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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 예언

이사야 무너지기 전의 경고에서, 무너진 뒤의 위로로

제국의 군대가 성벽 밖에 진을 치고, 적군 장교가 성 안 사람들이 알아듣는 말로 항복을 권하던 날이 있었다. 이 책에는 그 공포 한복판에서 터져 나온 말과, 결국 나라가 사라진 뒤 폐허에 주저앉은 사람들에게 건네진 말이 한 두루마리에 나란히 붙어 있다.

저자(전승)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 BC 8세기 예루살렘에서 활동하며 왕궁을 드나들던 예언자 한 사람이 66장 전체를 남겼다고 본다.
저자(학계)
책을 여러 층으로 나눠 보는 견해가 널리 논의된다. 1~39장을 BC 8세기 이사야와 그 제자 집단(제1이사야), 40~55장을 바벨론 포로기 끝 무렵의 이름 모를 예언자(제2이사야), 56~66장을 고향으로 돌아온 뒤의 또 다른 손(제3이사야)으로 구분하는 방식이다. 40장부터 청중이 이미 포로로 끌려간 사람들로 바뀌고 문체와 어휘도 달라진다는 본문 자체의 특징이 근거로 제시된다. 반면 전체를 한 예언자의 작품으로 보는 견해도 유지되며, 66장을 관통하는 주제어와 표현의 통일성, 그리고 신약이 이 책 전체를 한 사람의 이름으로 인용한다는 점을 근거로 든다. 어느 쪽도 학계에서 종결된 문제가 아니다.
연대
이사야가 활동한 시기는 BC 740~680년경(약 2천 7백 년 전)으로 본다. 기록 시기는 전승에 따르면 BC 8세기 후반이고, 학계 다수는 BC 8세기부터 BC 5세기까지(약 2천 4백~2천 7백 년 전) 여러 단계를 거쳐 지금의 형태가 되었다고 본다.
장 수
66

3막 요약

  1. 상황

    이사야는 아주 오래전 사람이에요. 유다라는 작은 나라에 살았어요. 북쪽에는 아주 힘센 나라가 있었어요. 그 나라 군대가 이웃들을 차례로 무너뜨렸어요. 유다 사람들은 무서웠어요. 왕은 그 힘센 나라와 손잡으려 했어요. 이사야는 그러지 말라고 했어요. 그러면서 더 아픈 말도 했어요. 나라 안이 먼저 썩었다는 거예요. 힘없는 사람들이 억울한 일을 많이 당했거든요. 이사야는 그게 진짜 위험이라고 했어요.

    이사야가 살던 유다는 지도에서 손톱만 한 나라였다. 북쪽에는 오늘날 이라크 북부에서 일어난 앗수르 제국이 있었다. 앗수르는 정복한 도시의 주민을 통째로 다른 지역에 강제 이주시켜 저항의 뿌리를 뽑았다. 이사야가 활동하는 중에 형제 나라인 북이스라엘이 실제로 그렇게 지워졌다(BC 722년, 약 2천 7백 년 전). 유다의 왕들은 살아남을 계산을 했다. 조공을 바치며 엎드릴 것인가, 남쪽 이집트와 손잡고 반란을 걸 것인가. 이사야는 그 계산 자체를 문제 삼았다. 강대국의 힘만 재는 저울 위에서 미래를 정하는 태도를 불신했고, 돈으로 산 안전은 오래가지 않는다고 반복했다. 동시에 그는 바깥보다 안쪽을 더 아프게 찔렀다. 재판정에서 가난한 사람의 사정이 뒤로 밀리고, 이웃의 땅까지 사들여 붙이는 사람들이 늘고, 예배는 성대한데 그 예배를 드리는 손은 깨끗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 가장 날 선 문장은 적국이 아니라 자기 나라 지도층을 향한다.

