쟁 자체를 종결시키는 것은 아니다. 오늘날 한국 교회 안에서도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절제적 허용 입장에 관심을 갖는 흐름이 있는 한편, 전통적인 금주·금연 관행을 지금도 유지하는 교회가 여전히 다수를 이룬다.
그리스도인이 술을 마시거나 담배를 피워도 되는가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입장들이 있다.
절제적 허용 입장
술 자체를 죄로 보지 않고, 지나친 음주와 중독만을 문제로 본다. 예수가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물을 포도주로 바꾼 사건과, 최후의 만찬에서 포도주를 사용해 온 전통을 술 자체가 금지된 것이 아니라는 근거로 든다.
- 요한복음 2장 1~11절(요 2:1-11) —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물을 포도주로 바꾼 사건 (자체 풀이)
- 최후의 만찬에서 포도주를 사용한 전통과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성찬 전례
- 성경이 '술 취함'은 경계하되 음주 자체를 금지하는 명령은 두지 않았다는 해석
천주교, 정교회, 유럽 개신교 다수, 성공회 등
금욕 원칙 입장
몸이 하나님의 영이 거하는 성전이라는 가르침을 근거로, 몸을 해치는 술과 담배를 아예 삼가야 한다고 본다. 한국 교회는 초기 선교사들이 정착시킨 금주·금연 전통을 오늘날까지 신앙 실천의 일부로 이어가는 경우가 많다.
- 고린도전서 6장 19~20절(고전 6:19-20) — 몸이 성령이 거하는 성전이라는 가르침 (자체 풀이)
- 19세기 말 이후 내한 선교사들이 세례 교육과 절제운동을 통해 금주·금연을 정착시킨 역사
한국 장로교·감리교 다수(선교 초기부터 이어진 전통), 구세군, 일부 보수 침례교단
공통점 정도가 지나쳐 중독에 이르거나, 스스로를 해치고 주변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것은 옳지 않다는 데는 두 입장 모두 동의한다.
아직 논쟁 중인 부분 술을 절제 안에서 허용된 것으로 볼지 아예 금지된 것으로 볼지는 신학적 결론이라기보다 각 교회가 속한 문화적·역사적 전통에 따라 갈리는 경우가 많아, 하나로 정리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