    1~39장의 자리는 BC 8세기 후반 유다다. 앗수르의 팽창, 북이스라엘의 소멸(BC 722년), 아람과 북이스라엘이 유다를 끌어들이려 압박한 이른바 시리아-에브라임 위기, 그리고 이집트를 믿고 벌인 반란의 유혹이 배경에 깔린다. 책은 예언자의 소명 장면(6장)을 앞머리가 아니라 다섯 장이나 지난 자리에 배치하는데, 웃시야 왕이 죽던 해로 시점을 못 박고 성전에서 본 압도적인 환상을 서술한다. 여기서 예언자는 자기 입술이 더럽다는 자각과 함께 파견에 자원하지만, 곧이어 그의 말이 잘 통하지 않으리라는 예고를 받는다. 성공이 아니라 실패를 전제로 파견되는 이 구조는 후대의 예언자 소명 서사에 반복해서 인용된다. 7장의 임마누엘 표징도 이 국면에 속한다. 겁먹은 아하스 왕에게 한 아이의 출생과 그 이름이 표징으로 제시되는 장면인데, 여기 쓰인 히브리어 '알마'가 무엇을 가리키느냐를 두고 오랜 번역 논쟁이 있다(흔한 오해 항목 참조). 사회 비판의 언어도 주목할 만하다. 1장은 제사 자체를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부정한 손으로 드리는 제사가 무의미하다고 선언하며, 5장의 포도원 노래는 정의(미슈파트)와 압제(미스파흐), 공의(츠다카)와 비명(츠아카)이라는 발음이 비슷한 낱말을 나란히 놓아 기대와 결과의 어긋남을 소리로 들려주는 언어유희를 쓴다.

  2. 사건

    드디어 큰 군대가 예루살렘을 둘러쌌어요. 성 밖에서 항복하라고 외쳤어요. 왕은 너무 무서웠어요. 이사야에게 어떻게 하냐고 물었어요. 이사야는 겁내지 말라고 했어요. 얼마 뒤 군대는 돌아갔어요.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어요. 세월이 한참 흐른 뒤 나라는 결국 무너졌어요. 사람들은 먼 나라로 끌려갔어요. 이 책의 가운데쯤에서 말투가 확 바뀌어요. 혼내는 말이 멈추고 달래는 말이 나와요.

    위기는 BC 701년(약 2천 7백 년 전)에 정점에 닿는다. 앗수르 왕 산헤립의 군대가 유다의 성읍들을 차례로 함락하고 예루살렘을 포위한다. 성벽 밖에서 앗수르 장교가 성 안 사람들이 알아듣는 히브리 말로 항복을 종용하는 장면은 고대의 심리전 기록으로도 흥미롭다. 히스기야 왕은 이사야에게 사람을 보내 묻고, 포위는 결국 풀린다. 그런데 책의 39장에서 한 장을 넘기면 세계가 통째로 달라져 있다. 40장부터의 청중은 앗수르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이미 나라를 잃고 바벨론에 끌려가 몇십 년을 살아온 사람들이다. 꾸짖음이 멎고 위로가 시작된다. 곧 돌아갈 길이 열린다는 선언이 나오고, 그 길을 열 사람으로 페르시아 왕 고레스가 이름까지 지목된다. 그리고 이 구간 한복판에, 상처 입은 한 사람이 여럿의 짐을 대신 지는 시가 놓인다(52~53장). 이 책에서 가장 많이 읽히고 가장 많이 다투는 대목이다.

    36~39장은 시가 아니라 산문 내러티브로, 열왕기하 18~20장과 거의 겹친다. 두 본문의 선후 관계는 학계에서 계속 논의되는 문제다. 산헤립 자신의 기록인 테일러 프리즘(대영박물관 소장)은 히스기야를 '새장에 갇힌 새처럼' 예루살렘에 가뒀다고 자랑하면서도 도시를 함락했다고는 말하지 않는데, 이 점은 성경 기록과 앗수르 기록을 나란히 놓고 읽을 수 있는 드문 접점으로 자주 인용된다. 40장의 전환은 이 책을 나눠 보는 견해의 출발점이다. 앞선 장들이 앗수르를 현재의 위협으로 다루는 데 비해, 40장 이후는 바벨론 포로 상황을 이미 벌어진 현재로 전제하고 말한다. 고레스를 실명으로 지목하는 대목(44:28, 45:1)에서 그는 '기름 부음 받은 자'라는, 원래 이스라엘 왕에게 쓰이던 호칭으로 불린다. 이방 군주에게 이 칭호를 붙이는 것은 구약 전체에서 이례적이다. 18세기 이후 되더라인과 19세기 둠 등을 거치며 40~55장을 포로기 말의 익명 예언자에게, 56~66장을 귀환 이후로 돌리는 구분이 제시되었고 오늘날 널리 논의된다. 반대로 단일 저작을 지지하는 쪽은 이 구간을 예언자가 먼 미래를 앞당겨 본 것으로 읽으며, 쿰란에서 나온 BC 2세기 대(大)이사야 두루마리가 66장을 한 두루마리로 담고 있다는 점, 책 전체를 꿰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 같은 고유 표현의 분포를 근거로 든다. 다만 쿰란 사본은 BC 2세기의 상태를 보여줄 뿐 그보다 앞선 형성 과정을 직접 증언하지는 않는다는 반론도 함께 제기된다. 이른바 '종의 노래' 네 편(42:1-4, 49:1-6, 50:4-9, 52:13~53:12)에서 이 '종'이 누구인가는 해석사의 큰 갈래다. 유대교 전통은 대체로 고난을 겪은 이스라엘 공동체 자체로 읽어 왔고, 실제로 이 책 안에서 '내 종'이 이스라엘을 가리키는 용례가 여럿 있다. 기독교는 초기부터 이를 예수를 가리키는 본문으로 읽었으며, 신약은 이 대목을 반복해 인용한다. 개별 예언자나 익명의 순교자를 상정하는 독법도 제시되어 왔다.

  3. 결과

    끌려갔던 사람들은 오랜 뒤에 고향으로 돌아왔어요. 그런데 고향은 폐허였어요. 기쁠 줄 알았는데 실망이 컸어요. 집도 성벽도 다시 지어야 했어요. 이 책의 마지막 부분은 그 사람들에게 말해요. 언젠가 새 하늘과 새 땅이 온다고요. 거기서는 아기가 일찍 죽지 않아요. 자기가 지은 집에서 자기가 살아요. 무서운 짐승과 순한 짐승이 나란히 있는 그림도 나와요. 아직 오지 않은 날을 그리며 책이 끝나요.

    돌아온 사람들을 기다린 것은 잔치가 아니었다. 성벽은 무너져 있었고, 성전은 초라했으며, 공동체 안에서는 누가 진짜 우리 편인지를 두고 다툼이 벌어졌다. 56장 이후는 그 실망의 자리에서 나온 말로 읽힌다. 여기서 회복의 범위는 오히려 넓어진다. 혈통이나 신분 때문에 공동체 바깥에 있다고 여겨지던 사람들, 외국인과 자손을 남길 수 없는 이들까지 예배의 자리에 포함된다고 선언한다. 그러면서 시선은 눈앞의 재건을 넘어 훨씬 먼 곳으로 옮겨간다. 마지막 장들은 새 하늘과 새 땅을 그린다. 아기가 며칠 살다 죽지 않고, 집을 지은 사람이 그 집에서 살고, 심은 사람이 그 열매를 먹는 세계다. 거창한 종교 언어가 아니라 지극히 일상적인 항목들로 이루어진 그림이라는 점이 눈에 띈다. 이 책은 문제가 다 풀린 상태가 아니라, 아직 오지 않은 것을 향해 몸을 돌린 자세로 끝난다.

    56~66장은 포로에서 돌아온 뒤의 공동체 내부 갈등을 배경으로 읽히는 경우가 많다. 금식 같은 종교 관행이 정작 노동자를 압박하면서 유지되는 상황을 정면으로 겨냥하는 대목(58장), 성전 출입 자격을 두고 배제되던 이들에게 자리를 여는 대목(56장) 등이 그런 독법을 뒷받침한다. 마지막 두 장의 새 하늘과 새 땅 이미지는 후대 유대 묵시문학과 신약의 종말 서술에 큰 영향을 남겼고, 요한계시록의 마지막 장면은 이 언어를 상당 부분 물려받는다. 수용사 측면에서 이 책은 히브리 시의 정점으로 꼽히며, 구약에서 시편과 함께 가장 많이 인용된 책에 속한다. 초기 기독교는 예수를 설명할 언어를 이 책에서 대량으로 빌려 왔고, 그 인용은 대부분 그리스어 번역본(70인역)을 매개로 이루어졌다. 이 때문에 히브리어 본문과 그리스어 번역본 사이의 차이가 그대로 해석의 차이로 이어진 지점들이 생겼다(7:14가 대표적이다). 한편 이 책의 언어는 종교 바깥에서도 살아남았다. 무기를 농기구로 바꾼다는 2장의 이미지는 유엔 본부 앞 조형물과 반전 운동의 표어로 쓰였고, 미국 흑인 인권운동의 연설에도 40장의 문장이 인용되었다. 한 지방 국가의 위기에서 출발한 말이 그 자리를 훨씬 넘어 확산된 경우로 자주 언급된다.

구조 나누기

  1. 1-12유다를 향한 고발과 이사야의 소명 — 예배와 부패가 함께 갈 수 없다
  2. 13-27주변 나라들을 향한 신탁 — 제국도 심판의 대상이라는 시야
  3. 28-35이집트냐 앗수르냐 — 동맹의 계산에 대한 경고
  4. 36-39예루살렘 포위와 히스기야 (유일한 산문 이야기 구간)
  5. 40-55무너진 사람들에게 건네는 위로, 귀환 선언, 종의 노래
  6. 56-66돌아온 뒤의 실망과 새 하늘 새 땅

핵심 구절 (자체 풀이)

  • 사 1:17예배를 더 열심히 드리라는 요구가 아니라, 재판에서 밀려난 사람과 보호자 없는 이들 편에 서서 그들의 사정을 바로잡으라는 요구가 나온다.
  • 사 6:8누구를 보낼 것인가 하는 물음이 들려오자, 예언자가 자기를 보내 달라고 자원하는 장면. 파견을 자청하는 대표적인 소명 서사로 인용된다.
  • 사 7:14겁에 질린 왕에게 한 아이의 출생이 표징으로 제시되고, 그 아이의 이름에 '신이 우리와 함께 있다'는 뜻이 담긴다. 번역을 두고 오랜 논쟁이 붙은 구절이다.
  • 사 9:6앞으로 통치를 맡을 아이에게 네 겹의 존칭이 잇달아 붙는 대목. 훗날 성탄 음악의 가사로 가장 널리 쓰인 문장 중 하나가 되었다.
  • 사 40:31젊은 사람도 지쳐 쓰러지는데, 기다릴 줄 아는 쪽이 오히려 새 기운을 얻어 멀리까지 간다는 대비. 높이 나는 새의 이미지가 쓰인다.
  • 사 53:5한 사람이 대신 상처를 입었고 그 대가로 다른 이들이 회복되었다는 시. 유대교는 주로 고난을 겪은 공동체로, 기독교는 예수로 연결해 읽어 왔다.
  • 사 65:17지금의 세계를 고치는 수준이 아니라 하늘과 땅을 새로 시작한다는 선언. 이전의 아픈 기억이 더는 사람을 붙들지 않는 상태를 그린다.

등장인물

isaiahuzziahahazhezekiahsennacheribcyrus

이 책의 가르침

  • 나라의 안전은 어느 강대국과 손을 잡느냐가 아니라 그 공동체가 안에서 어떻게 굴러가는지에 달려 있다고 본다. 이 책이 가장 세게 때리는 대상은 적국이 아니라 자기 나라의 지도층이다.
  • 성대한 예배와 부정한 일상이 함께 갈 수 없다고 말한다. 종교 행위 자체가 면죄부가 되지 않는다는 비판은 예언서 전체에서 반복되는 주제다.
  • 심판을 끝이 아니라 다시 시작하는 지점으로 놓는다. 다 무너진 뒤에도 남는 사람들이 있고, 거기서 다시 시작된다는 관점이다.
  • 회복의 범위를 한 민족 안에 가두지 않는다. 후반부로 갈수록 바깥에 있다고 여겨지던 사람들이 회복의 그림 안으로 들어온다.

흔한 오해

이사야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예수의 탄생과 죽음을 미리 알려주려고 쓰인 책이다.

일차적으로는 BC 8세기 유다가 처한 국제 정세와 사회 부패를 향한 발언이고, 후반부는 나라를 잃은 사람들에게 건네는 위로다. 기독교가 여러 대목을 예수와 연결해 읽어 온 것은 사실이지만, 그 독법이 본문의 유일한 자리는 아니다. 유대교는 같은 본문을 이스라엘 공동체의 역사 속에서 읽어 왔다.

이사야 7장 14절의 번역은 한쪽이 명백한 오역이다.

히브리어 본문에 쓰인 낱말은 '알마'로, 결혼 전의 젊은 여자를 가리킨다. 히브리어에는 처녀성을 더 직접적으로 가리키는 '베툴라'라는 별도의 낱말이 있어서, 알마가 처녀성 자체를 지시하는지는 논쟁거리다. BC 3~2세기의 그리스어 번역본(70인역)이 이를 '파르테노스'(처녀)로 옮겼고, 신약의 마태복음이 그 그리스어 본문을 인용하면서 기독교 전통에는 처녀 출생과 연결된 독법이 자리 잡았다. 유대교 전통과 다수의 현대 번역은 문맥상 아하스 왕 당대의 표징으로 보고 '젊은 여자'로 옮긴다. 양쪽 모두 본문에 근거가 있고, 이는 결론이 난 문제가 아니라 번역과 해석의 오랜 갈림길이다.

제1·2·3이사야를 나누는 학설은 성경을 깎아내리려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것이다.

40장 이후가 바벨론 포로 상황을 이미 벌어진 현재로 놓고 말한다는, 본문 자체의 특징에서 출발한 논의다. 단일 저작을 지지하는 쪽은 66장을 관통하는 표현의 통일성과 예언의 성격을 근거로 들고, 복수 저자를 지지하는 쪽은 청중과 문체의 전환을 근거로 든다. 두 견해 모두 신앙을 가진 학자들 안에서 함께 유지되고 있다.

이사야는 권력 바깥에서 왕을 비판하기만 한 재야 인사였다.

그는 왕궁에 접근할 수 있었고 국가 정책에 직접 개입했다. 비판자이면서 동시에 내부자였다는 점이 그의 발언을 더 곤란하고 더 무겁게 만든다.

예언자는 미래를 알아맞히는 사람이었다.

이 책에서 예언은 점술이 아니라 자기 시대를 향한 공개 발언에 가깝다. 미래에 관한 말도 대개 '지금 이대로 가면 이렇게 된다'는 경고이거나, 이미 무너진 사람들에게 건네는 위로의 형태를 띤다.

읽는 요령

66장을 순서대로 완주하려다 대부분 13장 언저리에서 멈춘다. 솔직히 말해 13~23장에 이어지는 주변 나라들에 대한 신탁은 지금 우리에게 낯선 지명과 왕 이름의 연속이라, 처음 읽을 때는 통째로 건너뛰어도 흐름을 놓치지 않는다. 대신 이 순서를 권한다. 6장(소명)으로 사람을 만나고, 36~39장(포위)으로 사건을 본다. 이 네 장은 유일하게 이야기체로 되어 있어 훨씬 잘 읽힌다. 그다음 40장으로 넘어가면 어조가 통째로 바뀌는 순간을 체감할 수 있고, 이어서 53장, 마지막으로 65장을 읽으면 이 책의 골격이 잡힌다. 나머지는 그 뒤에 채워도 늦지 않다. 한 가지 더. 이 책의 대부분은 산문이 아니라 시다. 줄거리를 따라가려 하면 계속 끊기는 느낌이 드는 게 정상이다. 문단마다 결론을 뽑아내려 하기보다, 반복되는 이미지(포도원, 길, 빛, 물)를 표시해 두고 같은 이미지가 다시 나올 때 앞의 것과 견주는 방식이 이 책에는 더 맞는다.